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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유전자는 존재하는가

행·불행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은 유교사상의 하나다. 맹자의 이 이론은 사람은 원래 착하게 태어나지만, 환경의 영향에 의해 그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성격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행복유전자니 자살유전자니 하는 ‘성격유전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성격뿐 아니라 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질병(신경정신계 질환)이 유전자와 관련된다는 주장들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뇌의 크기, 지능이나 이외의 다른 뇌기능을 관할하는 유전자의 수나 위치에 대해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약 30억개의 DNA중 약 1%쯤만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1%의 차이가 한쪽은 만물의 영장으로, 다른 한쪽은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유인원으로 만들었다. 사실 유전의 물리구조인 DNA는 종간에 전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고양이의 DNA, 말의 DNA, 인간의 DNA를 화학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구리와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DNA를 구성하고 있는 4개의 염기, 즉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아데닌(A)의 배열에 달려있다. 모든 생명체는 G, C, T, A, 네글자의 배열에 따라 존재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모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유전자 중 일부만이 특정한 단백질을 생산하면서 각 세포의 기능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한 세포가 분열돼 만들어졌지만, 유전자가 특정 세포마다 다르게 발현되기 때문에 다른 모양, 다른 기능을 갖는 조직과 기관들이 우리 몸속에 있는 것이다.

즉 피부세포와 신경세포는 같은 DNA, 같은 유전자들을 갖고 있지만 신경세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들 중 많은 부분이 피부세포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 각 세포마다 유전자로부터 받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단백질도 다른 것이다.

뇌세포도 우리 신체의 다른 세포들처럼 유전부호를 가지고 있다. 뇌와 관련된 기능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는 DNA로부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중간과정에서 유전 정보가 바르게 전달되느냐,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단백질이 형성되는 과정
 

탐구성과 창조성, 스릴을 좋아하는 성격유전자

올해 이스라엘의 헤르조기념병원의 엡스타인박사와 미국국립보건원의 벤자민 박사는 도파민 수용체 중 제4형 유전자가 탐구성, 창조성, 스릴을 좋아하는 성격과, 완고하고 신중한 성격을 일부 결정한다고 보고했다. 제4형 유전자의 3번 엑손이 길면 창조성, 탐구성이 높고 스릴을 추구하는 성격을 갖고, 3번 엑손이 짧으면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 된다는 것이다. 이 유전자는 11번 염색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창조와 고위 정신기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기 때문에 도파민이 결합하는 수용체의 유전자가 창조성, 탐구성과 같은 인간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비교적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도파민 4형 수용체의 결함으로 정신분열병이 발생돼 사고장애와 환각, 망상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한편으로는 정신분열병은 6번 염색체에 있는 어떤 유전자의 이상과 관련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성격유전자는 외부환경과의 끊임없는 교신을 통해 상당부분 변화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적 성향이 나타나느냐 나타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유전자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폭력을 예방?

저돌성과 폭력성은 세로토닌 관련 유전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예측도 있다. 폭력성이 높은 사람이나 자기자신에 대한 폭력이 심한 사람, 즉 자살하는 사람에게는 세로토닌 관련 유전자의 작용이 낮다는 것이다. 또 세로토닌 결핍이 과격한 행동뿐 아니라 병적인 도박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나와있다. 살인자의 뇌에서도 세로토닌계의 결핍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가 일부 나와 있다.

지금까지 정신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살인을 할 경우에는 법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그러면 정신병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세로토닌 결핍이 증명된 살인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은 인간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에 일대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등 뇌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은 연쇄 살인자나 광범위한 폭력 소요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예방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신경 정신 질환에 어떤 한 유전자가 원인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인간의 성격은 한 유전자로부터의 단순한 정보전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같이 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격에 따른 행동장애를 진단하는 것은 내과적 질환을 진단하는 것과는 다르다.

유전적 연구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제한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미국 필라델피아 근처, 네덜란드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조울병이 유전적으로 잘 걸린다는 보고와 11번 염색체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이 발견됐다. 그러나 조울증에 걸린 네덜란드인의 일부는 11번 염색체에 이상이 없었다. 즉 이들이 다른 형태의 질병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부터 특정 질병에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찾아내게 되면, 해당유전자를 변화시키거나 유전자 산물을 중화시킬 수 있는 약물이 새로운 치료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유전자들
 

유전자 염기배열을 방사성 물질로 염색한 것.
 

