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80드럼을 펌프질하는 기계가 우리 몸안에 있다. 그 근면하고 성실한 장기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심장’이라고 부르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의 하나라는 인상을 준다. 대신 ‘염통’이라고 부르면 여느 동물에서나 다 볼 수 있는 내장의 하나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 다소 격하된 감이다. 반면 ‘심(心)’이라고 부르면 사뭇 그 의미가 달라져서 단순한 내장 또는 장기라는 의미를 탈피, 심오한 정신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게 된다.
심장을 영어로 말하면 하트(heart)가 된다. 하트라는 말만으로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예민한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뭏든 하트라는 단어를 그저 우리 몸안의 장기로만 생각하는 둔한사람은 드물다.
심장은 사랑과 양심의 상징
아주 먼 옛날, 원시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를 상상해 보자.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여념이 없던 원시인이 어느 날인가 자신의 가슴 속에서 규칙적으로 뛰고있는 심장을 느끼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스쳐갔을까? 또 그 심장의 박동이 멈추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심장에 부여하였을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힌두,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옛 문명 사회에서 심장은 단순한 장기의 하나가 아니었다. 지성, 용기 그리고 사랑의 상징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기독교 사회에서도 심장은 숭고한 신의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옛 중국에서는 ‘오장육부’로 우리 몸안의 중요한 장기를 열거하였다. 그중 오장은 심, 간, 위, 폐 및 콩팥 등 다섯장기를 의미했다. 이중 심장이 가장 중요한 장기로, 지성의 상징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심장은 가장 중요한 장기로 인정되었다. 사람이 죽은 후 미이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모두 버리지만 심장만은 본래 자리에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심장은 양심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람이 사망하면 그 사람의 심장을 꺼내 무게를 측정, 많이 나가면 성스럽게 장례를 치루었고 가벼우면 천한 대접밖에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사후의 심장무게를 재는 그림을 그린 파피루스가 벨기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처럼 숭고한 사랑, 용기, 지성, 양심의 상징이던 심장이 1950년대초에 와서 외과의사의 칼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최초의 심장이식수술이 성공하였으며 원숭이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도 성공하였다. 결국은 인공심장 수술까지 성공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아 10년이상 생존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과 용기와 양심과 지성을 빌려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심장의 신비가 과학에 의하여 송두리채 없어지고 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이 보는 심장은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3분동안 심장이 쉬게 되면
우리 몸은 성능이 좋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일 정도의 작은 세포가 무려 60조개나 모여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세포가 모여서 뇌, 간, 신장, 위, 췌장 등 여러가지 장기를 형성, 생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고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려면 산소와 필요한 영양분의 공급을 계속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또 세포가 산소와 영양분을 이용한 결과 생성되는 쓰레기가 신속하게 제거되어져야 한다.
이같이 세포가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는데에 꼭 필요한 조건을 맞추어 주는 것이 심장이다. 심장은 산소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는 혈액을 전신의 모든 조직과 장기에 공급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또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올 때는 각 조직과 장기에 쌓여있는 대사산물, 즉 쓰레기를 운반해 온다.
한마디로 말하면 심장은 혈액이 전신으로 순환할 수 있는 힘을 주는 펌프이다. 게다가 쉽게 지쳐버리는 연약한 펌프가 아니고 평생을 통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강력한 펌프인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안정하고 있을 때 1분에 약 70회 정도 심장이 박동한다. 1분에 70회라면 한시간에 4천2백회가 되고 하루에 무려 10만회가 넘는 박동을 계속해야 하는 셈이다. 가령 70년을 사는 사람은 평생을 통하여 심장이 25억회이상 박동을 계속해야 한다.
심장이 박동을 중지하면 20초가 되지 않아서 의식이 없어진다. 3분이상 심장이 쉬게 되면 뇌세포가 파괴되어 심장박동이 다시 돌아오더라도 식물인간의 상태가 계속되게 된다. 그래서 잠시도 쉴 수 없는 것이 바로 심장이다.
