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심지어 우주공간의 무중력 상태에서도 거미들은 거미줄을 만들어 집을 짓는다. 어디서 이런 능력이 나오는 것일까. 거미를 너무 사랑하는 한 남자가 이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덴마크 아로아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볼라스(Vollrath)박사가 만들어낸 사이버 거미(cyber spider)를 만나보자.
정원이나 집안의 후미진 곳에 쳐 있는 거미집은 먹이를 찾기 위한 탐색 활동의 흔적이다. 대부분의 거미들은 매일 새로운 거미줄을 만드는데, 환경에 따라 약간 다르다. 거미들은 평생 동안 2백개정도의 거미집을 만든다. 거미집이 얼마나 잘 지어졌느냐는 거미줄에 걸려든 먹이의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미집 연구는 단순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야생의 거미들이 거미집을 만드는 것을 관찰해보면 거미의 행동이 여러 단계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일 먼저 거미는 거미줄을 칠 자리를 탐색하기 위해 지세를 파악한다. 일단 집을 짓기로 결정하면, 거미는 두 군데의 높은 지점 사이를 줄로 연결하고 그 가운데 지점에서 밑으로 내려오면서 Y자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Y자의 접합점은 거미줄의 중심이고 두팔과 줄기는 최초의 ‘바퀴살’이다. 그 다음 거미는 거미집 중심 지점을 돌면서 중심을 튼튼히 만드는 동시에 바퀴살을 여러개 더 만든다.
거미집의 기본 골격을 만든 거미는 중심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네바퀴에서 여덟바퀴 정도 돌면서 추가로 나선형의 줄을 설치한다. 이렇게 되면 일단 나선형 거미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공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완성된 거미줄은 거미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끈적거리지 않는 실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거미가 좋아하는 먹이들이 거미줄에 붙기는 커녕 튕겨나가고 말 것이다.
거미집 건설의 마지막 단계는 먹이들이 걸려들면 달아나지 못하게 끈끈이 줄을 치는 것. 거미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거미줄을 난간 삼아 끈끈이가 묻혀있는 실로 거미집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촘촘하게 만든다. 이 끈끈이 실은 거미가 대기 중에서 수분을 흡수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포획 나선형 거미줄’은 바깥 쪽은 지그재그형이고, 중심으로 갈수록 원모양이 된다. 마지막으로 거미는 거미집의 중심을 조절해 전체 거미줄의 장력을 조율한다. 그 후 거미는 앉아서 먹이가 걸리기만을 기다린다.
비대칭에 담긴 뜻
관찰 결과 거미는 무작위로 자신의 집을 지을 곳을 선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거미줄의 비대칭성은 계획적인 것이다. 포획 나선형 거미줄은 항상 폭보다 길이가 길다. 또 중심은 가운데가 아닌 약간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중력 때문에 거미가 위쪽보다는 아래쪽으로 움직이기 쉽기 때문에 거미집의 아래쪽에 먹이가 많이 걸리도록 거미집을 만드어 놓은 것 같다.
거미는 거미줄을 치면서 바퀴살의 개수와 간격을 미리 결정하고, 바퀴살 사이의 각도를 고려해 새로운 바퀴살을 더해 나간다. 또 바퀴살들을 연결하는 나선형 거미줄과 줄사이의 간격도 미리 결정한다. 거미들의 시력이 형편없음에도 줄 사이의 간격은 일정하다. 볼라스박사는 거미들이 어떻게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알아냈다. 그는 다리 길이가 정상의 반 밖에 안되는 거미(거미는 다리를 다치면 다리를 빼 버리고 전보다 길이가 짧은 새 다리를 만든다)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거미들은 앞의 두 다리로 두 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거미집 만들기는 위에 묘사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완성된 거미집의 실 한 가닥이 잘려나가면 거미는 나선형 거미줄을 몇 번 도는 사이에 이 빈 공간을 보수한다. 만약 거미가 거리만을 근거로 거미집을 만든다면 거미줄에는 끝까지 구멍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미는 줄과 바퀴살 사이의 각도도 측정할 수 있고, 자신이 방금 한 일과 거미줄 위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정확한 각도가 얼마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중력이 모양을 결정
1963년 나사(NASA)에서는 우주선에 거미를 실어보낸 적이 있었다. 지구로 전송된 사진에서 ‘우주산 거미집’은 ‘지구산 거미집’보다 확실히 더 대칭적이었다. 벨로스 박사는 거미들이 거미집을 지을 때 계속해서 중력을 다시 측정한다는 것과 중력이 다른 어떤 것(먹이의 크기 등) 보다 더 직접적으로 거미집의 형태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것을 발견했다.
거미의 체중도 거미집의 형태를 결정한다. 거미들은 그들의 분수에 맞는 거미집을 짓는다. 다시말해 거미들은 자신의 복부에 얼마 만큼의 실이 저장돼 있는가를 미리 알고 그에 맞추어 그물 눈의 크기를 조절한다. 또 바람이 부는 경우에 더 뻣뻣한 실을 만든다.
중력, 거리, 각도, 풍속 등이 거미집 만들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볼라스 박사는 사이버 거미를 만들었다. 볼라스 박사가 키우고 있는 거미는 육체를 갖고 있는 거미가 아니다. 컴퓨터 화면상에서 가상의 거미줄을 만들어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그래도 이 사이버 거미는 실제의 거미만큼이나 솜씨있게 거미줄을 만들 수 있다.
사이버 거미는 거미집을 어디에 만들지, 또 새로운 거미줄을 어디에 붙일 것인가를 수학적인 법칙을 이용해 결정한다. 한술 더 떠 사이버 거미들은 진짜 거미와 마찬가지로 의사결정 기술을 진화를 통해 다듬어 왔다. ‘컴퓨터 판 자연선택’의 결과 가장 뛰어난 가상의 거미줄을 만든 사이버 거미들만이 살아 남았다.
이 연구는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사이버 거미들은 이미 진짜 거미들의 대역으로서 일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한 실험에서는 진짜 거미집을 디지털화해 컴퓨터에 입력한 후 ‘임시 나선형 거미줄’이 완성된 시점에서 사이버 거미를 투입했다.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이버 거미는 국지적인 정보만 가지고도 ‘포획 나선형 거미줄’을 훌륭히 완성했다.
다른 실험에서는 사이버 거미에게 길고 좁은 공간에서 거미집을 짓게 했다. 그랬더니 사이버 거미는 이용 가능한 공간을 메우기 위해 거미줄 중심이 거미집 가운데서 멀리 떨어진 아주 심하게 변형된 포획 나선형 거미줄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거미줄은 실제의 생태계에서도 나방을 잡아 먹는 두종의 거미들에게서 발견된다.
요즘 볼라스 박사팀은 사이버 거미를 이용해 거미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고 있다. 볼라스박사팀의 연구결과는 실제 살아있는 야생 거미의 진화 과정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거미줄 치지 않는 거미도 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실을 이용하는 것은 거미의 대표적인 특징이지만 모든 종류의 거미가 그물을 쳐서 먹이를 잡는 것은 아니다. 그물을 치고 먹이가 그물에 걸리면 잡아먹는 거미를 정부성 거미라고 하고, 그물을 치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먹이를 찾는 거미는 배회성 거미라고 한다. 두 종류 거미의 비율은 6:4정도로 정주성 거미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