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입자물리의 영원한 라이벌

CERN과 페르미

1994년 4월 26일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FermiLab)는 자연에 존재하는 마지막 소립자인 톱쿼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톱쿼크는 1988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5천6백억eV의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반양성자 충돌기를 이용했으나 탐색에 실패했던 것. 이를 비웃듯 페르미연구소에서는 1조8천억eV의 테바트론을 이용해 쿼크 가족의 막내를 찾아냈다. 원자핵은 강입자(하드론)라고 불리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다시 쿼크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쿼크는 업(up)·다운(down)·참(cham)·스트렌지(strange)·바틈(bottom)·톱(top) 등 6개가 존재해야 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유독 톱쿼크만이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바틈쿼크가 발견된지 17년 만에 톱쿼크가 페르미연구소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톱쿼크의 발견은 이듬해 3월 3일 페르미연구소의 CDF 연구그룹과 D0 연구그룹에 의해 최종 확인됐다.

톱쿼크의 발견이 기정사실화됐던 그해 9월 CERN에서는 반입자(양전자와 반양성자)를 이용해 9개의 반원자(반수소)를 합성하는데 처음 성공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반물질 세계로의 길을 연 것이다. 또 우주의 생성과 구성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중요한 열쇠를 얻은 대사건이었다. 반원자의 합성 사실은 1996년 1월 4일에 공표됐다.

누가 봐도 미국의 페르미연구소와 유럽의 CERN은 세계 입자물리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양대산맥이다. 유럽국가들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CERN과 이에 뒤질 수 없다고 생각해 미국이 세운 페르미연구소는 라이벌인가, 동반자인가. 또 두 연구소는 지금까지 어떤 연구결과를 내놓았을까.
 

CERN의 거대한 시설은 지하에 감춰져 있어 위에서 보면 평범한 농경지에 불과하다.


반물질의 고향 CERN

입자물리학은 물질을 구성하는 궁극적인 입자는 무엇이며,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학문이다. 이는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기본입자들을 알아낼 수 있다면 우주의 생성에 관한 비밀이 풀리기 때문이다.

빵을 쪼개면 빵가루가 되고, 이를 다시 쪼개면 녹말분자가 된다. 녹말분자를 쪼개면 탄소원자와 수소원자들이 튀어나오는데, 이 원자들은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고, 이와 같이 계속 나눠가면 결국 쿼크와 같은 입자들의 세계가 등장한다. 이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입자물리학이다.

입자물리학은 1896년 프랑스 물리학자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흘러나온 방사선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방사선은 핵이 붕괴되면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후 전자(1897년), 원자핵(1911년), 양전자와 중성자(1932년), 우주입자인 뮤온(1937년)과 파이온(1947년)이 계속해서 발견됐다. 또 1948년에는 우주입자인 파이온을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국제협력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얼마전까지 서로 총을 겨누던 국가들은 평화를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유엔과 특별기구들이 생겨났다. 특히 국경과 국경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유럽국가들은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유럽경제협력기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유럽에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유능한 많은 인력들이 전쟁으로 지친 유럽을 떠나 신대륙인 미국으로 이주해 가는 고급두뇌 고갈현상(brain drain)이 심하게 나타난 것이다. 194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드브로이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유럽의 우수인력들이 미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묶어둘 유럽과학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듬해 그의 의견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유럽과학연구소 설립결의안을 만들어냈다. 그 결실은 1954년 관심 있는 12개국이 공동출자함으로써 맺어졌으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마침내 스위스 제네바에 들어섰다.

CERN의 업적은 대단하다. 1957년 6억eV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해 파이온이 전자와 뉴트리노로 쪼개지는 현상을 최초로 관찰했고, 1981년에는 입자당 2천7백억eV의 에너지를 갖는 초양성자싱크로트론(SPS)을 이용해 최초로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충돌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약력(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W보존과 Z보존을 발견했다. 이 공로로 카를로 루비아와 반 데 미어는 다음해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CERN의 직원은 약 2천8백명, 이중 2천명이 연구원들이다. CERN의 연간 예산은 약 10억 스위스프랑(1997년 기준 6천4백억원). 하지만 CERN이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는 것은 세계 각국의 대학과 산업체에서 전자공학, 기계공학 등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CERN이 자랑하는 가속기와 검출기는 이러한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얻어졌다. 오늘날 인터넷의 대명사가 된 월드와이드웹(WWW)도 협력체제의 부산물이다.

사람들은 CERN을 세계 핵물리 및 입자물리학의 메카라고 부르고 있다. 매년 80여개 나라, 5백여개 대학, 6천5백명(세계입자물리학자의 절반)의 과학자들이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 CERN을 찾는 것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조르주 샤르팍 박사


기본입자의 산실 페르미연구소

시카고 근처 바타비아 마을에는 미국이 자랑하는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가 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내는 테바트론(Tevatron)이란 가속기가 있다. 1994년 톱쿼크를 발견했던 바로 그 가속기다.

1963년 레온 레더맨은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국립가속기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에너지부(DOE)는 1967년 2억4천3백50만달러를 들여 페르미연구소를 세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옛소련이 모스크바 근교에 7백억eV로 가속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양성자가속기를 세웠다.

