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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무척 빠르다는 것이다. 이런 빛을 마음대로 조작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최근 2-3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빛을 사람의 달릴 때보다 느리게 하는데 성공했다.더 나아가 정지시키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초속 8m 달리는 느림보, 완전 정지도 가능

빛은 무척 빠르다. 진공에서 1초에 30만km를 이동한다. 지구 둘레가 4만km이므로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돈다. 그래서 옛 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2-3년의 연구에 따르면, 빛은 느림보다. 1초에 고작 8m를 이동할 정도로 말이다. 1백m 달리기로 따지면 12.5초에 해당한다. 1백m를 9.79초에 돌파하는 인간의 최고 기록보다 확실히 느린 셈이다.

더 나아가 지난해에는 빛을 한 공간 속에 정지시켜 저장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느림보 빛에 대한 이같은 연구 결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물리학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관심을 끌 정도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빛을 느리게 함으로써 놀라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너무 빨리 이동하는 뭔가를 다루기는 어렵지만, 이를 느리게 움직이게 하거나 정지시키면 훨씬 쉬워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빛을 느리게 하거나 정지시킴으로써, 광신호를 저장하고 조작할 수 있는 놀랄만한 새로운 방법이 선보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미래 정보통신의 혁명을 불러일으킬 양자컴퓨터, 그리고 빛의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는 광통신이 좀더 우리 가까이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광통신을 엄밀히 얘기하면, 광통신은 정보를 빛으로 전달한다는 의미만을 갖는다. 정보를 광케이블을 통해 빛으로 이동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정보처리 과정에서는 빛으로 이뤄지지 않고, 광신호를 전기신호로 전환한 후 정보가 전기적으로 처리된다. 이 정도로도 우리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의 e메일을 주고받는데 몇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좀더 의사소통의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광신호와 전기신호의 전환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빛으로만 정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물리학자들은 느림보 빛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이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전망한다.

느림보 빛은 최근 10여년 간 거둔 양자광학의 성과로부터 얻어졌다. 따라서 양자상태로 정보를 처리함으로써 놀라운 속도를 얻을 수 있는 꿈의 기술인 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키는데도 느림보 빛이 한단계 올려줬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빛을 느리게 하고 정지시키기까지 한다는 것일까.


▶ 펄스 · 정보 전달에 의미있는 빛

언뜻 생각하면 빛의 속도를 줄이는 일은 쉬운 것 같다. 진공에서 빛의 속도가 30만km/초인데, 물 속을 지나갈 때는 22만km/초로 느려진다. 빛은 지나가는 공간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빛의 속도, v는 c/n인데, c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이고, n은 물질의 굴절률이다. 따라서 n이 매우 커진다면 빛은 무척 느려진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굴절률을 매우 키워서 빛을 느림보로 만든 것일까. 아쉽지만 답은 ‘아니오’다.

물질의 굴절률은 제 아무리 커야 10을 넘지 못한다. 굴절률이 큰 물질에 속하는 다이아몬드의 경우 고작 2.42에 불과하다. 이 경우 빛의 속도는 약 12만km/초다. 진공에 비해 빛의 속도가 2/5로 줄었지만, 그래도 무척 빠른 속도다. 속도가 3백40m/초인 소리와 비교도 안될 정도다.

그렇다면 어떤 마술 같은 방법으로 물리학자들은 빛을 인간보다 느리게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앞서 물리학자가 느리게 한 빛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빛은 파동이다. 누군가에게 빛을 그려보라고 하면, 빛은 사인곡선으로 오르고 내리는 모양으로 표현된다. ‘ ’와 같은 모양으로 말이다. 이를 통해 빛의 파장이 얼마고, 진동수가 얼마인지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모양의 빛은 정보로서 무의미하다.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정보로서 빛이 의미를 가지려면 공간과 시간적으로 한정된 파형이어야 한다. 이런 파형을 펄스라고 한다. 펄스의 모양은 ‘ ’와 같다. 이같은 파형으로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0과 1로 나타내는 디지털 정보로 생각해보자. 펄스가 있을 때() 1로, 없을 때( _ ) 0으로 간주하면 된다.