알츠하이머 치매에 관한 유전적 연구는 이 병의 치료에 밝은 미래를 기약한다. 21번 염색체에 있는 아밀로이드 유전자가 대부분의 노인성치매의 원인 유전자로 알려지고 있다. 또 60세 이전에 발생하는 유전적 조기 치매환자의 90%가 14번 염색체에 있는 조로 유전자의 결함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나머지 10%의 조기 치매 환자는 1번 염색체에 있는 또 다른 조로 유전자의 이상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또한 19번 염색체에 있는 아포이포(ApoE 4)단백질 4형 유전자가 알츠하이머 치매 발생을 3배 이상 높여준다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아포이(ApoE)유전자 4형을 가진 사람들은 2형이나 3형을 가진 사람들보다 치매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아포이유전자는 원인 유전자가 아닌 ‘잠재적인’ 위험 유전자일 뿐이다. 이 유전자형 검사를 통해 치매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지만, 반드시 치매가 발생된다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현재로서는 효과적인 치매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아포이검사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는 단일 질환이기보다는 여러 유전자가 관련돼 일어나는 복합 질환군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이외에도 40개 이상의 신경정신계 질환이 유전자 결함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100%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전적 경향을 가진 뇌질환에서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유전자가 얼마만큼 표현되느냐에 따라 상당히 질병 양상이 달라진다. "유전자가 100% 완전히 표현된다면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100% 그 질병에 걸릴 것"이라고 워싱턴대학 의사학 및 유전학 교실과장인 알버트 존슨 박사는 말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어떤 사람은 아주 심하게 유전이 되고 어떤 사람은 병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를 정도로 아주 약하게 유전된다. 따라서 뇌질환의 유전자 진단으로 어떤 사람이 질병관련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 이것은 “이 사람이 질병에 걸릴 것이다”라는 사실보다 단지 질병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흔히 “아이의 성격은 부모를 닮는다”고들 생각한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전자를 동시에 받았으므로 당연한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반쪽 유전자를 재료로 ‘성격’이라는 집의 기본 틀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집을 어떤 재료로 꾸미냐에 따라 오두막이 될 수도 있고 궁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교육이나 사회적 환경에 의해 사람의 성격은 바뀔 수 있다. 또한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자가 더 많이 나타날 수 있고 적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한 개의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유전자의 결함을 밝혔던 캘리포니아 어빈대학의 존 워스쿠스는 “5번 염색체의 해당 유전자 결함을 밝히는 일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유전자 연구는 어렵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뇌에 대한 연구는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를 아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뇌정보 전달체계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뇌에 관한 새로운 분자생물학적 발전이 있어야 한다. 2005년에 게놈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인간유전자에 있는 30억개의 화학적 암호가 드디어 우리 손안에 있게 될 것이다. 많은 뇌질환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연구 결과들은 뇌질환 연구에 상당히 공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어떤 질환에 대한 유전자 결함을 안다고 해서 곧 바로 그 질병을 치료하거나 발병 메커니즘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쉬 니한(Lesh Nyhan) 증후군은 어린이들이 자기 자신을 물어뜯고 자신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병이다. 손가락이나 입술을 물어뜯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의 치아를 뽑는 것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이 질환이 발견될 당시에는 발생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얼마 후 어떤 유전자의 결함으로 생긴다는 것이 밝혀졌고, 결함이 일어나 있는 유전자 산물(단백질)도 발견됐다. 그러나 왜 레쉬 니한 증후군 환자가 자신을 물어뜯는 행위를 하는지 의사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자가 규명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뇌의 구조와 기능 속에서 해당 유전자가 이해되어야 한다. 즉 해당 유전자가 뇌구조와 뇌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신신경질환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유전적 발견은 정서장애(조증과 우울증), 불안(공황, 두려움, 강박증), 그리고 사고장애(정신분열증)와 같은 3대 유전적 정신질환에 대한 기존의 우리 생각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엑손
인간의 DNA에 있는 염기 중 1%미만이 유전 정보를 전달한다. DNA에서 핵 바깥으로 정보를 전하는 부분을 엑손(exon)이라고 부르며 정보를 전하지 않는 부분을 인트론(intron)이라고 한다. 엑손부위는 인트론에 의해 여러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인트론이 존재하는 이유와 인트론의 기능은 현재 잘 모르지만 DNA구조를 안정화시키지 않나 여겨지고 있다.

인간 유전자 지도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DNA 염기 배열을 완벽하게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되면 유전자의 기능적 청사진과 인간 진화의 역사를 밝혀낼 수 있는 것이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5만-10만개에 이르는 유전자 중 3%밖에 규명되지 않았다. 유전자 규명에 가장 기본적인 일은 염색체 상에서 유전자의 위치를 결정하는 매핑(mapping)이다. 유전자 지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번에 제공하는 유전자 지도는 물리지도(physical map, 왼쪽)와 밀도지도(density map, 오른쪽)다.

염색체에는 수만개의 염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물리 지도의 단위는 메가염기쌍(Mb, mega base, 1Mb는 염기가 ${10}^{6}$쌍이 있다는 뜻)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제 1번 염색체에는 2억3천6백만개의 염기가 들어있다. 물리 지도마다 독특한 띠가 나타나는 것은 염색체를 짐사(giemsa)라는 염색물질로 염색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타나는 독특한 띠로 염색체를 구별한다.


밀도 지도는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분포와 밀도를 나타낸다. 1만6천개가 넘는 유전자를 일일이 나타내기에는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일정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넓은 바다에서 섬이 뜨문뜨문 있는 것처럼, 유전자 배열에서도 유전적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는 몰려있기도 하고 띄엄띄엄 있기도 하다.

밀도 지도에는 센티모르간(cM, centiMorgan, 약 ${10}^{6}$ 쌍 정도의 염기가 있다)을 단위로 사용했다. 감수 분열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교차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밝혀낸 유명한 생물학자 모르간의 이름을 따 cM이라는 단위가 생겼다.

이 유전자 지도는 미국의 유수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와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인터넷에 제공한 유전자 지도 정보를 근거로 제작했다.
 

인간 유전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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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서유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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