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2021년 혜성처럼 등장해 제약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약이 있습니다. 바로 ‘GLP-1’ 기반의 치료 약물 ‘위고비’인데요. 당뇨병뿐만 아니라 비만, 심혈관 질환, 신경성 퇴행 질환에까지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만성질환을 극복할 ‘기적의 약’으로 통합니다. 2024년엔 ‘예비 노벨 생리의학상’이라 불리는 래스커 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핫한 GLP-1 기반 치료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강력한 노벨상 후보, GLP-1 기반 치료제
“비만은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의 심각성을 이렇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비만을 앓고 있는 인구는 약 10억 명을 돌파하며 비만은 건강 문제를 넘어 경제적·사회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GLP-1(Glucagon-like Peptide-1)’ 기반 치료제가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사 한 방으로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겁니다. 실제로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14kg을 감량한 비결로 GLP-1 기반 치료제인 ‘위고비(Wegovy)’를 꼽기도 했습니다.
GLP-1 기반 치료제는 다이어트에만 효과를 보인 게 아니었습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 심혈관 질환과 신경 퇴행성 질환 등에도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3월 7일 만난 대사·비만·당뇨 연구 분야의 권위자 송민호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GLP-1 기반 치료제는 의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치료법”이라며, “제약업계에서는 이미 차세대 블록버스터 약물로 평가하고 있어 머지않아 이 연구에 노벨상이 수여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렇다면 GLP-1 연구 분야에서 예비 노벨상 수상자로 주목받는 과학자들은 누구일까요? 내분비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조엘 하베너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교수, 스베틀라나 모이소프 미국 록펠러대 교수, 로테 비에레 크누센 노보 노디스크 최고과학고문을 꼽았습니다.
하베너 교수와 모이소프 교수는 GLP-1의 존재와 구조, 그 기능을 처음으로 밝혀낸 연구자입니다. 두 사람은 GLP-1이 인크레틴 호르몬(췌장을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는 호르몬)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고, GLP-1이 췌장에서 강력한 인슐린 분비 촉진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또한 몸속의 혈당에 따라서 인슐린 분비를 조절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내 치료적 가치를 지닌 물질이라는 점을 확립했습니다.


• 뇌 GLP-1은 시상하부를 자극해 식욕을 감소시키고, 음식 섭취량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또 미주신경을 통해 위장 운동을 늦추도록 신호를 보낸다.
• 위 음식이 위에서 소장으로 내려가는 속도를 늦춤으로써 포만감을 증가시키고, 혈당 급상승을 방지한다.
• 췌장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낮추고,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해 간에서 포도당이 과도하게 생성되는 것을 막는다.
크누센 고문은 GLP-1의 짧은 수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GLP-1의 분자 구조를 개량해 주 1회 투여만으로 효과가 지속되는 장기 지속형 GLP-1 유사체 ‘세마글루타이드’를 개발했습니다. 이 연구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 개발의 기반이 되었으며, GLP-1 기반 비만 치료제가 기존 치료제보다 훨씬 우수한 효과를 보이면서 의료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문준호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세 과학자는 예비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불리는 래스커 상을 2024년에 받았다”며 “노벨상을 수상한다면, 이들이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예측했습니다.

생소한 호르몬이 글로벌 신약이 되기까지
GLP-1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몸에서 혈당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혈액 속 포도당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두 가지 주요 호르몬, 인슐린과 글루카곤이 관장하죠. 인슐린은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로 이동시키고, 간과 근육, 지방 조직에 저장해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글루카곤은 저장된 포도당을 꺼내 혈당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GLP-1은 췌장이 혈당 상태에 맞춰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조절하도록 돕는 호르몬입니다. 혈당에 따라 췌장이 인슐린은 분비하고 글루카곤 분비는 억제하도록 만듭니다.