결국 물리학자들에게 의미있는 빛은 펄스다. 즉 물리학자가 느림보로 만든 빛이 펄스라는 말이다. 그런데 펄스도 빛인데 어떻게 펄스는 그토록 느려질 수 있을까. 펄스와 사인곡선으로 표현되는 빛(사인파)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펄스는 여러개 사인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여러개라고 하면 파장이 다른 사인파들을 말한다.

만약 짧은 파장의 사인파와 긴 파장의 사인파가 동시에 나란히 진행해 나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첩’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마루와 마루가 만나면 파형의 높이가 더 커지고, 반대의 위상이 만나면 줄어든다. 그러면 둘이 만나 또다른 파형이 생긴다.

이렇게 다양한 파장의 사인파를 섞으면 원하는 펄스를 얻을 수 있다. 보통 펄스의 속도를 여러 사인파의 움직임이라는 의미에서 그룹 속도(group velocity)라고 한다.

사인파의 속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빛의 속도와 같다. 즉 c/n식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펄스의 속도도 당연히 사인파의 속도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 그룹 속도가 사인파의 속도와 달라질 수 있을까.


▶ 분산 현상 대 펄스 · 프리즘에서 파장에 따라 빛의 속도 다르다

어린 시절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7가지 무지개색으로 쪼개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척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은 빛의 이같은 현상을 ‘분산’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분산 현상이 비 온 후 하늘에 떠있는 무지개라는 것도.

이 분산 현상에 펄스의 속도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그 비밀을 알기 전에 먼저 물질의 굴절률을 아는 대로 답해보자. 대개 사람들은 진공은 1, 물은 1.33, 유리는 1.5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빠트린 점이 있다. 이때의 굴절률은 나트륨 등에서 발생하는, 파장이 5백89nm(나노미터=${10}^{-9}$m)의 노란빛에 대해서라는 것이다. 사실 물질의 굴절률, n은 상수가 아니다. n은 빛의 파장에 따라 달라지는 값이다. 물론 진공은 예외다. 모든 빛에 대해 n은 1이다.

물질의 굴절률이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빛이 물질 속에서 파장에 따라 속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의미다. 파장이 길수록(진동수가 작을수록) 굴절률이 작아지고 속도는 느려진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스펙트럼이 윗부분은 파장이 긴(진동수가 작은) 빨간빛이고 아래쪽은 파장이 짧은(진동수가 큰) 보라빛인 이유가 이같은 이유에서다. 즉 분산 현상은 빛에 따른 속도의 변화에 기인한다.

이제 분산 현상과 펄스의 속도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얘기할 때다. 만약 펄스를 구성하는 사인파가 모두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면, 펄스의 속도는 사인파의 속도와 같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장소는 진공뿐이다.

그러나 펄스가 프리즘을 통과한다면 어떨까. 우선 이를 구성하는 사인파의 속도가 서로 달라진다. 이는 펄스 속도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산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펄스가 1초에 8m를 이동할 정도로 느림보가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왜 최근에야 빛을 느림보로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었느냐가 의아할 것이다. 물론 답은 ‘아니오’다.

수학적으로 펄스의 속도를 사인파의 속도처럼 표현하면, ${v}_{g}$ = c/${n}_{g}$가 된다. 이때 ${n}_{g}$는 펄스에 대한 물질의 굴절률이다. ${n}_{g}$에 영향을 주는 것은 펄스를 구성하는 사인파들의 굴절률 변화다. 즉 펄스의 속도는 이를 구성하는 사인파들의 속도변화가 얼마나 급격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급격히 변할수록 펄스의 속도가 급격히 변할 수 있다. 이 말은 사인파들의 굴절률 변화값과 관련돼 있다. 이 변화값은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빛의 진동수에 따른 굴절률의 미분값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값이 그리 크지 않다. 때문에 분산 현상이 일어나는 영역에서 펄스의 속도는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펄스를 8m/초로 느리게 하려면 ${n}_{g}$는 수천만 정도로 큰 값이어야 한다. 이 정도의 굴절률을 얻으려면 양자광학 현상이 동원돼야 한다.


