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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수소가 펼치는 우주의 경이

별을 만드는 연금술사


태양을 이루고 있는 원소의 대부분은 수소이다. 수소는 태양의 내부에서 H+ 이온으로, 표면에서는 수소 원자로 존재한다. 사진에서 검게 나타나는 흑점은 온도가 주변보다 2천도 정도 낮으며, 수소 분자가 발견된다. 태양에는 또한 H- 이온도 있다.

 

수소가 대부분인 우주에서 지난 1백50억년간 수없이 많은 초신성 폭발을 통해 다양한 원소가 만들어졌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바로 별을 구성하는 수소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수소가 펼쳐가는 우주의 오딧세이를 따라가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수소는 매우 희귀한 원소이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에는 질소와 산소가 대부분이고, 지구의 내부는 산소, 규소, 알루미늄, 철 등의 무거운 원소로 이루어졌다. 수소 원자는 다른 원자와 결합해 물, 수증기, 메탄 등으로 극히 미량이 있을 뿐, 순수한 수소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소는 명실 공히 우주의 지배자요, 자연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수소가 펼쳐놓은 우주의 경이를 따라가 보자.



우주에는 수소가 얼마나 있을까?

우선 지구가 속한 태양계부터 살펴보자. 지구는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아홉 행성 중의 하나이다. 행성의 질량은 태양의 질량에 비하면 무시할 정도로 작다. 아홉 행성의 질량의 합은 태양 질량의 0.13%에 불과하다. 태양은 지구와 달리, 대부분이 수소(73%)와 헬륨(25%)이며, 약간의 탄소, 산소, 철 등의 무거운 원소로 돼 있다. 따라서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물질의 대부분은 수소인 셈이다. 지구의 조성이 태양과 크게 다른 이유는, 46억 년 전 태양계가 생성될 당시 태양에 가까운 곳에서는 온도가 높기 때문에 오직 무거운 원소만이 고체로 응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목성이나 토성과 같은 행성들은 태양과 거의 비슷한 조성을 갖고 있다.

태양은 우리은하를 이루고 있는 1천억개의 별들 중 하나다. 그리고 거의 모든 별들이 태양과 비슷한 질량과 조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은하 안에는 태양 질량의 1천억배의 수소가 있는 셈이다. 또 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하들이 있으며, 우리은하는 그 중의 하나이다. 허블망원경 사진에 따르면, 사방 1도인 하늘의 작은 영역 안에 약 수백만 개의 은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사방 1도인 영역은 대략 보름달이 4개 들어가는 크기이다). 전체 하늘의 크기는 그러한 영역을 4만1천개 포함하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에 있는 은하의 개수는 대략 1천억개인 셈이다. 따라서 우주에 있는 수소의 전체 질량은 태양 질량의 1천억배의 1천억배, 즉 1022배이며, 개수로는 모두 1079개의 수소 원자가 있는 셈이다.

 


어떤 상태로 있을까?

수소의 가장 잘 알려진 상태는 양성자와 그 둘레를 돌고있는 전자로 구성돼 있는 수소 원자이다. 그러나 자연의 수소는 원자 이외에 여러가지 상태로 발견된다. 우선 전자가 떨어져 나간 수소이온(H+)이 있으며, 수소 원자 2개가 결합한 수소 분자(H2)가 있다. 우주에 있는 수소의 99.999%는 위의 세 가지 중의 하나이다. 그 이외에 극히 미량이기는 하지만 전자가 하나 더 붙은 H- 이온과,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돼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중수소도 있다.

태양의 경우, 그 내부는 매우 뜨겁기 때문에 모든 수소는 H+ 이온, 즉 양성자로 존재한다. 그러나 바깥쪽으로 나올수록 온도가 낮아져, 태양 표면 근처 5천5백도 정도에서는 거의 모든 수소가 원자 상태로 있다.