1970년대 후반, 과학자들은 경구로 포도당을 섭취했을 때 정맥 주사로 포도당을 주입했을 때보다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음식 섭취와 소화 과정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어떤 신호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당시에는 그 신호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미스터리를 풀어낸 인물이 바로 하베너 교수와 모이소프 교수였습니다.

1986년, 하베너 교수와 모이소프 교수는 포유류의 프리프로글루카곤(Preproglucagon) 유전자를 연구했습니다. 프리프로글루카곤은 글루카곤 등의 호르몬이 합성되기 전 존재하는 전구 단백질입니다. 두 사람은 프리프로글루카곤 유전자가 mRNA 수준까지 동일하지만 췌장과장, 위치에 따라 단백질 수준에서 다르게 가공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프리프로글루카곤 유전자에서 출발해도 췌장에서는 글루카곤으로 가공되는 반면, 장에서는 GLP-1나 GLP-2로 가공된다는 점을 확인했죠. GLP는 ‘유사 글루카곤 펩티드’의 줄임말인데, ‘유사 글루카곤’이라는 표현 속에는 같은 유전자에서 출발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연구팀은 글루카곤과 GLP-1이 확실하게 다른 물질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GLP-1에 대한 후속 연구를 이어나갔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GLP-1이 췌장에 작용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혔습니다. 쥐의 췌장에 GLP-1을 투여한 결과 인슐린의 농도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한 겁니다. 심지어 혈당 수치에 따라 인슐린 분비를 선택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기존의 인슐린 치료제는 과다하게 투여할 경우 혈당이 지나치게 낮아져 저혈당 쇼크를 유발하는 단점이 있던 반면, GLP-1은 혈당 수치에 따라 조절되므로 저혈당까지 내려갈 위험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GLP-1을 실제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GLP-1은 체내에서 너무 빠르게 분해돼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거든요. GLP-1의 반감기는 불과 몇 분에 불과해 치료제로 활용하기 어려웠습니다. 크누센 고문은 GLP-1을 혈중 단백질인 알부민과 결합시키거나 특정 화학적 변형을 가함으로써 반감기를 늘리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시간 작용하는 GLP-1 유도체인 리라글루타이드(Liraglutide)와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가 탄생했죠. 문준호 교수는 이 연구를 “GLP-1 기반 치료제가 실제 임상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든 혁신적인 연구”로 꼽았습니다. 크누센 고문은 GLP-1 유사체가 혈당 조절뿐만 아니라 체중 감량 효과까지 동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GLP-1 기반 비만 치료제인 ‘위고비’가 개발됐습니다.
GLP-1 유사체의 혁명을 일으킨 결정적 논문 3

• 게제 저널 : 생화학저널(1986년)
• 피인용 수 : 936회
• 연구 의의 : GLP-1이 글루카곤과는 다른 독립적 호르몬임을 밝힌 최초의 연구 _ 송민호(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1986년 국제학술지 ‘생화학저널’에 발표된 스베틀라나 모이소프 교수와 조엘 하베너 교수의 연구는 GLP-1이 글루카곤과는 다른 독립적인 생리적 기능을 가진 호르몬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최초의 논문입니다. 두 사람은 췌장과 장에서 각각 채취한 글루카곤 유전자의 mRNA를 분석한 결과 두 수준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두 유전자가 단백질 수준에서 가공될 때, 췌장에서는 글루카곤이 장에서는 GLP-1이 생성되는 것을 밝혔죠. 이 연구를 통해 GLP-1이 글루카곤과는 다른 역할을 하는 새로운 호르몬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송민호 교수는 “이 논문은 GLP-1이 단순한 글루카곤의 부산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생리적 기능을 가진 호르몬이라는 점을 최초로 규명해 후속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 게제 저널 : 임상연구저널(1987년)
• 피인용 수 : 1062회
• 연구 의의 : GLP-1의 인슐린 분비 촉진 기능을 실험적으로 밝힌 논문 _ 김하일(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1987년 국제학술지 ‘임상연구저널’에 발표된 스베틀라나 모이소프 교수와 조엘 하베너 교수의 연구는 GLP-1이 GLP-1(1-37)과 GLP-1(7-37)의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이 중 GLP-1(7-37)이 강력한 인슐린 분비 촉진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첫 번째 논문입니다. 연구팀은 GLP-1(1-37)과 GLP-1(7-37)의 두 호르몬을 쥐의 췌장에 작용하도록 한 결과, GLP-1(7-37)만이 강력한 인슐린 분비 촉진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GLP-1(7-37)이 무작정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혈당 의존적으로 인슐린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혔죠. 두 사람은 GLP-1(7-37)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김하일 교수는 “GLP-1을 기반으로 한 당뇨병 치료제 개발의 토대가 됐다”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 게제 저널 : 의약화학저널(2000년)