▶ 투명 대 불투명 · 빛과 원자에도 찰떡 커플이 있다
 

물질에 다양한 파장의 빛을 쏘아주면, 물질에 따라 흡수하는 파장이 다르게 나타 난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의 에너지 준위 차가 빛에너지와 일치하는 경우 흡수 가 이뤄진다. 물질마다 에너지 준위가 다르다.


빛과 물질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빛은 튀어나오거나, 통과하거나, 그 안에 잡히고 만다. 즉 반사, 투과, 흡수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물질에 따라 이들의 정도가 다르다. 어떤 물질은 빛을 많이 반사시키고, 어떤 물질은 잘 통과시키며, 어떤 물질은 잘 흡수한다. 그래서 물질은 거울과 같이 반짝거리거나, 유리처럼 투명하거나, 또는 불투명한 특성을 갖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빛과 물질의 만남을 원자 수준에서 따져보자. 원자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준위를 갖는다. 원자를 둘러싼 전자가 모든 위치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궤도에만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성질이다.

전자가 불연속적인 에너지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빛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이때 빛과 원자 사이에 찰떡 커플이 존재한다. 빛 에너지가 원자의 에너지 준위의 높이 차와 맞으면 원자는 빛을 흡수한다. 이때 물질과 빛이 공명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사람으로 치면, 서로 눈이 맞은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빛은 원자에 흡수되지 않는다.

따라서 물질이 빛을 흡수하느냐 투과시키느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에너지 준위 차가 빛 에너지와 같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 눈에 불투명한 물질은 가시광선을 흡수하는 에너지 준위 차가 존재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물질은 가시광선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유리의 경우 에너지 준위 차가 자외선 영역과 잘 맞는다. 그래서 유리는 자외선을 투과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가시광선의 영역이 자외선으로 옮겨진다면, 우리 눈에 유리는 불투명하다.

아마도 이쯤에서 독자들은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느림보 빛에 대해 얘기하다 말고 왜 물질과 빛의 흡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느냐고 말이다.

그 이유는 원자가 흡수하는 빛의 영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눈이 맞아 사랑하게 되면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빛과 원자가 눈이 맞았을 때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파장에 따른 물질의 굴절률이 급격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즉 ${n}_{g}$가 큰 값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빛의 비선형 현상에 속한다.

만약 원자에 흡수되는 근처의 파장에 해당하는 사인파들로 빛을 모아 펄스를 만든다면, 이 빛의 속도를 상당히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때 빛은 거의 100% 흡수되기 때문이다. 만약 흡수되지 않도록 할 수만 있다면 빛은 느려질 수 있다.

 

▶ EIT · 불투명한 물질을 투명하게 만드는 마술


EIT 불투명한 물질을 투명하게 만드는 마술


발머, 라이먼을 시작으로 원자물리학은 1백여년의 역사 동안 빛을 통해 원자 내부를 들여다보는 분광학 연구가 주류였다. 이를 통해 각종 원자의 에너지 준위를 알아냈다. 원자의 에너지 준위 차와 맞아떨어지는 빛은 흡수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말이다.

이같은 분광학 연구 결과로 오늘날 도심의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그리고 피를 뽑지 않고도 체내 산소량과 헤모글로빈의 수치를 잴 수 있어 빈혈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우연히 발견된 검은 공명

이와 함께 원자물리학은 원자의 에너지 준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빛을 느리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연히 발견됐다.

