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 엘니뇨가 뭐기에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로 지속되는 현상이다. 평소 이 지역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무역풍이 불고 있다. 무역풍은 태평양 표층의 따뜻한 바닷물을 서쪽 해안으로 쌓아놓는 역할을 한다. 이 영향으로 서태평양은 수위가 높아지고 해수면 온도가 덩달아 상승한다. 반대로 동태평양은 수위가 낮아지고 부족한 바닷물을 해저의 차가운 바닷물이 올라와 채우면서 해수면 온도가 떨어진다. 엘니뇨는 이런 무역풍이 급격히 약해져 발생한다. 2~7년 주기로 발생하는데 기상학적으로는 엘니뇨 감시구역인 열대 태평양(남위 5°~북위 5° , 서경 170~120°)의 수온이 평년보다 0.4℃ 높은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엘니뇨라고 본다.
슈퍼 엘니뇨는 엘니뇨 중에서도 특히 강한 놈이다. 엘니뇨가 점점 발달해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2.5℃ 이상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기상청은 6월 15일 발표한 ‘엘니뇨 현황 및 전망’에서 현재 엘니뇨 감시구역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1.3℃ 이상 높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이 해역의 온도가 현재보다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올 하반기 강력한 슈퍼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엘니뇨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12월이 될 걸로 보인다.
바닷물 온도가 1~2℃ 높아지는 것이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싶지만, 이는 열대 지역 강수 패턴 자체를 바꿔놓는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대기 중에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가 쌓이면서 공기의 흐름을 바꿔 어떤 지역에는 큰 고기압이, 다른 지역에는 큰 저기압이 형성된다. 보통 호주 북동부, 동남아시아, 인도 지역에는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해 심각한 가뭄이 생기고, 동태평양에 인접한 중남미 지역에는 저기압이 강하게 형성돼 폭우나 홍수 피해가 발생한다. 최근 인도에서 기온이 48℃까지 오르는 불볕더위가 계속된 것도(열사병과 탈수 현상으로 6월 말 기준 2200명이 사망했다) 엘니뇨와 무관하지 않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12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슈퍼 엘니뇨가 슈퍼 태풍 부른다?
지난 5월은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후 가장 더운 5월로 기록됐다. 30℃ 안팎의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폭염 특보도 여러 차례 내렸다. 최근 한두 달 사이 중부지방에 심각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엘니뇨의 영향이 아닐까.
국종성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올 여름철 날씨는 엘니뇨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고 일축했다. 통상 엘니뇨가 발달하면 여름에는 집중호우가 발생하고, 겨울에는 평년보다 포근한 가운데 폭설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엘니뇨가 하와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북태평양 고기압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장마전선이 천천히 올라와 장마가 늦어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을 100% 적용하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는 엘니뇨 직접 영향권에 드는 열대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비교적 확실한 영향은 바로 태풍이다. 기상청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올 하반기 강한 태풍이 발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태풍이 생기는 위치가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남동쪽으로 치우친다. 즉 발생 위치가 적도 부근 태평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태풍이 뜨거운 해상에 오래 머물면 태풍의 세기가 세지고 활동 기간도 길어진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한반도를 강타하는 태풍의 개수는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발생 위치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면서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으로 진로를 틀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대부분 필리핀 서쪽 해상에서 발달해 중국 연안에 도달한 뒤 방향을 틀어 한반도 쪽으로 진행한다. 국 교수는 “9월에는 한반도에 태풍이 평균적으로 1개가 오는데, 엘니뇨가 발생했던 해에는 9월 태풍이 0개 또는 1개로 아예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만 우리나라에 도달할 확률은 낮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가 슈퍼 엘니뇨 부추긴다?
이번 슈퍼 엘니뇨는 1997~1998년 발생했던 엘니뇨 이후 18년 만이다. 당시 중태평양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2.8℃ 이상 올랐다. 전 세계에서 2만2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36조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1982년 봄부터 1983년 여름 사이에도 1997년보다는 작지만 슈퍼 엘니뇨가 있었다. 14~18년 주기로 슈퍼 엘니뇨가 한 번씩 발생한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슈퍼 엘니뇨가 더 잦아질 수도 있다. 호주 연방과학원 해양대기연구소 웬주 차이 연구원이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이 지난해 1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90년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슈퍼 엘니뇨 수는 지금보다 2배나 더 많다. 14~18년에 한 번씩 발생하고 있는 슈퍼 엘니뇨가 미래에는 7~9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기후 예측 모형을 이용해 1891~1990년, 1991~2090년 두 기간의 엘니뇨 발생 수를 비교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슈퍼 엘니뇨 발생 수가 급증하는 이유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태평양 전체의 수온이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태평양의 평균 수온이 오른 상태에서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면 비구름이 적도 부근으로 더욱 몰려 가뭄이나 산불, 홍수 등의 기상이변이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안순일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수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으로 증발되는 수증기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약간만 올라도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차이 연구원팀은 같은 방식으로 지구온난화가 발생할 때 라니냐 발생 수도 조사해 같은 학술지 올해 1월 26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강력한 라니냐 역시 지금보다 80% 가량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오늘날 23년 주기로 닥치는 강력한 라니냐가 13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무엇보다, 강력한 라니냐의 75%가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 이듬해에 뒤따라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슈퍼 엘니뇨와 슈퍼 라니냐가 반복되면 지구 전체의 기후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 이는 당장의 무더위, 강한 태풍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상 재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