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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전도사들이 주장하는 디지털사회의 신화들

과연 정보화는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는 21세기의 복음인가. 제반 사회 요소의 디지털화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정보화 구호 뒤에 감추어진 진짜 모습을 살펴보려는 시도가 뒤늦게 진행되고 있다. 정보화사회의 신화가 가진 허구의 현실을 진단한다.
 

디지털사회의 신화들


엘리트주의에서 평등주의로

뉴미디어가 공동체 성원의 참여를 확대하는 ‘풀뿌리 네트워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권력과 독점 사업체가 연출하는 감시사회의 ‘빅 브라더 네트워크’가 될 것인지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대책 없는 비관론’은 삶에 변화를 촉발할 수 없다는 공통점에서 보자면 일란성 쌍둥이다. ‘대책 없는 비관론’은 현실 방기인 반면, ‘근거 없는 낙관론’은 현실 추수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화사회가 우리의 실천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닫혀진 틀이 아니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기존의 매스미디어 모델에서 사용자는 정보의 사용과 대상에 대해 간접적이고 제한적인 권한만을 갖고 있다. 언제, 왜, 누구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고, 누구에게 정보를 보내는가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정보전달 내용과 시간 및 전달 의도를 공공복리라는 명분 하에 사전, 사후로 검열하는 심의 기관이 존재하는 매스미디어 시대의 사용자는 정보 소비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뉴미디어는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매스미디어의 일원적 통제와 지배를 해체한다. 뉴미디어는 기존의 대중매체와 달리 사용자의 참여를 확대하고 사용자의 권력을 강화한다. 뉴미디어는 정보사용과 정보에 대한 접근, 소통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갖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그야말로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몰고 왔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모델은 이러한 ‘수동적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정보 사용자’를 만들어낸다. 마치 매스미디어 시대의 대자보처럼 사용자는 자신이 전달할 정보의 내용과 전달 시간, 전달 의도, 전달 대상에 대해 전면적인 권한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달받을 정보도 적극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대중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 개입과 참여로 스스로 미디어의 내용과 형식을 창출하는 창조적 주체로 탈바꿈한다. 바로 이점이 개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이러한 특성이 뉴미디어의 민주적 가능성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향력 큰 집단과 중간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집단, 그리고 단순히 정보를 찾아 혼자 외롭게 떠도는 정보 사냥꾼에 이르기까지, 전자 공간의 새로운 집단 형성과 계층 구분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네트는 엘리트주의에서 평등주의로, 위계적 질서에서 탈중심화된 구조로 변화하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마당 역할을 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실천이 따르는 한에 있어서”라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될것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여, 사이버스페이스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현실세계의 압제와 불평등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 디지털 전도사들은 불철주야 사이버스페이스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런가 하면 전자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리라는 낙관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디지털 혁명의 사회적 여파가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파급되기 시작하면서 전자 민주주의의 문제가 현실세계의 타락한 정치에 염증이 난 네티즌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청와대를 위시해 여야 정치인들이 정보화 시대의 선도자임을 자랑이나 하듯 앞다투어 PC통신망과 인터넷에 방을 개설했다. 그러나 과연 정치인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고, 가상정당이 네트 안에 만들어졌다고, 국회의원이 PC통신을 사용한다고 전자민주주의가 이루어질까?
아니다. 네트를 기성 정치의 성공을 위한 한낱 보조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삼류 정치인만으로 전자민주주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네트의 문화와 활동방식에 생면부지인 사람이 돈주고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진정한 네티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고 직접 민주주의의 열매를 우리에게 선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민주주의란 평등한 참여자들간의 의사소통 및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말한다. 사이버 민주주의는 ‘컴퓨터로 매개된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론의 장’으로서 사이버스페이스 내의 민주주의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육체와 물질의 세상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 사상과 생각이 오가는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의 공동체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생명수다.

전자프론티어재단(EFF :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의 공동 설립자인 발로(John Barlow)는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발로의 이 말은 전자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네트의 자유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이 인터넷의 기본 철학과 이념으로 ‘제퍼슨의 자유주의’(Jeffersonian Liberali-sm)를 내세우는 이유는 제퍼슨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시민 권력은 탄생할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권력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과연 거대 권력의 일률적 지배가 무너지고 네트워크로 엮인 개인들의 권능이 강화돼 독립된 주체들의 합의에 기반한 다원적인 민주사회가 도래할까. 실제로 사이버스페이스가 얼마만큼 권력이동을 촉진하고 있을까.

