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왜 내 차선이 제일 느릴까

도로 위에 나타나는 심리적, 물리적 착각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앞에 있던 차량이 무리하게 옆 차선으로 이동하는 것을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차선보다 빠르다고 느끼는 옆 차선으로 옮기기 위해서다.과연 그 느낌은 맞는 것일까. 또 이유없이 길이 막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에서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의 박모씨. 이미 장시간 운전을 한 상태라 몸이 지쳐 있는데 자신의 차선은 별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옆 차선을 보면 옆 차선 차들은 꾸준히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내 차선이 좀 뚫린다 싶더니만 금방 다시 막히고 반면에 옆 차선은 한번 뚫리면 더 오랫동안 흐름이 유지된다. 그래서 차선을 무리하게 바꿨더니, 이제는 상황이 뒤바뀌어 옆 차선이 더 빠르지 않은가. 왜 하필 내 차선이 제일 느릴까.

교통 흐름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옆 차선이 실제로는 더 느린 경우에도 많은 운전자들이 자기 차선이 더 느리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즉 많은 경우 이런 느낌은 단순한 착각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시야에 남는 추월 차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캐나다 토론토대의 레델메이어박사와 미국 스탠포드대의 티브시라니박사에 의해 영국에서 발행되는 과학주간지‘네이처’ 1999년 9월 2일호에 발표됐다. 우선 차량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서 옆 차선의 차량 흐름을 촬영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통해 비디오가 설치된 차량이 있는 차선의 평균 속도, 그리고 촬영된 옆 차선의 평균 속도를 측정한다. 이 중 옆 차선의 평균 속도가 더 느린 상황을 찍은 필름만을 골라 사람들에게 상영한 후 반응을 조사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70% 정도가 옆 차선이 더 빠르다고 응답했고, 이중 대부분인, 전체 응답자의 65%가 가능하면 옆 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옆 차선이 더 느린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운전자들은 옆 차선의 평균 차량 속도를 과다 평가하고 자기 차선이 더 느리다고 생각할까. 이런 착각의 원인 중 하나는 심리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자기가 추월을 하는 경우보다는 추월을 당하는 경우 더 강한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운전자의 시야가 전방을 향하고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자신이 추월한 차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자기를 추월한 차는 긴 시간 동안 시야에 남아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적인 요인 외에도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물리적인 이유가 있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상황을 가정하자. A지점부터 1km 떨어져 있는 B지점까지 1차선으로 달릴 경우 시속 5km, 2차선으로 달릴 경우 시속 10km까지 밖에 속력을 못 낸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B지점부터 다시 1km 떨어져있는 C지점까지는 속력을 1차선은 시속 10km, 2차선은 시속 5km라고 하자.


1, 2차선 모두 A부터 C까지 18분 이 걸린다. 그러나 두차선의 운전 자는 각각 자신의 차선이 옆 차 선보다 6분 동안 더 느리기 때문 에 자신의 차선이 더 느리다고 느 낀다.


차선 바꾸고 후회하게 되는 이유

이 상황에서 어떤 차가 1차선으로 계속 달릴 경우, A지점부터 B지점까지 가는 12분 동안 2차선의 차가 앞질러간다. 그리고 B지점부터 C지점까지 가는 6분 동안만 자기 차선이 더 빠르다. 그렇다면 1차선으로 달리는 운전자에게는 A지점부터 C지점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 18분의 절반이 훨씬 넘는 12분 동안 2차선이 더 빠르다고 느끼게 된다.

만약 2차선을 달린다면 어떨까. 2차선을 달리는 운전자는 자기 차선이 더 빠르다고 생각할까. 2차선을 달리는 차는 A지점부터 B지점까지 처음 6분 동안은 1차선의 차보다 더 빠르다. 하지만 B지점부터 C지점까지의 12분 동안은 더 느리다. 따라서 2차선에서의 차가 1차선 보다 더 느린 시간이 6분이나 더 길다.

그러면 과연 실제로 어느 차선이 더 빠른 것일까. A지점에서 C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총 시간은 1차선도 2차선도 똑같이 18분. 따라서 두 차선의 평균 속력은 똑같다. 하지만 1차선의 운전자나 2차선의 운전자 모두 상대방 차선이 빨라 보이는 시간이 더 길다. 즉 도로 상의 전체 교통상황을 알지 못하고 자기 주변 상황만으로 판단하면 대부분의 경우 재수 없게도 자기가 선택한 차선이 더 느리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 도로상황은 여기서 예를 든 경우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선 한 차선이 이웃한 차선보다 더 빠른 구간의 위치가 계속 변한다. 또한 차선간의 차량 이동으로 인해 이런 구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차선이 더 빠른 구간이 나타날 확률과 더 느린 구간이 나타날 확률이 평균적으로 봤을 때 같다면, 이웃 차선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구간을 통과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빠른 속력 때문에 그만큼 짧아지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구간을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진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차선에 있는 운전자가 자기 차선이 더 느리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더 빠르다고 느껴지는 시간보다 길어지게 된다. 따라서 자기 차선이 평균적으로 더 느리다고 생각되는 경우의 상당수는 운전자의 단순한 착각일 뿐이다. 이것이 차선을 바꾸고 나서 원래 차선이 더 빨라 보여 차선 바꾼 것을 후회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떠한 차량 흐름 상황에서도 자신의 차선이 제일 느리다고 느낄까. 이에 대한 컴퓨터 모의 실험의 결과가 있다. 레델메이어박사와 티브시라니박사가 평균 속력이 같은 2개 차선의 도로 상황을 모의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차량 밀도가 1km당 20대 이하일 때는 자기 차선이 더 빠르다고 느끼는 시간과 이웃 차선이 더 빠르다고 느끼는 시간이 거의 같다. 하지만 차량 밀도가 이보다 커지게 되면 이웃 차선이 더 빠르다고 느끼는 시간이 자기 차선이 더 빠르다고 느끼는 시간보다 점점 길어지게 된다고 한다.