1976년 이탈리아 피사대 원자물리 연구팀은 두개의 레이저를 이용해서 새로운 분광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이때 이 연구팀은 공명 진동수에서 빛의 흡수가 일어나지 않는 현상을 목격한다. 이들은 이 현상에 대해 ‘검은 공명’(dark resonance)이라고 이름짓고, 이때 물질의 상태를 ‘검은 상태’(dark state)라고 했다.

이들이 ‘검다’고 표현한 까닭은 원자가 자신이 흡수해야 할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즉 원자는 자신의 찰떡궁합을 보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검은 공명 현상은 느림보 빛과 무관한 듯했다. 1990년 스탠퍼드대 해리스 교수는 두가지 진동수의 빛을 이용해 검은 공명 현상을 관측한다. 그가 발견한 방법을 ‘전자기 유도 투과’(EIT, Electromagnetically Induced Transparency)라고 이름 붙였다.

EIT는 물질이 흡수하는 공명 진동수의 빛을 투과시키는 ‘검은 공명’의 한 종류다. 즉 EIT는 불투명한 물질을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제 빛의 속도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그렇다면 EIT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두개의 바닥상태, |g1>;와 |g2>;, 그리고 들뜬상태 |e>;, 이 세가지 에너지 준위를 갖는 원자가 있다. 그리고 |g1>; → |e>;, |g2>; → |e>; 각각의 에너지 준위 차에 해당하는 빛 Ωp, Ωc를 준비한다. 그러니까 이 두빛은 원자와 궁합이 맞는 셈이다.

만약 원자에 Ωp만 쏜다면 어떻게 될까. |g1>;에 있는 전자가 빛을 흡수하고 |e>;로 이동해갈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계속 들뜬상태로 머물지 않는다. 전자는 얼마 지나서 흡수한 빛을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바닥상태 |g1>;으로 내려온다. 이때 빛은 아무런 방향성 없이 밖으로 나간다. 이런 경우를 ‘자발방출’(spontaneous emissio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들뜬상태의 전자가 Ωp, 즉 외부로부터 쏘아주는 빛에 의해 강제로 바닥상태로 내려오면서 빛을 방출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빛은 쏘아줬던 빛과 같은 방향으로 원자 밖으로 나온다. 이를 ‘유도방출’(stimulated emission)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이 유도방출을 이용해서 레이저를 개발했다.


중간과정 생략된 효과

반대로 Ωc만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Ωp와 Ωc를 동시에 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들 빛의 세기가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Ωp가 흡수되지 않고 투과되는 일이 벌어진다. 즉 원자는 Ωp에 대해 투명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EIT 현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EIT에서 두 빛 Ωp와 Ωc를 동시에 원자에 쏘아주면,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EIT가 일어나려면 Ωc는 Ωp보다 빛의 세기가 강하다. 이로 인해 결론적으로 원자는 Ωp와 궁합이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Ωp가 투과되는 것이다.

강한 빛 Ωc에 의해 다른 공명 진동수의 빛 Ωp가 원자와 궁합이 맞지 않게 되는 까닭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Ωc는 원자에 흡수되면서 |g2>;에 있는 전자를 들뜬상태 |e>;로 끌어올린다. 그런데 이 빛이 강하기 때문에 흡수되지 않은 빛은 다시 |e>;에 있는 전자를 |g2>;로 끌어내린다. 이때 유도방출이 이뤄진다. 다시 바닥상태로 내려온 전자는 또다시 Ωc에 의해 들뜰 것이고, 이 과정을 어떤 주기를 갖고 반복한다.

그런데 전자가 바닥상태에 있을 때는 Ωc의 흡수가 이뤄져 원래보다 빛의 세기가 약해지고, 전자가 들뜬상태에 있으면, 유도방출이 이뤄져 Ωc의 세기가 더 강해진다. 원자를 지나온 Ωc를 실제로 관측해보면, 세기의 변동이 Ωc의 진동수에 얼마간의 값으로 +와 -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는 들뜬상태 |e>; 준위가 하나에서 둘로 바뀌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진동수에 변화가 Δ이었다면, 들뜬상태 |e>;는 |e>;+Δ와 |e>;-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 공명 진동수였던 Ωp가 원자와 궁합이 맞지 않아 투과되는 것이다.

