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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과 인디펜던스 데이

초자연현상에 무너지는 과학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이 말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기 어렵다는 말. 그러나 우리는 볼 수도 없으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서서히 믿어가고 있다. 고도의 과학시대에 난무하는 불가사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현재 전 세계를 뒤흔드는 문화 상품 두가지가 있다. 바로 ‘X파일’(X-File)과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전자는 전세계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집단 공포에 떨게하는 TV시리즈이고, 후자는 도시만한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를 무차별 공격하는 외계인에 관한 영화다.

예전 같으면 턱없는 이야기로 무시당하거나, 어린이 잡지에나 등장할 만한 소재였던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두 SF에는 전면에 등장한다. 외계인, UFO, 반인반수, 흡혈귀 등이 너무나도 사실적이면서 당당하게 등장한다. 그 동안 모르고 있었냐는 듯이 뻔뻔스럽게.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보는 관객들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X파일’ 을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라면, FBI가 외계인과 UFO에 관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가 인정받고, 물질주의적 과학이 널리 퍼져 있는 오늘날,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시대정신이며 경고다. 그것은 세계가 결코 합리적인 사고로 완벽히 이해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신념이며, 물질주의적인 서양과학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우리는 지금 지구인의 사고를 여지없이 폭격하는 ‘X파일’ 과 ‘인디펜던스 데이’ 라는 두 문화현상을 통해 무너져가는 과학의 신뢰를 또 한번 읽을 수 있다.
 

X파일의 주인공. FBI요원 폭스 멀더와 데이나 스컬리(오른쪽)

 

보여지는 것만 믿는다

‘X파일’ 은 1993년부터 미국의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하고, FBC TV가 방영하고 있는 공상과학물이다. 각 시즌마다 20여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되는데,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세 번째 시즌의 이야기들이 방영되고 있다. 주인공인 FBI요원 폭스 멀더와 데이나 스컬리는 FBI에서 주로 UFO관련 사건을 중심으로 극비로 분류되어 있는 사건들의 목록인 ‘X-File’ 사건만을 조사한다. 어릴때 동생이 UFO에게 납치당한 멀더는 열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직관을 통해 진실을 추적한다. 반대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스컬리는 멀더의 이론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와 완벽한 팀워크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사건들은 항상 의문을 남긴 채, 결코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한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우리는 미국정부가 UFO와 외계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여지없이 믿게 된다. 멀더와 스컬리가 맞서 싸워야할 적은 외계인이나 UFO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와 현상을 숨기고 조작하려는 미국정부인 것이다.

우리는 멀더와 스컬리의 공범이면서, 정부의 은폐에 대한 은밀한 목격자이기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믿게된다. 논리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조사로 설명되지 않지만, 본 것은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Seeing is believing!).

당당하게 등장하는 외계인

항상 의문을 남긴 채 끝을 맺는 ‘X파일’ 과는 달리,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는 너무도 당당히 외계인을 등장시킨다. 로스웰 사건을 의심하고 외계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친다. “아직도 몰랐어?”

‘인디펜던스 데이’ 는 소문난 SF팬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영화 ‘스타게이트’ 도 감독했다)이 70년대 재난영화와 공상과학을 합쳐 보겠다는 야욕을 담은 올 여름 흥행 대작이다.

또 이 영화는 H.G. 웰즈의 고전을 영화화한 1953년작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의 변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외계인에 대항해 싸우는 미국정부와 인류의 단결을 보며 걸프전을 연상할 수 있으며,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곧 인류의 독립기념일이라는 미국의 터무니없는 우월주의를 읽을 수 있다.

‘인디펜던스 데이’ 는 7월 2일 갑자기 전세계 주요 도시 상공을 고도의 과학기술을 갖춘 외계인들의 우주선이 점령하면서 시작된다. 24km 크기의 비행접시가 드리운 공포의 그늘 속에서 사람들은 술렁인다. 대통령 보좌관의 남편이자 MIT 박사인 데이비드 레빈슨은 외계인 모선의 공격 신호를 해독해 대통령에게 알림으로써 상황은 돌변한다. 외계인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자, 백악관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한순간에 파괴되고, 자유의 여신상도 힘없이 쓰러진다.

