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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새 삶을 살 거야.”
하필 그날, 지아는 운전대를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난 조수석에 앉아있었는데, 또 지아가 말장난을 하는 거겠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렇구나.”
“내가 선생님이 되면 어떨 것 같아?”
지아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 나한테 재능이 있대.”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지아를 봤다. 지아는 웃고 있었다. 운전대를 쥔 채,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면서. 지아가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서연아. 이제 떠나는구나.”
차를 멈추고, 지아는 연민 어린 눈으로 나를 잠시 응시했다.
“긴말은 안 할게. 내가 못되게 굴었지. 날 용서해.”
지아가 내 손을 약하게 쥐었다 놓았다.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고 난 떠나야 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이별은 이렇지 않았다. 적어도 지아에게 뺨을 맞으리라 생각했다. 욕을 할 것이다. 신경질을 낼 것이다.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아가 늘 그래왔듯.
그러나 그날의 지아는 달랐다. 지아는 뺨을 때리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다. 말없이 내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런 지아에겐 이상한 힘이 있어서, 그날의 기억은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니 지아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 장면이다.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지금도, 나는 그날을 생각하고 있다.
지아와 난 악연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사람이 있다. 어떤 수를 써도 결국엔 갈라서고야 마는 사람들. 지아와 내가 그랬다. 지아는 날 일방적으로 싫어해서, 할멈의 눈을 피해 괴롭히곤 했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는다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식이었다. 드물게 잘해주기도 했는데, 자기 꿈을 이야기할 때 그랬다.
“난 우주 비행사가 될 거야.”
지아는 그때마다 하늘을 가리키곤 했다.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아름답지 않니.” 하고 말하면서. 그러면 나는 곤란해졌는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늘은 오염돼 황토색이었다. R구역의 하늘엔 어떤 별도 뜨지 않았다. 지아가 저 흐린 하늘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찾는지 늘 궁금했다.
“세상의 끝을 보고 싶어. 별을 보고, 은하를 여행하고, 낯선 행성을 탐험해야지.”
난 우주 비행사의 일은 그런 게 아니라고, 그건 아마 과학자나 연구원에 가까운 일일 거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지아의 꿈부터가 비현실적이었다. R구역 출신들은 이 구역을 나갈 수 없다. 지아는 우주를 구경하긴커녕 R구역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말을 지아에게 하진 않았지만.
지아는 늘 같은 식으로 대화를 끝냈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버릴 거야. 영원히.”
지아는 열여덟 살에 시행되는 건강검진을 기다렸다. ‘적합자’로 선발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R구역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경로였다.
R구역은 버려진 땅이었다. 온갖 오물과 쓰레기가 모이는 곳. 구석구석이 방사능에 오염된 곳. 수십 년 전에 전쟁이 있었다. R구역은 가장 격렬한 전선이었다. 전쟁은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가 붕괴할 때까지 계속됐다. 남은 건 방사능뿐. 화학물질과 방사능은 땅을 계속해서 오염시켰다. 오염된 땅은 그 땅 위에 사는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 거리엔 버려진 총탄이나 오래된 전쟁 무기가 널려있었다.
지금도 R구역을 생각하면 화장품 맛이 나던 보급 식량이나 비싸기만 하고 효과는 전혀 없던 방독면 따위가 떠오른다. 구역을 빙 둘러싼 20미터 높이의 장벽과 그 바깥의 총 든 군인들도. 하지만 무엇보다 강렬했던 건 냄새였다. 아릿하고 쌉쌀한 화학물질 냄새. 토사물 냄새. 쓰레기 타는 냄새.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기 중에 뒤섞인 그 냄새들을 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냄새를 죽음의 냄새라고 불렀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세계는 R구역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지구 곳곳에서 재앙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가 특이점에 이른 ‘대격변’ 이후 세계는 혼돈에 빠졌다. 온난화의 구원책으로 우주가 등장했다. 우주 아주 먼 곳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는데, 그 행성에 지구를 구할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다만 문제는 그 행성에 갈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고속 우주선은 방사능을 내뿜기 때문에 일반인은 탑승할 수 없다.
