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는 1945년에 사용된 이후 실전에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가공할 위력의 신형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다. 보유량도 전략·전술무기를 합쳐 5만발이나 되고 총 파괴력은 1만5천 메가톤에 이른다. 이중 5천 메가톤만 폭발되어도 11억명이 즉사한다.
1945년 미국은 알라마골드에서 사상 최초의 핵심험에 성공했다. 그뒤 4년 간은 미국의 핵 독점시대로 압도적인 전략적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949년에 소련도 핵실험에 성공하여 전략적 파괴 수단의 균형 상태가 이루어졌다.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은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되찾으려고 1953년 소위 '대량보복'을 결단했다. 이것은 미국이 핵 공격을 받는 경우 그 규모에 관계없이 즉각 적에게 철저한 보복핵 공격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목표는 도시괴멸을 노린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핵전력은 계속 늘어갔다. 그렇게 되자 미국은 핵 피해를 최대한으로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련의 핵발사기지를 파괴하는 것이 첩경이라 보고 공격목표를 도시에서 군사시설로 수정했다. '키신저'나 '덜레스'가 부르짖은 '한정핵전략'이 그것이다.
1962년의 쿠바위기를 케네디대통령은 강경하게 막아냈다. 그러나 그결과 소련에 핵열세를 통감케 하여 그뒤의 핵전력 대확장을 초래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테일러'대장이 제창한 '유연대응전략'을 채용했다. 그것은 ①적의 핵공격을 받은 뒤에도 살아남을 핵전력을 갖출것 ②제한전쟁(전면전쟁에 이르지 않는 정도의 전쟁)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할것 ③효과적인 군사동맹을 만들것 ④자원, 공업력등 잠재적인 국력을 높일것등을 주지로 하고 있다.
무기체계를 살펴보면 대륙간탄도탄(ICBM. 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의 개발 등이 이 전략에 바탕을 두고 착수되었다.
이렇게 두나라의 핵전력 확대가 계속된 결과 65년 경에는 상호확실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라는것을 논의하게되었다. 미·소가 전면 핵전쟁을 벌이면 모두 함께 쓰러진다는 데서 찾은 전략인 것이다.
이어 75년 미국방장관 '슈레진저'는 다시 '한정핵전략'으로 되돌아가도록 대통령에게 제안하여 '카터'대통령이 이를 채택했다. 소련도 같은 시기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군사목표 전략을 결정했다.
그러나 '군사목표'라해도 직접적인 군사시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1980년에 결정된 현재의 미국 핵전략 공견목표순위는 다음과 같다. A. 치명적인 공업지대(초고속집적회로등 최첨단의 전자공장, 인공위성 제작소, 레이저공장, 바이오테크 공장 등) B. 정치, 군사의 신경중추 C. 주요군사시설과 육해공군 d. 미사일 사일로와 핵저장고 E.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약200개소)
소련도 이에 대응하여 이와 거의 비슷한 계획을 짰다.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시스템은 1970년대 까지는 공격목표가 되어있는 대도시나 군사시설 주변에 핵탄두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핵폭발로 적 미사일을 파괴하기보다는 강력한 X선으로 핵탄두의 기능을 파괴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향성(指向性) 에너지 무기를 우주에 띄워 적의 미사일을 비행중은 물론 발사직후에 격파해 버리자는 발상이 주류가 되고 있다. 이것을 이종(異種)억지력(Distinct Deterrence)이라 한다.
83년에는 새로 '통합우주군'이 창설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85년에 17억7천만달러, 86년에는38억 달러의 우주 방위예산을 짰다.
이 구상은 다은과 같은 것이다. 먼저 적의 미사일 발사를 재빠르게 포착한다. 이에는 조기경계위성, 초원거리감시레이더, 세계 각지에 설치된 심우주(深宇宙) 감시시스템(GEODSS.Ground Elecrro Optical Deep Surveillance System)등이 이용된다. 발사가 탐지되면 즉각 요격시스템이 움직인다.
아직 적의 ICBM이 부스터 (가속을 위한 보조로케트)를 분사중에 우주에서의 화학 레이저나 전자(電磁) 레일포에 의한 초고속탄, 또는 자유전자 레이저로 99%를 격파한다. 다음에 비행중인 잔존 미사일을 하전입자, 빔 등으로 격추시킨다. 그리고 최종 비행단계에 이른 나머지 0.1%의 ICBM이나 잠수함 등 비교적 근거리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비행기로 부터의 레이저와 키네틱 에너지 로케트로 100% 격파한다는 것이다.
소련의 핵방어체제도 같은것이나 지금까지의 국토방위군 전담체제에서 우주방위군과 로케트방위군을 합친 3위1체 체제로 바꿨다. 다만 소련은 요격핵미사일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제2차 전략무기제한교섭(SALT II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에서 금지 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새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이 핵방어의 문제는 미·소 어느쪽이 우위에 있는가 지금 간단히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핵군비확장 경쟁속에 지금 미·소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총량이 5만발이나 되었고 총파괴력은 1만5천 메가톤에 이른것이다.
핵무기의 파괴력
1945년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 되었을때 일순에 7만5천명이 사망하고 10만명 이상이 부상, 7만6천동의 건물중 90%가 파괴 되었다.
이 원폭 '리틀 보이'는 우라늄 235의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이다. 60kg, 어른 한사람 체중정도의 우라늄 235가 내장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핵분열한것은 그중 약1.2%인 7백g, 도시락 1개분에 불과했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소량밖에 핵분열 하지 않았는데도 그 파괴력은 TNT12.5킬로t (다이나마이트 1만2천5백t)과 같은것이었다.