1947년 미국 원자력위원회는 양성자를 가속할 수 있는 싱크로트론을 경쟁관계에 있던 버클리대와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에 각각 세우도록 승인한 바 있었다. 1952년 브룩헤이븐은 미국 최초의 양성자가속기를 세웠는데, 그 성능은 30억eV였다. 이어 1954년 버클리가 세운 양성자가속기도 62억eV에 머물렀다. 그러나 1957년 옛소련이 두베나에 세운 양성자기속기는 1백억eV에 이르렀다. 이때의 수모가 1960년대 말 재현된 것이다.

강력한 미국을 상징할 강력한 가속기를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페르미연구소를 강화시켰다. 페르미연구소는 1972년 2천억eV에 달하는 양성자가속기를 세웠지만 다루기가 힘들어 실험 성공률이 50% 밖에 되지 않았다. 1976년에야 양성자가속기는 5천억eV에 도달했다. 이듬해 페르미연구소는 다섯번째 쿼크인 바틈쿼크를 발견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상 최대의 양성자 가속기인 테바트론은 1979년 1억2천만달러를 들여 만들었다. 테바트론은 양성자(반양성자)를 9천억eV까지 가속시킬 수 있는데, 만약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가속해 충돌시키면 그 중심에서는 1조8천억eV에 이른다. 테바트론은 1994년 마침내 금세기 마지막 숙제의 하나였던 톱쿼크를 발견해냈다.

현재 페르미연구소에는 약 1천5백명의 과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20개국 80여개 연구소가 입자물리 연구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1년 예산은 약 1천6백억원, 매년 가속기를 작동하는 전기료만도 1백60억원이라고 한다.

질량의 근원 힉스입자

21세기에 입자물리학이 풀어야 할 숙제 중에는 질량의 기원을 찾는 일이 있다. 그 숙제의 열쇠는 힉스(Higgs)라는 입자가 쥐고 있다. 기본입자들의 성질을 설명하는 표준모형에 따르면 힉스입자가 존재할 때에만 쿼크와 같은 기본입자들이 질량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힉스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힉스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미국은 1986년 20조eV에 달하는 초전도초가속기(SSC)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텍사스주에 들어설 이 가속기의 둘레는 자그만치 80km. 페르미연구소에서 약 1조eV의 테바트론을 건설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미국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1993년 10월 미국 의회는 이미 1조 6천억원이 들어간 초전도초가속기의 건설을 경제적인 이유 등을 들어 백지화해 버렸다.

졸지에 경쟁자를 잃어버린 CERN은 단독으로 힉스입자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테바트론을 변형해 초전도초가속기를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 테바트론 가속링의 둘레가 6km로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CERN에는 그동안 전자와 양전자를 가속시켜온 둘레가 27km인 거대전자-양전자가속기(LEP)가 있었다. 여기에다 전자를 대신해 양성자를 가속할 시설만 갖춘다면 쉽게 10조eV까지 가속시킬 가속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1989년부터 추진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다. 최첨단 초전도자석을 갖춘 LHC에 들어갈 예산은 약 25억 스위스프랑 (2조5천억원). 2005년에 완성되면 LHC는 본격적으로 힉스의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그런데 거대강입자가속기만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최첨단 검출기가 필요하다. LHC에는 CMS와 ATLAS라는 두개의 실험그룹이 있는데, CMS에는 한국검출기연구소에서 개발한 전방저항판검출기도 쓰인다. 이것은 힉스입자의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뮤온입자를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게 식별해낼 수 있는 검출기다. 또 한국검출기 연구소에서는 힉스를 순간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검출기도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
 

CERN의 소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스미스 박사


CERN의 스타과학자 샤르팍

선각자들의 역할은 모든 분야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과학분야에서 선각자들의 역할은 CERN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CERN을 오늘날 세계적인 연구소로 만든 선각자 중에는 조르주 샤르팍을 꼽지 않을 수 없다.

192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샤르팍은 1943년 나치정권에 대항해 레지스탕스 일원으로 투쟁하다가 체포돼 옥살이를 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다중선비례검출기를 발명했는데, 이것은 입자의 궤적을 정밀하고 신속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안개상자, 거품상자, 핵건판과 같은 기존 검출기의 단점을 개선한 새로운 개념의 검출기였다. 샘 팅은 이 검출기를 이용해 참쿼크와 반참쿼크로 이뤄진 중간자인 제이/프사이((J/ψ) 입자를 발견해 197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또 루비아 교수가 W와 Z 보존입자를 발견해 198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199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검출기 분야의 대부인 샤르팍 교수는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방한기간 중 한국물리학회 총회에서 강연하고, 한국검출기연구소 개소식에 참가했다.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검출기 연구에 바친 나의 일생’에 대한 주제로 강연했다. 샤르팍 교수는 앞으로 한국검출기연구소의 자문위원으로 힉스입자 발견에 크게 도움을 줄 예정이다.

샤르팍교수는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남겼다. “과학자는 애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만일 이 땅을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이 땅의 앞날을 생각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성근 교수

🎓️ 진로 추천

  • 물리학
  • 화학·화학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