심장이 한번 박동할 때 얼마나 많은 양의 혈액을 어느정도의 압력으로 전신을 향하여 내보낼까? 건강한 어른이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 심장은 한번 박동할 때마다 약 80cc의 혈액을 대동맥을 통하여 전신으로 내보낸다. 이때 혈액이 동맥을 타고 순환하는 압력이 바로 혈압이다.
심장은 바보가 아니다
혈압에는 수축기 혈압과 확장기 혈압, 즉 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이 있다. 수축기 혈압은 심장이 수축할 때의 압력을 의미하며 확장기 혈압은 심장이 확장할 때의 압력을 말한다.
건강한 성인의 수축기 혈압은 1백20mmHg정도이다. 즉 심장이 수축하면서 혈액을 대동맥으로 내보내는 압력이 그 정도란 뜻이다. 1백20mmHg의 압력으로 1분에 약 6ℓ의 혈액을 내보내고 있으므로 한시간에는 3백60ℓ, 하루에는 8천6백40ℓ의 혈액을 방출하고 있는 셈이다. 2백ℓ가 한 드럼이므로 심장은 하루에 40드럼이상의 혈액을 높은 압력으로 우리 몸안의 구석구석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지금까지 계산한 것은 심장이 전신으로 내보내는 혈액의 양만 계산한 것이다. 심장이 한번 박동할 때마다 꼭 같은 양의 혈액을 폐로 내보낸다. 그래야 혈액이 폐로 가서 우리가 호흡할 때 폐안에 들어온 산소를 받아서 신선한 동맥혈이 되어 심장으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폐동맥으로 혈액을 내보내는 압력은 훨씬 낮아서 20mmHg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심장이 하루에 내보내는 혈액의 양은 위에서 계산한 것의 두배, 즉 하루에 약 1만7천ℓ가 된다. 즉 80드럼이 넘는 어마어마한 혈액을 순환시키는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심장이다.
그렇다고해서 심장이 바보스럽게 눈치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일만 계속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쁘게 일할 때는 더 많은 양의 혈액공급이 필요하고 잠잘 때는 필요량이 적어진다. 심장은 우리 몸의 상태에 따라 혈액공급량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운동하거나 긴장할 때 맥박이 빨라지는 것은 심장이 적절하게 일의 양을 조절하고 있다는 증거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박동을 계속하는 건 심장이 전기적으로 자극되기 때문이다. 우리 심장에는 일정한 속도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발생된 전기는 심장내의 전선을 따라 전체 심장으로 퍼져나간다. 일단 전기적인 자극에 의하여 흥분되면 심장은 곧 수축하게 된다. 전기를 발생시키는 빈도는 자율신경과 우리 몸안에서 분비되는 여러가지 물질의 영향 등에 의하여 변한다. 우리 몸의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심장이 박동하는 속도가 조절되는 것이다.
심실은 심방보다 하는 일이 많다.
도대체 심장이 어떻게 생겼길래 이처럼 대단한 양의 일을 평생 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을까?
정상 성인의 심장크기는 길이가 15cm, 가장 넓은 곳의 폭이 10cm정도다. 대략 자기의 주먹 크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할 때마다 심장의 박동을 왼쪽 가슴에서 느낀다. 그래서 심장이 우리 가슴안에 왼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흔히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은 가슴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가슴안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폐가 하나씩 있고 그 사이에 심장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먹만한 크기의 심장내부는 4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에 두개, 왼쪽에 두개로 구성 되는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우심방과 우심실이고 왼쪽에 있는 것이 좌심방과 좌심실이다. 오른쪽, 왼쪽을 자꾸 따지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른쪽에 흐르는 혈액은 전신을 순환하고 난 후에 심장으로 돌아온 정맥혈, 왼쪽을 흐르는 혈액은 폐에서 탄산가스를 내보내고 산소를 받아온 신선한 동맥혈이어서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심방과 심실의 차이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심방은 심장으로 돌아온 혈액을 일시적으로 보관하였다가 심실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심실은 심방으로부터 들어온 혈액을 전신 또는 폐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즉 전신을 순환하고 돌아온 정맥혈은 우심방에 다 모였다가 심장이 수축하지 않는 확장기에 우심실로 들어간다. 우심실에 모인 혈액은 우심실이 수축할때 폐동맥을 통하여 폐로 간다. 폐에서 산소를 받아들여 동맥혈로 변한 혈액은 좌심방으로 돌아왔다가 좌심실로 가서 대동맥을 통하여 전신으로 순환하게 된다.
