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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봄이 한여름' '한여름이 가을'의 대이변

94년 8월, 평년보다 4℃ 낮은 저온현상

지난 4월은 월평균 기온이 기상관측 이후 가장 높은 분포를 보여 봄이 실종하고 여름이 다가온 느낌을 갖게했다. 이는 상순 중반에 고기압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북쪽으로 제트기류가 남하하지 못해 상층 한기의 유입이 적은 반면 중국 내륙지방으로부터의 난기유입에 따라 고온현상을 보인 때문이다.

우리들은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 의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고 이상인지 아닌지를 진단한다. 이렇게 정상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지구대기의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기준이 필요하다. "요새 날씨는 좀 이상하다"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하게 된다. 오랫동안 같은 곳에서 살게 되면 날씨가 보통 때와 다른지 어떤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장기간 경험한 날씨를 기준으로 정상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혈압에도 정상치가 있는 것처럼 기상에도 표준적인 기후값을 나타내는 수치가 있다. 기후평년값이 그것이다. '평년보다 2℃ 높다'고 할때의 평년값이 혈압의 정상치에 상당한다.

평년보다 1.5-2.0℃ 높거나 낮으면 이상기후

평년값에서 크게 벗어나면 이상기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로써는 막연하기 때문에 양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혈압의 경우 정상인 혈압치에는 폭이 있고 이 폭 바깥으로 지나치게 높거나 낮으면 이상이라고 진단한다.

기상도 이와 유사하다. 기후평년값에 비해 일정한 폭 속에 들어오는 값은 정상, 이 폭보다 크거나 작으면 이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략 보아 월평균 기온의 경우 평년 월평균 기온보다 1.5-2.0℃ 이상 높거나 낮을 때를 이상이라고 진단한다. 이값은 표준편차의 약 2배에 해당한다.

보통 '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일의 일기상태를 뜻하고, 그 평균상태를 '기후'라고 하여 구별하고 있다. 기후는 장기계획을 생각하는 경우, 하나의 기초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나타내는 표준으로서 기후값 또는 평년값을 사용한다.

원래 기후는 일정의 표준이 있고 해마다 그 주위를 복잡하게 변동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표준은 가능한 한 긴 기간의 평균값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할수 있으므로 관측이 시작된 이후의 전부를 평균해 평년치로 한다. 그렇지만 이를 계속 사용해온 결과 수십년 사이에도 표준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그림1)은 일본의 연평균 기온과 영국의 연평균 기온의 연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해마다 복잡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경향은 1910년 무렵은 낮아지고 그 후 점차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1960년 무렵 최고를 보인 후 조금씩 낮아짐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변화를 '기후변화'라고 한다.

기후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않은 평년치를 표준으로 하는 경우 어느 기간동안 매년 높게 나오든가 낮게 나오게 되는 폐단이 생기게 돼 표준 역할을 하기에는 미흡한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과거 30년간의 평균을 기후평년값으로 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매년 바꾸는 것은 번거로우므로 10년마다 바꾸는 것으로 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에는 1951년부터 1980년까지의 평균을 평년값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접하고 있는 평년값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의 30년간 평균이다.
 

(그림1) 기온의 경년변화
 

이상 고온과 저온, 홍수와 가뭄 동시 출현

최근 이상기상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원래 이상하게 강한 태풍이라든가 큰 피해를 초래하는 집중호우 등을 일러 이야기하던 것이 이제는 시원한 여름(冷夏) 또는 장기간 내리는 비와 같이 월평균 정도로 보아 평년보다 크게 변하는 날씨도 기상이변이라는 말을 써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다.

매스컴에서는 흔히 기상이변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만, 우리 기상인들은 자연에는 항상 그런 현상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변이라는 말 대신 표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상 기상이라는 용어는 평년값의 정의와 관련시켜 통계적으로 30년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기상이 발생했을 경우 사용한다.

(그림2)는 이상하게 시원한 여름 때문에 세계적으로 흉작이었던 1980년 8월의 북반구 기온편차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평년보다 2℃ 이상 낮았으며 지역에 따라서 3℃ 이상낮은 곳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1℃ 쯤의 변동이 나타나는 데에 비해서 이렇게 낮아진 것은 통계로 보아서는 1백년에 한번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상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북반구 전체의 기온편차를 보면 기온이 현저하게 낮은 지역은 유럽 동부에도 있는데 반해서 이상하게 기온이 높은 지역은 시베리아와 북미 남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기상이 발생한 경우를 조사해보면 이와 같이 이상고온인 지역과 이상저온인 지역이 함께 나타난다. 또 강수량에도 마찬가지로 호우지역과 가뭄지역이 같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이상기상이 블로킹현상, 즉 극지방과 저위도지방의 기단간의 활발한 교환에 의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위도의 따뜻한 기단이 북상해 그 지역을 고온으로 만들고,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극지방의 찬 기단이 남하한 곳에서는 저온이 되는 것이다. 또한 1년간 지구 전체에서 증발하는 물의 양은 거의 일정하므로 어느 지역에서 강수가 많으면 지구의 다른 어떤 지역에서는 줄어들게 된다.

2-3일 맑은 뒤에는 비가 내린다. 비가 그치면 다시 맑아진다. 이와 같이 맑음과 비가 반복되면 농작물에는 순조로운 일기다. 일기도를 보면 고기압과 저기압이 교대로 우리나라를 통과할 때다.
 