• 피인용 수 : 969회
• 연구 의의 : GLP-1의 단점을 극복하고 세미글루타이드를 최초로 개발한 연구 _ 문준호(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2000년 국제학술지 ‘의약화학 저널’에 발표된 로테 비에레 크누센 노보 노디스크 최고과학고문의 연구는 GLP-1 유도체를 개발해 기존 GLP-1의 약리학적 한계를 극복한 최초의 연구입니다. GLP-1이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돼 치료제로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LP-1 유도체를 합성하고, 이들의 효과와 지속성을 분석했습니다.
연구팀은 GLP-1에 다양한 지방산을 결합해 혈중 단백질인 알부민과의 결합력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약효 지속 시간을 연장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GLP-1의 반감기를 늘리고, 1일 1회 투여가 가능한 유도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죠. 연구 결과, 지방산이 12개 이상의 탄소로 구성된 경우 GLP-1의 반감기가 현저히 증가했으며, 일부 유도체는 10시간 이상의 반감기를 보였습니다. 문준호 교수는 “GLP-1을 기반으로 한 당뇨병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한층 높였으며, 지금의 위고비가 나올 수 있게 초석을 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시작일뿐, GLP-1 기반 치료제가 바꿀 미래
위고비와 오젬픽 같은 GLP-1 기반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이들이 당뇨병뿐만 아니라 비만, 심혈관 질환, 신경 퇴행성 질환, 대사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2023년,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를 복용한 환자들의 심장마비, 뇌졸중,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비복용 환자보다 20% 낮았다는 장기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 식품 의약국(FDA)은 2024년 3월, 위고비를 심혈관 질환 예방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죠.
최근에는 GLP-1 기반 치료 약물이 뇌의 미세아교세포를 대상으로 신경염증 반응을 차단하는 기전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습니다.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 치료에도 GLP-1 기반 약물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이미 일부 GLP-1 치료제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입니다. 만약 연구가 성공한다면 GLP-1 기반 치료제는 신경과학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이처럼 GLP-1 기반 치료제가 다양한 질병 치료에서 ‘만병통치약’처럼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남아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비싼 가격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GLP-1 기반 치료제를 처방받으려면 월 40만~60만 원이 필요합니다. 이 시장은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 두 기업이 선점하고 있죠. 송민호 교수는 “2026년부터 주요 GLP-1 치료제들의 특허가 순차적으로 만료되면서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허가 만료되면 더 많은 제약사들이 GLP-1 유도체를 개발하고, 자연스럽게 경쟁이 촉진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서도 GLP-1 기반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와 박준용 연세대 의대 연구팀은 GLP-1이 지방간 치료에도 효능을 보인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지방간은 증세가 심해지면 간경변과 간암으로까지 진행될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지만, 현재까지 효과적인 치료제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이젠 GLP-1 기반 치료제가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국내 제약사 한미약품은 GLP-1 기반 치료제로 감량한 체중의 최대 40%가 근육 손실이라는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량하면서 동시에 근육량을 증가시키는 GLP-1 기반 치료제 HM17321을 연구 중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등장한지 약 60년 만에 자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는 GLP-1 기반 치료제. 그 잠재력은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