우주선에 탑승 가능한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을 ‘적합자’라고 불렀다. 일 년에 한 번씩 전 세계에서 검사가 이루어졌다. 검사에서 ‘적합률’이 60% 이상으로 확인되면 적합자가 됐다. 적합자로 선발되기만 하면 R구역을 나가는 건 물론이고 우주 비행사 후보가 된다. 적합자가 되지 못해도 적합률이 30%를 넘기면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R구역을 나갈 수 있다. 지아가 기다리는 건 바로 그 건강검진 날이었다.
“기다려라.”
할멈은 매년 돌아오는 건강검진 날만 되면 뛰쳐나가려는 지아를 붙들고 타일렀다. 열여덟 이전에 검사받으면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할 거라면서.
할멈은 R구역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R구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전쟁통에 바깥으로 나갔다 말년에 다시 R구역으로 돌아왔다. 칠십의 나이에도 무쇠처럼 단단한 몸을 가졌다. 그 단단한 몸으로 나와 지아를 거둬 먹여 살리고 가르쳤다. 그녀는 자주 집을 비웠는데, 들리는 말론 재건 사업을 벌인다고 했다. R구역을 재건하는 사업.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꼭 내게 물어왔다.
“또 지아가 못된 짓을 했느냐?”
난 이 부분에서 늘 고민했지만 똑같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할멈은 엄한 목소리로 날 타일렀다.
“네가 괴롭지 않다고 해서 남들이 네게 나쁘게 굴어도 되는 건 아니란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할멈이 날 거두기 전에 난 거리에 살았다. 거리 생활은 험하다. 한 번은 머리를 맞았는데, 어딘가 잘못됐는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됐다. 한나가 죽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는 지아의 친구로, R구역에선 드물게 상냥한 기질을 가진 애였다. 그 애의 옅은 갈색 머리와 희고 기다란 손가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손가락에서 핏기가 빠져나가고 지아의 얼굴이 창백해지던 순간도. 그때 뭔가를, 정말로 노력했다면 뭔가를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당시엔 그러지 못했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저녁 메뉴였다. 그날 이후 지아는 날 싸이코처럼 바라봤다.
그 시절 지아와 내 관계를 정확히 설명할 순 없다. 다만 이상했던 지점은 우리가 어떤 끈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지아가 우주로 나가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R구역에서 적합자로 선발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아이리라 믿게 됐다. 하지만 인생은 늘 기대를 빗나간다.
R구역에서 적합자로 선발된 사람은 없었다.
지아는 적합자가 아니었다. 지아의 적합률은 5%. 평균 수치였다. 아직도 그 며칠이 생생하다. 집이 음산하게 조용했던 나날.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애는 이상하게 잠잠했다. 며칠을 방에 틀어박혔다가 나와서 하는 말이 이거였다.
“내가 몇 살에 죽을 것 같아?”
지아는 울었다는 것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멀끔한 낯이었다. 그 애는 내게 다가오더니 재차 물었다.
“말해봐, 내가 몇 살에 죽을 것 같은지.”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곤란했다. 지아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그 애의 길고 까만 생머리가 창백한 뺨에 이리저리 달라붙었다. 자세히 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어.”
한참을 고민해서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런 것쯤 나도 알아. 하지만”
갑자기 지아가 날 와락 껴안고 주저앉았다.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어.”
약간 놀랐지만 가만 있었다. 지아가 이런 식의 스킨쉽을 한 건 처음이었다. 한나의 일 이후 지아는 내 몸에 손끝도 대기 싫어했다. 한참 그러다 지아가 문득 입을 열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
고개를 저었다. 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서연아. 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지아는 말을 멈추고 한참 망설였다.
“우리떠날래?”
“어디로?”
“어디든. 어디든 상관없어.”
지아가 내 소매를 꽉 붙잡았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애의 목소리가 몹시 흐려졌다.
“우리 멀리 떠나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아주 먼 곳으로.”
“알겠으니까 그만 울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약속이야. 약속. 넌 절대 날 배신하면 안 돼.”
지아가 다시 날 부둥켜안았다. 그 애의 마른 팔이 그물처럼 날 옭아맸다. 몸에 힘을 풀며, 어떤 예감을 느꼈다. 언젠가 지아가 떠나도 오래도록 지아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떠난 건 나였지만.
다음 날이 되자 지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쌀쌀맞았다. 여전히 내 음식에 소금을 넣었고 내 물건을 망가뜨렸으며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대개 불법적인 경로였다. 뒷세계에 발을 들인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브로커들은 돈을 요구했다. 평생 만질 일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난 기다리기로 했다. 10년이고 20년이고 끈질기게 기다리면,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질 것이다. 그때 망설이지 않고 잡아채리라.
