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두 시공간 사이를 잇는 좁은 지름길인 웜홀은 미래로부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시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는 웜홀을 통해 미래의 정보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이 부분에 관한 실험 조차 불가능하다.
태양신 '라'에 의지한 고대 이집트의 사제들이나 그리스의 신탁에서 보이듯이, 미래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는 예언이나 예시는 매우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형이상학적 사고는 수많은 초과학현상 가운데 과학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리올 왓슨이란 사람이 쓴 ‘초자연’이란 책에는 구름의 모양을 통한 예언에서부터 치즈의 모양 변화를 통한 예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기괴한 예언방법이 열거돼 있는데,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역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예언가로는 단연 유럽 문화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노스트라다무스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4행시를 통해 이루어진 그의 허다한 예언은 해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즉 모호하기 그지없는 서술은 사람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는 노스트라다무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예언이 가진 공통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서유럽의 깊숙한 오지 가난한 사람에게서 / 어린아이가 태어나리라 / 이 아이 자신의 혀로 많은 무리를 사로잡으리 / 그의 명성 동방의 왕국에서 더욱 커지리라.
이는 히틀러의 등장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되는 그의 시다. 후세 사람들은 16세기에 살았던 노스트라다무스가 이 외에도 원자폭탄이나 전투기의 발명, 세계대전의 발발, 케네디 암살,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을 이미 예언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들 존재를 알지 못했던 19세기의 사람들이 같은 구절을 오늘날과 동일하게 해석했을까.
미래를 미리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꿈을 통해 뚜렷한 영상을 본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 주장에 진실이 담겨 있다면, 의식에서 벗어나 무의식이 등장하는 수면시간이야말로 메시지를 전달받는 최고의 시간이라 할 만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를 해석하기도 전에 상(像) 마저 잊는 게 보통인데 비해, 예시력을 가진, 또는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잠재의식 속의 상을 대담하게 공개한다. 95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몇몇 ‘점쟁이’들이 그해 초 그의 사망 날짜를 예언했는데 이게 적중했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된 사례는 대표적인 경우다.
예시를 믿는 많은 신념자들은 예언과 사건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인간이 시간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나며, 이로 인해 과거와 현재의 장벽은 충분히 넘나들 수 있는 신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같은 사고가 과학의 법칙 안에서 움직일 수 있을까.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다면 그것은 웜홀이다. 블랙홀의 사촌뻘되는 웜홀은 서로 다른 두 시공간 사이를 잇는 좁은 지름길이다(과학동아 97년 5월호 특집기사 참조). 시공간 내의 두 지점 사이를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웜홀은 미래로부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른다면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관찰자의 속도에 종속돼 있다. 만약 웜홀의 끝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다른 쪽이 이보다 천천히 움직인다면, 양끝의 관찰자는 서로 다른 시간 안에 있게 된다(과거와 미래가 함께 존재). 예지력이 기능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따르자면, 우리가 의미있는 사건(서로 다른 시간의 공존)을 보기 위해서는 두 웜홀의 입구가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다른 쪽은 그보다 못한 속도로 달린다고 하자. 이에 따라 두 곳 사이에는 시간 차가 발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웜홀의 다른쪽이 7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가 있는 곳은 하루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 신비의 구멍을 통해 우리는 6일 앞을 내다볼 수 있다. 웜홀은 자체가 타임머신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예시를 가능하게 할까. 예언이나 예시는 미래로부터 현재로의 정보 이동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주선을 수송하는데 필요한 복잡함은 요구되지 않는다. 만약 정보가 웜홀을 통과할 수 있고, 민감한 사람에 의해 감지될 수 있다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된 X파일의 작품으로는 1차 시리즈 4편인 ‘루비의 귀향’(conduit)을 들 수 있다. 캠핑을 떠났다 딸을 UFO에게 납치당한 한 가족을 무대로 한 이 프로그램에는 꼬마 한명이 아무 것도 안나오는 TV를 보며 0과 1을 종이에 연속적으로 적어내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꼬마는 바로 외계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스타트렉의 물리학’을 쓴 로렌스 크라우스는 공간이동술의 가능성을 분석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어떤 물질의 공간이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 시스템을 물체의 실체가 아닌 정보의 이동으로 본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과학동아 97년 3월호 조).
사람의 한 몸에 담겨 있는 정보는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책을 모두 더한 것보다 수백만배 이상 많다. 그러나 웜홀을 통해 현재의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미래의 정보가 매우 자세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문서화된 모든 예언을 살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미래의 상이 항상 윤곽만 가까스로 보인다든지 불확실하게 전달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김일성이 죽는다는 상은 미래로부터 웜홀을 타고 나왔을 수도 있다. 이 가설을 믿고있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 항상 작은 웜홀이 있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정보의 통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의식은 이 신비하면서도 이론적인 대상물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현대 물리학의 상당 부분이 ‘증명불가’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설일 뿐이다. 실제 가장 난해한 물리학 분야인 입자물리학 이론들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 조차 우리의 능력 밖에 있다.
현대물리학자들은 아직 시공간의 움직임을 해석하기에는 역부족이며, 따라서 예시를 믿는 초심리학자들이 옳다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지금 당장 이루어질 성질의 것으 아니다. '충분히 진보한 기술은 마술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SF의 거장 아서 클라크의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지적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