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컴퓨터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신의 손'마이다스다. 또 산업을 움직이는 두뇌이기도 하다. 반도체는 크게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와 롬이나 렘과 같음 메모리 반도체로 나뉘는데, 우리나라는 메모리 분야에서 미국, 일본과 더불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마치 중동에서 생산하는 석유량이 국제 기름값을 좌우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메모리의 생산량이 국제 반도체의 값을 정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반도체가 소자본 소수인력으로 움직이는 벤처기업의 타깃이 되고 있다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흔히 반도체는 거대한 돈을 들여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에도 부가가치가 높은 틈새시장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분야다. 대표적인 국내기업으로는 반도체를 테스트하는 장비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미래산업 등을 들 수 있다.
반도체 재료 분야 역시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반도체 기술은 작은 면적에 얼마나 많은 단위소자를 넣느냐가 그 생명이다. 16M D램은 1천6백만개의 셀(cell)과 수백만개의 주변소자로 이뤄졌다. 또 면적을 넓혀 용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작은 면적에 많은 단위소자를 넣는 설계기술은 반도체 재료의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현재 반도체의 박막은 10nm(1백만분의 1cm)의 두께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원자 크기의 수십배 수준의 회로를 구성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보다 작게 단위소자를 구성할 수는 없을까.
반도체 공학자들의 꿈은 원자 수준의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는 물리학의 한계 때문에 쉽지 않다. 현재의 반도체 재료로 10nm 이하의 단위소자를 만들어 반도체 회로를 구성하면 전자들이 멋대로 넘나드는 터널링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전자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반도체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KAIST 반도체재료실험실은 현재의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재료를 찾아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하는 곳이다. 실용적인 반도체 재료를 찾자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반도체재료라고 할지라도 재료가 불안정하고, 재현성이 떨어지고, 생산수율이 낮다면 산업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벤처기업으로서 도전해 볼만한 틈새들이 많다고 한다. 즉 고체와 기체 사이의 물리화학적 현상을 이용해 수 nm 두께의 박막을 균일하게 입힌 절연막, 정밀한 금속재료를 개발하는 일이다.
일례로 1997년 미국 IBM사가 개발한 구리칩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반도체 회로에 알루미늄 대신 구리를 사용한 것으로 정보처리속도를 지금보다 40% 이상 빠르게 했다. 만일 이것이 실용화된다면 비용도 30%나 절감할 수 있다. 그래서 구리칩의 개발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구리칩은 물리학의 한계를 빗겨가면서 반도체의 성능을 높인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KAIST 반도체재료실험실은 구리칩과 같은 반도체재료혁명을 꿈꾼다. 구심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에서 15년 동안 연구 생활을 했고 93년부터 모교에 돌아와 후배 양성에 나선 강상원교수. 그의 지도를 받아 4명이 석사과정을, 10명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3P다. 창의적인 특허(Patent), 분석적인 논문(Paper), 경쟁력 있는 제품(Product)을 많이 내자는 것이다. 제자들이 대기업 사원이나 학자가 되기보다는 특허를 바탕으로 벤처기업을 일궈주기를 바라는 강상원 교수의 바람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