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컴퓨터과학과 신경생리학 등 다양한 학문 속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 왔다. 그러나 아직도 궁극적인 목표인 '생각하는 기계'의 실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46년 에니악에서 출발한 컴퓨터는 이제 단순한 계산기계의 위치에서 벗어나 인간의 사고를 흉내내고, 언어를 이해하며, 체스를 두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지능기계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에 실어 보려는 도전은 지난 1950년대부터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시도됐다. 이 가운데 튜링은 지능과 사고가 무엇인지를 정의함으로써 인공지능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같은 질문을 기계와 인간에게 던졌을 때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대답을 한다면 그 기계는 지능을 가졌다고 간주하자”고 제안했다. 기계가 지능을 가졌는가를 알아보는 시험을 ‘튜링테스트’라 부르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원한다. 이에 따른다면 인공지능의 목표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매카시, 민스키, 사이먼 등 상당수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기계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매카시는 컴퓨터가 상식을 추론할 때 필요한 새로운 형태의 수학논리를 정의해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린다. 사이먼은 뉴엘과 함께 인간의 사고 활동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컴퓨터를 연구해 1955년 ‘논리이론가’라는 최초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문제를 커다란 나무 형태로 보고, 이를 분석한 뒤 최종 결론에 가장 근접한 가지를 택함으로써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원리를 구현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여러 연구 중 전문가시스템은 가장 보편적이며 오랜 역사를 지닌 분야다. 이는 외부의 질문에 대해 컴퓨터 스스로 자신의 능력으로 판단, 응답하는 시스템이다. 지식과 규칙기반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전문가시스템은 가장 중요한 지식 입력과정에 해당분야 최고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최초의 전문가시스템은 지식공학의 개척자라 일컫는 파이건바움이 1965년에 만든 ‘덴드랄’이다. 덴드랄은 물질의 화학적 데이터를 추출해 세밀한 분자구조를 추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질량분석가이자 피임약 개발자로 유명한 제라시의 도움을 받아 개발된 덴드랄은 제라시가 거둔 연구 성과보다 훨씬 우수하게 분자의 화학적 구조를 결정해냈다. 덴드랄의 뒤를 이어 1970년대에 전염병의 진단과 처방에 관한 시스템으로 스탠포드대학에서 개발한 ‘마이신’은 덴드랄과 함께 지금까지도 전문가시스템의 전형으로 꼽힌다.
사람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자연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환자와의 직접 대화를 시도한 전문가시스템도 개발됐다. 1966년 와이젠바움이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위해 개발한 ‘엘리자’와 ‘닥터’, 그리고 편집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콜비가 만든 ‘패리’가 그것이다.
이들 시스템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것을 해독한 뒤 환자에게 질문을 하거나,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특히 엘리자는 정신병을 다루는 의사들이 사용하는,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한 광범위한 대응치료법을 흉내낸 것이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튜링테스트의 통과여부에 관한 논란이 오가기도 했다.
맥핵, 딥소트, 딥 블루, 티에라
인공지능을 게임 분야에 적용해 지능과 오락을 결합시켜보려는 연구도 진행됐다. 이 가운데 명쾌한 게임방법을 가진 체스는 가장 먼저 인공지능과 밀접하게 연결돼 인간과의 대결을 지속해왔다.
게임이론과 컴퓨터이론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폰 노이만이다. 그는 디지털계산기의 구조 체계에 관한 ‘폰 노이만 기계 이론’을 만들어 현대 컴퓨터의 논리구조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는 게임에도 ‘최선’이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게임은 수학적인 관점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했다.
