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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11월 초 필리핀 중부를 강타했다. 현재까지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치면 5000여 명에 이른다. (이 자리를 빌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태풍 하이옌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도 슈퍼태풍이 올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올해 우리나라엔 사실상 태풍이 실종됐는데 앞으로 슈퍼태풍이 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니, 이건 무슨 말일까?
태풍 하이옌은 역사상 태풍으로 인한 최악의 자연재해가 될 것이다. 필리핀에 상륙할 당시 하이옌의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105m였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을 포함한 북서태평양에서 가장 강했던 태풍은 1961년 ‘낸시’였는데 이때 풍속이 초속 93m였으니 10%나 셌다. 즉 하이옌은 북서태평양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태풍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상륙한 가장 강력한 태풍은 2002년의 ‘루사’, 2003년의 ‘매미’다. 매미의 최대 풍속이 초속 60m였으니, 하이옌은 매미보다 1.75배나 강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센 태풍이 올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센 태풍의 강도는 북서태평양에서 가장 강한 태풍의 약 60~70%에 이르고 있다. 하이옌의 등장은 우리나라에 순간 최대 풍속이 70m 이상을 갖는 슈퍼태풍이 상륙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태풍 루사와 매미의 피해액은 각각 5조 원, 4조 원에 달했으니, 이보다 센 태풍이라면 피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참고로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는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67m, 즉 시속 240km 이상인 열대성 저기압을 슈퍼태풍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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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에서 태풍이 사라진 이유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태풍이 실종됐다. 잠깐 스쳐 지나간 10월 태풍에 뒤늦게 호들갑을 떤 게 전부다. 뒤늦게 슈퍼태풍이라니 지나친 걱정 아닐까. 그렇지 않다. 사실 올해는 태풍이 예외적으로 드물었던 아주 운이 좋은 해에 불과하다.
최근 30년(1981년~2010년) 동안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태풍은 매년 3개 정도다. 그러나 이는 평균값일 뿐 해마다 다르다. 2012년에는 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지만, 올해에는 24호 태풍 다나스만이 10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총 태풍 수를 합하면 6개이므로 연평균 태풍 수는 3개로 평균과 같다. 우리가 지난해 기억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특히 올해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31개 태풍의 위치와 진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참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10월에 온 다나스 외에도 최소한 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향해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근의 기압 분포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이 태풍들은 우리나라에 상륙했을 것이다.
가장 먼저 4호 태풍 리피(6월)를 살펴보자. 이 태풍은 동죽국해를 지나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향하다가 제주도 부근 해상에서 장마전선에 떠밀려 온대저기압으로 변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북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동진해서 일본에 상륙했다. 15호 태풍 콩레이(8월)도 대한해협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주변 기압의 영향을 받아서 결국 일본 규슈 지방으로 상륙했다. 만약 태풍이 대한해협으로 향하고 있을 때, 북태평양 고기압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남해안에 상륙했을 것이다. 23호 태풍 피토(9월)도 동중국해에서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북진하다가 이 기간에 급격하게 확장한 북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중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24호 태풍 다나스는 피토가 중국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이 잠시 북태평양 고기압이 축소된 틈에 대한해협을 통과했다.
다섯 개의 태풍 중 가장 강한 것이 23호 태풍 피토였다. 이 태풍은 중국에 상륙해서 사망 2명, 이재민 310만 명의 인명피해와 약 4000억 원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낳았다. 만일 23호 태풍 피토가 북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중국으로 향하지 않고 원래 방향대로 계속 북진했다면 꽤 큰 피해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참고로 태풍의 진로는 기후학적으로는 주로 500hPa(헥토 파스칼 : 기압의 단위) 일기도에 나타나있는 5880 지위고도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태풍 피토의 경우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는 바람에 진로가 서쪽으로 밀려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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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발생 4가지 조건
1. 따뜻한 바닷물
해수면 온도가 26.5℃ 이상인 열대해양(인도양, 태평양, 북대서양)에서만 발생한다. 태풍의 반지름은 가장 작은 경우도 300km나 된다. 이 지역에서 혼합층(해양에서 상, 하층이 잘 혼합되는 층) 깊이를 100m로 가정한 경우, 해수온도가 1℃ 상승하면 해당지역의 해양에너지는 1.2×1020J 만큼 상승한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10만 배에 해당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증가된 모든 해양에너지가 태풍에 공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중 일부만이 잠열의 형태로 태풍에너지로 변환된다.
2. 충분한 수증기
대기에 수증기가 충분해야 한다. 태풍을 형성하고 있는 구름 무리는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원인데, 수증기가 없으면 구름이 크게 발달할 수 없다. 상승하는 공기가 응결하면서 잠열을 방출해야 지속적으로 강한 상승기류가 유지될 수 있다.
3. 상하층 바람 세기
상층과 하층 바람의 세기 차이가 작아야 한다. 태풍의 수직구조를 보면 태풍의 눈을 중심축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대칭형을 띠고 있다. 상층 바람이 하층보다 빠르면 태풍의 연직 구조가 깨지기 때문에 태풍이 발달할 수 없다. 즉 태풍이 피사의 탑보다 더 급하게 기울어져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4. 대기의 회전 방향
대기가 전반적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해야 한다. 북반구에서 태풍을 포함한 모든 저기압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발달한다. 그러므로 대기의 대규모 흐름이 같은 방향이면 태풍발달 초기에 그 회전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북서태평양에서 태풍의 주요 발생구역인 남중국해와 필리핀해 인근에는 기후학적으로 저기압성 회전이 존재한다. 이러한 저기압성 회전은 태풍발생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따뜻한 해수면 온도와 함께 매우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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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태풍 점점 세지고 있다
필리핀에 사상 최악의 태풍이 왔다고 우리나라에도 슈퍼태풍이 오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우리 연구팀이 미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태풍자료를 비교한 결과 2000년대 이후 한반도까지 올라온 태풍의 개수는 줄었지만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이런 경향이 계속되면 슈퍼태풍이 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고 있는 걸까. 간단하게 답한다면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태풍 발생의 네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 태풍이 우리나라가 포함된 중위도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해수면 온도가 빠르게 차가워진다. 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상공에는 빠른 서풍인 제트류가 연중 불고 있어서, 태풍의 연직구조가 깨진다. 더구나 중위도는 저위도보다 수증기 양이 매우 적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우리나라 주변의 해수면 온도는 지난 30년 동안 1℃ 상승했다. 지구의 해수면 온도가 100년 동안 0.3~ 0.6℃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해수온도가 1℃ 상승하면 해당지역의 해양에너지는 1.2×1020J 만큼 상승한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10만 배에 해당한다. 다행히도 이 중 일부만이 태풍에너지로 바뀐다.
게다가 최근 동아시아 대륙 북쪽의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제트기류도 약해졌다. 한반도 상공의 수증기 양도 온도가 오르면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대기와 해양의 모든 조건이 태풍 발달에 유리하게 변했다. 정확하게 단정하긴 어렵지만 미래에는 매미나 루사같은 초대형 태풍이 지금보다 더 자주 상륙하고 그보다 더 센 태풍도 올 것이다. 중간 크기 태풍의 에너지양이 전 세계에서 반 년 동안 생산하는 전력량에 맞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만 힘이 세져도 얼마나 파괴력이 커질지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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