강력한 국가 권력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려면 새로운 방식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권력이동의 조짐은 매스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트는 즉각성과 현장성, 쌍방향성이라는 특성에 힘입어 매스미디어를 견제하고 이를 대체하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의 독점적 생산수단과 유통구조를 뒤흔들고 미디어 생산-소비자라는 새로운 사용자가 등장한다. 새로운 권력의 씨앗은 ‘지배’, ‘통치’가 아닌 ‘협동’과 ‘나눔’의 평등사회를 지향한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형식상으로만 볼 때 아무런 자본도 갖지 못하고 자신의 매체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전세계의 인터넷 사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네트의 쌍방향성은 분명히 정치적 잠재력을 잉태하고 있다. 쌍방향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더 이상 독단과 독주의 시나리오는 살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네트는 우리에게 독백이나 제창이 아닌, 협연과 합창이 아우러지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기술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시민들간의 의사소통은 민주 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이다. 시민 스스로가 쟁점들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교육받고, 그만큼 자유롭다면 시민 스스로가 자신을 다스린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단지 비밀선거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직접 뽑는다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과 쟁점에 대해 그 진상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논의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공공영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공공영역’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들어질 경우 그것을 사이버 데모크라시, 혹은 전자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와 정보를 사용하는 지식이 전자정치의 권력을 구성하는 지배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만약 정보와 지식의 주체가 민주화된다면 이는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보와 지식에 의한 통제와 감시, 지배가 독점되고 참여가 제한된다면, 이는 정보에 기반한 독재체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탈 계급화는 가능한가

민주주의는 소수의 제한된 인원에서 전체 국민으로 참여의 폭을 넓혀왔다. 네트 안에서는 전자민주주의의 향방을 놓고 여러 집단이 서로 다른 이해를 중심으로 흩어지고 모인다. 전자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참가자의 수가 제한되거나 인종적, 경제적, 생물학적 장벽이 쳐져서는 안된다. 인종과 피부색, 남녀, 계급과 관계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게 네트에 참여해 공론의 장을 함께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전자민주주의의 텃밭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네트의 민주주의는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자유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라면 ‘퍼블릭 액세스’는 평등의 문제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긴장관계는 현실 국가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여정에서 항상 대립관계에 놓여 있었다. 사이버스페이스도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시각과 퍼블릭 액세스를 강조하는 평등론적 시각이 서로 대립하곤 한다.

네트에는 시장자유주의와 사상의 자유를 내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일반화돼 있다. 네트에서는 원자화된 개인의 전면적인 자유가 선포된다. 이에 대한 반론과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네트가 지금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히 개인의 권능 강화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독립된 주체들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란 사실상 이상적인 상태에 불과하다. 현재로서는 이런 조건이 특정한 사회 집단 안에서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캐나다의 미디어 연구자인 크로커는 ‘가상계급’(virtual class)이란 용어로 사이버스페이스의 지배계급을 설정하고 있다. 그는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새로운 계층을 ‘가상계급’이라 부른다. 반면 새로운 기술로부터 소외된 계층이 네트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를 구성한다. 크로커가 말하는 ‘가상계급’은 기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하이테크 의존적 부르주아와 프티부르주아로 구성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도체 산업과 컴퓨터 문화는 탈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들의 인구적 구성은 현재 인터넷의 초기 사용자층을 구성하는 고소득,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로 대표된다. 컴퓨터 산업 관련 종사자와 소프트웨어 생산자, 그리고 네트를 통해 전달되는 갖가지 정보와 지식을 포함해 문화산업을 이끄는 집단들이 테크놀로지의 잠재력을 적극 주창한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혹은 ‘가상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불리는 이런 입장은 현재 네트의 발전과 관련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의 추세를 보면 인터넷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공간이 현실세계와의 긴장 관계를 놓아버릴 때 개인주의화의 촉매제로 전락할 우려도 항시 존재하고 있다.

지적 재산권은 승화될 것인가

“나에게서 어떤 아이디어를 받은 사람은 - 마치 내 초에서 불을 붙여가는 사람이 내 초의 불빛을 조금도 흐리게 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초에 불을 밝힐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나의 아이디어를 하나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자신을 가르칠 수 있다.”

