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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사용후 핵연료 지하에 묻으려면? 고준위 방폐물 처분 해법을 찾아서

2024년 5월 30일, 제 22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이 재발의됐다. 특별법의 핵심은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하는 시설을 짓는 것이다. 현재의 임시 저장 시설이 2030년부터 포화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짓는지, 사전에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 자세히 알아봤다.

 

▲Posiva
2025년 세계 최초로 가동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 시설 ‘온칼로’. 핀란드 정부가 화강암 지층 지하 420m에 만들었다. 사진에서 건설 인부가 딛고 있는 발 아래 구덩이에 처분 용기로 감싼 사용후 핵연료를 매립한다.

 

▲김진화
김진섭 한국원자력연구원 처분성능실증연구부 책임연구원이 연구용으로 제작한 원통형 사용후 핵연료 처분 용기 앞에 서 있다.

 

“실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처분 용기를 3분의 1 크기로 제작한 겁니다.”

 

8월 28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공학적방벽시스템 성능실증 실험실에서 만난 김진섭 한국원자력연구원 처분성능실증연구부 책임연구원은 구리로 만든 거대한 원통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평범한 원통이었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를 담을 수 있다고 하니 새삼 다르게 보이며 재질이나 강도가 궁금해졌다. 

 

원자력발전소(원전)는 일정한 주기로 전력 생산에 사용한 핵연료를 완전히 교체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아직 높은 열과 방사능을 띠고 있어 공기 중에 노출되면 위험하다. 그래서 꺼내자마자 원전 내 깊은 수조에 임시로 저장한다. 임시 저장 이후에는 중간 저장 시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영구 처분 시설인 고준위 방폐장으로 보내야 한다.

 

영구 처분은 사용후 핵연료를 인간의 생활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시키는 기술이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사용후 핵연료를 지하 깊은 곳에 보관하는 심층 처분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보관할 때에는 사용후 핵연료를 원통형 처분 용기에 넣고, 벤토나이트라는 흙으로 만든 완충재로 감싼다. 이를 ‘공학적 방벽재’라고 부른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명목으로 2021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다부처 공동 예비타당성조사 사업을 지원받았다. 이 연구의 일환으로 2023년에는 400평 규모의 공학적방벽시스템 성능실증 실험실이 구축됐다. 이 실험실은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에 사용될 공학적 방벽재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시설이다.

 

공학적방벽시스템 성능실증 실험실에서는 처분 용기와 완충재를 제작하는 기술, 그리고 그 성능을 평가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고준위 방폐장이 지어질 지하 500m는 온도와 압력이 높고, 지하수가 흐르는 환경입니다. 공학적 방벽재가 이러한 열적, 수리적, 역학적 조건에서 잘 작동하는지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책임연구원이 설명했다. 

 

이곳에서 개발된 공학적 방벽재는 실제 고준위 방폐장에 적용되기 전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과 처분 부지 내 URL에서 추가 검증을 받는다. URL은 고준위 방폐장과 동일한 지하 500m 환경을 재현해 처분 시스템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시설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이 실험실에서 개발된 핵심 기술들을 2032년에 완공될 연구용 URL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용후 핵연료는 온도와 방사능 농도가 높아 원자력발전소에서 꺼낸 직후 사진과 같은 임시 저장 수조에 넣어 보관한다.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분은 이처럼 복잡한 여러 단계를 거친다. 처분 용기에 넣고 완충재로 감싼 이후에도 여러 번 안전성을 검증받아야 고준위 방폐장으로 보낼 수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지하 500m 처분 시설에 보관한 사용후 핵연료 속 방사성 물질은 공학적 방벽재를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 약 10만 년이 걸린다”며 “이 기간 동안 방사성 물질의 양과 방사능 농도가 감소해 결국 지상에서는 안전한 물질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2024년 2월, 11차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연구용 URL을 2032년에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연구용 URL은 2024년 6월부터 부지 공모를 시작했으며, 올해 12월에 부지가 결정될 예정이다. URL 건설이 완료되면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분 연구는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와 별개로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결국은 URL에서 검증한 기술을 실전에 적용하는 것, 즉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의 부지를 선정하는 데 필요한 정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에 건설하고자 하는 고준위 방폐장 조감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 용기에 넣은 뒤 지하 500m 위치에 매립할 계획이다.

 

2030년부터 포화, 방폐장 부지・용량 의견차

 

제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의 핵심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은 1978년부터 원전을 가동했는데, 지금까지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 저장 시설에만 쌓아왔다. 이대로 가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임시 저장 시설이 순차적으로 포화된다. 저장 공간이 부족해지면 원전의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고준위 방폐장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부지 선정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부지 선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고, 위원회는 2015년 URL과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내용을 담은 ‘사용후 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7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논의는 큰 진전이 없었다.