EIT에 대한 이같은 설명은 다분히 고전적인 방법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양자역학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이 경우 진동수 Ωp인 빛에 대해 전자가 |g1>;에서 |e>;+Δ로 전이할 확률과 |g1>;에서 |e>;-Δ로 전이할 확률의 합이 0이 돼 흡수를 겪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어쨌건 EIT를 통해 Ωp는 원자에 흡수되지 않으면서 무척 느려질 수 있다.

이같은 EIT 현상은 삼각관계의 연인으로 비유될 수 있다. 원자와 이를 사랑하는 Ωp와 Ωc의 관계로 말이다.

만약 Ωp와 원자 둘만의 관계였다면, 이 둘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연적 Ωc가 등장하면서 Ωp와 원자 사이에는 새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이들은 사이가 멀어지고 Ωp는 원자에게서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 떠나고 만다는 많이 들어봤음직한 얘기로 말이다. 결국 Ωp가 원자와의 만남으로 해서 원자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것을 Ωp가 느려진 효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빛을 느리게 할 수 있는 마술 같은 EIT 현상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렇다면 실제로 EIT를 이용해서 빛을 어떻게 느림보로 만들었을까.


▶ 느림보 빛 · 2001년 노벨물리학상 시상 분야 BEC 동원

1999년 2월 18일자 네이처는 새로운 현상인 EIT를 이용해,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의 기체 원자로 채워진 공간에서 빛의 속도를 17m/초로 낮추는데 성공했다는 연구를 소개했다. 이때 기체 원자들의 온도는 4백35nK(나노켈빈=${10}^{-9}$K, 캘빈은 절대온도를 의미한다. 0K=-273.15℃이다)으로,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이 시상된 분야인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EC, Bose-Einstein Conden-sation)이 일어나는 극저온 영역이다. 이 연구의 주인공인 하버드대 르네 하우 박사팀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빛을 사이클로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과 인도 물리학자 보즈가 예측한 BEC 상태는 1995년에야 최초로 실험이 성공했다. 실험을 성공시킨 연구팀이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성공한 연구팀이 30여개일 정도로 BEC는 극히 도달하기 힘들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처럼 극저온 상태가 요구된 까닭은 무엇일까. 빛과 원자가 상호작용함으로써 빛을 느림보로 만들기에 적절한 조건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높은 기체 원자 밀도와 느리게 움직이는 원자들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빛과 원자 사이의 도플러효과

BEC에 이르면 기체 원자들은 모두 에너지가 가장 낮은 바닥상태가 된다. 즉 모든 원자들은 같은 양자상태로 매운 좁은 공간에 스스로 모아진다. 이때 기체 원자의 밀도는 ${10}^{13}$개/㎤ 정도다.

높은 밀도가 요구되는 까닭은 빛과 원자의 상호작용이 많아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빛은 더욱 느려진다. 점성이 높은 물질을 뚫고 지나가기가 어려운 것처럼 기체 원자들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빛의 속도는 더 줄어든다.

한편 BEC 상태는 극저온이기 때문에 기체 원자들의 움직임이 무척 느리다. 기체 원자의 운동에너지는 온도에 비례한다. 만약 절대영도에 도달할 수 있다면 원자의 움직임은 없다. 물론 이런 일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인해 불가능하다. BEC 상태에서 원자의 속도는 거의 0에 가깝다. 우선 빛을 느리게 하려면 느림보 원자가 필요한 셈이다.

