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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상예측 어디까지 가능한가

2주일이 한계, 폭우는 수시간 전에야 가능

 

8월 5일 오후 7시 시간당 강우량. 적색으로 갈수록 강우량이 많고, 청색으로 갈수록 적다.


지난 7월 말부터 우리 나라에는 시간당 50-1백mm 정도의 폭우가 기습적으로 내렸다. 그 결과 4백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15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추정된 피해액만도 2조원에 이른다. 중국도 유례없는 양쯔강 유역의 대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7월 21일부터 30일까지 양쯔강 중류에만 8백mm의 비가 내렸다.

7월 31일부터 우리나라에 내린 폭우는 금세기 최고의 엘니뇨가 소멸되고 라니냐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이상기후의 영향 아래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 강도나 빈도에 있어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날 순천지방에는 시간당 1백45mm가 왔다. 8월 5일 강화도에는 새벽 1-2시 사이에 1백10mm가 넘는 비가 왔다.

비구름 군단의 고공 폭격

폭우를 동반한 비구름들은 통상 10km×10km 정도의 면적 위에 발달한 소나기구름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은 따뜻한 공기와 찬 공기가 대치해 있는 전선대 주위에 줄지어 서서 활모양을 하고 있거나, 포도송이처럼 얽혀 1백km×1백km 면적 정도의 빵모양 비구름이 군단을 이룬다. 개개의 세포들은 길어야 한두 시간 내에 발달했다 쇠약해진다. 그러나 성숙한 세포가 뿌리는 강한 비에 동반된 돌풍으로 인해 바람이 모이는 주변에 새로운 세포가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비구름군단은 수시간 이상 강한 비를 뿌리게 된다. 비구름 군단은 고공 5km 부근에서 바람에 실려 이동하지만, 동시에 개개의 구름세포들은 따뜻한 수증기가 유입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며 전진한다.

폭우에 영향을 주는 대기환경적 요인으로 크게 계절풍, 한기의 남하, 산악지형의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폭우성 비구름에 실탄을 제공하는 것은 여름철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남서 계절풍이다. 여름이 돼 잔뜩 더워진 아시아대륙에서 상승한 공기의 일부가 북태평양으로 하강하고, 이 공기는 열대 해상을 거쳐 이번에는 따뜻한 수증기를 잔뜩 머금고 남중국해상을 거쳐 우리 나라로 실려온다. 마치 적도 해상에서 우리나라까지 길다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는 것이다. 태풍도 대개 이 길목을 따라서 이동한다. 태풍은 연직으로 높이가 10km 이상 되는 소용돌이 바람 속에 한꺼번에 많은 수증기를 몰고 온다. 이번처럼 제2호, 3호 태풍이 중국으로 들어갔을 때 많은 수증기가 우리 나라로 유입돼 비 피해가 더욱 커진다.

둘째 온습한 컨베이어 벨트 북쪽에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들이 대치해 길다란 전선대를 형성하고 있다. 조그만 불씨만 생겨도 전쟁터의 전선은 불바다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층에서 차가운 바람이 전선대로 다가오면 방아쇠를 당기듯이 전선이 활성을 띠고, 여기저기서 남북으로 이동하며 지름 1천km 이상의 거대한 시계 반대방향의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이 소용돌이의 남동쪽에서는 1-3km의 고공에 초속 15m 이상의 강한 남서풍이 불며 온습한 공기를 강하게 끌어온다. 폭우의 탄약을 제공하는 화약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셋째 이번 폭우 기간 중에도 지리산과 속리산 지방에 각각 많은 비가 내렸다. 수증기를 많이 가진 남서풍이 산비탈을 올라가면 산 중턱으로부터 정상까지 구름으로 덮이게 된다. 높은 비구름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은 산악 위에 형성된 두터운 구름층을 통과하면서 작은 물방울들을 포획해 굵은 비로 변한다. 한편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면서 산악을 지나갈 때는 평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반대쪽 산비탈의 따뜻한 공기위로 파고들어 이곳에 강한 소나기구름들이 생겨나 집중호우의 원인이 된다.

기상레이더로 폭우 관측

높은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찍은 기상위성의 구름사진은 아시아 전역의 구름활동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므로, 계절풍의 세력과 전선대를 따라 달리는 커다란 소용돌이 비구름군단의 동태를 살피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개개의 호우세포를 판독할 만큼 상세하지 못하고, 키가 낮은 비구름은 종종 높은 구름들에 가려 식별하기 곤란하다. 한편 전국에 배치된 4백여 곳의 무인자동기상관측소에서는 각기 바람, 기온, 강수량이 매분단위로 관측된다.

소나기성 비구름이 어느 지역을 통과할 때, 지상의 기온 바람 강수강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므로 비구름군단의 동태가 이 지상 관측망에도 포착된다. 하지만 각 관측소간 평균 간격이 20km 정도여서 개개 호우세포를 추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상레이더는 현재까지 발명된 장비 중 폭우 관측 성능이 가장 두드러진다. 기상레이더는 지상안테나에서 연속적으로 발사한 전파가 구름에서 내리는 수많은 빗방울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반사파의 도달시간과 세기를 통해서 비구름의 강우강도, 이동속도와 방향을 입체적으로 재는 기기다. 기상청에서는 서울, 부산, 군산, 동해, 제주에 각각 레이더관측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비구름의 유효 탐지거리는 관측소를 중심으로 반경 약 2백km 정도이다. 연속적으로 관측되는 기상레이더의 강수분포도를 분석하면 앞으로 2-3시간 동안의 폭우성 비구름의 이동방향과 속도, 강수량 등의 예측이 가능하다.
 

