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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약과 한약으로 나눠졌을까

양약과 한약은 모두 자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양약과 한약으로 나눠지게 됐을까. 과학의 발전과 함께하는 양약의 변천사를 알아보자. 이 글을 읽고 의문이 생기거나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독자는 주저없이 과학동아 편집부에 연락하길 바란다.
 

서양 중세를 지배한 갈렌의약의 창시자 갈렌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약을 한약(韓藥)과 양약(洋藥)으로 구분한다. 외형상 한의원에서 지어주는 동·식물·광물 자체로 된 약을 한약이라고 하고, 약국이나 병원에서 주는 알약, 분말약, 주사약 등을 양약이라고 부른다.

한약은 중국의 상한론(傷寒論, 2세기경), 본초강목(本草綱目, 16세기 말), 한국의 의방유취(醫方類聚, 15세기 중엽), 동의보감 (東醫寶鑑, 17세기 초) 같은 책에 처방근거가 나와 있다.

한약의 처방근거와 이론이 중국적인 색깔을 띠고 있는데도 왜 ‘한국의 약’이라는 뜻의 한약(韓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약은 우리 선조의 지혜가 모아진 약으로, 서양사람이 발전시켜 온 것을 양약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우리 고유의 약이 필요하다” 라는 상대문화적 비교 때문에 누군가 한약과 양약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음양오행설 vs 4체액설
 

중국 최초 의학서인 황제내경(黃第內經). 초기의 내경은 기원전 5-3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과학적인 약이 나오기 전에 옛 서양에서는 우리의 한약과는 다른 형태의 약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약국에서 볼 수 있는 양약이 탄생하기 전까지 서양에서도 한약과 유사한 동·식물·광물 처방이 약으로 쓰였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약 발견 역사는 동서양의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적으로 자연에서 약을 찾아온 것이다.

현대약이 탄생하기 전인 19세기까지 서양의약은 갈렌과 그의 학파에 의해 지배됐다. 갈렌은 생전에 1백권이 넘는 책을 남겼고, 현재도 22권 이상이나 되는 그의 저서가 남아 있다. 대단한 실험가인데다 병에 대해 적극적인 처치를 강조한 갈렌은 여러 가지 동·식물·광물의 복합처방을 창안했다.

갈렌이 활동하던 시기에 중국에서는 음양오행 이론이 확립됐다. 황제내경(黃帝內經), 상한론,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같은 한의약의 고전들도 쓰여졌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에서 펴낸 ‘실용 및 의약 식물연구’에는 중국 전통의약이 ‘음양 개념, 오행 개념, 자연의 영향이론, 그리고 환자를 직접 관찰해 나온 추론에 기초한 아이디어를 포함한 독특한 이론체계의 약’으로 정의돼 있다.

동양의 음양오행 이론과 다르게 서양에서는 4체액설(4體液說)을 약을 만드는 기본원리로 삼았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수록된 이 원리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체액이 불균형일 때 병이 생기며 약은 이 균형을 되찾아 주는 물질이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1천5백년이 넘도록 동양과 서양은 음양오행과 4체액설이라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사변적이고 경험적인 이론에 근거해 약을 제조했다.

그런데 16세기 서양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과학혁명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데카르트, 베이컨, 갈릴레이는 좀 더 진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탄생시켰고, 이 새로운 방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사변적 자연관, 물질관, 생명관이 옳지 않음을 입증했다.

과학혁명이 시작될 때 스위스 바젤대학의 파라켈수스는 갈렌의 책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그는 4체액설이 옳지 않으며 병이란 국부적이고 여러 종류가 있음을 역설했다. 이 견해는 18세기 모르가니와 비샤의 기관·조직병리설을 거쳐 19세기 피르호의 세포병리설로 정리, 입증됐다. 예를 들어 뇌신경 세포 이상은 정신적 병의 원인이고, 췌장 세포 이상은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약 역사상 파라켈수스의 가장 훌륭한 지혜는 약은 동·식물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약성분을 분리해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점이다. 그는 동·식물을 추출, 증류, 승화 등의 방법으로 처리해 약을 얻었는데, 갈렌파 의사들보다 환자를 잘 치료해 명성을 얻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베이컨, 갈릴레이의 실험과학적 방법은 진화론적 지질학, 생물학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보편화됐다.

이 방법은 약제조에도 적용됐으며 동·식물로부터 순수한 약효성분을 분리하고 분리성분의 화학적 성질도 규명했다. 이런 약효성분을 실험약리학적 방법으로 연구해 약으로서의 효능성, 안전성의 균형이 파악된 과학적 약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1805년 독일의 제르튀르너가 아편에서 분리한 모르핀, 1820년 프랑스의 펠르티에와 카방투가 키나피에서 분리한 키니네가 최초의 현대약에 속한다. 이 현대약이 바로 지금의 양약이다.