기회는 아예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흰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집에 찾아올 때부터 느낌은 있었다. 리더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아는 익사하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는 그대로 지아를 지나쳐 내 앞에 섰다.
“축하한다. 적합자로 선발됐구나.”
그 순간 난 미래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정해져버렸음을 깨달았다.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일주일 후에는 R구역을 떠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아는 심하게 아팠다. 나 때문이었다. 그 애는 아예 방문을 잠그고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넌 고통에 무딘 기질을 타고났지.”
할멈은 일주일 동안 내 곁을 지켰다. 그녀는 내게 바깥 세상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동안은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이야기였다. 할멈이 들려주는 바깥의 이야기는 아름다웠고, 잘 상상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R구역보단 나은 듯했다.
“왜 R구역으로 돌아오셨어요?”
떠나기 전 할멈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름진 손으로 내 이마를 쓸었다.
“가거라. 다신 돌아오지 말아.”
언젠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도, 할멈은 없을 것이다. 살아도 산 게 아니겠지. R구역은 그런 곳이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살아선 안 되는 곳, 그런데 사는 곳. 나는 남은 기간 동안 지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도.
지아는 욕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함께 도망치자고 했다. 내 앞에서 울며 자길 데려가라고 말했다가, 다시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할멈과 같은 말로 날 보냈다.
“꺼져. 다신 돌아오지 마.”
나를 데리러 온 비행선엔 여자 한 명과 연구원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앞으로 날 스승이라 불러라.”
여자는 훈련복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넌 3년 동안 훈련을 받게 된다.”
여자는 이어서 말했다. 훈련은 힘들고 고될 것이며, 중도 포기는 불가하다는 것. 3년 뒤에 후보 선발 시험이 있다는 것. 최종 후보에 선발되면 1년의 훈련 끝에 우주로 나간다는 것. 그 외에도 명예나 조국 같은 말을 했다. 여자의 말이 끝날 때쯤 비행선이 착륙했다.
학교에 입학했다. 여자를 스승이라 불렀다. 로렌츠나 세라 같은 이름의 동기들과 훈련했다. 대수학과 일반물리학, 그리고 기계공학을 배웠다. 내 육체는 천천히, 그러나 완전히 개조됐다.
*
그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 지아를 다시 만났다. 그 사이에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학년이 된 난 촉망받는 인재였다. 적합 부분에서 탁월했고 성적은 우수했다. 명령에 순종한 덕분에 학교의 신뢰를 얻었다. 외출이 가끔 허용됐는데, 그날도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돌아가려는 찰나 뒷골목으로 달려가는 그림자를 봤다.
분명 지아였다. 뛰어가 붙잡았다. 지아는 도망치려했지만 오랜 기간 훈련받은 날 이기진 못했다.
“이거 놔. 놓으라니까? 날 버리고 떠났으면서 이제 와 붙잡아?”
지아가 씩씩거리며 노려봤다. 그 시선에 개의치 않고 물었다.
“어떻게 나왔어? 돈은 또 어디서 구했고.”
“네 알 바야? 방법이 다 있어. 넌 절대 모를 테지만.”
빈정거리는 지아를 유심히 관찰했다. R구역 출신들은 신분이 없다. 그리고 신분이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있다. 지아의 까진 무릎과 노랗게 멍든 뺨을 봤을 때,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아와 억지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지아는 연락을 잘 받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연락했다. 지아는 자신이 하는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캐물었지만 단서를 얻진 못했다.
지아가 부르면 한밤중에도 나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대개 지아는 없었다. 그럼 해가 뜰 때까지 지아를 기다리다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지아는 그런 식으로 날 괴롭혔다. 당하는 내가 딱히 괴롭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아주 가끔, 정말 가끔 지아가 나타나기도 했다. 지아는 날 보러올 때 하이힐을 신었다. 굽이 무려 7센티미터였다. 그걸 신으면 지아는 나와 눈높이가 맞았다. 그 애의 차림은 점점 좋아졌다. 보란 듯이 비싼 옷에 고급 향수를 뿌리고 날 만나러 왔다. 그럼에도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는데, 하이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떠오르는 건 냄새뿐이다. 지아에게선 R구역의 냄새가 났다. 향수로도 가려지지 않는 지독한 냄새였다. 지아를 보고 온 날이면 한동안 그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3학년으로 진급했다. 1년 뒤에 후보 선발 시험이 있었다. 스승은 우리를 가혹하게 대했다. 훈련을 위해선 체벌도 피하지 않았다. 내 육체는 완전히 개조됐다. 뼈밖에 없던 내 몸은 이제 운동선수와 견줘도 밀리지 않았다.
