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전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 발명과 발견이 20세기 후반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인류는 이들이 앞으로 자신의 생활을 바꾸어놓을지 짐작조차 힘들어 하는 형편이다. 특히 20세기 후반들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의 변화는 양과 질에서, 또 영향력 면에서 여타 분야를 압도하고 있다. 집채 만한 컴퓨터가 손바닥 위로 올라오고 전세계가 단일한 네트워크로 묶이는가 하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소프트웨어가 경쟁적으로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여하간 이 '혁명적 변화'의 덕택으로 전세계인은 컴퓨터의 도움 없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릇 모든 변혁운동에는 추구하는 목표와 이를 진두지휘하는 지도자다 있는 법. 그렇다면 이 혁명의 배후자는 누구이며, 또 이들이 혁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핏 쉽게 답이 보일 것 같은 두 질문에 대해서 함부로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워낙 진행 속도가 빠르기도 하거니와 사회 어느 분야도 예외가 인정되지 않을 만큼 범위가 넓어 섣부른 판단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지도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대체적인 의견의 접근을 보고 있다. 이른바 '디제라티'라 불리는 인물이 바로 그들이란 것이다. 디제라티란 디지털(digital)에 지식계급(literati)를 합성한 신조어. 디지털 혁명과 관련된 사고의 틀을 만들고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미래를 구체화시키는 정보통신 분야의 거물들이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해 '복음'을 전파하는 한편, 서로를 다른 디제라티와 연결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71년 창립된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개최하는 다보스회의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턴 세계의 유명 정보통신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디제라티에 속한다.
올해는 아시아권의 금융 위기가 주된 이유로 제기됨에 따라 관심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웹이 폭발적 성장을 보인 지난 96년의 모임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네그로폰테 MIT 미디어연구소 소장을 비롯, 역시 MIT의 컴퓨터과학연구소장인 마이클 더투조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AT&T벨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아르노 펜지아스, 미래연구소 소장 폴 사포, 해커 추적 소설과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은 여기서 신산업, 뉴미디어, 신디지털경제등이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인물들은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존 브룩맨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고 하드와이어드사가 발간한 저서 '디제라티'에 등장하는 30여명을 바탕으로 비교적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들을 분야별로 선정한 것이다.
이들이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선정 자체가 편협한 면이 없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큰 흐름이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쉽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적호기심 충만한 디지털 장사꾼 빌 게이츠
오늘의 정보통신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첫번째로 꼽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은 관련 업계에 포진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획기적인 네트워크 언어 '자바'로 인터넷 시장을 휘저은 썬마이크로시스템의 스코트 맥닐리,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인텔의 고든 무어 등이 디지털 세계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정치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그것과 맞먹는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인 빌 게이츠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인물도 드물 듯하다.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 '정확한 예견을 통해 승부수를 던지는 천부적인 사업가' 등의 우호적 평가의 또 한쪽에서는 '21세기의 빅 브라더' '탐욕스런 디지털 장사꾼' 등 폄하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어떤 평가를 내놓든간에, 이는 그의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하며, 또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버드대학을 중퇴한 뒤 고교동창생인 스티브 발머(마이크로소프트사 부회장)와 함께 75년 회사를 설립한 게이츠는 컴퓨터 운영체제와 각종 응용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소프트업계에서 부동의 정상에 올랐다. 게다가 뒤늦게 뛰어든 인터넷 시장에서도 넷스케이프같은 선발 회사의 목덜미를 잡아 채면서 시장을 재편해놓았다.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갑부다. 경제 전문지 포천의 추산으로는 4백억달러를 훨씬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엄청난 재산을 정보사회를 실현하는 거의 전 부문의 첨단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발, 방송 미디어의 유망주 MSNBC엔 4억달러 규모를 투입했고, 사이드워크라는 지역문화예술정보 미디어에도 손을 뻗쳤다.
또 지난 89년에는 '코르비스'(바구니를 뜻하는 라틴어)란 이름의 문화예술 사이버 저작권 기업도 설립했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저작권을 사 모으고 있는 이 회사의 주공략 상품은 각종 미술품들.
현재 영국 국립미술관, 러시아 에르미타주미술관, 캐나다 왕립 온타리오미술관, 미국 킴벨미술관 등 14군데와 계약을 맺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날틀 등 각종 기계장치에 대한 구상과 과학적 실험결과 등을 기록해놓은 방대한 분량의 노트(코덱스)의 디지털 판권을 이 회사가 가지고 있다.
