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천문가 이태형씨가 한국인 최초로 소행성을 발견했다. '1998SG5'로 임시 이름이 붙은 이 소행성은 신천체 발견의 전례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천문가의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천문실험실' 필자인 아마추어천문가 김동훈씨는 "이번 소행성 발견으로 우리나라 아마추어 천문 관측 수준이 한단계 높아졌으며, 앞으로 천문인구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천문우주기획 대표이자 과학책으로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재미있는 별자리여행'의 저자이 기도 한 이태형씨는 대학시절부터 아마추어천문회에서 활동했고, 천체사진 공모전에서 여러번 수 상경력이 있는 한국 아마추어천문계의 대표주자다.
노력하는 끈기파
이씨의 이번 발견은 과학기술부의 적극적인 예산지원과 이씨의 남다른 성실성이 이루어낸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이씨는 소행성 발견을 목표로 관측에 들어간지 3개월여만에, 그리고 자동좌표탐색장비가 장착돼 있지 않은 구형망원경으로 완전히 수작업에 의존하면서, 신천체 발견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행운아인 셈이다. 이씨는 새로운 소행성임을 직감하고 이의 추적사진을 찍기 위해 밤새 경기도 일대를 승용차로 헤매고 다녀야 했던 고생을 털어놨다. "한 장의 사진을 찍고 한두 시간 뒤 연속촬영을 해야하는데, 이때 구름이 끼면 다른 관측장소를 찾아 망원경을 짊어지고 뛰어야 했습니다." 만일 시간으 놓쳐버리면 그 천체는 금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지금까지의 작업은 허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쳐버린 소행성이 여러개 된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하면서 열악한 장비와 씨름하고, 날씨 좋은 곳을 찾아 발로 뛰는 그야말로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끈기파로 알려졌다. "장비가 안 좋으면 몸밖에 더 있습니까?" 이씨의 표현대로 이번 성과는 땀흘린 노력의 대가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과학계에 더 시급한 과제들이 많은데, 이미 과학적 의미가 퇴색해버린 소행 성의 발견에 3천여만원의 예산이 집행된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이후 소행성발견은 천문학자의 연구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마추어들의 흥밋거리로 변한지 오래다. 작년부터 지구에 근접해 충돌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소행성들의 위험성이 경각 되면서 지구 근접궤도를 갖는 소행성(NEO)을 찾고 추적하는 작업이NASA를 중심으로 이루어지 고 있지만, 이러한 근접소행성들은 일반 소행성과는 매우 다른 궤도를 가지고 있고, 연구가치 또 한 높다.
천문대 김봉규 박사에 따르면, "이번 연구지원은 과학적 연구성과를 목표로 한 것이기 보다 우 리나라 아마추어의 저변을 확대하고, 천문학 전반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고양하는 홍보적인 차원 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미 작년에 일본의 아마추어천문가인 와다나베씨가 '세종'이 라는 한국이름을 붙인 소행성을 우리나라에 선사하면서 "한국의 천문학자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 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에 과학기술부는 "국내에서도 소행성을 발견하는 아마추어천 문가들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천문대에 아마추어 천문가들을 지원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겠 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번 발견은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성과인 셈이다.
올해에만 이미 1천개 넘어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소행성 발견을 세계사적인 대사건인 것처럼 부화뇌동해 떠들 일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사실 외국에서 본다면 조금 창피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할 과정 아니겠습니까?" 소행성 발견 소식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열광했 던 최근의 보도들을 보면서 한 아마추어 천문가가 한 말이다. 이번 발견은 한 번도 신천체를 발 견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매우 장한 일이지만, 국제적으로 는 그렇게 주목받고 열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우리의 아마추어 천문 수준 이 열악하다는 반증일 뿐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발견된 소행성 1998SG5는 올해 9월 하순에만 발견된 1백32번째 소행성이었다. 이미 올 해만 하더라도 이씨의 발견 이전에 1천여개가 넘는 소행성이 새로 발견 보고됐다. 천문대의 박승 철 연구원에 따르면,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해 약 5백여개의 소행성들이 발견돼 왔지만, 아마추 어천문가들에게 전하결합소자(CCD)가 보급되고, 지구 근접 소행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3-4년 전부터는 한해 수천개씩의 새로운 소행성들이 발견되고 있다. 일본의 와다나베씨는 특히 소행성 발견 전문가로 유명한데, 3-4명으로 이루어진 그의 팀이 한해 발견하는 소행성만 하더라 도 많을 때는 1백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미 일련번호가 붙어 공인된 목록에 오르고 있는 소행 성들이 1만여개에 육박하고, 다시 공인을 기다리는 소행성들이 몇만개나 더 있다. 이처럼 소행성 의 발견은 세계적인 안목에서 볼 때 매우 흔한 일이며, 더구나 역사적 대사건처럼 떠들 일은 아 니라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혜성
그 대신 이번 소행성의 발견을 계기로 우리나라 아마추어천문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천문학에 대 한 대중적인 관심을 키우는데 힘을 모아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문대의 김봉규 박사는 "이제부터는 이번 관측으로 습득한 기술들을 공유하고 관측활동을 활성화시켜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소행성관측을 위해 갖추어야할 필수 장비인 망원경과 CCD 가격 이 2천만원을 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아마추어들이 엄두를 못 낸다는 사실이다. 이태형씨도 이 번 관측에서 망원경은 자신의 것을 썼지만, CCD는 천문대에서 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제 소행성을 찾는 방법을 알았지만, 엄청난 비용과 힘든 노동이 결합돼야 하는 이 작업에 누 가 뛰어들지 의문이다"며, 일본의 와나나베씨로부터 배우고, 자신의 경험이 덧붙여진 관측 기술이 사장될까 걱정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1년 정도 더 소행성관측에 매달려 관측기술을 숙달한 다 음 혜성탐색에 도전해 자신의 이름이 붙은 혜성을 발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궤도에 수십만개가 흩어져 있다. 대부분은 크기가 수km에 지나지 않으나 가장 큰 소행성인 세레스는 지름이 약 9백km에 이른다. 1801년 세레스가 발견된 이래, 크 기가 크고 밝은 소행성들은 거의 모두 찾아졌고, 이제는 밝기가 16등급 이하인 작은 것들만이 탐 색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크기가 너무 작아 태양-지구-소행성이 일직선이 되는 충의 위치에서 만 관측될 정도로 매우 어둡다. 이번에 발견된 1998SG5는 지름이 약 2-3km로 밝기는 17등급인 작은 소행성이다.
소행성들은 충의 위치를 벗어나면 관측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진 상에서 잡았다고 생각되면 즉시 수시간, 혹은 수일간의 연속촬영을 해야한다. 그런 다음 관측 데이터를 세계 소행성센터에 보고한다. 소행성 센터는 새로운 소행성인가의 여부를 판별해서 관측자에게 알려주고, 임시번호를 매겨둔다. 이어 소행성의 퀘도요소들이 모두 알려지면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기회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