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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 자연의 복잡한 물질분리, 필요한 화합물 재구성

촉매의 마술

촉매는 물질의 반응속도를 변화시킨다. 촉매는 대개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지만 더러는 반응속도를 느리게 하는 촉매도 있다.

중세의 연금술사는 구리나 철처럼 값싸고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어줄 '현자의 돌'을 찾으려 했다. 또 한편에서는 초목이나 돌 등으로부터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약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이를 위해 갖가지 물질을 섞어서 반응시켰지만 '현자의 돌'이나 '마법의 약'을 찾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의 수고가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다양한 물질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으며 자연에서 물질을 얻어내기 위한 실험적인 방법과 물질을 합성하는 비법을 알아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촉매의 사용으로 물질 합성법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분리하거나 분리해낸 물질을 변형시키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에 존재하는 복잡한 화합물을 촉매작용에 의해 수소 산소 질소 일산화탄소 등 단순한 분자로 잘게 쪼갠 후 필요로 하는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고 있다. 이 화합물들은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얻은 물질보다 우수한 성질의 물질을 만들 수도 있다.

촉매는 이처럼 이전까지 만들어 낼 수 없었던 많은 물질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앞으로 인류의 미래에 닥쳐올 식량문제 에너지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를 푸는 중요한 열쇠다. 촉매야말로 '현자의 돌'이라 불릴 만한 것이다.

불꽃이 없는 난로

19세기 초 영국 과학자 데이비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그는 메탄가스와 공기의 혼합물 안에 백금 한 조각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백금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주위에 강한 빛이 났다 데이비는 백금을 꺼내 식힌 후에 이 기체 안에 다시 백금을 집어넣었다. 백금은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백금은 이처럼 반응을 빨리 하면서도 질량 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데이비가 여러가지 금속을 사용해 이 실험을 반복한 결과, 은 구리 철 등은 빛나지 않았고 팔라듐(pd)은 백금과 마찬가지 결과를 나타냈다.

이 실험을 통해 데이비는 백금이 메탄의 연소를 매우 빠르게 해서 마치 불을 붙인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결론을 얻었다. 백금이 있으면 상온에서도 연소가 가능하고 이때 방출되는 열은 백금을 강하게 빛나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같은 백금의 작용을 이용해 불길이 나지 않는 난로를 만들 수 있다. 프로판가스를 공기와 혼합해 기체 확산용 거름장치 속을 통과시킨 후 백금을 입힌 석면쪽으로 보내면 백금의 표면에서 프로판과 공기가 서서히 반응해 불길이 일지 않는 연소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통과하는 프로판가스의 압력을 약 1백분의 1기압까지 조절하면서 통과시키면 온도는 1백℃에서 1천℃ 전후까지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다.

이 백금 촉매 난로는 여러 면에서 이점이 있다. 공급되는 프로판가스에 비해 공기가 충분하므로 계속 불길 없는 연소가 진행될 수 있으며 연소 후의 생성물이라야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뿐이므로 독성과 공해가 전혀 없다. 촉매 난로를 병아리 사육장에서 사용하면 가스로 중독돼 병아리가 죽는 일도 없다.
 

(그림1) 백금촉매 난로와 그 이용

 

18세기 영국 과학자 프리스틀리는 점토를 넣은 관을 가열한 후 에탄올 증기를 통과시켰다. 그러자 에탄올과는 달리 밝은 불길을 내며 타는 기체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점토라는 고체 촉매에 의해서 에탄올 속의 수소와 산소가 2 : 1로 빠져나가 물이 되는 에탄올의 탈수반응이다.
 

애탈올의 탈수과정


프리스틀리의 실험에서 힌트를 얻은 다른 과학자들은 점토 대신 구리 철 은 등 여러가지 금속가루를 파이프에 넣고 가열한 후 여기에 알코올 증기를 통과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도 알코올은 분해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틸렌과 물이 아닌 아세트알데히드(${CH}_{3}$CHO)와 수소 (${H}_{2}$)로 분해됐다. 결국 알코올 증기가 무엇에 접촉했느냐에 따라서 다른 물질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 이후에 여러가지 화학반응에 점토나 금속을 촉매로 사용하게 됐다.

이 반응은 또 다른 이유에서 19세기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반응결과 만들어진 생성물질의 종류는 관속을 채운 물질의 종류에 의해 결정되지만 정작 관속의 물질은 반응 전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사파티에는 액체상태의 불포화탄화수소에 니켈 금속가루를 넣은 후에 고압의 수소를 넣고 가열해 포화탄화수소를 얻었다. 마가린은 이같은 실험결과를 토대로 불포화탄화수소인 식물성 기름을 니켈 촉매로 수소를 첨가시켜 만든 것이다.

상온에서 수소가 타는 현상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백금촉매와 접촉시키면 상온에서 수소가 연소한다. 아황산가스(${SO}_{2}$)가 대기중에서 산화해 황산가스(${SO}_{3}$)로 변화하는데는 최소한 3-4일이 걸리지만 백금을 접촉시키면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난다. 보통의 반응은 거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일어나지만 촉매가 존재하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독일의 과학자 미첼리히는 이러한 반응을 '접촉반응' 이라고 불렀다. 이는 반응물질이 어떤 특정물질의 표면과 접촉할 때 항상 같은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스웨덴의 과학자 베르셀리우스는 이렇게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을 '촉매', 접촉에 의한 분해 또는 화합 현상을 '촉매작용'(카탈리시스, catalysis)이라고 불렀다. 카탈리시스는 그리스어로 붕괴, 또는 분해를 의미한다.

활성화에너지와 촉매

촉매는 반응속도를 변화시킨다. 촉매는 대개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지만 더러는 반응속도를 느리게 하는 촉매도 있다. 전자를 정촉매라 하고 후자를 부촉매라 한다.