(그림2) 1980년 8월 북반구의 기온편차도
 

이상기상은 상공 기류분포와 연관

하지만 한결같이 비와 흐린 날이 계속되는 때가 있다. 일기도를보면 매일 저기압과 전선이 우리나라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반대로 맑은 날이 지속돼 비가 오지 않아서 물부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때 일기도를 보면 매일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덮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비슷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은 고기압과 저기압의 이동이 느려져 기압계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압과 저기압의 이동을 좌우하는 것은 상공의 바람이다. 상공의 서풍이 빠를 때에는 지상의 고·저기압은 순조롭게 이동한다. 반대로 상공의 서풍이 느릴 때에는 지상의 고·저기압의 이동도 느려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상기상은 상공의 기류분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상공 대기의 흐름이 어떻게 하여 변화되는가는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해명된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는 티벳고원과 같은 큰 산악, 태평양과 같은 광대한 바다, 아마존과같이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우림, 사하라사막과 같이 건조한 대지뿐만 아니라 북극과 남극이란 대빙원이 펼쳐져 있다.

이와 같이 한 지구라도 그 표면에는 여러가지 특성을 지닌 지형이 있다. 이들에 접하고 있는 대기는 따뜻해지기도 하고, 냉각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영향을 지표면으로부터 받게 된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구가 구형이면서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이 적도지방에서는 많고 극지방에서는 적으므로 대기는 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운동을 하게 한다.

이와 같은 요인이 작용해 상공의 흐름이 빨라지기도하고 느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연적 요인뿐만 아니라 삼림파괴와 이산화탄소의 증가 등 인간활동이 원인이 돼 이상기상이 발생하지 않는지 우리 모두 다같이 염려해야 할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작년 8월 평년보다 2-4℃ 낮아

세계 각지에서 이상기상이 빈발하는 것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최근 몇십년만의 기록이라든가 관측이래 극값이라는 등의 보도를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각지의 기후는 서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한곳에서 발생한 이상기상은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도 이상기상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더욱이 그 원인은 앞에서도 지적한대로 복합적이므로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기에 기상청으로서는 항상 곤혹스러운 입장이 된다. 이런 사정은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작년 여름에 나타난 저온 현상과 올 4월에 있었던 고온 현상을 데이터로 한번 살펴보자.

93년 8월은 6월과 7월에 이어 전국이 평년보다 2-4℃가 낮은 저온현상을 보였다. 월평균기온은 16-25℃의 분포였다. 대관령 인제 태백 등 강원 산간지방과 경북 북부지방의 춘양 울진 점촌 및 충북 제천과 전북 장수, 경남 거창이 16-21℃의 분포를 보였다. 서울 전주 광주 및 남부 해안지방과 제주도가 23-25℃, 그밖의 지방은 21-23℃의 분포를 나타냈다.

주요 도시의 평균기온 및 평년차는 (표1)과 같다. 월평균 최고기온도 전국이 20-28℃의 분포로 평년보다 1-8℃ 낮았다.
 

(표1) '93년 8월의 평균기온 및 평년차(℃)
 

지난 4월 평년보다 5-13℃ 높아

지난 4월은 월평균 기온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분포를 보여 대부분의 지방에서 월 평균기온 최고의 순위값을 경신했다. 상순 중반에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북쪽으로 제트기류가 남하하지 못해 상층 한기의 유입이 적은 반면에 중국 내륙지방으로부터의 난기 유입에 따라 거의 전국적으로 고온현상을 보였다.

5일 제주도 남부지방을 제외하고는 평년보다 5-13℃ 정도 높은 21-29℃의 일최고기온 분포를 보였고, 6일에도 계속해서 기온이 높아 이천과 인제 29.5℃, 춘천 29.3℃, 홍천 29.2℃까지 일최고기온이 올라가 초여름 날씨를 나타냈다.

6일 인제지방의 일최고기온은 기상관측소 창설 이래 가장 높은 극값이었다. 또한 하순에도 국지적으로 높은 기온을 기록해 4월 월평균기온의 극값을 경신한 관측소가 많이 나왔다. (표2)는 극값을 경신한 관측소를 정리한 것이다.
 

(표2) '94년 4월 월평균기온 극값을 경신한 관측소
 

자연재해 사전대비로 피해 줄여야

필자는 대학 2학년이었던 1975년부터 기상분야에 몸을 담게 되면서, 그전에는 무심코 대하던 날씨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됐다. 평소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좋은 날씨의 혜택도 실감할 기회가 없으면 잘 모른다. 우리 인간은 망각을 하기에 살수 있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자연재해만은 사전에 대비해 피해를 줄이는 지혜를 갖춰야 할 것이다.

1983년 9월1일은 기억에도 새로운 KAL 007기가 피격된 날이다. 그로부터 바로 1년 뒤인 1984년 9월1일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초래했다. 원혼의 눈물이 아닌 정상적인 일기현상이겠지만 쉽사리 잊을 수 없는 기억중의 하나다. 작금의 환경보호 운동도 당장 우리 주위에서 나타나는 자연훼손의 방지뿐만 아니라 미증유의 재해를 초래할 수 있는 이상기상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전개돼야 할 것이다.

199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기영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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