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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울산 일대에서 일어난 산불은 산림 2.8km2를 태우고, 40여억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3월 9일, 울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능선을 타고 경주까지 번졌다.이 산불로 축구장 28개 만큼의 산림이 불타고 40여억 원의 재산피해가 생겼다.
불이 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한순간은 수 년~수십 년 동안 자라온 숲을 검은 폐허로 만들어버린다. 재로 뒤덮인 공간은 다시 복구되지 않을 것처럼 허전하고 보고 있노라면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간다. 그러나 시간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던가.
산불이 지나간 자리,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지만 오묘하게도 새 주인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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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살아온 나무라도 화마가 덮치는 것은 한순간이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되지만 그 자리는 금세 새로운 식물로 채워진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되지만 그 자리는 금세 새로운 식물로 채워진다.
산불이 나고 폐허가 된 자리는 어떻게 복원될까. 때로는 인공적으로 숲을 조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2000년 4월 7일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났던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 산불에는 200명이 넘는 전문가의 조사 끝에 인공복구 52%, 자연복원 48%을 적용했다.
화마가 지나가도 숲은 살아있다
산불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에도 자연복원에 대한 이의 제기가 많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메마른 땅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수 년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인공적으로라도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숲은 시급한 인공복구가 필요할 정도로 무능력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숲의 ‘천이’와 ‘교란’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우선 메마른 땅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숲은 항상 같은 형태와 구성으로 멈춰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끊임없이 생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대형 산불이라는 화마가 지나간 상황이더라도 숲은 묵묵히 안정된 상태를 향해 서서히 바뀐다.
숲의 이러한 변화가 바로 ‘천이’다. 천이는 한 장소에서 시간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식물상의 변화를 말한다. 땅을 덮고 있는 식피(植被)의 변화 또는 ‘식생 천이’라고도 한다. 특별한 영향이 없다면 숲은 느끼기 힘들 정도의 느린 속도로 천이한다.
천이의 반대말은 ‘교란’이다. 교란은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산불에 산림이 소실되거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난대림이 북상하는 것이 교란이다. 소나무재선충이 소나무류에, 참나무시들음병이 참나무류에 피해를 입혀 숲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도 교란이다.
우리나라 숲의 천이와 교란을 좀 더 들여다보자.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분포해 난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종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개발,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전쟁을 거친 이후 전반적으로 황폐화됐다. 이후 각고의 노력과 ‘치산녹화사업’으로 다시금 제대로 된 숲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숲이지만 내부 실상은 다르다. 끊임없는 교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벌채, 조림, 화전농업 등 인위적 교란과 화산, 산불, 폭풍 등 자연적 교란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산불과 같은 교란이 일어나면 2000년 고성 산불에서처럼 기존의 식물군락이 파괴된다. 하지만 살아남은 식물과 새로운 식물이 함께 점차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며 생육공간으로 뻗어나간다. 이 중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은 다른 식물에 비해 군락이 자랄 공간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그렇다고 생장속도가 빠른 종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오묘하게도 숲은 다른 식물과 공존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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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 물리는 천이와 교란
천이와 교란은 숲이 스스로 살아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정이다. 안정화 상태로 스스로 숲이 변화하려는 천이와 (인위적·자연적) 외부 요인 때문에 식생 환경이 바뀌는 게 교란이다. 얼핏 이해하면 천이와 교란은 원인이 다르지만 숲이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변화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특히 주위 환경 변화에 생태적 안정을 꾀하려는 숲과 식물들의 놀라운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경외감이 들게 한다.