“잘했다.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스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그녀는 날 기관으로 데려가 우주선을 구경시켜줬다. 동기인 로렌츠와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레사’라는 이름을 가진 우주선은 매끄러운 원형이었고 고층빌딩만큼 거대했다. 우린 함께 난간에 기대서 우주선을 바라보곤 했다.
지아의 연락이 뜸해진 무렵, 난 최종 후보로 선발됐다. 후보였지만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정말로 우주에 나가게 된다는 의미였다. 최종 후보는 11명이었다. 우린 합숙을 시작했다. 스승은 내게 자주 상기시켰다.
“우주에서 돌아오면 너는 영웅이 되어있을 게다.”
돈과 유명세. 넓은 집과 좋은 차. 많은 것이 약속됐다. 돌아왔을 땐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있으리라. 내게 주어질 것들이 무엇에 대한 대가인지 정확히 이해했다. 난 진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일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우리는 믿었다. 외계행성에서 박테리아를 수집하고 광물을 캐오는 일이 우리 몫이라 믿었다. 그렇게 일생을 걸고 우주로 나가는 일이 지구를 살리리라 믿었다.
완전히 틀린 믿음이었다.
그들은 지구를 고칠 의사가 없었다. 그들은 떠날 준비를 했다. 불타는 지구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행성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면 고통은 남겨진 자의 몫이 될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떠난 후에 R구역에 갇힌 건 무고한 시민들뿐이었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지구 전체가 거대한 R구역처럼 보였다.
내게 이런 사실을 말해준 사람은 스승이었다. 난 수긍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의 조장으로 선발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예감했다. 그러나 지구를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그런 생각을 점점 하지 않게 됐다.
외출이 허용된 마지막 날 지아에게 연락이 닿았다. 지아는 갔다. 나를 붙잡은 손이 풀리고, 차창이 닫히고, 시동이 걸리고, 차가 출발했다. 난 지아의 낡은 자동차가 멀리멀리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상하게도.
*
우주에 나가 처음으로 눈을 뜬 순간을 기억한다. 아주 오랜 잠에서 깨어난 느낌. 각성. 몸을 짓누르던 낯선 대기. 날 부르는 팀원들의 목소리.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며 이륙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우주선은 정교하게 계산된 궤도를 따라 움직였다. 우리는 훈련받은 대로 행동했다. 팀을 짜 교대로 관리실을 지켰다. 우주선의 위치를 모니터링하고 운석 등의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지 살폈다.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지구에서 벌어졌던 일은 지난 생의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따금 모니터 너머의 검은 우주를 볼 때면 지아를 떠올렸다.
“그리움이에요. 떠나온 사람들은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기 마련이죠.”
내 이야기를 들은 팀원 로렌츠가 말했다. 의아했다. 그리움이라니. 내가 그런 걸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었어. 그 애는 날 미워하는 걸.”
“모든 관계를 설명할 순 없죠.”
로렌츠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이복형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독 자신을 미워했던 형. 작은 키에 날이 선 눈매를 가진 형. 사고 치고 멋대로 물건을 빼앗던 형. 하지만 비에 젖어 돌아왔을 때 넓은 팔로 안아주던 형.
“떠나기 전에 형은 제게 말해줬어요. 고통이 사랑이었음을.”
로렌츠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날 이후 지아를 종종 생각했다. 늙은 지아의 모습을. 난 상대성 이론을 명확히 이해했다. 지구의 시간은 우주와 다르게 흐르리라. 우린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여행하고 있었다. 시간은 고도로 팽창할 것이다. 그 틈새에 끼어서 지아에겐 몇 년이 될 몇 달의 시간을 보내며, 이따금 빈자리를 느꼈다. 그 애의 시간을 난 이해할 수 없겠지.