촉매에 의한 반응속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활성화에너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수소가 연소하는 반응을 예로 들어보자.
 

(그림3) 수소의 연소와 활성화에너지

 

수소가 산소와 반응해 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수소분자와 산소분자를 형성하고 있는 원자간의 결합이 끊어져야 한다. 화학자들은 이때 필요한 에너지를 활성화에너지 또는 '에너지 장벽'이라 부른다. 따라서 반응물질인 수소와 산소가 에너지 장벽을 넘을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반응이 일어나기는 불가능해진다. 이 반응의 속도는 일정한 시간 동안에 에너지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수소와 산소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상온에서는 에너지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수소와 산소의 수가적기 때문에 이 반응이 매우 느리게 일어나 우리의 관찰로는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러나 백금선을 수소와 산소의 혼합기체에 접촉시키면 상온에서도 연소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백금선이 수소와 산소가 에너지 장벽을 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것일까? 아니다. 백금선은 특별히 수소와 산소보다 온도가 높지도 않거니와 반응의 결과 백금선의 성질과 질량은 전혀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왜 수소가 상온에서 연소하는 것일까. 백금선의 역할은 무엇일까.

백금선은 에너지 장벽을 변화시킨다. 백금선은 에너지 장벽을 넘을 수 없는 수소와 산소를 보다 낮은 에너지 장벽을 통해 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렇다면 백금촉매는 수소와 산소를 어떤 방식으로 안내하는 것일까. 그리고 모든 촉매가 백금과 같은 방식으로 촉매작용을 하는가.

촉매와 제1차 세계대전의 관계

촉매의 반응 경로를 설명하는 이론은 여러가지가 있으며 이 이론들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촉매의 작용에 대해서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난에서는 황산의 제조과정과 암모니아의 제조과정을 예로 두가지 이론을 살펴보도록 하자.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여러가지 화합물이 필요해졌다. 그중 대표적인 화합물이 황산이었다. 황산은 이전까지 황산철의 염을 가열해 얻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수득률이 10%에 불과해 당시의 막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때 영국의 의사였던 J. 워드는 2백ℓ의 커다란 유리종 속에 유황과 소량의 초석을 함께 넣고 연소시켜서 황산을 얻었다. 이 방법에 의해 황산의 제조가 실험실 규모에서 공장규모로 이행되고 가격도 종래의 20분의 1로 떨어졌다. 그러나 워드의 유리종은 값도 비싸고 깨지기 쉬워 그 이상의 기술발전은 없었다.

존 로우벅은 연금술사 글라우버의 저서에서 '납은 황산에 침식되지 않는다'는 기록을 읽고 유리종 대신 납으로 만든 방속에서 황을 약간의 질산염(NaNO₃)과 섞어 가열해 당시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충분한 황을 제공했다. 이와같은 황 제조법을 연실법(鉛室法)이라고 한다.

이 반응에서 사용된 질산염은 이산화황이 삼산화황으로 산화되는 과정에서 촉매로 사용된다. 질산염은 연소될 때 여러 종류의 산화질소를 발생시킨다.
 

이산화황이 삼산화항으로 산화되는 과정


1806년 프랑스의 화학자 크레망과 데조룸은 산화질소의 촉매작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촉매가 반응물질의 하나와 쉽게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일산화질소는 산소와 반응해 이산화질소를 만들어낸다. 이 이산화질소는 이산화황과 쉽게 반응해 다시 원래의 일산화질소가 되고 이산화황은 산소를 얻어 삼산화황으로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이산화질소는 이산화황이 삼산화황으로 산화되는 것을 돕는 중간화합물이 되는 셈이다. 다시 분리돼 나온 일산화질소(촉매)는 다시 산소와 반응해 이산화질소를 만들고 이산화질소는 이산화황을 삼산화황으로 변화시킨 후 일산화질소로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과정이 이산화황이 모두 삼산화황으로 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촉매의 작용이 중간화합물을 만들어내면서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이론을 '중간화합물 이론'이라고 한다. 20세기 초까지는 이 이론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중간화합물의 작용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반응이 나타났다. 14세기 초에 초석(질산나트륨)을 원료로 하는 화약이 발명된 후 유럽 여러 나라는 원료의 주산지인 칠레로부터 초석을 수입해 화약을 제조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6년 전 독일의 화학자 하버는 수소와 질소 혼합가스를 높은 온도와 압력하에서 적당한 촉매에 접촉시키면 암모니아가 생성되는 것을 발견하고 방대한 수의 촉매를 탐색한 끝에 철 계열의 촉매반응에 성공했다. 이것은 곧 산업화돼 독일은 공기중 질소를 이용해 화약과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값싸게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발견으로 독일은 해상봉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세계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빌헤름 2세가 세계대전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이러한 화학기술 보유에 대한 자심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철 표면에서 일어나는 수소와 질소의 반응은 '흡착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고체의 표면에는 결합에 사용되지 못한 여분의 원자가전자가 있어서 거기에 충돌한 분자를 흡착하게 된다. 분자는 결합에 사용하고 있는 원자가 전자를 이용해 고체표면에 흡착한다. 이때 분자의 결합 이 현저하게 약화되기 때문에 작은 에너지만으로도 흡착된 분자의 결합을 파괴시킬 수 있다. 따라서 반응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만일 철 촉매가 없다면 결합을 깨뜨리기 위해 고온이 필요할 것이다. 철은 활성화에너지를 낮추는 촉매로 작용한다. 이것은 이 반응이 낮은 온도에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암모니아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5) 철표면에서 암모니아가 생성되는 과정
 

199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인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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