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리성 이온 음료, 위산 과다, 산성비, 양잿물 같은 자연계 드라마의 주인공 산과 염기, 각각은 독특한 성질을 나타내다가도 서로 만나면 자연스럽게 중화반응을 이뤄내는 개성파 연기자들이다. 이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매년 같은 농작물을 심으면 흙이 산성화돼 수확량이 줄어들고, 공해 때문에 생기는 산성비는 산림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한다. 또 음식을 많이 먹으면 산성인 위산이 많아져서 속이 불편해지고, 콜라나 사이다 같은 산성의 탄산 음료보다는 알칼리성의 이온음료나 우유가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산성은 나쁘고 알칼리성은 좋은 것일까. 맹독성 화학물질인 양잿물이 알칼리인 것을 보면 알칼리라고 모두 좋은 것도 아닌 모양인데.
도대체 산(酸)과 알칼리 또는 염기(鹽基)란 무엇일까? 화학에서 산과 염기는 서로 대립되는 특성을 가진 개념으로 일상 생활이나 화학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의 기초를 이룬다. 이뿐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반응을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화학 물질과 마찬가지로 산이나 염기가 무조건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산과 염기에 대한 정확한 상식을 가지고 현명하게 사용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잘못 사용하면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될 뿐이다.
흔히 시큼한 맛이 나는 식초와 같은 물질을 산이라고 하고, 양잿물과 같이 톡 쏘는 맛이 나고 미끄럽게 느껴지는 물질을 염기라고 한다. 나트륨이나 칼륨과 같은 알칼리 금속의 화합물 중에서 염기의 성질을 가진 물질이 많기 때문에 염기라는 말 대신에 알칼리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암모니아(N${H}_{3}$)처럼 알칼리 금속이 없으면서도 염기성인 물질이 많기 때문에 알칼리보다 염기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
만나면 약해지는 영원한 짝
진한 염산(HCl) 용액에 아연이나 마그네슘과 같은 금속을 넣으면 금속이 녹으면서 수소(H₂)기체가 발생한다. 염산분자가 물 속에서 깨지면서 생기는 수소 이온(${H}^{+}$)이 금속의 전자를 빼앗아 수소 분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에 녹아서 수소 이온을 내놓는 물질을 산이라고 한다.
한편 수산화나트륨(NaOH)은 유기물질을 분해시키거나 알루미늄을 녹여버리는 위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힌 하수도를 뚫어주기도 하고, 묽은 용액은 옷감에 묻은 때를 지우기도 한다. 이것은 수산화나트륨이 물에 녹으면 수산기(O${H}^{-}$)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에 녹아 수산기(O${H}^{-}$)를 내놓는 물질을 염기라고 한다. 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우려낸 잿물에는 염기성의 탄산칼륨(K₂CO₃)이 녹아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세제로 사용했다.
산소 원자의 양쪽에 104.5。의 각도로 두 개의 수소가 붙어있는 물분자들은 수소결합이라는 약한 결합으로 뭉쳐있다. 그런 물분자들 중에는 산소와 수소 사이의 결합이 깨져서 수소 이온과 수산 이온으로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순수한 물 속에도 산성 물질에서 나오는 수소 이온과 염기성 물질에서 나오는 수산 이온이 함께 들어있다. 그렇지만 그 양은 매우 적어서 pH(‘피에이취’라고 읽음)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 농도를 표시한다. 25℃의 물 18mL에는 ${10}^{-7}$ 몰의 수소 이온과 수산 이온이 녹아있고, 그런 경우에 pH는 7이 된다.(그림1)
염산 같은 산성 물질을 물에 넣으면 수소 이온의 농도가 증가하면서, pH는 7보다 작아진다(그림2). pH는 농도의 역수에 상용로그 값을 취한 것이기 때문에 수소 이온의 농도가 10배 커지면 pH는 반대로 1만큼 줄어든다. 따라서 수산화나트륨과 같은 염기성 물질을 물에 넣으면 pH가 7보다 커진다. 순수한 물처럼 pH가 7인 용액은 중성이라고 부른다. 레몬이나 오렌지 같은 과일즙은 산성이고, 빵의 반죽을 부풀릴 때 사용하는 식용 소다나 제산제는 염기성이다.