그렇다면 BEC 상태의 느린 기체 원자는 느림보 빛 연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로 빛과 원자 사이의 도플러효과를 없애기 위해서다. 도플러효과는 파동과 파동을 발생시키는 물체, 그리고 관측자간에 움직임이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도플러 현상은 앰뷸런스의 경적소리다. 앰뷸런스가 경적을 울리면서 가까이 나에게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떠올려보자. 가까이 다가올 때는 높은 음을 내지만, 멀어질 때는 이보다 낮은 음을 낸다. 즉 파장이 짧아졌다가, 길어지는 셈이다.

이같은 도플러효과가 빛과 원자 사이에도 일어난다. 기체 상태의 원자는 실온에서 초속 3백m에 달할 정도로 무척 빠르다. 따라서 원자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원자가 느끼는 빛의 파장은 다르다. 그런데 EIT의 경우 두빛을 이용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만약 두빛을 서로 반대 방향에서 원자에게 쏘아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원자가 하나의 빛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하나에 대해서는 원자가 빛에 가까이 다가가고, 다른 빛에 대해서 원자는 멀어지는 상황이 된다. 서로 반대의 도플러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면 원자가 이들에 대해 각각 다른 파장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EIT 현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EIT의 두빛을 같은 방향에서 원자에 쏘아주면 도플러효과가 무시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문제의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방향에서 쏘아준다 해도 두빛의 파장이 다르면 도플러효과가 차이가 난다. 때문에 이 경우에도 EIT가 잘 이뤄지지 않는 요인이 된다.


극저온 기록을 깬 실온 연구

그런데 하버드대팀이 발표한지 몇달 뒤인 1999년 6월과 8월에 물리학저널인 피지컬리뷰레터는 빛의 속도를 3백60K(87℃)에서 90m/초, 그리고 실온에서 8m/초로 낮췄다는 연구를 소개했다. BEC를 이용한 빛의 속도를 추월한 것이다. 이는 결국 실온에서도 높은 밀도와 도플러효과의 제거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실온의 경우에서 어떻게 이 두조건을 해결했을까. 밀도 문제는 간단하다. BEC를 통해 얻은 기체 원자의 높은 밀도는 실온에서도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실험은 우주에 가까운 극고진공 상태에서 이뤄진다. 이는 물론 다른 불순물이 빛과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 진공도에서는 고체 원자가 쉽게 기체화된다.

이는 BEC를 통해 온도를 낮춤으로써 기체 원자를 밀집시키는 방법과 반대다. 온도를 높임으로써 고체 원자가 더 많이 기체화되면 높은 밀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얻은 기체 원자의 밀도는 BEC와 비슷하다.

실온의 실질적인 문제는 도플러효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EIT의 두빛을 같은 방향에서 쏘아준다. 그러면 두빛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도플러효과를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파장을 갖는 두빛으로 인해 생기는 도플러효과는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파장이 동일한 두빛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실온의 경우 실제로 한 레이저로부터 나오는 빛을 쪼개서 실험한다. 그런데 어떻게 한 레이저 빛을 구분할 수 있는 두빛으로 나눌 수 있을까.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 같다. 하지만 편광을 동원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한 레이저 빛을 서로 수직하는 두 편광빛으로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한 레이저 빛을 편광판에 통과시키면 두빛으로 쪼개지고, 기체 원자 속을 통과한 후 다시 편광판을 통해 분리하면 각각을 관측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편광방향이 다를 뿐 파장이 동일한 두빛이 어떻게 EIT의 바닥상태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제만효과’(Zeeman effect)를 사용함으로써 동일한 파장의 두빛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제만효과란 원자를 자기장 속에 넣으면 하나의 에너지 준위가 여러개로 나눠지는 현상이다. 즉 숨어있던 에너지 준위가 자기장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눠진 각각의 에너지 준위는 서로 다른 편광 빛에 반응한다. 제만효과에 의한 두 에너지 준위가 EIT의 두 바닥상태를 구성하게 되고 이 바닥상태가 서로 다른 편광빛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BEC라는 극한 조건을 쓰지 않아도 빛의 속도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빛을 느리게 한 실험은 실온에서 먼저 이뤄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실온에서의 연구가 이뤄졌는데, 당시에는 빛의 속도를 단지 수백-수천분의 1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빛의 속도에 대한 기록으로만 판단한다면, 빛을 느림보로 만드는데 BEC보다 실온이 더 좋은 조건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BEC와 실온에서의 세부적인 실험 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자가 만난 물리학자들은 세부 조건이 같을 경우 실온보다 BEC에서 빛을 더 느리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빛정지 · 느림보 빛이 물질 속에 갇힌다
 