핵무기에 의한 직접피해는 세가지가 있다. 폭풍과 열선, 방사선이다. 그 어느것이나 TNT 폭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다. 핵분열에 의해 방출되는 에너지의 약50%가 폭풍으로, 35%가 열선, 나머지 15%가 방사선이 된다.
그러나 실제 피해는 어떻게 일어났을까? 히로시마의 경우 우라늄235가 핵분열을 시작하여 1백만분의 1초 뒤에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때 폭발점의 온도는 수백만도, 기압은 수십만에 이르렀다. 그것이 0.1초 뒤에는 반경 15m가 30만 도의 불덩이공이 되었다. 1초 이내에는 최대직경 4백m 표면의 온도가 태양표면과 거의 같은 5천도의 불덩어리가 되었다. 이 짧은 순간 태양이라고도 할수있는 불덩어리에서 섬광이되어 굉장한 열선이 방출된 것이다. 폭발로부터 3초이내에 방출된 열량은 지상에서 받는 태양광의 40배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산된다.
이 격렬한 열선은 폭 심지에서 반경 1km 이내의 범위를 일시에 1천8백도 이상의 고온으로 만들었다. 목조가옥은 타버리고 콘크리트나 벽돌의 표면도 녹아엉겼다. 그래서 인간이나 물체는 증발하고 그 흔적이 그림자 처럼 콘크리트나 대리석에 인화된 것처럼 남았다. 또 2.5km떨어진 지점에서 열선을 직접 받은 사람은 켈로이드를 수반한 화상을 입었고 10km 떨어진 곳에서도 수포가 생기는 화상을 입었다. 얼마나 굉장한 열선인이었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열선 다음으로 파괴적인 타격을 주며 광범위한 부상자를 낸 것이 폭풍이다. 급격히 팽창된 불덩어리는 충격파를 만들어 내고 그것은 3초뒤에 11km 떨어진 곳까지 이르렀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과 거의 동형이고 같은 크기의 1t의 TNT 화약폭탄을 폭발시켜도 거기서 생기는 충격파의 도달거리는 불과 40m정도 뿐이다.
이 굉장한 충격파는 5백m이내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 건축물을 거의 쓰러뜨렸다. 2km정도 떨어진 곳에도 초속 약 40m의 충격파가 엄습하여 목조가옥을 전소 시켰다. 2km이내에서 사망한 사람의 거의가 열선에 의한 화상이나 화재, 폭풍에 의한 건축물의 파괴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폭풍으로 유리창이 깨지고 그 파편에 찔려 부상한 사람이 많다. 폭발의 위력이 컸던 나가사키의 경우 약 19km 떨어진곳의 유리창도 산산조각이 났다.
폭풍의 피해는 충격파만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다. 충격파가 통과한 뒤 한동안은 무풍상태가 있었으나 그것은 잠깐뿐. 다음에 폭심지를 향해 강열한 휘몰아침이 밀려 들었다. 폭심지에 급격한 휘몰아침이 밀려들었다. 폭심지에 급격한 기압감소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곳에 주변의 대기가 한꺼번에 흘러들어 생기는 폭풍이다. 충격파에의한 도괴를 겨우 견뎌낸 건물도 역풍으로 몰아친 폭풍에 의해 도괴된것이 많았다. 이중의 폭풍을 받은것이다.
되휘몰아친 폭풍은 후세에 큰 해를 미치는 원인이 된다. 휘몰려 온 폭풍은 건축물이 도괴되면서 생긴 모래먼지나 화재의 검은연기, 미세한 먼지등을 폭심지로 몰고와 상승기류가 되어 상공으로 휘몰아 올린다. 이것이 폭발후의 방사성 물질과 함께 '검은비'나 '죽음의 재'(폴아우트)가되어 내리기 때문이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열선과 폭풍에 의한 피해는 장절한것이었다.
나머지 또 한 가지, 원폭에 의한 방사선 피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핵분열이 일어나고 1분이내에 발생하는 초기 방사선에 의한것. 또 하나는 폴아우트나 잔류방사선에 의한 것이다. 초기방사선에는 알파선과 베타선, 감마선, 중선자선이 있다. 이중 알파선과 베타선은 공기속에서의 투과력이 약하기 때문에 지상에는 도달되지 않는다. 감마선과 중성자선이 큰 피해를 갖어왔다고 생각된다.
또 폴아우트에 대해 얘기하면 '중성자가 핵분열에 의해 생긴 물질에 부딛쳐 약 2백종 이상의 유도방사성 물질을 만든다. 그것이 상승기류와 함께 몰려 올라간 먼지나 티끌에 묻어 지상으로 내려와 잔류방사능이 된다. 이 영향도 크다. 유도방사능이란 스토론티움 89나 90, 바륨 140, 지르코늄95, 세시움137등이다. 또 폴아우트 속에는 분열되지 않았던 우라늄235나 플루토늄239도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것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후유장해가 나타나는 것이다.
1965년,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가 시산한 폭심지로부터의 거리별 잠정 방사선량에 의하면 5백m 이내에서 히로시마는 약 2천8백라드, 나가사키에서는 7천 라드로 추정되었고 1km이내에서 옥외에 있은 사람은 1천라드 이상 둘러쓴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4백50 라드 이상으로 전신 피폭을 받은경우 반수가 한달안에 사망하며 6백라드 이상의 경우는 거의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