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가 '병주는' 사례들을 생각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곰팡이를 해로운 미생물로만 인식하기 쉽다. 식물성 질환의 85%가 곰팡이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곰팡이에 대한 험담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잘 뜨지 않은 메주(곰팡이가 잘 피지 않은)를 써서 만든 간장은 맛이 없고 된장조차 감칠맛이 안난다. 한국의 된장, 일본의 미소(miso), 인도네시아의 템페(temphe)는 모두 콩을 푹 삶은 후 여기에 공기중의 곰팡이를 자연적으로 붙게하든지 또는 특정 곰팡이를 인공적으로 접종시켜 콩을 미생물적으로 가공한 발효식품이다.
멀건 콩나물국이 맛있는 이유
콩에 포함된 단백질은 그대로 먹으면 별 맛이 없다. 그러나 콩단백질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기본 단위 구조인 아미노산 조각으로 끊어지면 드디어 맛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기국물을 쓰지않은 기사식당의 멀건 콩나물국은, 아미노산의 한가지인 글루타민산소다 조미료만 가지고 만들지만 항상 입에 쩍쩍 붙기 마련이다.
메주에서 자라는 곰팡이는 콩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단백질분해효소를 분비해 단백질 덩어리를 아미노산으로 쪼갠다. 이 때문에 곰팡이가 잘 핀 메주가 장맛을 좌우하게 된다. 재주는 곰팡이가 부리고 맛있는 아미노산은 인간이 이용하는 셈이다. 자연에서 메주의 콩단백질을 분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은 흔히 누룩곰팡이(Aspergillus)로 알려져 있다.
술도 곰팡이만이 가진 독점기술로 만들어진다. 와인이나 맥주와 같은 서양식 주류는 물론 막걸리, 동동주, 청주 등의 전통 주류는 모두 곰팡이의 '발효' 생리를 이용해 만든 음료다.
술에서 취기를 일으키는 물질인 알코올은 학문 용어로 에탄올(ethanol)이라 불린다. 에탄올은 포도당(glucose)이 분해돼 만들어지는데, 이 발효 과정은 경제적으로 볼 때 다소 비생산적인 과정이다. 포도당을 이루는 30% 이상의 원소인 탄소가 탄산가스의 형태로 공기중으로 사라질 뿐만 아니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주류소비세는 높혀 받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전통 주류를 만들 때 서양식 주류에 비해 한번 더 손이 가야 한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나 청주의 경우를 살펴보자. 쌀에는 포도당의 원료인 전분(녹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술을 담글 때 우선 전분을 포도당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흔히 쌀을 증기로 찐 다음(술밥) 여기에 누룩곰팡이를 접종하면 전분은 포도당으로 변한다. 여기에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곰팡이를 가하면 알코올 발효가 시작된다.
이에 비해 와인과 맥주의 재료인 각종 과일이나 엿기름(맥아)에는 포도당 성분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전통 주류에 비해 단번에 알코올 발효가 가능하다.
새로운 자연산 단백질
현재 지구에서 가장 부족한 영양소를 꼽으라면 우선적으로 단백질을 들 수 있다. 식물이 생산하는 단백질의 경우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메치오닌, 트립토판과 같은 생체 필수아미노산을 적게 포함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동물이 생산하는 단백질은 생산성이 낮다.
특히 사람에게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가축은 기후의 변동이나 질병에 의해 그 수량이 제한받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은 비싸게 마련이다.
흥미롭게도 이 문제의 해결책이 곰팡이로부터 제시됐다. 아미노산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는 탄소와 질소다. 그런데 많은 곰팡이들이 질소와 탄소를 먹이로 삼아 수를 불려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곰팡이는 그 자체로 풍부한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다. 인위적으로 이 곰팡이에게 질소와 탄소를 공급하면 많은 자연산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질소와 탄소를 어떻게 값싸게 얻을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질소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암모늄염이나 질산염으로부터 쉽게 추출할 수 있다. 그리고 탄소는 양이 풍부하고 값싼 전분, 도시가스, 그리고 석유류에서 얻어낸다. 이렇게 얻어진 단백질을 '단세포성 단백질'(single cell protein, SCP)이라고 부른다. 현재 SCP는 가축의 사료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연료 정도로만 알고 있는 석유류를 이용해 어떻게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원유에 다량으로 함유된 파라핀(n-paraffin)은 공업적으로 별로 요긴하게 쓰이는 물질이 아니다. 하지만 1950년대 특정 곰팡이들(Candida)이 이 물질을 탄소원으로 이용해 잘 자란다는 점이 알려졌다. 그 후 1970년에 이르러 이 원유부산물을 이용해 연 2만t의 SCP를 생산하는 시설이 가동됐다.
SCP의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재료는 비단 석유류에 그치지 않는다. 농가공·임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분, 당밀, 치즈생산 부산물 등이 여기에 이용될 수 있다. 설탕이 주산물인 쿠바의 경우 설탕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당밀을 써서 연 8만t의 SCP를 생산하고 있다. 캐나다와 스웨덴에서도 유사한 방법으로 SCP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