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의 쉼터 남산을 오르다보면 자칫 무심코 흘려버릴 ‘심상치 않은’ 장면이 잡힌다. 나무 밑동에서 가느다란 줄기들이 두터운 표피를 뚫고 수북히 자라난 모습이다. 미끈한 것보다 보기 좋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무 윗부분을 쳐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잎이 거의 매달리지 않은 앙상한 가지들이 ‘생의 마감’을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도시 환경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던 나무들이 더이상 위로 성장하지 못하고 아래에서 잔가지를 치거나 수평으로 가지가 뻗어나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징조다.
일반적으로 나무가 생을 마칠 때면 그 징조는 전체적으로 나타난다. 즉 윤기나 나뭇잎 수, 그리고 성장 속도가 전반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윗부분의 성장이 멈춘다. 이 경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은 상대적으로 건강한 밑동 부분에 새로운 가지를 치는 것이다.
직접적인 스트레스는 오염물질이 잎을 통해 침투할 때 발생한다. 기공으로 오존이나 아황산가스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흡입되면 체내 세포가 파괴되거나 각종 대사과정이 방해받는다. 먼지가 기공을 아예 막아버리는 상황은 두말할 나위 없다.
토양오염을 통한 간접적인 원인도 찾을 수 있다. 산성비가 한 예다. 토양에는 식물 대사에 필요한 양분인 양이온(칼슘, 마그네슘 등)이 흙입자와 결합돼 있다. 수소이온은 이 양이온보다 강하게 흙입자와 결합한다. 수소이온농도가 높은 산성비가 내리면 양분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수소이온이 차지해버린다. 결과적으로 땅 속에 양분은 없어지고 수소이온만 남게 된다.
만일 한두 그루에서만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행이지만 범위가 확대되면 그 지역의 생태계가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남산이 서울시민의 쾌적한 휴식처로 오랫동안 남아있을지 안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