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의 횡포가 곳곳에서 극성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육식성 미국 가재가 설치는가 하면, 일본에서 상륙한 해충이 소나무숲을 초토화시킬 지경이다. 외래종의 침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9월 중순 무렵 서울 용산의 가족공원에서 미국 가재 10여마리가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토종보다 두배나 되는 10cm 크기의 붉은가재였다.
겨우 이런 가재 10여마리가 무슨 화제거리냐고 가볍게 넘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미국 가재는 육식성이기 때문에 주변의 작은 생물들을 먹어치움으로써 생태계 질서를 혼란시킬 우려가 있다. 더욱이 이 가재가 어떤 경로로 유입됐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다.
소나무 멸종 위기
자연 생태계에 다른 지역으로부터 새로운 생물종이 유입될 경우 생태계가 다시 안정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유입종들은 단기간에 급격히 번식해 토착 생태계의 평형을 파괴한다.
곤충의 예를 살펴보자. 곤충은 지구에서 인간보다 휠씬 먼저 존재했고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다. 따라서 새로운 서식지에서 생존력과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도 외래 곤충이 농작물을 비롯한 산림과 가로수를 마구 해친 탓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표).
대표적인 예로 솔잎혹파리를 들 수 있다. 1920년대 말 일본에서 유입된 후 1970년대 말부터 남부지방에서 본격적으로 소나무숲을 사라지게 한 장본인이 바로 솔잎혹파리다. 현재 강원도 설악산을 거쳐 금강산쪽으로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산림청이 솔잎혹파리를 없애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1965년부터 작년까지 경기도에서 사용한 방제비만 해도 1천4백억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소나무재선충이라는 새로운 해충이 국내에 상륙해 산림 방제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일본 전역의 소나무를 사실상 멸종시키다시피 한 무서운 해충으로 국내에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 상륙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나무재선충은 일단 소나무에 침입하면 ‘확실히’ 나무를 없애는 무서운 해충이라 해서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불린다.
산림청은 솔잎혹파리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 더 무서운 재선충마저 전국적으로 퍼지면 사실상 국내 소나무는 멸종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해충이 부산 금정산을 벗어나지 않도록 초기 감염 단계의 소나무들을 모두 잘라내 태우고 있다.
식용 개구리가 사고뭉치로 둔갑
나무를 못쓰게 만드는 외래 해충 가운데 도시 가로수와 공원에 심어진 관상수에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종류도 있다. 1958년 미군부대 주변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미국흰불나방이 대표적인 예다. 이 나방은 주한미군 물자를 통해 묻어 들어온 뒤 전국의 도시 가로수에 퍼져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해충은 농가의 생활에 큰 타격을 준다. 농작물을 닥치는대로 갉아먹는 흰불나방, 벼 뿌리에 숨어 엄청난 농약을 논에 쏟아붓게 만드는 벼물바구미, 1992년 중국에서 들여온 벌통에 묻어와 양봉업계에 큰 타격을 입힌 기생성 가시응애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가축도 마찬가지다. 1987년 수입돼지에 묻어온 미생물로 인해 발생한 돼지오제스키병은 수많은 가축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농민들은 당시 양돈장 주변 지역의 모든 동물을 죽여 없애야 했다. 병이 사람이나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1992년 가축위생연구소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가축전염병 발생에 의한 피해는 연간 5천1백70억원에 이른다.
외국 해충의 유입은 사람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상황에서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이 의도적으로 도입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식용으로 기르기 위해 수입한 황소개구리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1973년 정부는 일본에서 황소개구리라 불리는 북미산 식용개구리 2백마리를 도입해 2년간 무려 31만여마리로 증식시켰다. 그리고 이를 전국 28개 저수지에 분양했다.