맹독성의 염산과 수산화나트륨을 같은 양씩 섞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놀랍게도 염산과 수산화나트륨의 독성은 깨끗하게 사라지면서 마셔도 괜찮은 소금물이 생긴다. 이는 바로 산과 염기 사이에 중화반응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산과 염기가 해리돼 나오는 수소 이온과 수산 이온은 서로 만나면 아무런 해가 없는 물분자가 되고, 남은 찌꺼기들은 염(鹽)이 되는 것이 중화반응이다. 이렇듯 수소 이온과 수산 이온이 정확하게 1대 1로 만나서 물분자가 되는 중화반응은 화학 반응 중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반응이다.
세균 죽이는 위산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서 조리한 음식물이라도 병균이나 미생물들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음식물을 먹은 사람은 탈이 나야 할 텐데,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은 그런 음식을 먹어도 별 탈이 없다. 여기에는 화학적인 이유가 있다. 물론 우리 몸 속에서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는 면역체계 덕분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음식물에 묻은 미생물의 대부분이 위 속에서 분비되는 위산에 의해 죽기 때문이다. 위산은 세균을 죽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은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소화 작용도 함께 한다.
위산의 정체는 바로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산성물질인 염산. 사람 위액의 pH는 0.9-1.5 정도로 매우 강한 산성이다. 위벽에서 배출되는 위산이 단백질로 돼 있는 미생물을 녹여 버리기 때문에 제거되는 것이다.(그림4)
하지만 위산을 얻기 위해 식도를 녹여 버릴 수도 있는 염산을 마실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위산은 소고기나 김치에 많이 들어있는 소금(NaCl)에서 나온 염소이온(C${l}^{-}$)과 혈액 속에서 생기는 수소 이온(${H}^{+}$)이 위벽에서 함께 배출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그림5)
그렇다면 같은 단백질인 위벽의 세포는 어떻게 강한 산성인 위산 속에서 견딜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위벽의 세포가 특수한 점액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산에 녹아버리는 세포도 있으나 건강한 사람의 위벽 세포는 1분에 50만개씩 새로 만들어지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위산이 많이 분비돼 문제가 된다. 이 경우 제산제를 먹으면 곧 편안해진다. 왜냐하면 제산제에 들어있는 탄산수소나트륨(NaHCO₃), 수산화마그네슘(Mg(OH)₂), 또는 수산화알루미늄(Al(OH)₃)과 같은 약한 염기성 물질이 남은 위산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정상인의 체액 pH 7.4
체질을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구분하고, 산성 체질보다 알칼리 체질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음식물도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구분해서 알칼리성 음식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일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치즈와 육류는 산성 식품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분은 음식물의 화학적 성질이 아니라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최종 대사 물질을 근거로 한 것이다. 즉 최종 분해 산물로 알칼리 원소가 많은 식품을 알칼리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몸 안에서 산성 또는 염기성으로 구분되는 대사 물질이 만들어지더라도 혈액의 완충작용 때문에 몸 속의 산성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노폐물이 제때 배출되지 못하고 몸 안에 축적되면 문제가 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체액 pH는 7.4이다. 화학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의 체질은 중성이라는 뜻이다. 만약 체액의 산성도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면 환자의 혈액형에 따라 적절한 피를 수혈해야 하는 것처럼 포도당(링거) 주사액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포도당 주사액은 전해질과 pH를 사람의 체액과 똑같이 만들어 놓은 용액으로, 병원에 입원하면 아무런 검사 없이 똑같은 주사액을 사용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혈액의 산성도는 누구나 똑같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생선 비린내 없애는 중화반응
전에 불고기 집에서 고기 굽는 판을 묽은 양잿물(수산화나트륨)로 씻어서 말썽이 된 적이 있다. 맹독성의 물질로 알려진 수산화나트륨으로 불고기 판을 씻는 것을 본 소비자들이 놀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양에서 들여온 양잿물을 묽게 만들어서 불고기 판에 붙어있는 찌꺼기를 씻어내는 것은 잿물을 세제로 사용하던 우리 선조의 지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즉 양잿물로 씻은 불고기 판을 깨끗한 물로 충분히 헹궈주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불고기 판을 씻어낸 물에 적당 양의 염산을 넣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조금 더러운 소금물을 버리는 셈이 돼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라면의 원료인 우지(牛脂)를 오래두면 산화가 일어나서 지방산이 생긴다. 쇠고기 기름을 공기 중에 오래 놓아두면 표면이 미끌미끌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그렇다고 산화된 우지를 모두 버리면 정말 아까운 일이다. 묽은 양잿물을 이용해 중화시키면 간단히 깨끗한 우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과 염기의 중화반응을 이용하는 예는 또 있다.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는 약한 염기성을 가진 아민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이다. 여기에 시트르산이라는 약한 산성 물질이 많이 들어있는 레몬즙을 뿌려주면 비린내를 풍기는 아민이 중화되면서 휘발성이 적은 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불쾌한 냄새가 없어진다.
