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빛은 먼 허공을 응시하는듯 멀게만 느껴졌고, 눈맞춤은 엄마가 지시할 때만 억지로 짧게 스치는 정도였다. 학교에서는 거의 매일 울며 소리를 지른 탓에 자폐에 대한 지식이 없던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무척 부담스럽게 여겼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느낌
자폐아동들이 괴성을 지르며 울어대거나, 남을 갑작스럽게 해하거나, 자신의 머리를 모서리나 바닥에 부딪히며 자해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패닉(공포) 상황이라고 부르는데, 새로운 환경(사람이든 사물이든)이나 자신이 생각치 않은 돌연한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의 표현 방법이다.
이 아이는 흥미롭게도 음악에 대해 상당한 친숙감을 나타냈다. 또 외우는데는 ‘선수’였다. 그래서 노랫말을 만들어주고 한번 부르게 하자 아이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상 노래를 정확하게 흥얼거렸다. 특히 마음이 몹시 불편할 때 노랫말을 통해 위안을 받는 모습이 역력했다. 음악이 자폐아를 치료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안정감’을 제공한 전형적인 사례다.
물론 모든 자폐아동들이 음악에 친숙한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악기 소리만 나도 귀를 막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음악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주변의 모든 변화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현한 것뿐이다. 따라서 이 때도 적절한 정신치료술과 함께 음악이 자폐아에게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
우선 아이가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 항상 같은 시간에 음악 치료실을 방문케 했다. 될 수 있는대로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시간변경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우선 시작을 알리는 ‘안녕’ 노래를 만들어 라이어라는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줬다. 아이는 그 노래를 몇번만 듣고도 금방 따라 불렀다.
다음으로 어린이 하프라는 악기를 그에게 연주하게 하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내가 그의 손을 잡고 하프의 줄들을 쓰다듬으며 노래했고, 그 후엔 아이 혼자 노래를 부르며 연주했다.그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그만 변화에도 힘겨워하는 미숙한 자아의 모습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에 숨겨진 다양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게 했다. 예를 들어 악기를 고정시키고 노랫말을 조금씩 바꾼다든지, 반대로 노랫말은 변화시키지 않고 악기를 조심스럽게 바꿔나가는 방식이었다.
음악과 악기의 변화는 그때그때 아이의 능력에 따라 맞추어 나갔고, 최근에는 아무런 예상과 준비 없이 이루어지는 ‘즉흥연주’(악보나 아무런 계획 없이 스스로 연주하고 싶은대로 연주하는 음악 양식)도 아이에게 가능하게 됐다. 현재 아이는 학교와 집에서 많은 안정을 찾았고 급변하는 감정의 기복이 아주 드물게 나타났다. 물론 자폐증을 완전히 치료하기까지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음악치료는 고열을 낮추기 위해 주사를 한번 맞고 해열이 되는 경우와 다르다. 심리적인 원인을 찾아 음악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 좀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치료방법이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에게나 장애인 스스로에게 음악 치료라는 단어는 새롭고, 치료 가능성에 대해 뭔가 좋은 느낌을 가져다주는 모양이다. 음악을 겁내고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음악이란 아름다운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좋은 반응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음악치료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음악치료실에 전화 상담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음악 치료에 사용하는 음반을 구입하기를 원한다. 안타깝게도 음악치료사를 접하기 힘든 지방에서 이런 요구가 더 많다.
하지만 답변은 항상 “이곳에서 사용되는 음반은 없습니다”이다.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질문한다. “서양의 고전 음악에서 어떤 병에는 모차르트가 좋고, 어떤 병에는 베토벤이 좋다던데…” “그러면 그곳에서는 음악을 들려주고 치료하는 곳이 아닌가요” 한다. 기대와는 달리 음악 치료는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재생시켜 환자에게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타악기가 애용되는 이유
음악치료에서 사용되는 주된 음악은 환자 자신과 음악치료사가 함께 만들어내는 ‘즉흥곡’이다. 즉 악보 없이 환자가 원하는 악기를 사용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기 표현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때 목소리도 표현의 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음악 치료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만일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야 음악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어린 아이나 노인을 비롯해 음악 교육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불공평한 치료법인 셈이다.
음악치료에서 주로 사용되는 악기는 남녀노소 누구라도 연주할 수 있는 타악기다. 그저 두드리기만 하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음악 치료의 대상은 주로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다. 신경성 질환자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적인 질병으로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정서장애나 학습장애, 성격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준다. 뇌성마비와 같이 육체적 장애를 가지거나 암환자처럼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환자에게도 보조적 치료 수단으로 쓰인다. 음악과 함께 환자의 어려움을 같이 나누어 항상 곁에서 도움과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문의: (02)539-9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