토마스 제퍼슨이 1813년 맥퍼슨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이 말은 디지털 복제 시대의 저작권 문제에 핵심적인 시사를 던져준다. 케이포, 발로 등 네트의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제퍼슨의 사상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뿐만 아니라 ‘지적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내려주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디지털화된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이자, 동시에 서로의 생각과 의사가 교환되는 공동체다. 디지털로 전환된 정보는 아톰(원자)으로 만들어진 상품과는 다른 경제 논리로 이루어진다. 디지털 경제는 지식과 창조력에 의해 판가름난다. 인간의 사고와 다양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놓은 문화가 가장 빨리 디지털로 전환돼 네트에 자리잡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디지털 경제에서는 과거 아톰의 경제와 달리 복제 생산에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디지털 복제는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명을 먹였다는 성서의 기적을 현실에서 이루어낸다.

하지만 자유로운 지식의 유통을 가로막는 장애도 적지 않다. 바로 디지털의 자유로운 흐름에 침투해 들어오는 자본과 상품화의 물결이다. 디지털복제가 지닌 이런 특징 때문에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브라우저를 공짜로 쥐약처럼 풀어놓는 한편, 각종 디지털 복제권을 사들이고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앞으로 전개될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대비해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된 예술 작품의 디지털 복제 사용권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앞으로 전개될 멀티미디어 정보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포석이다. 1980년대에 소프트웨어(DOS)의 저작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향후 전개될 멀티미디어 서비스에서 디지털 저작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십분 활용할 것이다.

70-80년대 초반에 소프트웨어 저작권의 시대를 열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빌 게이츠는 1990년대 중반에는 윈도를 통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왕자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다. 이제 다가오는 21세기의 문전에서 그는 정보고속도로를 달릴 네트워크와 그 내용에 대한 저작권을 적극 도입,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을 활용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디지털 상품화로 한몫 챙기려는 디지털 자본주의와, 지식을 무료로 서로 나누려는 디지털 아나키스트들의 원시공동체가 공존한다. 디지털 자본주의자들은 지적재산권의 효력을 네트의 디지털에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네트의 공동체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저작권(카피라이트:copyright) 옹호자에 대한 카피레프트(copyleft)론자들의 대항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카피레프트는 사용자의 사용권에 중심을 둔 입장이다. 지적재산권과 저작권의 적용을 반대하는 카피레프트는 정보의 공유라는 철학을 내세우며 정보의 상품화와 독점에 반대한다. 카피레프트의 입장에서 볼 때 정보란 사용을 위한 것이지, 상품화의 도구나 개인적 소유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의 자유로운 사용과 추후에 이를 상용화하려는 경향 사이에 아직까지는 팽팽한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그 가격 수준이 어떠하든 정보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대세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서비스로 제공되는 디지털 저작물에 대해 사용자, 사용 시간대, 사용 목적에 따라 아주 세부적인 수준에서 가격 통제와 조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정보화의 진전과 더불어 정보의 독점과 정보의 나눔이란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제기될 것이다. 정보사회의 불평등은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정보의 사용과정에서 생겨나는 불평등 문제로 나눠볼 수 있다. 또 세계적 차원에서는 나라간의 정보력 격차가 야기될 수 있다. 미국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정보 인프라스트럭처(GII) 구상은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정보 격차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지적 재산권 보호와 불법 복제간의 긴장이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새로운 무역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 나라 안에서도 계층간의 정보 격차와 지역간의 정보 격차가 일어날 수 있다. 계층간의 정보 격차는 기본적으로 계층간의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없이 정보의 ‘보편적 접근’이나 ‘정보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 현실 권력은 사이버스페이스에 개입해 이를 통제하고 관리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분명히 풀뿌리 민주주의와 합의에 입각한 권력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던져준다. 하지만 대자본과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 가상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해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의 또 다른 복제판이 된다면 가상현실이 주는 위안과 해방,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새로운 사회공간은 미처 싹도 트기 전에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네트의 진정한 독립은 현실세계의 뿌리에 끈끈하게 들러붙어 현실 자체를 변혁시키는 일상의 모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대안문화는 사회 저변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문화의 실험과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열려진 생각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그를 토대로 네트워크를 엮어 짜는 수평적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대안적 문화를 일구려면 이를 추진할, 작지만 알찬 주체들이 도처에서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

오늘의 불안을 극복하는 진정한 대안은 기술이나 하드웨어의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대안은 새 사람과 새 문화에서 나온다. 그런데 현실 세계가 억압과 권위주의로 찌들어 있고, 우리의 생각이 고루함과 구태의연함에 머물면서 사이버스페이스의 창의력과 새로움을 기대한다면, 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대안 문화를 꽃피우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이버스페이스의 진정한 뿌리인 우리 삶의 텃밭을 기꺼이 갈아엎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199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백욱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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