운전 중 시야가 주로 전방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추월한 차보다 자신을 추월한 차가 시야에 오래 남는다.


도로에서 보이는 과냉각수의 성질

한편 운전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막히는 경우가 있다. 눈이나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사고가 났나 살펴봐도 사고 흔적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차가 더 많은 것도 아닌데 평소보다 막히는 경우가 있다.

언뜻 보아서는 여러가지 상황이 여느 때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잘 뚫리고 어떤 때는 막힌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이 현상은 교통 흐름이 가지는 한가지 특이한 성질 때문에 발생한다. 흔히 차량 대수가 비슷하면 같은 도로에서 비슷한 속력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통 흐름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서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들이 발표됐다. 도로 상황이 똑같고 차량 밀도가 비슷하더라도 제법 다른 교통 상황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통 흐름의 이런 성질은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과냉각수와 유사한 점이 있다. 흔히들 물은 0℃에서 언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주 깨끗한 물을 병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얼려보면 물의 온도가 0℃ 아래로 내려갔는데도 불구하고 얼지 않고 액체로 남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빙점 아래에서 물이 여전히 액체 상태로 존재할 경우를 ‘과냉각수’라고 한다.

어떻게 과냉각수가 존재할 수 있을까. 0℃가 물의 어는점이라고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지식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 분명히 얼음이 액체 상태의 물보다 더 안정한 상태이다. 하지만 과냉각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때가 일종의 준안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과냉각수가 얼음으로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중간 단계를 거쳐야 되는데 얼음으로 가는 중간 단계가 과냉각수보다 더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냉각수가 절대적으로 안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어떤 형태로든 아주 약간 변형된 상태보다는 안정하기 때문에 제법 긴 시간 동안 얼지 않고 남아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때 과냉각수를 흔들어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냉각수에서 얼음으로 가는 중간 과정을 이같은 외부의 강한 자극으로 인해 간단히 통과하고 얼음으로 변한다.

교통 흐름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교통 흐름의 상태가 한가지가 아닐 경우, 어떤 충분한 세기의 외부 자극이 있으면 한가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차량이 급제동을 한다든지, 갑작스럽게 차선을 변경한다든지와 같은 변화에 의해 순간적으로 교통 흐름이 와해될 수 있다. 이런 자극에 의해 잘 뚫리던 도로가 별다른 사고 없이도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의 상황이 비슷해도, 어떤 때는 잘 뚫리고, 어떤 때는 잘 막힌다. 교통흐름이 가지는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0℃ 이하에도 얼지 않는 과냉각수처럼 교통흐름이 준안정 상태에 있을 때는 조그만 자극에도 막대한 교통체증 을 불러올 수 있다.


급제동이 가져온 교통 체증

그렇다면 도로에서는 어떤 경우에 과냉각수와 같은 준안정한 교통 흐름이 생길까. 교통 흐름의 준안정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흔히 생각할 때 가장 이상적인 교통 상황, 즉 단위 시간 당 차량 통과 대수가 최대가 되는 상태가 불행히도 과냉각수와 비슷한 준안정 상태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차량 대수가 비교적 많으면서도 차량 소통이 원활한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어떤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 뒤따라오는 차들의 흐름을 아주 다른 상태로 바꾸어 버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만약 교통 흐름이 원활했던 한 준안정 상태에서 교통 흐름이 좋지 않은 상태로의 전환이 시작되면, 이 상황은 마치 유리 한 구석에서 생긴 금이 전체로 퍼지는 것처럼 넓은 도로 지역으로 퍼진다. 결국 한참 뒤에 따르던 차들은 별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막힌 도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전환은 운전자들의 운전 시간이 큰 편차를 보이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령 한 지점에서 몇십분 차이로 출발한 차량들이 똑같은 도착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심한 경우 몇시간까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차들이 원활히 소통되던 상태로부터 교통 흐름이 안좋은 상태로의 전환 원인을 제공한 차량이나 이 차량의 바로 뒤를 따르던 차량은 교통 흐름이 안좋아진 상태를 거의 경험하지 않게 되지만, 교통 흐름이 안좋은 상태로의 전환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 그 지역을 지나는 운전자는 많은 시간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점은 없을까. 교통 체증을 줄이는 가장 생각하기 쉬운 방법은 도로를 많이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도로가 늘어나는 속도가 차량 대수의 증가 속도를 따라 잡기는 힘들어보인다. 아직까지 시원하게 교통 체증을 해결할 방법을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 차선이 남의 차선보다 빠르다고 느낀다고 조급해서 옆 차선으로 옮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갑작스런 무리한 차선 변경은 교통 체증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운전자가 이런 교통 흐름의 성질을 앎으로써 조금이나마 체증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우 연구원

🎓️ 진로 추천

  • 교통·철도공학
  • 심리학
  • 도시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