정보 인프라 전체를 장악하려는 그의 왕성한 '식욕'은 작년 미국 법무부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제소당하면서 잠시 주춤한 상태. 컴퓨터 제조업체들에 윈도 95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조건으로 반드시 익스플로러가 설치돼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했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법무부는 제조업체들이 익스플로러의 설치 혹은 삭제를 알아서 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이 회사의 성장 비결은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보다는 독점적 시장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마케팅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이같은 견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의 신화는 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이버컬처 대표하는 루이스 로세토
사이버컬처를 대표하는 웹사이트 핫와이어드(www.wired.com)와 전문 출판사 하드와이어드를 운영하는 와이어드 벤처사의 회장. 소설가, 자유기고가, 텔레비전 카메라맨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회사 경영보다는 월간으로 발행되는 종이잡지 핫와이어드지의 편집장 노릇에 더 많은 정력을 쏟고 있다.
80년대 후반 암스테담에서 '일렉트릭 워드'란 잡지를 운영하던 그가 미국에 돌아온 것은 지난 91년. 그와 그의 사업 파트너인 제인 메트컬프는 당시 나온 컴퓨터 관련 잡지들이 대부분 구매 가이드나 제품의 성능을 소개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제기되는 각종 이슈와 함께 기존의 정치, 여행, 예술, 오락, 건강, 생활 등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잡지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러나 이들은 1년을 허송세월할 수밖에 없었다. 두사람의 뜻을 이해하고 지원해줄 후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업은 '디지털 전도사' MIT 미디어연구소의 네그로폰테 소장이 7만5천달러를 투자하면서 본격화됐다.
때맞추어 불어온 웹 폭풍을 타고 사업은 갈수록 확장됐고, 로세토는 사이버스페이스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이 회사가 96년 한햇동안 올린 매출액은 3천8백만달러. 이만한 규모의 회사가 이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은 매우 경이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전문지인 비즈니스위크는 작년 신년호에서 그와 제인 메칼프를 손정의 소프트뱅크사장, 제임스 박스데일 넷스케이프 사장 등과 함께 '주목되는 경영자 2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와이어드사의 성공이 수용자와 인터액티브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기존의 컴퓨터 잡지들은 연구실에서 튀어나온 테크놀러지를 다루면서, 정작 기술에 의해 인도되는 세상으로 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와이어드 이전까지 웹을 광고가 가능한 미디어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넷스케이프가 첫 웹 브라우저를 발표하기 한 달 전에 배너광고(띠 광고)를 고안해냈으며, 이 방식은 이제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와이어드 외에도 자연어 검색이 가능한 검색엔진인 핫봇 등의 인기 사이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그는 웹을 '상품이자 유통망이며, 미디어'라고 정의한다. 그가 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컨텐츠. 그는 컨텐츠를 단지 웹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문자나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 안에 담긴 창의성이라고 설명한다.
창작자, 즉 컨텐츠 제공자는 가공되지 않은 무수한 데이터에 '특별한 요소'를 더해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극장에 상영 중인 영화는 극장주인의 것이 아니라 영화 제작자의 것이듯, 온라인 사업자와 컨텐츠 제공자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후자 우위에 놓인 것으로 본다. 수용자와 인터액티브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사이버 스페이스 최초 정치인 존 페리 발로
지난 96년 한햇동안 인터넷의 허다한 웹사이트들은 푸른색 리본으로 뒤덮혀 있었다. 미국 정부가 인터넷의 음란물 규제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통신품위법'을 제정하려 하자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며 이에 맞선 네티즌들이 저항의 상징이었다. 이 운동은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이라는, 현실 세계에는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이버 단체에 의해 주도됐다.
히피시대를 풍미한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고마운 죽음)의 작사자이자 그 자신 히피였던 존 페리 발로는 지난 90년 미셸 케이포와 함께 이 재단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단 한가지, '사이버스페이스의 자유를 위하여'. 이로 인해 그에게는 '사이버스페이스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발로는 클린턴이 통신품위법에 서명하던 날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독립선언문은 즉시 수백개의 사이트에 복사돼 게재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산업세계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 나는 마음의 새 고향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왔다.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정부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가 명하는 대로 네게 말하겠노라.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사회 공간은 네가 우리에게 덮어 씌우려는 독재와 무관한 것이다. 너는 우리를 지배할 도덕적 권리도 없고 우리가 무서워할만한 강제적인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 대법원은 1년 뒤 이 법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법제화 하기에는 불명료한 부분이 너무 많다"며 위헌판결을 내렸다. 현실 세계에 대한 사이버스페이스의 승리였다.