강수의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지상 에리더 관측이 필수적이다.


지리산 폭우를 12시간 전에 예측하려면

폭우와 주변 대기환경을 지배하는 물리적 법칙은 수증기 분자에서 수천km의 전선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운동간에 이루어지는 복잡한 물질, 운동량, 에너지의 교환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정량적인 계산이 불가능하다. 지리산에 머문 폭우성 비구름을 컴퓨터로 12시간 전에 예측하려면 사방 5백km 정도의 가상공간 안에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km, 1km, 0.2km 정도의 단위체적을 갖는 그물눈에서 바람, 기온, 습도 등의 변화량을 계산해야 한다. 현재의 기상청 예보용 컴퓨터는 초당 10억번 덧셈 등의 기본연산을 할 수 있지만, 이 계산량은 상상을 초월해서 현재의 기상청 컴퓨터로 몇 년을 계산해야 한다.

앞으로 현재보다 80배 이상 빠른 슈퍼컴퓨터가 들어오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0km, 20km, 0.5km의 단위체적을 갖는 그물눈에서 극동아시아 지역의 48시간 악기상예보를 해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또한 서해상의 백령도와 흑산도의 기상레이더 관측망이 보강되고 폭우에 대한 대기과학이 발전되면 점진적으로 그물눈 간격을 1km까지 줄여갈 계획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기상분야 선진국들도 앞으로 2-3년 내에 그물눈의 간격을 5-10km까지 줄여갈 예정이다.

불확정성 원리와 카오스 이론

모든 대기운동도 생명체처럼 살 수 있는 기간이 유한하다. 작은 소나기구름은 30분이면 사라진다. 키가 낮은 저기압은 1-2일 정도 생명을 보존한다. 전선을 동반한 키가 큰 저기압은 1주일 정도 버틴다. 운동의 공간적 규모가 작을수록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발달하고 쇠약해지므로 그만큼 예측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다.

영국의 대기과학자 테네커는 큰 운동이 작은 운동을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는 대기의 복잡한 난류성 운동계에서도 시간과 에너지간의 불확정성원리가 적용된다고 보았다. 즉 폭우성 비구름이 발달하는 시점을 정확히 관측하려면 그 운동의 에너지 또는 강도에 대한 관측오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운동의 강도를 정확히 관측하려면, 이번에는 그 구름의 나이를 관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상레이더에 관측된 폭우성 비구름의 분포도가 아무리 정확해도, 그 비구름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그 비구름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발달할지, 아니면 쇠약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저명한 대기과학자 에드워드 로렌츠 박사는 대서양 상공의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을 제시했다. 나아가 그는 과학적 계산이 아무리 정교해도 관측오차를 피할 수 없다면 대기운동의 예측에는 한계가 있다는 대기예측성론을 주장해 대기과학계의 많은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대기는 조금만 건드려도 어딘가에 커다란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매체로서, 초기에 조금만 다른 관측자료가 컴퓨터에 입력돼도 며칠 후면 실제와는 매우 다른 예측결과가 산출되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매일의 날씨를 관측오차 범위 내에서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 한계는 약 2주일이고, 이를 넘어서면 특정시점 대신 월평균 계절평균 등의 기후적인 성질을 예측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관측망이 턱없이 부족하고 기상위성이나 기상레이더의 분석오차를 피할 수 없다면, 이 자료들이 컴퓨터에 입력돼 나온 예측결과들은 예측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봄이나 가을에 자주 찾아오는 이동성 저기압에 동반된 강수나 겨울철 한파 등의 비교적 규모가 큰 기상현상들은 통상 며칠 전에는 예보할 수 있다. 반면 여름철에 사방 수백km 구역 내에 쏟아지는 폭우성 비구름과 집중호우는 관측망이 충분하다면 몇 시간 전에 그 영향범위를 예보할 수 있다. 하지만 폭우성 비의 양은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미국에 자주 출몰하는 사방 수백m 정도의 살인적 토네이도는 몇분 전에 겨우 예보할 수 있는 정도이다.

실황예보기법 도입해야

이번에 전국을 강타한 게릴라성 폭우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해상으로 진입하는 비구름에 대한 레이더 영상을 동화상으로 분석하거나, 시간적으로 외삽해 앞으로의 진행방향, 속도, 강도를 예측하는 실황예보기법이 최선이다. 이는 마치 스포츠 경기를 생중계하듯이 기상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분석하며 예보하는 것이다.

예보담당자는 폭우 등의 악기상에 따른 비상근무에 들어가면 평소보다 2배 이상의 관측자료와 각종 보고물들을 소화해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쇄도하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또한 기습폭우는 발달정도가 급격하고 순간순간 상황이 숨가쁘게 달라지므로, 컴퓨터가 기상레이더 영상으로부터 폭우경보 여부를 지능적으로 판단하고, 앞으로 2-3시간 동안의 예측결과를 기상특보로 자동 작성해 지체없이 방송국이나 방재기관에 전달돼야 한다. 미국은 지난 10여년간 기상업무 현대화 사업을 통해서 기상레이더 자료와 컴퓨터 예측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AWIPS-90이라는 악기상분석예측시스템을 개발해 토네이도나 우박 폭풍 등의 예측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 캐나다, 일본도 유사한 시스템을 폭우예측업무에 이용하고 있다.

한편 폭우예측정보의 유효기간은 기껏해야 1-3시간 정도이므로, 정보의 생산 즉시 방송이나 기타 미디어를 통해서 피해 예상지역의 시민과 방재기관에 전달되지 못한다면 이미 정보로서의 가치를 잃게된다.
 

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진 수치예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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