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는 "마누라는 빌려줘도 씨감자는 안 빌려준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그만큼 씨감자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다.
감자농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감자중에서 좀 통통하고 실해 보이는 '놈'을 씨감자로 선정, 겨울철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듬 해 칼로 2등분 또는 4등분해 땅에 묻으면 땅속에서 새 감자가 자란다. 특히 요즘같이 겨울에는 씨감자의 눈을 자른 뒤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재를 뿌려 관리해 왔다.
이처럼 감자농사의 '핵'에 해당하는 씨감자는 매년 7~8만t이 필요하다. 값으로는 약 25억원어치가 겨우내내 농가의 구석에 '별볼일 없이 '저장되고 있는것이다. 게다가 씨감자는 비위생적인 관리로 하릴없이 썪어가기도 했다.
이런 '비경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이에 생각이 미친 한국과학기술원 유전공학센터 정혁 유장렬박사팀은 콩만한 크기의 감자, 그것도 씨감자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작년겨울, 마침내 그 결실을 보았다. 실제 감자의 축소판, 즉 감자가 가지는 모든 유전정보를 지닌 채 크기만 콩알만한 씨감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소형 씨감자는 감자의 줄기를 인공적으로 조직배양함으로써 생산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절한 환경조건과 생장호르몬이 주어진다. 어찌 보면 간단한것처럼 보이지만 제조과정중에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아 서구의 과학선진국도 손을 들었을 정도다.
이 연구로 작년에 농업과학상을 받은 정혁박사는 "배양액의 조성, 배양액 용기, 식물호르몬 농도, 온도, 광도, 광주기 등을 적절하게 조성하는 일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감자가 주식이다시피 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이미 1950년대부터 인공씨감자에 눈을 돌렸으나, 생산수율이 낮아 그동안 실용화에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비해 정박사팀이 만든 인공씨감자는 구미의 인공씨감자보다 생산수율이 20~30배 높아 경제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박사는 자신이 배양한 인공씨감자로 감자농사를 지었다. 말하자면 검정시험을 직접 한 것이다. 정박사네 인공씨감자밭의 감자 생산량은 천연씨감자밭의 60~70%정도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박사는 자신의 '허술한 농사솜씨'탓으로 돌렸다.
인공씨감자밭에서 나온 감자를 먹어 본 사람은 기존 감자와 맛의 차이가 없다고 전한다. 또 영양실험결과 질의 차이도 없고 번식력도 떨어지지 않음이 밝혀졌다.
경제적으로도 인공씨감자의 등장은 반가운 소식이다. 인공씨감자 한개의 생산단가는 3~4원으로 종래 씨감자의 10분의 1정도.
또 인공씨감자는 위생적으로도 만점이다. 배양실 내의 인공배지에서 무균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각종감자병에 감염되지 않는 것.
그 밖에도 연중무휴 생산이 가능해지고 보관 및 수송이 간편해지는 잇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아직 검정시험도 부족한 상태고 밀식에 따르는 문제점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천연씨감자 대신 콩알만한 인공씨감자를 보급하면 밀식하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학문적 뒷받침이 시급한 것이다.
감자처럼 번식하는 식물을 영양번식체라고 부르는데 고구마나 마늘도 여기 속한다.
그래서 정박사팀은 인공씨감자의 성공을 여세로 인공씨고구마 인공씨마늘에도 도전하고 있다. "번번히 실패했지만 인공씨고구마는 꼭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감이 든다. 하지만 인공씨마늘은 아직 벅찬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