사업가들에게는 사이버스페이스가 새로운 사업장이거나 업무의 효율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지만, 발로같은 운동가들에게 네트워크로 구성된 이 세계는 새로운 인간 생활의 환경이자 공동체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필요한 설비와 접속만 할 줄 안다면 누구나 참여하고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는 완벽한 평등의 사회란 점에서 실제 세계와 다르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복제되고 아무런 비용 없이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다. 당연히 디지털 정보의 상품화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는 구텐베르그 이후 정보를 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장치를 통해 책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다른 상품들처럼 거래됐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보란 상품이며, 재산이며 사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보란 정신의 흐름과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고, 의식(sense)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진 말 한 마리를 누군가 훔쳐가면 말을 탈 수 없는 것처럼, 재산이란 당신에게서 떼어낼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누군가 가져갔다고 해서 그 생각이 내게서 없어지는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두사람이 갖게 됨으로써 본질적으로는 더욱 가치를 지닌다."
지난 60년대 미국의 히피들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무소유의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현실에 대항하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가 사이버스페이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인간 공동체에 대한 60년대의 낭만과 열정이 아직도 사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천체물리학자 클리포드 스톨
'뻐꾸기 알'로 유명한 천체 물리학자 클리포드 스톨
천체물리학자 출신의 온라인 전문가. 지난 87년 초부터 약 1년간 독일인 5명이 대학 인터넷망을 통해 대서양 건너 미국의 방위산업체에 침입, 군사기밀을 빼내 이를 KGB에 넘겨주고 그 대가로 마약을 받은 전설적인 해킹 사건인 '독일 스파이 사건'을 해결하고, 또 이 이야기를 토대로 '뻐꾸기 알'이란 소설을 쓰면서 유명해졌다.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통신을 오랫동안 자유자재로 사용해 본 그는 인터넷, 혹은 네트워크가 구성하는 또다른 세계인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같은 그의 태도는 '허풍떠는 인터넷'이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자신 여전히 집에서 6대의 컴퓨터를 만지고 있지만, 스톨은 인터넷에 대한 과장된 기대가 현실 인식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보고 싶어하는 인터넷 그 자체는 사실 낮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할 뿐, 그다지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 취급을 받고 있으며, 인터넷에 계정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권위의식을 제공하는 수단이 돼버렸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그가 '인터넷 거품'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통신망에 접속해서 보내는 수많은 시간이 일상생활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망은 어디까지나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가상 세계에 불과한데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생활이 이 새로운 전자 세계를 통해 간편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인터넷 무용론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이버스페이스'는 결코 실재하지 않는 세계이며, 여기에 지나치게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온라인에 들어가 있을 때 나는 혼자 방에서 키보드를 치며, 음극선 튜브를 응시한다. 나는 방에 있는 어떤 사람도 무시한다. '온라인에 있음'이란 것의 본질은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 심리학의 창시자 셸리 터클
사람 모이는 곳에 오락이 빠질 수 없듯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오락실, 특히 머드(MUD: multi user dungeon)다. 네트워크를 통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천명에 이르는 다수의 이용자들이 동시에 참여해서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르거나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며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이 게임은 그 자체가 완벽한 사이버스페이스다.
머드의 또 한가지 특징은 강한 중독성. 이 때문에 머드는 '편집증 환자 제조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상당수 학자들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데 있어 머드만큼 완벽한 도구는 이 세상에 없다"고 옹호론을 펴곤 한다. 무작위 계층의 수많은 이용자들이 한 장소에 몰려 일상 대화를 나누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면 실생활의 정치와 경제 모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MIT의 심리사회학 교수인 셰리 터클은 처음으로 이 가상공동체에 관한 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사이버분석가로 불리는 그는 인터넷에 사람들의 정서가 어떻게 반영하는 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지난 95년 발표한 '스크린 위의 삶'은 인터넷이 자기 정체성에 미치는 변화를 검토한 대표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평자들로부터 컴퓨터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우리의 눈을 한 수준 높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인터넷 시대의 정체성'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머드 체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생활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 자신 4살짜리 아이를 둔 40대 주부인 터클은 머드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자재로 바꾸었다. 40대 여성인 그 자신도 때로 20대의 여성, 20대 남성 등으로 자아를 바꿔보았다. 그는 바뀐 자아를 통해 때로는 달콤한 사랑을 즐기고 때로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들과 여성 문제를 토론하기도 했다.
또 그는 '닥터 셰리'라는 별명으로 참여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누군가 이 머드상의 이름을 '사이버 정신과 의사'를 의미하는 상표로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더 이상 '닥터 셰리'는 셰리 터클 그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도 현실에서 이렇게 여러개의 자아가 표출된다면 정신분열증 환자로 치부되겠지만, 나이와 성별이 쉽게 파괴되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복수의 자아'(multi ego)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는 '복수의 자아'가 심리치료와 교육, 사회화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머드(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야만 하는 필요성에 직면한다면 언어에 의해서, 또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 존재란 결코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는 현실세계의 제도와 가치 규범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 가상 공동체에서는 현실의 자기 정체성 역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결국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생각의 교환과 공유만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근거이자 바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