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소를 찾아다니며 공드령 지은 이름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긴다고 생각해보라. 혹자는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속편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은 실제 세계에서나 '내 것' 일 뿐, 또다른 룰이 지배하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남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지구가 개척한 마지막 신대륙 인터넷에는 저마다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으로 '골드러시'를 이루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나 네티즌들이 활동하는 곳, 또하나의 지구촌인 인터넷에는 새로운 경제와 문화가 싹튼다. 앞으로는 이 안에서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상품을 사고 파는 경제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 영토전쟁이 불붙었다. 인터넷의 잠재력과 전망이 박을수록 인터넷의 땅따먹기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시장으로 탄생한다면 이공간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내것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군 사망에서 연구 학술 망으로, 또다시 기업들의 상거래망으로 전환되면서 가상 공간에서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지금도 소리 없이 불타오르고 있다.
"내 맥도널드 이름 돌려줘"
인터넷 터 닦기에 여념이 없는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문패'다. 인터넷에서 대외적으로 기업을 알릴 수 있는 것은 문패에 해당되는 도메인 이름. 기업을 설립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정하고 등록을 해야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십 억의 네티즌들이 주소 하나만 가지고 기업들을 찾아 오기 때문에 인터넷에 등록되는 기업의 이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넷상의 주소를 의미하는 도메인(domain) 이름을 조기에, 그것도 남보다 먼저 확보하는 것은 이제 세계기업들의 공통 관심사가 됐다.
도메인명은 인터넷 월드와이드웹 사이트를 표시하는 주소를 표시하는 것으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기업의 경우는 'http(월드와이드웹에서 각 문서를 연결하는 프로토콜 방식)://www(월드와이드웹을 어마함). 이름.com' 이나 'http://www.이름.co.kr(국내기업은 기업을 뜻하는 co와 코리아의 kr을 덧붙인다)'와 같은 도메인명을 갖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도메인명을 관리하는 곳은 미국은 인터닉(INTERNIC)이며 각국 별로 마련된 전산망센터에서 나라 별로 관리를 한다. 그리고 인터닉에 등록비로 1백달러(약 8만원정도)만 내면 누구라도 이름을 등록할 수 있다.
인터닉은 도메인 이름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의 서버에 하나의 도메인명을 부여하고, 먼저 등록한 사람에게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같은 규칙에 의해 도메인명이 관리되고 있지만 인터넷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회사라 해도 인터넷에서 필요한 도메인명을 남이 먼저 등록해 놓으면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해당 기업은 먼저 등록한 사람과 협상을 하거나 포기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기업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기득권이 인정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또다른 질서가 지배한다.
인터닉에서도 먼저 등록한 사람에게 권리를 주는 원칙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닉이 현실적으로 특별한 중재권을 발휘할 수는 없다. 대부분 당사자들간의 합의에 맡겨두는 것이 전부다. 법정싸움을 통해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상표권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무지의 대가로 엄청난 현금을 지불해야 하는게 현실이다.
전세계적으로 햄버거의 대명사로 불리는 패스트푸드점 맥도널드(McDonald)사는 인터넷 문패 찾기에 곤욕을 치렀던 대표적인 기업. 맥도널드라는 이름을 94년 다른 사람이 먼저 등록하는 바람에 정작 맥도널드사는 그 이름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맥도널드는 도메인 이름을 먼저 등록했던 조슈아 퀴트너라는 사람과 협상을 벌인 끝에 상당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소중한 도메인명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같은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신문사인 뉴욕포스트는 'nypost,com'이란 도메인명을 먼저 등록한 한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스포츠카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페라리사는 한 미국인이'ferrari.com'이란 이름을 등록해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증권시장 이름은 1만2천달러
최근에는 도메인명을 먼저 등록한 다음, 이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되파는 '도메인명 확보사업'이라는 신종 비즈니스도 등장했다. 기업들의 문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losangelescity.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한 한 개인이 이 이름값으로 37만5천달러(약 3억원)를 요구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LA)를 뜻하는 이 도메인은 LA시당국이나 시와 관련된 단체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며 이처럼 '거액'을 부른 것이다. 이사람이 투자한 비용은 등록비 1백달러와 연간 관리비 50달러가 전부, '원가'에 비하면 엄청난 판매액이지만 도메인명의 활용가치로 보면 그만큼의 비중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예 도메인명만을 전문적으로 등록해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하는 홈페이지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홍콩에서 개설된 '도메인 딜러'사이트를 비롯, 세계적으로 10여개의 도메인네임 중개 사이트가 영업중이다. 이러한 중개 사이트에는 도메인명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업체의 명칭들이 수만개가 진열돼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개 사이트들은 특정인이 확보한 도메인 네임을 필요한 사람에게 매매를 대행하고 거래가격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받는다. 시시한 것은 몇백달러에 불과하지만 귀한 것은 말그대로 '부르는게 값'이다.
미국의 증권가를 뜻하는 'wallstreet.org'은 37만5천달러의 가격이 매겨진 '고가품'이다. 'koreanstock.com'도 도메인 명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지 못한 '무심한'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격은 1만2천달러.
