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 경희의료원 불임클리닉 연구팀은 '인간복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국 의학계에서 '세계 최초'의 업적이 나온 탓에 국내 주요 언론과 방송은 대대적으로 연구팀의 업적을 소개했다.
하지만 발표가 나간지 1주일도 채 못돼 이번 실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학계와 일반인 모두에게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심지어 '왜 그런 일을 벌였느냐'는 노골적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현재 세계 의학계가 인간복제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작년 2월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낸 이후 인간복제의 달성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중평이었다. 올해 1월 미국의 한 종자회사에서 성공한 돼지, 양, 원숭이의 체세포와 암소 난자의 결합, 두차례에 걸친 시드 박사의 인간복제 선언, 7월 하와이대에서 발표된 생쥐복제, 그리고 지난달 보도된 인간 체세포와 암소 난자의 결합이 이를 증명해준다. 단지 인간복제는 생명윤리의 근본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라는 여론이 거세 연구자들이 손을 멈추고 있을 뿐이다.
생쥐복제에서 힌트
연구를 이끈 이보연 교수 역시 "웬만한 실험 장비만 갖추면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는 실험이어서 세계 최초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수많은 불임 환자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복제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하고 "한국에서 복제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실험을 중간에 중단시켰다"고 말한다.
실험의 단서는 지난 7월 하와이대 야나기마치 박사팀이 발표한 생쥐복제에서 주어졌다. 암컷의 난자를 둘러싼 난구세포에서 핵을 분리해내고, 이를 미리 핵이 제거된 생쥐의 난자에 삽입시킨 후 또다른 생쥐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식이었다. 몇가지 실험 테크닉에서 차이가 있을 뿐 부모 중 어느 한쪽의 체세포만으로 자손을 얻는다는 면에서 기본원리는 복제양 돌리와 동일하다. 이교수는 이 방법을 인간에 적용시킨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교수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4세포기, 즉 복제된 세포가 2차례 분열할 때까지만 지켜보았다. 4세포기는 흔히 인공수정을 이용해 시험관아기를 만들 때 자궁에 착상시키는 단계다. 따라서 4세포기까지 진행된다면 자궁에서 성체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첫 시도가 11월에 이루어졌다. 한 30대 여성의 난자와 난구세포를 이용해 실험이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12월 초 이교수는 다시 실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총 소요 시간은 이틀 정도. 수정란에서 4세포기까지 자라나는 기간이다. 이때까지 이교수는 자신이 행한 실험을 의학의 '작은 진보'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15일 주요 일간지들은 모두 이교수팀이 인간복제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1면에 대서특필했다. 언론과 방송의 인터뷰 요청은 물론 불임 환자들의 상담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 일본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 역시 한국에서의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이교수는 예상치 못한 반향에 다른 사람보다 더욱 놀랐다. 그는 개인적으로 복제인간이 탄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단지 장기적으로 복제 기술이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에서 불임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체세포와 어머니의 체세포를 결합시켜 아기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최근 복제 기술은 장기가 손상된 환자에게 획기적인 치료책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예로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는 윤리적으로 인간을 복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펴는 한편, 배아 단계에서 세포를 떼내 특정 장기의 세포로 발달하도록 배양하는 일은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에 걸린 환자를 위해 건강한 췌장세포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자신의 몸에서 떼어내 복제한 세포이기 때문에 이식에 따른 거부반응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반대 여론은 거셌다. 한 과학자의 '소박한 희망'이 어떤 식으로 변형된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교수와 견해를 달리 하는 다른 과학자가 어디선가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의 감시망을 피해 무분별한 인체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문제는 이처럼 사회적으로 민감한 실험이 몇몇의 과학자들의 결정만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박은정 교수(이화여대 법대)는 "유럽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인간에 대한 실험을 법적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도 94년 대통령 산하에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두고 의견을 주의깊게 듣는다"고 말한다. 또 각 병원에서는 엄격한 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어 '엉뚱한' 의료 행위를 못하도록 규제한다.
반인반수 현실화
이에 비해 국내의 경우 생명윤리에 논란을 일으킬 과학자의 활동에 대한 견제 장치가 거의 없다. 구영모 박사(서울의대 의사학교실 연구원)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한국의 과학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고 표현한다. 그는 지난 11월 일본에서 열린 제4차 국제생명윤리학회를 참가하고 "한국의 생명윤리 분야가 제도와 연구인력 면에서 동남아시아에 훨씬 못미친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말하면서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이를 책임지고 해명할 개인이나 기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의 대처 방안은 아직 미진한 형편이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법적 장치는 현재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중인 생명공학육성법이 유일하다. 개정안 15조에 따르면 과학기술부 산하에 생명공학안전·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서 인간이나 동물에 대한 복제 실험을 허가할 것인지 심의한다.
하지만 이 법안은 미국의 방식, 즉 규정을 어길 경우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사항만 명시돼 있을 뿐 법적으로 어떤 제재조치를 가하겠다는 내용은 빠져있다. 그렇다면 민간기업에서는 오히려 복제실험이 성행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12일 '뉴욕타임스'는 한 생명공학 회사가 암소 난자와 사람의 세포핵을 성공적으로 융합시켰다고 보도해 충격을 던졌다. 만일 이 반인반수의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연구진은 사람의 조직을 갖춘 동물을 잘 활용하면 장기를 손상당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론의 거센 반발에 따라 실험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았다. 정부의 확고한 규제가 없는한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실험이 수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