절박한 상황에서 미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뉴멕시코주 로스웰에 추락한 외계인과 우주선이 ‘51구역’ 에서 연구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7월 4일 대통령을 비롯 과학자, 흑인 조종사, 스트리퍼, 알코올 중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지구수비대’ 는 추락한 로스웰 우주선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실어 보내 대반격을 시작한다. 온 세계의 반격으로 외계인의 우주선은 추락하게 되고,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인류의 독립기념일이 된다.

‘인디펜던스 데이’ 에 나오는 반격의 묘미는 외계인 비행정으로 외계인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1947년 미국의 로스웰 지방에 추락한 비행접시를 미정부가 일기예보용 기구로 속여, 탑승했던 우주인 시체와 함께 뉴멕시코주 공군기지 내 ‘51구역’ 에 옮겨갔다고 믿고 있다. 영화는 로스웰 사건에 착안해, 그 때 얻은 우주 비행정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실어 되돌려 보냄으로써 우주선의 방패막을 뚫는다.

이 아이디어는 우리로 하여금 의심없이 로스웰 사건을 믿게 만든다. 영화는 조금의 신비한 기운도 없이 다짜고짜 등장하는 외계인의 모습을 시작으로, 초자연적인 무리들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우리의 처절한 모습을 2시간 동안 쉴새없이 보여줌으로써 ‘X파일’ 의 멀더에게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가 ‘X파일’ 과 다른 점은 단도직입적으로 초자연현상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며, 동시에 정부에 대한 신뢰를 단번에 회복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X파일’ 이 우리를 끊임없이 외계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면 ‘인디펜던스 데이’ 는 원천적으로 의심의 여지를 막는다. 외계인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알코올중독자와 그를 놀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후의 반전으로,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성적인 사람들을 조롱한다.

또 초자연적인 현상의 진실을 항상 감추기만 하는 정부의 모습을 단번에 믿고 따라야 할 지구수비대로 바꾸어 놓은 것도 두 SF의 다른 점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는 ‘X파일’ 보다 훨씬 정치적이며, 보수적이고, 단도직입적이다.
 

‘인디펜더스 데이’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스필버그가 꿈꾸는 외계인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듯 하다. 백악관을 날려버리고, 도시를 파괴하는 등 인간보다 더 진보한 문명을 갖고 있으면서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상식 벗어난 상식밖의 근거

우리는 두 SF에서 두 가지를 주목할 수 있다. 하나는 초과학적인 현상에 대한 신뢰의 의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적’ 이라 하면 논리적이고 객관적이어서 믿을만한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은 유효했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곧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거나, 인간의 사고에서 창출된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외계인의 모습도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거나 약간의 변형만 가진다. 통나무처럼 생겼다거나, 자동차처럼 생긴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외계인 비행선에 침투시켜 그들의 방어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생각도 매우 과학적인 처방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컴퓨터 시스템도 인간의 컴퓨터 시스템과 같다는 비약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제 영화나 TV 드라마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외계인을 실생활에 조금씩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과학도 양념처럼 한몫을 한다. 약간의 과학적인 기교를 초과학적인 현상을 믿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영화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X파일’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나 밀교 주술사, 흡혈귀 같은 현상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흥미롭게 여기거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명백히 과학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실은 항상 저 밖에 있지만, 과학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해 볼 만한 다른 하나는 외계인에 대한 집단 공포와 피해망상의 근원에 대해서다. 외계인이 모두 영화 ‘E.T.’ 에 등장하는 외계인처럼 우호적일 수는 없다.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불안과 공포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주를 탐사하던 중에 우리보다 덜 문명적인 외계 행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무차별 공격을 할까?

외계인과의 전쟁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의 극단적인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무엇’ 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이다. ‘X파일’ 과 ‘인디펜던스 데이’ 의 상업적 성공은 그것이 ‘집단공포’ 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대중 문화와 집단 무의식의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세기의 불가사의’ 와 수많은 UFO 목격담에 익숙해 있지 않은가!

‘X파일’ 과 ‘인디펜던스 데이’ 는 매우 재미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항상 신기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아직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현상에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 상식을 벗어난 주장에는 상식을 벗어난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 것을 다 믿기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과학이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하더라도, 초자연적인 현상에 들떠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 영화를 볼 때는 생각없이 즐기지만, 어느새 우리의 연약한 무의식을 파고들지 모르는 초과학적인 현상과 그것에 대한 피해망상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좀 더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고, 더욱 진지하게 영화를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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