이밖에 미국에서 운영하는 '베스트도메인스'에는 일주일에 1백개 이상의 판매의뢰가 들어오고 있으며, 평균거래가격은 7천5백 달러다. '도메인 네임 컴퍼니'라는 곳도 도메인명 중개 사이트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주로 인기있는 도메인명은 지명과 유명인 이름, 숫자, 비즈니스등 관련용어들이다.
게으르면 눈뜨고 빼앗긴다
'인터넷문패확보'경쟁은 강건너 불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도 이미 다른 사람이 등록 해놓은 도메인명을 뒤늦게 찾기 위해 발걸음이 분주하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도메인명 확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황의석씨. 황씨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름을 인터넷주소로 확보해 놓은 것을 비롯해 1천여개의 도메인명을 소유하고 있다. 황씨의 도메인명에는 유명 정치인과 대기업 이름, 김치와 같이 우리 교유의 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과 '부산'등 지명도 다수 포함돼 있다.
또한 개인인 박모씨도 15대 국회의원을 포함, 정치인의 이름을 자신의 인터넷 상호로 모두 등록했다. 박씨는 97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예비대권주자들의 이름을 중점적으로 확보했으며, '신한국', '승리97'등 정치구호도 도메인명으로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국내 중소기업의 상호까지 모두 5천여개의 도메인 이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회사의 도메인명을 미리 등록한 이들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는 우리 기업들의 자세가 너무 안이하다"고 질타한다.
실제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비단 사업적인 목적에서만 도메인명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자신들이 미리 등록하지 않았다면 다른 외국인들이 먼저 우리기업의 도메인명을 확보했을지도 모른다는 예기다. 실제로 현대그룹은 '현대'라는 도메인명의 소유권을 가진 캐나다의 한 기업과 접촉을 했으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황의석씨는 자신이 가진 도메인 이름 가운데 기업과 관련된 것을 모 언론사에 위탁 해당 기업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이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무관심한 기업들의 안이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숫자이름을 잡아라
개인적인 '도매인 헌터'와 함께 국내에도 도메인명을 등록해주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전문 기업들이 등장했다. 최근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IBI(인터넷 지원센터)와 인터넷 전문 교육기관인 사이버랜드가 대표적인 업체. 이들은 기업명은 물론 지명과 상품명, 비즈니스 용어, 그리고 숫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도메인명을 등록해놓고 있다.
IBI는 통신이나 유통업체들이 선호하는 1472(일사천리), 백화점을 겨냥한 4343(사세사세) 등의 번호를 등록했다. 또한 일본, 중국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해 주요 숫자 도메인명을 미리 '접수'했다 기상정보가 유료화될 경우 접속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기상대의 안내전화 117을 활용한 '117.com'등이 대표적인 사례.
숫자를 도메인명으로 확보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외우기 쉽고 간단한 숫자 주소가 네티즌들에게 더욱 더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인터넷도메인명 확보 경쟁에서 두드러진 흐름의 하나는 국내 기업의 경우에도'.com'으로 끝나는 도메인을 얻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는 점이다. 원래'.com'은 미국의 기업들에게만 부여하는 도메인명이었다. 그밖의 나라에서는 'co.kr'처럼 두자리의 국가명을 붙이는 것이 원칙, 그러나 전세계의 인터넷 이름을 관리하는 인터닉이 95년 말부터 미국 이외의 기업들에도 '.com'의 도메인명을 부여함에 따라 기업들은 국가명이 붙지 않은 이 명칭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가명이 추가된 복잡한 체계의 도메인명보다는 네티즌들이 훨씬 외우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갖기 위해서다.
전세계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com'명칭을 갖기 위해 인터닉에 도메인명 신청을 하다보니 인터닉은 신청이 폭주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인터넷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인터넷 소사이어티(ISOC)는 골치아픈 인터넷 도메인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의 이름 규칙을 개정하기 위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ISOC는 대중들의 의견을 모아 2월초쯤 새로운 개정안을 밝힌다는 계획이다. 도메인명 부여 체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에 대해 눈여겨 보아야 할때다. 또다른 '문패전쟁'에서 '몰라서 당하는' 피해를 최소한 막기 위해서다.
도메인명을 둘러싼 세계 각 기업들의 정보 전쟁은 인터넷이라는 신대륙을 개척하는 어려움의 한 단명을 말해준다. 인터넷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질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규칙들을 재빨리 발견해서 실천하는 것이 신대륙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새로운 흐름에 뒤쳐져 사이버공간에서 써야 할 자신의 이름마저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이지만 낙담만하고 있을 수 없다. 신대륙의 매력은 아직도 개척해야 할 광활한 영역이 남아 있다는데 있다.
이제부터라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수집에 나선다면 뒤지지 않고 앞서나갈 기회를 잡을수 있다. 아니, 어쩌면 앞서나가는 것은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엄청난 비즈니스의 기회가 숨겨진 인터넷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관심과 노력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