하지만 황소개구리는 식용으로 이용되기는 커녕 사료만 축내는 ‘돈 안되는’ 골치거리로 전락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즐겨’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황소개구리는 결국 하천에 방류되는 ‘찬밥’ 신세가 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황소개구리는 기존의 토착 생물들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살아 움직이는 공해동물이었다. 하천이 오염된 탓에 가뜩이나 수가 줄어든 희귀종 물고기는 물론 곤충, 게, 심지어 뱀까지 잡아먹어 토착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식량자원 증강은 커녕 생태계 교란과 우리나라 고유종을 고갈시킬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의 조사 결과 황소개구리는 이미 전국에 확산돼 번식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아마 지금쯤 휴전선을 넘어 북한에까지 갔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황소개구리는 부화 후 3년이 지나면 40cm 정도(몸통길이 약 15㎝, 뒷다리길이 약 25㎝)로 자란다. 몸무게는 5백g 정도.황소개구리는 천적인 뱀, 족제비, 왜가리가 자신을 잡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또 점프력이 1m나 되고 매우 민첩해서 사람도 여간해서 잡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한번에 1만-2만5천개의 알을 낳고 부화율이 높아 번식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대로 황소개구리를 방치할 경우 그 서식밀도는 급속히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황무지는 외래식물 예약석
원산지가 북미인 물고기 파랑볼우럭(블루길)과 큰입우럭(배스)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다. 1969년 당시 수산청은 일본에서 이들 물고기 5백10마리를 ‘식량자원 증산’ 차원에서 도입해 기른 다음 1982년에 어린 고기 5만마리를 팔당호에 방류했다.
지난 1987년부터 90년까지 블루길과 배스로 인한 한강의 생태계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1987년 처음 조사 당시 46종이던 토종 물고기가 90년에는 21종으로 줄었다고 한다. 외래종에 의한 파괴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 외에도 찬넬메기(붕메기), 백연어, 이스라엘잉어(향어) 등이 하천에 마구 방류돼 하천생태계의 균형을 크게 깨뜨리고 있다. 특히 향어의 경우 토종 잉어와 교배해 새로운 새끼종을 낳아버렸다. 이 종이 물 속에서 어떤 좋지 않은 일을 벌일지 모를 일이다.
외래종의 종류는 동물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이 유입해 야생 상태에서 스스로 번식하며 생존하는 종을 귀화식물이라 부른다. 귀화식물 연구자들은 도시나 공사장의 빈터처럼 토박이 식물이 쫓겨난 황무지를 귀화식물의 ‘예약석’이라고 부른다. 식물의 터전이 파괴된 지역에 가장 먼저 진출하는 일종의 개척식물인 셈이다. 따라서 귀화식물의 많고 적음은 그 지역의 자연 파괴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밀도가 높은 곳일수록 귀화식물의 분포도가 높다고 한다. 현재 가장 많은 종이 발견되는 곳은 서울지역이다(50종 이상).
국내 자생종이 자라던 자리에 귀화식물이 들어오면 그곳에 남아 있던 자생종은 제대로 번식하지 못한다. 여러번에 걸친 육종과 교배를 통해 번식력이 강해진 귀화식물과 경쟁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남산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서양등골나물이라는 신종 귀화식물이 남산 팔각정 주변, 도서관 뒷담과 계단길, 장충동 도로변을 뒤덮었다. 9-10월부터 흰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서양등골나물은 다른 귀화식물과 달리 소나무나 아카시나무 그늘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어린 나무의 생장을 가로막기 쉽다. 그 탓에 애기나리ㆍ남산제비꽃ㆍ둥굴레ㆍ맥문동 같은 토박이 풀이 사라져가고 있다.
코스모스처럼 생긴 돼지풀도 눈에 많이 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돼지풀이 미세한 먼지같은 꽃가루를 날리기 때문에 사람의 호흡기에 질환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토박이 식물이 국내에서 발붙일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늘어날 것이다.
물고기 30년 길들여
외래종으로부터 입는 피해를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입 외래종을 규제하기 위한 첫째 관문은 공항에서 이뤄지는 검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검역시스템은 관련 정보의 미비, 검사시설의 노후, 전문인력의 부족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식물검역 가운데 일반 병해충의 경우는 아무런 절차 없이 그냥 통과시키라는 강대국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현실이다.
자연 생태계의 관리는 자원의 증식보다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보전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블루길과 배스를 처음 도입하려 할 때 어류학자들이 강력히 반발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물고기들을 일단 30년 이상 별도로 기르며 본토에 적응시킨 후 일정한 지역을 지정해 양식하게 만들었다. 외래종의 도입에 철저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다. 생태계 피해 확산을 막는 동시에 외국산 생물의 무분별한 도입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