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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9년 1월 유엔. 삼엄한 경계 하에 비공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지구방위 위원회에 속한 20개국의 대표들이었다. 벌써부터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던 미국 대표가 다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망설이는 겁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그것은 맹렬히 지구로 향해 오고 있어요. 당장 추진해야 합니다.”

“누가 모른답니까. 서두르다 일을 망칠 것 같으니까 그렇죠. 이런 일은 대국적 견지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하는 겁니다.”

중국 대표가 느긋하게 말하자, 미국 대표의 얼굴은 더욱 시뻘개졌다. 말은 안했지만 딴 대표들도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깐이었다. 이것은 시급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대로 있으면 지구 전체가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 확실했다.

‘영호 혜성’이 발견된 것은 2년 전이었다.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영호는 평소처럼 하늘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가 구상성단 M70 근처에서 낯선 별을 발견했던 것이다. 보고를 받은 천문학회는 그것이 혜성임을 알았고, 그것에는 영호의 이름이 붙여졌다.

발견 당시에 이미 혜성은 지구에서 목성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더구나 망원경 없이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학자들은 혜성핵의 지름이 80킬로미터나 된다고 추정했다. 핼리 혜성의 거의 열배였다. 혜성이 이렇게 근접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에 학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혜성의 궤도를 계산한 천문학자들은 경악해야 했다. 혜성이 곧장 지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은 곧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세계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유엔은 즉시 지구방위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한달이나 이어졌지만 의견이 분분해서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그 와중에 ‘혜성환영협회’라는 단체까지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영호 혜성이 외계인의 우주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백여년 전 동일한 위치에서 발견된 헤일-밥 혜성이 지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갔으며, 그것을 분석한 외계인들이 인간과 만나기 위해 지구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날이 갈수록 혼란은 더해갔다. 거의 매일 국제 회의가 열렸지만 결론은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각국은 저마다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레이저를 쏘아 파괴시키자, 소행성을 움직여 충돌시키자, 핵폭탄을 쏘자, 아예 지구를 약간 이동시키자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대책들이 제안되었다. ‘세계 초능력자 협회’는 전세계 초능력자들이 힘을 합치면 혜성의 경로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일은 거의 실행 단계까지 진행되었으나, 막판에 유럽의 종말론파가 참가를 거부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편 지구 탈출 계획도 꾸준히 행해지고 있었다. 전세계의 거부, 대기업들은 은밀히 우주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얼마 전 화성에 최초의 식민지 도시를 건설했던 일본은 국가적으로 우주선 건조를 지원하고 있었다. 대예언가이자 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나카이가 몇년 내에 일본 열도가 침몰한다고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종말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세계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난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모두가 실천하는 것 같았다. 이미 우주선 부품 분야를 장악하고 있던 한국의 대우, 삼성, 엘지, 현대 등은 밤낮없이 공장을 가동했다.

“이젠 핵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미국 대표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중국 대표가 다시 대꾸했다.

“그럼요. 우리 중국은 이미 이백년 전에 이 일을 예측했죠. 당시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핵무기를 남겨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거지요.”

“그런데 왜 동의를 하지 않는 겁니까?”

“그거야… 다 아시면서. 비용 때문이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미국은 각국이 동일한 비율로 혜성 폭파 비용을 분담하자고 주장했고, 딴 국가들은 반대하고 있었다. 사실 일부 국가는 비용을 대려고 해도 댈 수가 없다. IBM 등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이미 자산을 모두 회수해버렸던 것이다. 2월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결론이 나오지 않자, 각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계는 대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며칠 후 지중해의 한 섬. 세계의 산업, 국방, 무역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인사들이 은밀히 모여들었다. 또 주요 국가의 수상, 대통령, 국왕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표정은 심각하지 않았다. 일부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그들은 이런 모임에 매우 익숙했다. 이런 식의 모임은 이미 수백년 전부터 이어져왔던 것이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굳게 닫힌 회의실 문틈으로 가끔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모임은 두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모임이 끝난 몇분 뒤 지구방위 위원회는 혜성 폭파 계획을 통과시켰다. 누구도 비용 분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협약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약간 조정함으로써 해결될 사항이 된 것이다.

다음날부터 각국은 보유하고 있던 핵을 모으기 시작했다. 세계의 암흑가 단체들은 숨겨두었던 방사능 물질을 정부에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2개월후. 한국을 비롯한 20개국에 총 36기의 우주선이 건조되었다. 우주선에는 만일을 대비해서 혜성 두개를 폭파할 양의 핵무기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전세계에 생중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우주선들이 발사되었다. 동시에 시한 장치가 작동을 시작했다.우주선들은 혜성을 향해 순조롭게 날아갔다. 고장날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한국 기업들은 모든 검사를 완료한 순정 부품을 썼다는 것을 강조했다.

시간이 되자 화성과 달, 지구에 설치된 망원경들이 일제히 영호 혜성을 향했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며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마침내 첫 우주선이 눈부신 횐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빛이 채 피어오르기도 전에 17기의 우주선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우주에 장렬한 불꽃을 일으켰다. 담당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역사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서히 흩어지는 빛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혜성은 건재했던 것이다! 단지 표면에 분화구만 몇개 생겨났을 뿐 혜성은 아무 이상 없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하지만 절망하기는 일렀다. 아직 18기의 우주선이 남아있었다. 담당자들은 폭파 지점을 혜성의 한쪽 끝에 집중시켰다. 혜성을 산산조각 내진 못해도 방향을 돌릴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부신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틀림없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이상 꾸물대지 않았다. 세계는 화성 이주 계획을 짜느라고 바빴다. 화성의 영토 분할, 자원 이용, 도시 건설 등에 관한 국제 협정이 신속히 체결되었다. 우주왕복선이 지구와 화성을 끊임없이 왕복하며 노아의 방주처럼 모든 것을 실어 날랐다.각 도시에는 초대형 화면이 설치되어 다가오는 혜성의 모습과 충돌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화면은 필요 없었다. 이미 혜성은 달에 근접해 있었다. 과학자들은 곧 혜성의 중력이 지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제 과학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계산 결과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혜성의 중력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혜성은 마치 질량이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질량이 전혀 없는 혜성이라니? 마침내 혜성은 달만한 크기로 다가왔다. 대부분은 이미 화성으로 떠났고, 지구에는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달빛 환한 보름밤. 혜성의 발견자인 영호는 뜰에 나와 주위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혜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발견이 역사에 행운으로 기록될지 불운으로 기록될지 궁금했다.

그들은 달맞이 축제를 하듯 혜성을 향해 잔을 높이 올렸다. 건배!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그들은 그 자세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입을 쩍 벌린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수천 광년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별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혜성이 순식간에 사라졌던 것이다!

그 시각 지구의 어느 초고층 빌딩. 몇 사람이 모여 화면을 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완벽한 홀로그램이 아닙니까?”

“음. 정말 놀랍소. 그런데 핵폭발이 일어날 때 약간 떨린 것 같던데?”

“그건 충격파 때문인데 보완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투영 장치는 어디에 설치한 거요?”

“죄송합니다만, 그건 영업비밀이라서요. 어쨌든 태양계 어디든지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작은 것 같지 않소?”

“크기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그만큼 광고비가 상승하죠.”

“좋소. 계약합시다. 지구와 화성 양쪽에 설치해주시오. 달 오른쪽에. 회사 마크는 화성 정도 크기로 하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정말 멋진 광고가 될 겁니다.”

“참, 혜성의 분화구는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소. 어떻게 한 거요?”

“죄송합니다. 그것도 영업비밀이라서 …”
 

199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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