처음으로 지구가 그리워졌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행성은 원시 지구의 형상이었다. 그곳에 이주할 기반을 다졌다. 앞 기수들이 해놓은 작업 덕에 일은 어렵지 않았다. 표본을 채집하고 탐사로봇을 작동시키면 금세 하루가 갔다. 행성에서의 1년은 그런 식이었다.
*
2052년 2월, 레사 3호는 지구로 귀환했다.
지나간 세월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아주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한동안 정신없었다. 난 정부가 제공한 집에서 살게 됐다. 귀환 후의 나날은 단조로웠다. 집 근처에 스승이 머무르는 병원이 있었다. 가끔 그녀를 만나러 갔다.
지구는 더 망가져있었다. 이주 작업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방사선을 방출하지 않는 고속 우주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주 예정일이 잡히고 우주선 티켓이 암암리에 팔렸다. 관계자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지구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그러니 함께 떠나지 않겠냐고. 떠난 뒤에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했다. 이주가 시작되면 지구는 걷잡을 수 없을 만치 망가질 것이다. 희망이 없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런 상념들은 자연스레 지아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우주에 있을 때, 지아와 내 삶이 다른 시간축 위에서 흐르리라 믿었다. 내 하루가 지아의 며칠이 되고, 내 일주일이 지아의 한 달이 되고, 내 일 년은 지아의 몇 년이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아의 시간은 다른 시간축 위에서 흐른 것이 아니었다. 그 애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있었다. 낡은 차를 타고 날 떠났던 바로 그날, 그 순간에.
교통사고였다고 한다. 난 좀 더 자세히 알아봤다. 관련 자료를 뒤지고 사건을 조사했다. 기밀문서를 열람하고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알게 됐다. 지아는 바로 실험 때문에 R구역을 나올 수 있었다. 일반인을 적합자로 바꾸는 실험이었다. 대상자는 R구역 및 슬럼가의 주민들이었다. 지아는 R구역을 나가는 조건으로 실험을 승낙한 것이다.
난 방사능이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안다. 정부의 주도하에 자행된 실험은 지아의 육체를 서서히 파괴했을 것이다. 감각기가 망가지고 이유 모를 복통이 발생하며 시야가 흐릿해진다고 보고서에는 쓰여있었다. 그렇다면 그날의 사고는 실험과 관련이 없을까. 그날의 사고는 과연 ‘어떤’ 사고였을까.
모든 진실을 안 후에도 스승의 곁을 계속 지켰다. 스승은 오래 전에 죽은 그녀의 딸과 나를 겹쳐봤다. 나는 스승이 날 체벌한 일과 지아의 죽음을 함구한 일을 후회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녀는 늙고 병들었다. 스승의 얼굴에서 R구역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보았다. 죽음을 향해 천천히 침몰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난 여전히, 지아와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떠나기 전에 지아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내가 해석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있다. 다만 지아의 뒤를 쫓았고, 발견했고,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그뿐이다.
처음 R구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날, 로렌츠는 물었다.
“정말 가실 겁니까?”
부와 명예, 평화와 안락한 삶. 그 모든 걸 두고. 죽음의 구역으로 가실 겁니까?
“가지 말아라.”
스승도 그렇게 말했다. 스승은 내가 R구역으로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셨다. 그래서 내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아예 떠나버리길 원하셨다. 그녀의 다 늙은 육신에서는 예전 같은 기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승의 눈에 기어이 눈물이 맺혔을 때, 난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할멈은 왜 R구역에서 죽음을 맞았던가. 지아는 왜 실험을 그만두겠다고 했나. 스승은 어째서 나를 붙잡는가.
지아가 미운 적이야 당연히 있다. 이를테면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그 애를 기다리다 해가 뜨는 걸 보며 기숙사로 돌아가 다시 훈련을 시작하던 때.
그러나 지아가 날 부둥켜안은 그 순간, 내가 이 애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뭘 하실 계획입니까?”
전용기에서 따라 내리며 로렌츠가 물었다. 쓰레기 타는 냄새가 났다. 눈을 감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지아가 가려했던 길을 그려봤다. 낡은 자동차를 타고 멀리멀리 나아가던 지아를, 7센티미터짜리 하이힐을 신고 날 만나러 오던 지아를, 황토색 하늘에서 별을 보던 지아를.
“R구역을 바꿀 거야.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난 돌아왔다. 나의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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