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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의 세계

파르테논 신전 대들보가 휘어진 이유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볼테르(1694-1778)의 석고상.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수많은 비판적 작품을 발표했다.


쓰려져가는 피사의 사탑을 세우고, 영원히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만들 수 있을까. '착시'를 이용한 미술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고대 건축물, 심리학, 그리고 예술작품에서 착시의 원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자.

피사의 사탑을 살리는 방법

 

파사의 사탑^이탈리아 중부의 도시 피사에 세워진 사탑(1271-1350). 지반이 약해 세울 때부터 기우어졌지만 현재까지 쓰러지지 않아 '세계 불가사의'의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여기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이 있다. 한때 점점 기울어가는 이 사탑을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된 적이 있다. 여러분들이라 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후쿠다 시게오는 재미있는 발상을 떠올렸다. 그는 건축구조적 방법이 아니라 시각적 방법, 즉 착시를 이용해 기울어져가는 사탑을 세우고자 했다. 그림에서처럼 사탑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선을 그려넣자 기울어진 사탑이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론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눈을 통해 외부세계의 물체나 그 변화를 탐지하는 과정을 시지각(視知覺)이라고 하낟. 지각 과정에는 언제나 대상물이 존재한다. 대상물이 없는데도 지각이 된다면 그것은 환각이다. 이와 달리 실제 지각되는 대상이 있지만 사람의 눈으로 느낄 때 실제의 대상과 오차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착시다.

환각과 달리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자극이 존재하는 것, 객관적 성질과는 현저하게 다른 것,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보통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착시의 조건이다. 무심코 느낀 오해는 착시라고 하지 않는다. 얼마간의 주의를 기울이거나 지각이 잘못됐음을 알더라도 계속 잘못된 채로 지각되는 현상이 착시다.
 

파르테논 신전^아테네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치기 위해 세워졌다. 정면에서 볼 때 번듯한 직사각형으로 보이도록 건물 곳곳에 건축기교를 발휘했다.


파르테론 신전의 비밀
 

(그림) 착시를 고려한 구조^a.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b.a처럼 보위기 위해 실제로 지어진 모습. c.착시를 고려하지 않고 지은 모습.b처럼 지었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a처럼 번듯해보인다. 만일 동일한 굵기의 기둥을 동일한 간격으로 세웠다면 '시야의 한계'로 인해 c처럼 보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화가나 건축가들은 착시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작품에 응용해 왔다. 한 예로 기원전 447-기원전 432년에 세워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들 수 있다. 이 신전은 얼핏 보기에 동일한 굵기의 기둥이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직사각형의 '번듯한'건물로 눈에 들어온다(a). 하지만 실제로 지어진 모습은 그렇지 않다.

우선 가장자리의 기둥은 가운데 있는 기둥보다 가까운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b). 즉 가장자리는 1백80cm, 가운데는 2백40cm간격이다. 또 군데군데에 휘어지거나 경사진 모습이 발겨된다. 대들보의 가운데가 위로 볼록하게 휘어져 있으며, 가장자리의 기둥은 안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바닥 부분의 지름은 약 1백80cm지만 꼭대기 부위의 지름은 1백20cm정도밖에 안된다.

왜 이렇게 '불균형하게' 지었을까. 만일 동일한 굵기로 만든 기둥을 동일한 간격으로 세웠다면 우리 눈에 건물의 모양은 직사각형이 아니라 c처럼 보일 것이다. 건물이 너무커서 전체 윤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위나 옆으로 퍼져 보이기 때문이다. 63빌딩 앞에서 꼭대기를 쳐다볼 때 건물이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과 비슷한 원리다. 따라서 그리스 신전이 번듯한 직사각형 건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지은 것이다.
 

수직ㆍ수평 착시^같은 길이의 선분을 수직이나 수평으로 2등분할 경우 2등분되는 선이 상대적으로 짧아보인다.


길이가 달라지고 평행선이 만나는 이유

착시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착시 형태를 만들어 인간이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파악함으로써 인간의 지각시스템을 이론화시켜 왔다. 기하학적 착시가 한 예다. 기하학적 착시는 평면에 놓인 도형이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객관적인 형태와 틀리게 보이는 경우다.
 