1940년대말 샤논과 튜링이 컴퓨터를 이용해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초로 공개한 이래, 학자들은 노이만의 게임이론과 샤논의 체스원리를 결합해 체스프로그램의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1967년 MIT의 그린블라트가 ‘맥핵’(MacHack)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부터 인간과 컴퓨터의 공식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이후 20년 동안 컴퓨터 체스는 인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어 슈퍼컴퓨터로 중무장한 체스프로그램들은 기능을 꾸준히 강화한 끝에 1988년 카네기멜론대학 연구원들에 의해 개발된 ‘딥소트’(Deep Tho-ught)는 인간 ‘고수’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 딥소트는 IBM으로 넘어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개량한 새로운 시스템인 ‘딥블루’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올 5월에는 인간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기고 마침내 지능기계의 신기원을 열었다.
체스와 유사한 탁상 게임인 체커 분야에는 1954년부터 무려 40년동안 수많은 공식 대회에서 불과 9패만을 기록하며 무적을 자랑하는 틴리라는 학자가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는 최근들어 캐나다 앨버타대학의 섀퍼박사가 만든 프로그램인 ‘치누크’와의 수십차례 대국에서 번번히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다. 치누크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인간 챔피언을 능가하는 프로그램의 개발을 목표로 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체커의 게임이론적인 가치를 규명한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다.
인공생명분야도 인공지능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1990년 레이는 기계의 진화를 생성해내는 프로그램인 ‘티에라’를 발표했다. C언어로 작성된 티에라는 가상컴퓨터와 운영체제 등 디지털 창조물을 스스로 생성해 운영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티에라는 기계의 창조와 진화에 관계하고 있는 모든 기계부호를 변화하거나 재결합함으로써 컴퓨터 자신의 구조도 개선시킨다. 이 결과로 만들어진 코드는 진화의 핵심인 ‘자연선택과정’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동안 스스로 기능을 발휘해나간다.
가상컴퓨터의 운영체제는 스스로 메모리관리나 시분할을 하면서 진화과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제어하는 등 인간세계의 변화과정을 그대로 투영한다. 티에라는 탄생과 죽음의 기록은 물론, 모든 사물의 생성·진화에 관계된 순서가 헝크러지지 않도록 하는 감시체계도 운영된다. 또 우수한 유전자를 보관하는 유전자은행도 관리된다. 인공생명의 실현을 향한 시도의 하나인 이 프로그램은 생태학 연구나 진화의 과정을 재현하는 실험에 활용되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인공지능은 그리 순탄치 못한 과정을 겪긴 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불확실한 조건에서 답을 구하는 퍼지논리 등 새로운 이론이 바로 이 시기에 정립된 것이다.
신경망이론도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1940년대말 헤브가 “두뇌의 시냅스 연결강도 조절을 통해 학습을 실현할 수 있다”는 학습규칙을 제시한 뒤 정체됐던 신경망연구는 1982년 칼텍의 홉필드교수가 신경망 학습모델을 발표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방법론 중 하나인 신경망연구는 인공생명 창조와 신경컴퓨터 개발에 관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요원한 꿈
최근 인공지능 구현의 방향은 상식추론을 실현하기 위해 기계에 학습 기능을 부여하려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대규모 기계학습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이크’다.
레너트가 14년째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사람의 두뇌가 정보를 기호화해서 처리한다는 기본 명제에 따라 기계에 ‘사람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는 식의 일반적인 지식을 차근차근 입력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자들은 사이크가 지식을 하나하나 확충해나감에 따라 과연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편 MIT의 브룩스는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능로봇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그는 인간을 닮은 로봇인 ‘코그’를 만들어 지능기계와 인공생명의 실현에 기여하려 하고 있다.
지능로봇은 우주탐사에도 응용된다. 지난해 미국이 발사한 화상탐사우주선 ‘패스파인더’는 금년 7월초에 화성에 도착해 탐사활동을 개시한다. 화성표면을 유랑할 탐사선은 이동은 물론 대부분의 탐사 임무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게 제작된 지능화된 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딥블루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성급히 확대할 수 없다. 과연 인간의 능력을 대신할만한 완벽한 지능기계의 실현은 언제나 가능할까.
1950년대 당시 튜링은 "앞으로 50년내에 컴퓨터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지능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는 없으며, 통과하더라도 결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아직도 지배적인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