신갈나무와 소나무의 관계는 숲의 천이와 교란 과정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도토리나무로 알려진 신갈나무와 구상나무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신갈나무는 전남 대둔산에서부터 함북 온성에 이르는 지역의 해발 100m 높이에서 1800m까지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다. 상록침엽수인 구상나무는 제주도 한라산 해발 1200m지점을 중심으로 제한된 지역에 분포한다. 두 나무는 최적 환경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서식지 확보를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신갈나무와 소나무는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다. 신갈나무는 토양이 깊고 비옥한 곳에 잘 자라는데 비해 소나무는 능선이나 계곡의 척박한 토양에 주로 자란다. 토양이 척박했던 때 남산에서 많이 자랐던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토양 조건이 바뀐 최근에는 서식지를 잃고 신갈나무로 대체되고 있다.
소나무숲이 점차 신갈나무숲으로 바뀌는 현상은 교란이 아닌 천이다. 천이는 숲생태계가 지속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서서히 안정화되는 과정을 뜻하기 때문이다. 바위가 풍화되어 광물질 토양이 되고 낙엽이 분해된 유기물이 토양과 섞이면 자연스럽게 토양이 비옥해지고 수분이 증가한다. 결국 척박한 토양을 좋아하는 소나무에서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는 신갈나무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갈나무숲이 소나무숲으로 바뀌는 것은 천이가 아닌 교란이다. 강도 높은 산불에 의해 숲이 망가졌다면 자연적인 변화에 역행해 천이를 되돌려 놓는 현상이므로 숲이 교란을 받았다고 한다. 교란이 일어나면 신갈나무숲이 소나무 숲이나 초목이 없는 나지로 바뀔 수 있다. 대서양 연안의 건조한 포르투갈은 실제로 산불 후에 소나무숲이 형성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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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본체는 타버렸다고 해도 뿌리가 살아있다면 일종의 나무싹인 맹아가 올라온다.
재앙이 지나간 자리에도 남아있는 씨앗이 있다
산불이라는 재앙 전후로 숲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피기 위해 강원도 한계령에 있는 신갈나무숲을 생각해보자. 이 숲은 산불 이전에는 높이 8m 이상 되는 신갈나무 이외에도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잣나무 등이 섞여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2~8m 높이인 아교목층에는 당단풍나무, 개옻나무 등이 함께 자라며, 관목층인 0.7~2m 높이에는 철쭉나무, 생강나무, 머루나무, 국수나무, 쥐다래나무, 산앵두나무 등이 분포한다. 0.7m 이하의 초본층에는 제비꽃, 애기나리, 고사리, 더덕 등이 있다.
한 관광객이 무심코 버린 담배 때문에 낙엽이 연기를 내면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이후 이 불길은 주변에 가득한 나뭇잎을 태우고 강한 바람에서 공급되는 산소를 이용해 점차 거대해진다.
산불이 사그라진 뒤 이 숲은 어떻게 바뀔까. 산불은 지면 위에 있는 것들은 전부 태워 없애지만 지하로는 깊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가장 먼저 보이기 시작하는 식물은 포자 번식을 하는 고사리다. 그 뒤를 따라 참취같은 초본류가 검은 대지에서 싹을 틔운다. 뿌리에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면 나무들은 싹을 틔워 새로운 개체를 형성한다.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이런 특성이 강해 산불 이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인 맹아를 내어 맹아림을 형성한다. 산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나무들이 다시 숲을 만든다.
다만 소나무는 산불에 취약하기 때문에 일단 산불이 나면 거의 대부분이 타버린다. 소나무가 타버리면 참나무는 그 때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산불 발생 1년 뒤 보통 초본층에 있었던 참나무류의 맹아는 산불 발생 3년 후 관목층을 이룬다.산불발생 2년 후부터 맹아간 경쟁을 시작해 일부는 아교목층에 도달한다. 3년 만에 2m가 넘게 자라는 셈이다. 불의 피해를 입지 않은 뿌리 부분의 양분흡수력이 크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에는 본래 소나무가 우세했다고 하더라도 교란과 천이를 거쳐 소나무숲과 참나무숲이 모자이크처럼 섞여있는 숲으로 바뀐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수종이 천이하며 자연적인 교란을 통해 상존하기 때문에 숲의 모습도 다양하다. 한라산의 구상나무숲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숲처럼 길을 걸어가며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해남 대흥사의 동백나무 숲처럼 눈을 즐겁게 해주는 숲이 있는가 하면 보성의 차밭처럼 미각을 즐겁게 하는 숲이나 장성의 편백림처럼 향기를 제공하는 숲도 있다.