과학혁명 출발기에 살았던 스위스 의사 파라켈수스(1493-1541). 그는 4체약설을 부정하고 개개의 질병에 천연에서 분리한 특이한 약을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약효 찾아 1백년

한약에서는 4기와 5미의 약성을 중시한다. 4기(氣)는 한(寒), 열(熱), 온(溫), 냉(冷)을 일컫는 것이고, 5미(味)는 매운맛, 신맛, 쓴맛, 단맛, 짠맛을 말한다. 4기는 ‘차가운(寒) 것을 치료하는데 뜨거운(熱) 약을 사용하고 뜨거운 것을 치료하는데 차가운 약을 사용한다’는 식으로 병증상에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이다. 5미는 일반적인 약효와 관계있으며 약이 작용하는 신체의 일부와 관련돼 있다고 여긴다.

서양에서도 맛과 약효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영국의 유명한 의사 위더링은 1785년 디기탈리스의 수종(水腫)치료 효과를 발표한 책에 “식물의 형태, 색깔, 맛, 냄새는 그 식물로 치료할 병에 대한 효과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적었다. 의약사에서는 이것을 ‘특징주의의 완전한 배척’이라고 표현했다.

특징주의란 성경에 바탕을 둔 것으로 “하느님이 자연을 창조할 때 이미 어떤 물체에 일정한 특징을 부여해 인간이 스스로 필요한 약을 선택토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징주의는 과학이 있기 전 서양의약을 지배하던 약효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약효와 관련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약효성분의 화학구조다.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리비히와 뵐러는 1838년 발표한 공동 논문에서 “생리적 중요성과 화학적 본질의 관계를 증명할 수 없는 한 이들 물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적고, 과학적 연관성이 없는 유리된 사실일 뿐이다”라고 적어 이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그런데 실제로 약효와 관계있는 것이 약의 3차원적, 동력학적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내는데는 1백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즉 약은 인체내에 존재하는 3차원적, 동력학적 분자(수용체)와 상호반응을 통해 약 작용을 한다는 것이 오늘날 확립된 양약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음양오행 이론, 4체액설, 4기5미 개념, 특징주의 믿음과 같은 것은 고대의 사변적 지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800년대 하반기, 약효와 관계있는 것이 약의 화학적 성질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동·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의 구조를 약간 바꾸면 좀더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하느님은 그 자체가 약성분인 동·식물을 창조하지 못한 것이다. 즉 생물체에 무수히 많은 성분을 포함시켜 개개 세밀한 기능을 수행토록 한 것이 아니라, 대신에 제한된 한 성분, 한 성분에 여러 기능을 부여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운영되도록 한 것이다.

한 예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마황에 들어있는 에페드린을 분리한 과학자들은 이 성분이 혈압을 올리고, 기관지를 확장시키며, 중추를 흥분시키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만일 천식환자가 이 약을 복용한다면 기관지를 확장시켜 천식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고혈압환자에게는 위험한 약이 된다. 또 불면증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에페드린의 구조를 바꾸어 수술시 혈압저하를 막는 약, 천식환자에게 적절한 약, 병적으로 잠만 자는 환자에 도움이 되는 약을 각각 만들었다.

그러나 약 사용의 사회적 원리는 과학적 발전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약을 탄생시킨 서양에서도 1900년대 상반기까지 제약 회사에서 동·식물 추출물을 제제화해 보급했다. 영국의 세계적 제약회사 글락소의 역사에 “1958년 6월 30일을 기해 전통약, 갈렌식 처방 약의 제조와 공급을 중지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학적으로 약효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약도 제제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약과 공존하는 전통약

중국, 인도, 한국은 전통약을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중국이나 인도의 경우, 국민의 의료문제를 현대약으로 해결하기에는 문화적 전통, 낮은 대중과학 수준에서 비롯된 전통약에 대한 깊은 믿음 때문에 현대 의료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또 다르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현대의료 공급에 문제가 없는데도 제도적으로 전통약, 즉 한약의 보급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한약이 양약에 보완적일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또 과학외적인 전통문화의 발전이라는 명분도 있다. 이런 한약 강조정책이 한약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키워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음양오행설 : 옛날 중국의 세계관으로 음양설과 오행설을 합친말. 음양설은 우주나 인간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이 상대적으로 성하고 망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또 이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을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원기라는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변화로 설명하는 것이 오행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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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강건일 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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