따라서 심장의 펌프작용을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우심실과 좌심실이다. 심장은 심장근육, 즉 심근으로 구성되어 있는 주머니모양의 방이다. 우심실은 혈액을 폐로만 보내면 할일을 다하게 된다. 반면 좌심실은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야하기 때문에 심근이 우심실에 비하여 훨씬 더 두텁다. 더 강력한 펌프작용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심방은 혈액을 심실로 보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심실보다는 훨씬 쉬운 일을 담당하는 셈이다. 따라서 심방의 벽에는 심실에 비하여 훨씬 적은 양의 근육만 존재한다.
심장을 통하여 혈액이 흐르는 과정을 알기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신을 순환하고 심장으로 돌아오는 정맥혈이 우심방으로 들어가면서 심장의 활동은 시작된다. 그후의 경로를 보면 혈액은 우심방→우심실→폐동맥→폐→폐정맥→좌심방→좌심실→대동맥으로 흘러 전신으로 순환하게 된다.
혈액은 위와 같은 과정을 밟아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야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혈액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하는 것이 심장안에 있는 4개의 판막이 하는 일이다. 우심방으로 부터 우심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삼첨판막이 있어서 혈액이 우심방에서 우심실쪽으로만 흐르도록 조절하고 있다. 우심실로부터 폐동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폐동맥판막이 있어서 폐동맥 쪽으로만 혈액이 흐르도록 감시한다. 좌심방으로부터 좌심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승모판막이 있고 좌심실로부터 대동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대동맥판막이 있어서 각각 좌심실과 대동맥쪽으로만 혈액이 흐르도록 통제한다. 만약에 판막이 없다면 혈액이 흐르는 방향이 뒤죽박죽이 되어 정상적인 심장기능의 수행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10배 많은 영양공급을 요구
지금까지 이야기 한바와 같이 심장은 4개의 방, 판막, 큰 혈관들로 구성된다.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심장이 강력한 펌프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힘을 제공하며 심실벽을 구성하고 있는 심장근육, 즉 심근이 그것이다. 물론 판막, 혈관 등도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판막과 혈관에 이상이 있는 경우 인공판막 또는 인공혈관이 대신할 수도 있다. 하나 펌프에 힘을 제공하는 심근의 기능이 심하게 떨어지면 다른사람의 심장 또는 인공심장을 이용하는 심장이식수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게 된다.
이와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심근과 관련,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즉 심근이 계속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관상동맥이 건강해야 심근이 필요로 하는 신선한 혈액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심장의 무게는 체중의 2백분의 1에 지나지 않으나 심장자체에 공급되는 혈액량은 몸무게의 20분의1이다. 즉 다른 조직에 비해 10배나 되는 영양공급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심장이 담당하는 일의 양을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관상동맥에는 우관상동맥과 좌관상동맥이 있다. 좌관상동맥은 시작 직후 두개의 가지로 분리되므로 보통 세개의 관상동맥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관상동맥에 동맥경화증 등이 발생되어 혈관이 비좁아지거나 완전히 막히면 몸에 이상이 생김은 당연하다. 심근으로의 혈액공급에 이상이 발생,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이 초래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