같은 농작물을 계속 심으면 흙이 산성으로 변한다. 대부분의 유기물은 분해되면 산성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물질이 된다. 하지만 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대부분의 물질들은 질소 화합물이나 알칼리 이온들 같은 염기성이다. 즉 흙이 산성화되면 식물의 대사에도 영향을 주고, 필요한 영양분의 공급에도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 식물을 심어주면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서 염기성의 질소 화합물을 만들어 흙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겨울에 논에 나무를 태운 재를 뿌려 주는 것도 잿물로 흙을 중화시키고, 필요한 알칼리 이온을 공급해주기 위해서다. 역시 염기성인 암모니아나 석회를 뿌려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환경도 보호하고, 자원을 아끼며, 생활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예들이다.
유적 갉아먹는 산성비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나 동상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표면에 심한 얼룩이 생긴다. 심지어 코가 녹아내린 동상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염기성의 석회석이 빗물에 녹아있는 질산이나 황산과 같은 산성물질과 중화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고 보니 중화 반응이라고 그 결과가 모두 바람직한 것만은 아닌 셈이다.
자동차의 엔진처럼 높은 온도에서 화석 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질소나 황의 산화물이 공기 중에서 수분과 합쳐져서 생기는 비가 산성비다. 어떤 산성비의 경우 pH가 4.5나 되기도 한다.
사실 공해가 전혀 없더라도 빗물은 약한 산성을 띤다. 바로 지구의 대기 중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번개 때문이다. 전자들이 모인 구름에서 만들어지는 초대형의 스파크인 번개가 공기 중의 질소 분자들을 깨뜨리면 질소 산화물이 생기고 이것은 결국 질산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산은 비와 함께 지표를 적신다. 따라서 공해가 없더라도 산성비는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때의 산성비는 식물에게 질소를 공급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산병과 이산화탄소
에베레스트산 처럼 높은 산에는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올라가야 한다. 특별히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은 고산병에 걸려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산병도 알고 보면 혈액의 산도와 관련돼 있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공기의 밀도가 낮아진다. 따라서 몸이 필요로 하는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호흡을 더 빨리 해야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 대가로 피 속에 들어있던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잃어버린다는 문제가 생긴다. 몸에서 만들어진 노폐물의 하나로 어차피 버려야 할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혈액의 pH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대사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온도가 1℃만 바뀌거나 pH가 0.1만 바뀌어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산화탄소가 혈액에 녹으면 탄산수소이온(HCO₃-)과 탄산(H₂CO₃)이 만들어지면서, pH가 7.4인 용액이 된다. 이러한 핏 속에 산성물질을 넣어주면 탄산수소이온과 중화 반응을 일으키고, 염기성 물질을 넣어주면 탄산과 중화 반응을 일으켜 혈액의 산성도, 즉 pH는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 외부에서 넣어준 산이나 염기 모두와 중화반응을 할 수 있어서 산성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완충 작용이라고 한다. 핏 속에 많이 녹아있는 인산수소이온(HP${O}_{4}$²-)과 인산이수소이온(H₂P${O}_{4}$-)도 이산화탄소와 함께 혈액의 완충 작용에 큰 도움이 된다.