물론 울진 소광리나 강릉 대관령휴양림, 삼척 준경묘의 소나무처럼 팔로 껴안아 촉감으로 그 우람함을 즐길 수 있는 숲도 있고 섬진강의 대나무숲처럼 가만히 들어앉아 있노라면 바람 스치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는 숲도 있다. 이처럼 육체의 오감을 자극하는 숲을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숲도 결국은 재앙이 지나간 황량한 벌판에서 발생한 새싹의 천이와 교란으로 나타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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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라는 재앙 전후로 숲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피기 위해 강원도 한계령에 있는 신갈나무숲을 생각해보자. 이 숲은 산불 이전에는 높이 8m 이상 되는 신갈나무 이외에도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잣나무 등이 섞여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2~8m 높이인 아교목층에는 당단풍나무, 개옻나무 등이 함께 자라며, 관목층인 0.7~2m 높이에는 철쭉나무, 생강나무, 머루나무, 국수나무, 쥐다래나무, 산앵두나무 등이 분포한다. 0.7m 이하의 초본층에는 제비꽃, 애기나리, 고사리, 더덕 등이 있다.
한 관광객이 무심코 버린 담배 때문에 낙엽이 연기를 내면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이후 이 불길은 주변에 가득한 나뭇잎을 태우고 강한 바람에서 공급되는 산소를 이용해 점차 거대해진다.
산불이 사그라진 뒤 이 숲은 어떻게 바뀔까. 산불은 지면 위에 있는 것들은 전부 태워 없애지만 지하로는 깊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가장 먼저 보이기 시작하는 식물은 포자 번식을 하는 고사리다. 그 뒤를 따라 참취같은 초본류가 검은 대지에서 싹을 틔운다. 뿌리에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면 나무들은 싹을 틔워 새로운 개체를 형성한다.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이런 특성이 강해 산불 이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인 맹아를 내어 맹아림을 형성한다. 산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나무들이 다시 숲을 만든다.
다만 소나무는 산불에 취약하기 때문에 일단 산불이 나면 거의 대부분이 타버린다. 소나무가 타버리면 참나무는 그 때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산불 발생 1년 뒤 보통 초본층에 있었던 참나무류의 맹아는 산불 발생 3년 후 관목층을 이룬다.산불발생 2년 후부터 맹아간 경쟁을 시작해 일부는 아교목층에 도달한다. 3년 만에 2m가 넘게 자라는 셈이다. 불의 피해를 입지 않은 뿌리 부분의 양분흡수력이 크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에는 본래 소나무가 우세했다고 하더라도 교란과 천이를 거쳐 소나무숲과 참나무숲이 모자이크처럼 섞여있는 숲으로 바뀐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수종이 천이하며 자연적인 교란을 통해 상존하기 때문에 숲의 모습도 다양하다. 한라산의 구상나무숲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숲처럼 길을 걸어가며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해남 대흥사의 동백나무 숲처럼 눈을 즐겁게 해주는 숲이 있는가 하면 보성의 차밭처럼 미각을 즐겁게 하는 숲이나 장성의 편백림처럼 향기를 제공하는 숲도 있다.
물론 울진 소광리나 강릉 대관령휴양림, 삼척 준경묘의 소나무처럼 팔로 껴안아 촉감으로 그 우람함을 즐길 수 있는 숲도 있고 섬진강의 대나무숲처럼 가만히 들어앉아 있노라면 바람 스치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는 숲도 있다. 이처럼 육체의 오감을 자극하는 숲을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숲도 결국은 재앙이 지나간 황량한 벌판에서 발생한 새싹의 천이와 교란으로 나타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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