 

최성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9월 2일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전형적인 ‘NIMT(Not In My Term)’ 현상”이라고 말했다. NIMT는 정책 결정자들이 임기 내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다음 임기나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고준위 방폐장 설립 계획은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이 변할 때마다 처음부터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다 2022년 김영식,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제21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고준위 방폐장의 부지 선정과 건설 계획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고준위 특별법이 발의됐다. 8월 28일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류재수 선진핵주기기술개발부장은 “고준위 특별법은 정치적 환경 변화와 상관없이 방폐장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의 저장 용량을 두고 여야 간 의견이 대립하면서 21대에서 논의가 지연됐다. 여당은 원전 수명 연장을 고려해 고준위 방폐장의 저장 용량을 설정하자고 주장했고, 야당은 최초 설계수명을 기준으로 저장 용량을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쉽게 말해 원전 확대를 염두에 두고 저장 용량을 크게 할지, 작게 할지가 문제였다. 결국 설계수명을 기준으로 하기로 합의했으나, 다른 법에 우선순위가 밀려 법 제정에는 실패했다.

 

2024년 5월 30일 고준위 특별법은 제22대 국회 시작과 동시에 재발의됐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 고준위 특별법을 다시 꺼내올린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 “이대로 가면 당장 2030년부터 차례로 원전 가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며 고준위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서울대학교
2023년 서울대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안을 마련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속가능 고준위 방폐물 관리’라는 융합전공을 신설했다.

 

방폐장 건설 기간 37년, 당장 지어도 2061년에 가동

 

산업통상자원부가 2021년 12월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고준위 방폐장은 건설에 총 37년이 걸린다. 부지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부지 선정 절차부터 처분 부지 내 URL을 지어 안전성을 한번 더 검증하는 단계까지 첩첩산중이다. 지금 당장 지어도 2061년에야 운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의 저장 용량을 늘려가는 것뿐이다. 한 예로 사용후 핵연료는 뭉쳐 있으면 온도가 상승해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을 두고 저장해야 하는데, 철제 칸막이 역할을 하는 조밀 저장대를 설치하면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 간격을 좁혀 저장 용량을 키울 수 있다. “조밀 저장대를 설치하면 임시 저장 시설의 저장 용량이 2배 정도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방법조차도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김 책임연구원은 말했다. 

 

추가로 임시 저장 시설을 건설한 원전도 있다. 경북 경주에 위치한 월성 원전은 2022년에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될 것에 대비해 추가 저장 시설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임시 저장 시설을 계속해서 확장할 수는 없다. 결국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다. 2023년 11월, 원전이 건설된 경북 경주와 울진 주민들은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포화가 임박한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의 영구화 방지와 지원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일보
경북 경주에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 내부.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은 1986년부터 논의가 시작됐지만, 주민 반대로 부지 선정에 9번 실패했다. 2005년 중저준위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부지를 선정하는 데 성공했고, 2008년 공사를 시작해 2015년부터 운영 중이다.

 

사회적 합의가 가장 중요” 핀란드 2025년부터 방폐장 가동

 

사용후 핵연료 처분은 전 세계 공통 고민이다. 핀란드는 이런 고민 해결에 가장 앞선 나라로 주목을 받는다. 핀란드는 이르면 내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준위 방폐장을 가동한다. 올킬루오토섬 지하 420m에 ‘온칼로’라는 방폐장을 짓고 최대 6500톤(t) 분량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10만 년간 봉인할 계획이다. 핀란드는 온칼로 가동을 위해 40년도 더 전에 방폐장 건설 장기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준비를 해왔다.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은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전체 전력 중 30.7%를 충당하고 있고, 다른 안정적인 에너지원이 등장하지 않는 한, 원전에서 전력 생산을 당장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계속해서 늘어나 머지않아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될 것이다. 

 

최 교수는 “처분 기술은 연구가 꽤 많이 이뤄진 상태”라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들과 충분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주 지역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을 건설했던 사례를 비춰봐도 그렇다. 중저준위 방폐장에 대한 논의는 1986년부터 시작됐지만, 최종적으로 부지를 선정하기까지 무려 9번의 고배를 마셨다. 주민들의 거센 반대 때문이었다. 이후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하고, 주민 투표로 부지를 선정해 2015년부터 중저준위 방폐장이 운영되고 있다.

 

2023년 서울대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관한 기술적 이해를 기반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기 위해 ‘지속가능 고준위 방폐물 관리’라는 융합 전공을 신설했다. 초대 전공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최 교수는 “사용후 핵연료를 공학적으로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융합 인재 양성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금 노력하지 않는다면 고준위 방폐물 문제는 미래세대에게 더 큰 짐으로 남겨질 것이다. 2023년 12월 국회 소통관에서는 강원대, 부경대 등 6개 대학의 학생 314명이 미래세대를 대표해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미래세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희망했다. 최 교수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미래세대와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 설명
사용후 핵연료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 사용후 핵연료는 원자력 발전에 쓰고 나온 핵연료로, 수치상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준하는 물질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열 발생량과 방사능 농도에 따라 극저준위,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로 나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열 발생량이 2kW/m3, 방사능 농도가 1g당 4000bq(베크렐・방사능 단위로 1베크렐은 1초에 방사성 붕괴가 1번 일어난다는 뜻) 이상인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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