한편 태양 사진에서 검게 나타나는 흑점은 주변보다 온도가 2천도 정도 낮으며, 이곳에서는 수소 분자가 발견된다. 태양에는 또한 H- 이온도 있다. 비록 그 개수는 1천만개의 수소 원자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H- 이온은 수소 원자와 달리 빛을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H- 이온에 의한 흡수 때문에 빛에너지가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마치 냄비의 물이 끓는 것과 같이 태양의 바깥쪽에서는 대류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별들도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태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상식이 됐듯이 별이 빛나는 것은 중심부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핵융합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경우 매초 6억t의 수소를 헬륨으로 핵융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질량의 일부가 아인슈타인의 등가(等價)방정식 E=mc2에 의해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태양 밖으로 아주 천천히 전달돼 나온다. 이 모든 과정은 절묘하게 조절돼 있어, 태양은 지난 46억년 동안 거의 일정한 밝기로 빛날 수 있었다. 태양은 앞으로 50억년은 더 안정되게 빛날 것이다. 그러나 50억년 후에 중심부의 수소가 고갈되면, 태양은 현재 크기의 2백배로 팽창해 수성을 휩쓸 것이다. 지구는 다행히 현재보다 1.7배만큼 태양으로부터 멀어져 휩쓸리는 것은 면하나, 지구의 온도가 1천3백 도로 상승해 생명이 살 수 없는 고열의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살고있는 것도 수소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은하 중심 부근의 분자운의 모습. 왼쪽 사진에서 색은 수소 분자의 양을 나타낸다. 붉은색이 많은 곳이고, 푸른색은 적은 곳이다. 분자운은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는 곳으로서, 등고선은 갓 태어난 별 주변의 H+ 이온이 있는 뜨거운 영역이다. 오른쪽 사진은 동일 영역의 광학 사진으로서 분자운의 존재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별과 별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별과 별 사이, 은하와 은하 사이의 광활한 공간에도 수소가 존재한다. 성간에는 평균적으로 1cm3당 1개의 수소 원자가 있으며, 은하와 은하 사이는 이보다 훨씬 희박하다. 별의 경우 1cm3당 1024개의 수소 원자가 있는 것에 비하면, 성간은 그야말로 진공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별들은 우주 공간에서 보면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4.2광년으로서 태양 지름의 3천만배이다. 따라서 우주에 있는 희박한 수소 기체의 양을 모두 합하면, 별에 있는 수소의 양을 합친 것에 비해 적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별과 별 사이의 수소 기체는 마치 파란 하늘의 흰 구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 ‘성간운’(星間雲, interstellar cloud) 가운데는 수소 원자로 된 것도 있고, 수소 분자로 된 분자운도 있다. 분자운에는 1cm3당 수백개 정도의 수소 분자가 있으며, 온도는 영하 2백60도로 아주 차갑다. 분자운은 새로운 별의 모체이기도 하다. 분자운 안에는 군데군데 수소 분자가 밀집해 있는 덩어리들이 존재하며, 이들 덩어리가 어느 순간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함몰하게 되면, 수백만년 안에 그 중심부에서 새로운 별이 생성된다. 새로 탄생한 별은 자신이 태어난 분자운을 파괴하고, 오리온성운과 같은 아름다운 성운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많은 은하들의 경우 나선 모양으로 밝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 성간운들이 많이 모여 있어 밝은 별들이 나선팔을 따라 태어나기 때문이다.

 


은하의 구조를 알려주는 수소

성간에 상당한 양의 수소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951년에 에웬(Ewen)과 퍼셀(Purcell)이 수소 원자가 방출하는 파장 21cm의 선스펙트럼을 발견함으로써 밝혀냈다. 천문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수소 21cm선의 발견으로, 우리는 은하의 자전, 즉 은하 내의 희박한 수소 기체를 포함한 모든 천체가 은하 중심 둘레를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태양은 초속 2백20km로 돌고 있으며,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2억2천5백만년이다. 태양의 나이가 46억년이므로, 태양은 생성된 이후 지금까지 은하 중심 둘레를 25바퀴 돈 셈이다.

