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장단점을 가진 두 요소를 융합하면 때로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융합 연구의 장점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기술의 발전을 꿈꾸는 의공학자가 있다. 진단과 치료 분야에 널리 쓰이는 초음파와 빛을 융합해 ‘광음향’ 기술을 연구하는 장진호 정보통신융합전공 교수다. 그를 9월 30일 의료융합기술연구실에서 만나 미래 의공학 기술의 동향을 들었다.
초음파와 빛, 공기 방울로 만났다
초음파와 빛은 의료 현장에서 진단과 치료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초음파는 투과력이 좋아 몸속 깊은 곳까지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고, 빛은 정상 조직과 질환 조직을 잘 구분하는 ‘대조도’가 좋다. 각각의 장점은 다른 기술의 단점이기도 하다. 초음파는 상대적으로 대조도가 나쁘고, 빛은 투과력이 약해 인체 깊은 곳까지 진단하거나 치료하기 어렵다.
의공학자들은 초음파(소리)와 빛의 장점을 더하고 단점은 보완하기 위해 두 기술을 융합한 ‘광음향(Photoacoustic)’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장 교수는 2010년대 광음향이라는 개념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고 연구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그는 “당시만 해도 국내에 관련 연구자들이 없었다”라며 “국제 공동 연구 과제를 통해 캐나다, 미국 등 해외 연구팀과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국내에서 광음향 기술을 처음 적용한 분야는 유방암 진단 영상장비다.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세포 또는 물질에 레이저를 쏜 뒤 이때 발생하는 초음파를 수신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덕분에 조기 유방암의 진단지표 중 하나인 미세석회화 조직을 광음향 기술로 찾아내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은 유방암을 조기진단하며, 안전하고 빠르게 조직검사를 하는 데 기여했다. 광학 영상의 높은 대조도와 초음파의 높은 공간해상도를 결합한 결과다.
이후에는 한발 더 나아가 초음파와 빛을 융합해 광열치료(PTT)와 광역동치료(PDT)의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시작했다. 레이저를 이용해 온도를 올리거나(광열치료) 활성산소를 발생시켜(광역동치료) 암세포를 파괴하는 기술로, 실제 의료현장에서 암 치료를 위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생체조직에 의해 빛이 산란해 충분한 빛 에너지를 암세포에까지 전달하기가 쉽지 않아 적용할 수 있는 범위에 제한이 있었다.
장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초음파와 빛 에너지를 함께 쬐면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빛 에너지 일부가 산란하더라도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실험해 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뮬레이션 결과보다 더 효과가 뛰어났다. 초음파와 빛이 단순히 상호보완 역할만 해서는 나타날 수 없는 결과였다. 장 교수는 유체 내에서 진동으로 공기 방울이 생기는 공동현상(Cavitation)에서 답을 찾아냈다. 초음파를 조사하면 조직에서 진동이 일어나고 공기 방울이 만들어진다. 이 공기 방울에서는 산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빛 에너지가 목표한 부위에 충분히 전달된 것이다.
그는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에 대해 연구원들과 함께 고민하던 중 이런 사실을 알아냈다”며 “이후에는 만들어진 공기 방울이 터지지 않는 조건도 찾아내 치료 효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2017년 11월호에 발표됐다. doi: 10.1038/s41598-017-16444-9
융합 연구로 확장하는 의공학 기술
최근 장 교수는 공기 방울을 이용한 광학 영상 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형광을 이용해 생체조직을 고해상도로 관찰하는 공초점 형광 현미경의 성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공초점 형광 현미경은 신약개발을 위한 동물실험과 수술 등에 널리 쓰이는 도구다. 공초점 형광 현미경도 산란에 의해 깊은 부위에서는 해상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왔다.
장 교수는 “암 수술 직후에는 주변 조직에 암세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초점 형광 현미경을 이용한 조직검사가 필수인데, 기존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조직검사를 하고, 수술도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복잡해진 미래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융합 연구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최근 산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4차 산업혁명 또한 융합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의료기기 연구 역시 융합 연구가 가장 필요한 분야다. 우리의 연구는 융합이 보여줄 수 있는 잠재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