(그림1)술잔과 옆얼굴^술잔이라 의식했을 때 시선의 자취(b)와 옆얼굴이라 의식했을 때 시선의 자취(c).


같은 그림 다른 해석, 처녀와 노파
 

(그림2)처녀와 노파^뒤를 돌아보는 처녀 모습과 노파의 옆모습이 중첩돼 보인다.


애매한 도형은 하나의 물체에서 두가지 이상의 지각을 일으키게 된다.(그림1)의(a)는 술잔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옆얼굴로 보이기도 한다. 만일 이 그림이 술잔이라고 얘기한 후 그림을 보여주면 시선의 자취는 술잔의 윤곽을 따른다(b). 반대로 사람의 옆얼굴이라고 얘기하면 시선의 자취는 얼굴 형태를 따라 머문다(c).

이처럼 동일한 그림이 다른 형태로 보이는 경우를 '형태의 반전(反轉)'이라 한다.(그림2)는 이런 반전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다. 이 그림은 매력적인 젊은 여자로 보이기도 하고 무서운 노파로 보이기도 한다.

스페인 화가 달리는 이 반전 효과를 이용한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볼테르가 보이지 않는 노예시장'(26-27쪽)과 '끝이 없는 수수께끼'(위)를 들 수 있다. 같은 그림에 두가지 지각이 일어나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이에 비해 깊이가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경우를 '깊이의 반전'이라 한다.(그림3)의 정육면체가 한 예다. 정육면체가 바로 세워져 보이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뇌는 애매한 도형에서 나타난 물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두가지 가설을 교대로 검증하며 한가지 결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처럼 반전은 뇌의 중추신경에 의한 것인지 정보 자체의 변화는 아니다. 우리의 지각이 망막에 새겨진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추론한다는 의미다.
 

(그림3) 깊이가 달라보이는 정육면체^정육면체가 바로 세워진 것으로 또는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보인다.


제자리만 맴도는 불가사의 계단

에셔는 착시를 이용해 그림에서는 표현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수많은 '불가능한 도형'을 작품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셔는 1937년 이래 수학적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기하학을 총칭해 '에셔 기하학'이라고 부른다.

에셔는 "기하학을 이용하면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평면이나 공간을 수비게 구성할 수 있으며, 과거의 작품에서는 맛보지 못한 신선한 예술적 감동마저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전적인 예술작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현실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4차원적'분위기로 다가온다.

에셔는 '오르막,내리막'(1960)에서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없이 제자리만 맴도는 계단을 표현했다. 이 불가사의한 계단은 영국 수학자 펜로즈가 만든 불가능한 도형을 본따서 그린 것이다. 펜로즈는 4각형의 모서리를 교묘하게 연결한 계단 모형을 만들었는데,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멈추지 않는 오르막길만 보인다.

그러나 이 모형은 눈속임수를 이용한 것이다. 실제 계단의 경우 동일한 높이의 층은 그림의 붉은 테두리와 같다. 펜로즈는 같은 높이의 층을 그림에서 변형시킴으로써 건축학적으로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계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에셔의 이 작품은 인생에 대한 비관주의적 주제를 담고 있다. 우리는 계속 어딘가를 향해 올라간다고 상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자리만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에셔의 '폭포'(1961)역시 불가능한 도형을 이용한 작품이다. 건물의 꼭대기에서 떨어진 물이 지그재그 형태로 '자연스럽게' 거슬러 올라가 다시 떨어진다. 적어도 그림상에서 물방앗간의 바퀴는 영원히 돌아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그림은 펜로즈의 아들 로저 펜로즈의 '불가능한 삼각형'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로저 펜로즈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3차원 구조의 삼각형을 그려 1958년 한 심리학회지에 발표했다. 삼각형의 한 면을 따라가다 보면 끊임 없이 회전을 반복하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한 면을 따라가다 어색해지는 부분에 이르면 관찰자는 '거리감'에 대해 재빨리 재해석해야 그림이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화가 에셔(1898-1972)^'불가능한 도형'을 만든 펜로즈 부자의 영향을 받아 수학적 취향이 강한 작품을 많이 냈다.
 

199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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