은하의 자전은 은하 안에 얼마만큼의 질량이 있는지를 알려 준다. 이는 마치 행성들의 공전 운동으로부터 태양의 질량을 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구한 우리은하의 질량은 놀랍게도 별과 기체의 질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10배나 많다. 즉 은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90%는 우리가 그 ‘정체를 모르는 물질’인 것이다. 이렇게 빛을 내지는 않지만 다른 천체에 미치는 중력 때문에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물질을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부른다.

암흑물질은 무엇일까? 한 가지 가능성은 갈색왜성, 흑색왜성, 블랙홀과 같이 빛을 내지 않는 천체이다. 갈색왜성(brown dwarf)은, 그 생성과정은 별과 유사하나 질량이 태양의 12분의 1보다 가벼운 천체로서, 중심부의 온도가 낮아 핵융합을 일으킬 수 없는 ‘별아닌 별’이다. 흑색왜성은 연료를 다 소진한 늙은 별이며, 블랙홀은 강한 중력 때문에 빛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천체이다. 암흑물질의 또 다른 후보는 중성미자와 같은 소립자이다. 중성미자는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극히 적기 때문에 검출이 매우 어려운 입자로서, 질량이 거의 0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성미자가 작지만 0이 아닌 질량을 갖고 있다면 암흑물질의 존재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의 물질 만들기

우주는 영원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1백50억년 전에 ‘대폭발’(Big Bang)에 의해 생성됐으며, 현재도 팽창하고 있다. 우주 생성 초기에는 무한히 뜨거웠으며, 지금의 원소는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모든 원소는 우주 생성 후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원소는 가장 간단한 수소로부터 1996년 발견돼 아직 명명되지 않은 112번째 원소까지 모두 112종이다. 이중에서 우라늄보다 무거운 20종의 원소는 인류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나머지 92종은 지구를 비롯한 운석, 혜성, 태양, 별 등 우주에서 발견되며,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연의 원소 만들기는 대폭발 바로 직후 시작됐다. 에너지로부터 기본 소립자인 쿼크(quark)가 생성되고, 그들이 결합해서 양성자가 만들어졌다. 이때 양성자의 반입자인 반양성자도 만들어졌으나, 그들은 모두 양성자와 결합해서 빛으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양성자들이 현재와 같이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를 이루게 된다. 대폭발 후 1백초가 되면 핵융합에 의해 헬륨이 만들어지며, 이때 극히 적은 양(수소의 0.01%)의 중수소와 리튬(Li), 베릴륨(Be), 보론(B) 등의 가벼운 원소도 생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대폭발 후 3분 안에 종결됐으며, 그 후에는 우주의 온도가 낮아져 더 이상의 원소는 생성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원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들을 만드는 자연의 연금술사는 바로 별이다. 무거운 별들은 중심부의 수소가 고갈되면, 헬륨을 탄소, 탄소를 산소 등으로 계속 가벼운 원소를 무거운 원소로 융합하며 격렬하게 진화한다. 결국 가장 안정한 원소인 철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의 에너지를 추출하기가 불가능해지며, 별은 폭발한다. 우리가 ‘초신성’(supernova)이라 부르는 이 폭발 현상은 사실 새로운 별이 아니라, 별의 종말인 것이다. 별의 내부에서 생성된 다양한 원소는 초신성 폭발을 통해서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간다. 철보다 무거운 금, 납,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는 폭발하는 순간 만들어진다. 우주는 지난 1백50억년간 수없이 많은 초신성 폭발을 통해서 다양한 원소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바로 별이 만들어 낸 원소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수소가 대부분인 우주에서, 수소가 거의 없는 ‘창백한 푸른 한 점’의 지구가 태어났고,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우주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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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구본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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