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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엘런 와이즈먼이 2007년 발표한 논픽션 ‘인간 없는 세상’은 꽤 신선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만약 지구에서 인간이 다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원래 미국 잡지 ‘디스커버’ 편집장의 요청으로(저도 이렇게 훌륭한 요청을 해야 할텐데요) 2005년 쓴 에세이가 기원인 이 작품은 인간이 사라진 지구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관리가 사라진 댐 등 구조물과 도시는 어떤 운명을 겪을 것인지를 취재를 통해 설득력 있게 예측합니다.


작품을 보면 좀 복잡한 마음도 듭니다.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은 광범위한데, 의외로 생각만큼 오래 가지 않습니다. 도시를 이룬 콘크리트 건물은 수 년이면 물이 새고 부스러져 결국 수백 년 못 가 무너집니다. 기후변화의 주범 이산화탄소는 300년 정도면 사라집니다. 플라스틱도 600년이면 자연분해되죠. 다만 둘 다 쌓인 양이 많아 다 없어지는 데 수만~수십만 년 걸립니다. 대단한 시간이지만, 현생인류가 살아온 시간(30만 년)과 비교하면 또 그저 그렇습니다. 철근과 전선 등 금속은 좀더 오래 갈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조차 10만 년 안에 되풀이해 찾아올 빙하기에 수 km 높이의 대륙빙하에 납작하게 깔릴 것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남긴 흔적,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요.


물론, 냉소가 두 스푼쯤 담긴 농담입니다. 인공 무기물의 수명이 저렇다면 창조자 인간의 삶쯤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을 생각보다 일찍, 작은 계기로도 맞이할 수 있죠. 이번 특집에서 그 순간을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상상해 봤습니다. 그 과정은 봐선 안 될 예언서를 연 듯 섬뜩합니다만, 다행히 대비할 방법까지 막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기적 같이 존재하듯, 멸망도 기적 같이 피할 수 있습니다.


기획은 서울 종로구 예지동에 위치한 시계골목 르포와 인터뷰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세운상가와 청계천 주위에 자연스럽게 모인 상공인들이 형성한 도심제조업의 성지인 이곳은, 지금 재개발로 장인과 상인들이 뿔뿔이 흩어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수십 년 이어진 네트워크도, 그 안에서 손과 손을 거쳐 이어지던 기술과 이야기들도 잊힐 위기죠. 


다행히 이들의 이야기를 채집하고 신구 세대 사람들을 연결시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면서 반전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도, 사람이 남긴 것도 쉽게 잊히고 사라진다고 위에선 썼지만, 그건 지질학적 시간에서고요. 적어도 멸망 전까진 기억으로, 아니 기록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음 누군가에게 닿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다큐멘터리로 만든 ‘인간 없는 세상’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네요. 마지막까지 남아 영원히 우주를 헤맬 인간의 마지막 흔적, 그것은 미디어의 전파라고 합니다. 웃고 떠들고 싸우던 내용이 담긴, 무용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으면 덜 외로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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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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