혈액의 완충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순수한 물 1L의 pH를 7에서 2로 변화시킬 수 있는 양의 염산을 혈액 1L에 넣어주면 그 pH는 7.4에서 7.2로 겨우 0.2가 바뀌게 될 뿐이다. 산성인 식초를 많이 먹어도 몸에 이상이 없는 이유가 바로 혈액의 효과적인 완충작용 때문이다.
이제 왜 노폐물인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즉 이산화탄소가 몸에서 과도하게 빠져나가면 혈액의 완충 능력이 없어지고 혈액 자체도 염기성으로 바뀌게 된다. 산소를 공급받지 않고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면 혈액의 pH는 7.7까지 변한다. 그렇게 되면 몸 속의 모든 화학 반응에 문제가 생기게 돼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 물론 혈액이 산성으로 바뀌어도 심각한 병이 생긴다.
식량 증산에서 반도체 개발까지
산과 염기는 산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60억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염기성 물질인 암모니아 같은 화학 비료 덕분이다. 독일의 프리츠 하버는 공기의 80%를 차지하는 질소를 이용해서 염기성의 암모니아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현대 화학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이룩했다. 하버는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칠레에서 가져오던 폭약 원료인 칠레 초석을 대체하기 위해서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하버 방법으로 만들어진 암모니아는 화학 비료로 사용돼 인구의 식량생산의 원동력이 됐다.
인산이수소칼슘(Ca(H₂P${O}_{4}$)₂)과 석고(CaS${O}_{4}$)가 혼합된 과인산 비료는 인회석을 황산(H₂S${O}_{4}$)으로 처리해서 만든다. 질산(HN${O}_{3}$)은 비료, 폭약, 플라스틱의 주요 원료이고, 인산(${H}_{3}$P${O}_{4}$)도 비료의 원료가 된다. 약한 산인 플루오르화수소(HF)는 유리를 녹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반도체에 회로를 새기는 데 사용된다.
대표적인 염기인 수산화나트륨은 화학 공정에 남아있는 산을 중화시켜 제거하는 중화제로 엄청난 양이 사용된다. 정유 공정에서 생기는 황산을 비롯한 유기산을 제거하기도 하고, 지방산을 비누로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며, 셀로판, 레이온, 종이 생산에도 이용된다.
이밖에도 산과 염기는 물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화학 반응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늘도 전세계의 화학 공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유 있는 꽃 색깔
대부분의 과일은 시트르산이라는 산성 물질 때문에 독특한 신맛을 낸다. 과일의 맛과 향기, 그리고 색깔은 과일즙에 들어있는 시트르산과 같은 산성 물질의 종류와 농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사람들이 콜라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과일즙의 맛과 비슷한 산성물질인 인산이 0.05%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과일의 신맛에 익숙한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든 또다른 음료로 알칼리성 이온음료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화학적으로는 산성이다. 나트륨과 같은 알칼리 이온이 많이 들어있다고 알칼리성 이온음료라고 하지만, 사실은 과일즙과 같이 약간 신맛이 나도록 만들어놓은 달콤한 소금물에 지나지 않는다.
장미꽃은 붉고, 수레국화는 푸른색이고, 다알리아 꽃은 검붉은색이다. 모두 안토시아닌이라는 한 가지 화학물질 때문이다. 어떻게 한 가지 물질이 여러 가지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안토시아닌이 담겨있는 용액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안토시아닌은 구조가 매우 복잡한 산성 물질로 수소 이온이 결합하면 그 색깔이 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소 이온이 많은 산성 용액에서는 붉은색이 되고, 중성 용액에서는 보라색이 되며, 수소 이온이 거의 없는 염기성 용액에서는 푸른색을 나타낸다.(그림7)
용액의 산성도에 따라서 다른 색깔을 나타내는 물질은 보라색의 양배추 즙에도 들어있다. 여러 종류의 색소가 포함된 양배추즙은 용액의 산성도에 따라서 붉은색에서 노란색까지 다양한 색깔을 나타낸다. 이처럼 용액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물질을 지시약이라고 한다. 리트머스 종이에 묻어있는 파란색과 붉은색의 지시약은 산성 용액에서는 붉은색이 되지만 염기성에서는 푸른색이 되는 일종의 유기용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