빛정지 느림보 빛이 물질 속에 갇힌다


1999년 여러 연구결과들을 보면, 당시 물리학자들은 누가 빛을 더 느리게 하느냐는 경쟁 속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빛을 멈추는 일까지 가능해졌다.

2001년 1월 서로 다른 연구팀이 빛을 물질 속에 저장하는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네이처와 피지컬리뷰레터에 각각 게재됐다. 이 두 연구의 환경은 달랐다. 네이처에는 1999년 빛을 느리게 한 하버드대 연구팀이 BEC에서, 피지컬리뷰레터에는 하버드-스미소니언 천문센터 연구팀이 70-90℃에서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느림보 빛 연구와 마찬가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BEC와 실온에서 빛을 정지시키는 연구가 발표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을 정지시킬 수 있었을까. 자동차가 설 때 브레이크를 밟으면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다가 멈추는 것처럼 계속 빛의 속도를 줄여서 결국 정지시킨 것일까.

빛을 어떻게 정지시켰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내용을 들여다보자. 놀랍게도 그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Ωp 펄스가 기체 원자 내부로 모두 들어간 순간 Ωc를 꺼버리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얼마 지나서 다시 Ωc를 켜면 Ωp가 밖으로 나왔다. 즉 Ωc를 끄고 켬으로써 Ωp를 물질 속에 저장해 뒀다가 다시 방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장뿐 아니라 재생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Ωc를 끄고 켜는 조작이 몇차례 반복될 때마다 세기가 점점 약해지긴 하지만 Ωp가 방출됐다. 컴퓨터 시스템으로 따지면, 처음 Ωc를 끈 상황은 물질(메모리)에 Ωp 정보를 쓰는 과정이며, Ωc를 켬으로써 읽기가 이뤄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읽기가 여러 차례 이뤄질 수 있다.

이 점에 물리학자들은 매우 흥분했다. 정지시킨 빛의 응용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느림보 빛보다 정지시킨 빛이 응용 측면에서 더 그럴 듯했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느림보 빛과 정지시킨 빛에서 어떤 미래를 봤을까.


고체에서의 빛 정지 실험에 한국인 참여

먼저 느림보 빛에 쓰인 과학적 방법은 매우 민감한 광스위치를 만드는데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IT에서 Ωc가 켜있을 때는 물질은 Ωp에 투명하다. 여기에 제3의 레이저 빛을 가하면 빛에 대한 물질의 투과여부를 조절할 수 있다. 즉 제3의 레이저를 켜면 물질은 빛을 흡수해서 불투명해지고, 레이저를 끄면 물질은 다시 투명해진다. 따라서 제3의 레이저로 조절되는 물질의 투명여부는 광스위치의 온/오프로 작동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매우 약한 빛으로도 가능하다.

한편 느림보 빛은 광신호를 지연시키는데 쓰일 수 있다. 만약 광신호가 동시에 너무 많이 전달돼 오면 처리를 위해 광신호를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광 신호를 EIT 현상을 통해 수μ초(${10}^{-6}$초)-수m초(${10}^{-3}$초) 지연시킬 수 있다. 물론 이같은 광신호의 지연은 현재의 광섬유로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광섬유의 길이는 수백만km나 돼야 한다.

빛을 물질 속에 얼음처럼 얼려버리는 일이 가능하다면 이 물질은 빛을 저장할 수 있는 매체로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지시킨 빛이 물리학자를 흥분시키는 것은 이 방법으로 양자컴퓨터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현재의 컴퓨터로 수백만년이 걸릴 문제를 단지 수분만에 해결할 양자컴퓨터는 현재 각 선진국이 중요하게 여기고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현재의 컴퓨터는 0과 1의 데이터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정보를 처리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데이터를 동시에 갖는 양자상태를 이용해 한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이같은 양자상태를 빛을 정지시켰을 때의 원자와 빛의 상호작용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물리학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빛을 정지시킨 공간에서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과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까마득하게 멀기만 하다.

그런데 올 1월 피지컬리뷰레터에 미국과 한국의 공동 연구팀에 의해 고체에서 빛을 정지시키는데 성공한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다시 한번 빛 정지 실험이 세상의 이목을 끄는 순간이었다.

고체 매질에서의 성공 의미는 응용성이 좀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기체보다 고체가 더 다루기 쉽다. 대신 고체 매질에서 빛 정지 실험이 성공하기가 더 어렵다. 그 까닭은 EIT에서 요구하는 3가지 에너지 준위 상태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체는 원자보다 복잡한 에너지 준위를 갖는다. 원자의 에너지 준위와 고체의 에너지 준위를 분광법으로 조사해보면 고체의 선스펙트럼이 더 많다. 따라서 깨끗한 EIT 준위를 얻기 힘들다.


삼각관계에서 강력한 연적이 사라졌을 때

그런데 이들 연구결과에서 여러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빛을 정지시켜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일까. 어떻게 Ωc를 끄면 Ωp가 물질 내부에 갇히는 것일까.

우선 EIT 현상을 머리 속에 자세히 떠올려보자. 그리고 다음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자. Ωc를 끄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Ωc로 인해 들뜬상태의 에너지 준위가 바뀌어서 Ωp와 원자가 궁합이 맞지 않게 되던 상황은 사라짐으로써 원자는 Ωp를 흡수할 것이다.

이 말은 실제로 빛 자체가 물질 속에서 정지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단지 원자가 Ωp를 흡수하면서 빛의 상태를 간직하게 된다. 이를 두고 빛을 정지시켰다고 말한다. 즉 빛의 상태가 원자에 기록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Ωc를 켜면 Ωp가 물질로부터 방출되는 현상은 원자에 기록된 빛의 정보를 통해서 이뤄진다.
 

삼각관계에서 강력한 연적이 사라졌을 때


이를 다시 삼각관계의 연인에 비유해보자. 강력한 연적(Ωc)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원자와 Ωp는 서로 좋은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다가 연적이 다시 등장한다면, 원자와 Ωp 사이에 금이 가는 일들이 또 생기고 등등…. 이런 식으로 얘기를 전개하면 되지 않을까.

어쨌건 원자는 빛의 정보를 무한대로 갖고 있을 수는 없다. 원자가 다른 원자와 충돌하면 이 정보는 깨지고 만다. 때문에 실온보다는 원자의 움직임이 느린 BEC에서 오랫동안 빛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빛을 저장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BEC의 경우 0.001초 정도다.

빛을 정지시키는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광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양자적 입장에서 보면 물질과 빛은 파동과 입자 두가지 성질을 모두 갖는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을 입자로, 빛은 파동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빛을 느리게 하고 정지시킨 연구를 성공 시킬 수 있었던 데는 물리적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분광학에서 일반적으로 쓰였던 하나의 레이저 대신 두개를 동원함으로써 EIT 현상이 발견됐고, Ωc를 끔으로써 빛을 가둘 수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도출이 어찌보면 더 중요한 듯하다. 지금 우리 주위를 돌아보자. 새로울 것은 없다. 만약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본다면 어떨까.

200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 진행

    이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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