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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겨울설 한계 뛰어넘은 새 멸종설

공룡은 왜 없어졌나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왜 공룡이 멸종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최근 경희대 김상준교수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목성에 충돌한 혜성 자료를 가지고 운석이 지구에 충돌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냈다.

바로 '대기권 재진입 충격이론' 으로, 공룡멸종 수수께끼의 새로운 열쇠다.

 

아리조나에서 발견된 운석 충돌 흔적으로 백악기 말에 생성됐다. 지름은 1.2㎞, 깊이는 1백70m.


1억6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오던 공룡이 6천5백만년 전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졌다. 왜 공룡들이 갑자기 사라졌을까. 이러한 미스터리는 1820년대 공룡화석이 처음 발견 된 후 1백7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공룡멸종의 원인을 밝혀보려는 노력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1년이면 3-4개씩 튀어나오는 멸종이론들 중 어느 것도 공룡이 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국내학자가 그 미스터리를 풀 새로운 공룡멸종설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이론은 경희대 김상준교수가 발표한 '대기권 재진입 충격이론'이다.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면 그 파편이 대기권 밖으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떨어지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지구 대기는 평균 2천℃의 고열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것이 공룡을 타 죽게 했을 것이라는 것이 이론의 요지다.

김상준교수가 제기한 공룡멸종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지금까지의 이론과 그 맹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교적 학계에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공룡멸종설은 '핵겨울설'이다. 핵겨울설은 운석 충돌로 발생한 먼지가 지구 대기를 덮는 바람에 햇빛이 차단됨으로써 지구에 빙하기가 왔다는 이론이다. 공룡이 멸종됐던 백악기 말과 신생대 제3기 사이에 바다에 녹아있던 탄산칼슘의 용해정도가 갑자기 증가했는데, 이는 당시 지구 전체에 빙하기가 왔다는 증거다. 또 호주가 남극대륙으로부터 분리된 것 역시 지구가 갑자기 추워진 결과로 제시되기도 한다.

1994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운석충돌로 발생한 엄청난 황산구름이 지구를 뒤덮어 동물을 전멸시켰다는 새로운 이론을 이례적으로 공식 발표했다. 공룡이 멸종됐을 당시 운석 충돌로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분화구에서 엄청난 황산이 발견됨에 따라 유추된 이론이다. 이 이론 역시 운석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바는 없다.

만약 핵겨울설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공룡 멸종 시나리오를 꾸며볼 수 있다. 운석이 충돌하면 국부적으로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급증해 짧은 기간 동안 온실효과가 발생한다. 또 운석 충돌로 생긴 황산구름이 대류에 의해 지구 전체에 산성비를 뿌린다. 그리고 운석충돌로 생긴 먼지가 지구 대기를 떠돌아 칠흑같은 어둠이 오면서 지구는 추워진다. 이 과정에서 공룡은 타죽거나 먹이가 없어 죽거나 얼어 죽는다. 물론 핵겨울설은 공룡이 멸종한 결정적인 이유로 추위를 꼽는다.

그러나 명쾌한 듯 보이는 핵겨울설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공룡이 멸종된 백악기 말 지층과 신생대 제3기 지층사이(K/T경계지층)에서는 전세계적으로 보통의 지각보다 30배가 많은 이리듐(iridium)이 발견되고 있다. 이리듐은 운석이 충돌하거나 화산이 폭발한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금속이다. 또 K/T경계지층에서는 코사이트(cosite, 고압석영)가 보이는데 이것 역시 운석 충돌의 결과로 보인다.

현재 이리듐과 코사이트는 공룡이 멸종될 당시의 환경을 증언해 주는 중요한 열쇠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핵겨울설은 이리듐과 코사이트가 전세계적으로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 화산폭발로도 이리듐과 코사이트가 생길 수 있어 핵겨울설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 핵겨울설을 보완하기 위해 운석 충돌이 거대한 화산 폭발을 불러 일으켰다는 설도 제기됐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정반대 화산현상이론'은 운석과 같은 충돌이 있으면 지구의 반대쪽에 엄청난 반사 충격파가 전달돼 화산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학계의 반응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김상준교수의 제기한 '대기권 재진입 충격이론'은 '정반대 화산현상이론' 과 마찬가지로 핵겨울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푸는데서 출발한다. 김교수는 자신의 이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40분 동안 지구는 2천℃의 오븐상태
 

목성전문가로 통하는 경희대 김상준 교수.  그는 슈메이커-레비 혜성 충돌을 분석해 왜 공룡이 멸종됐는지에 대한 새로운 열쇠를 찾아냈다.


"6천5백만년 전 지구에는 지름이 10㎞에 달하는 운석이 초속 20㎞로 충돌했다. 이때의 충격으로 국지적으로 2만℃에 이르는 엄청난 열이 발생했다. 충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충돌 후 생겨난 운석의 파편들이 대기권 밖으로 밀려났다가 초속 10㎞로 대기권과 2차 충돌을 일으킨다. 이때의 충격으로 지구 전체는 40여분 동안 한마디로 2천℃의 전자오븐 상태가 됐다. 공룡이 거의 익어버리는 순간이다."

김상준 교수는 천문학계에서 목성(Jupiter)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94년 7월 미항공우주국의 초청으로 애리조나주 스트워드천문대를 방문해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과 충돌하면서 일어난 여러가지 대기현상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만약 '지구에 운석이나 혜성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시도했다. 이것이 오늘의 대기권 재진입 충격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김교수의 이론은 우선 전 세계적으로 K/T경계지층에서 이리듐이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2차로 진입한 운석의 파편이 균일하게 지구 전체로 퍼지기 때문이다. 또한 행성과 외부 천체의 충돌 자료에 근거한 모델이므로 매우 과학적이다.

그러나 몇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목성은 수소와 헬륨, 그리고 적은 양이지만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 등의 기체로 이뤄져 있다. 이에 비해 지구는 딱딱한 고체로 이뤄져 있다. 어떻게 혜성이 충돌한 목성과 운석이 충돌한 지구를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김교수는 "초속 10㎞로 날아오는 천체가 충돌한다면 고체인 지구와 기체인 목성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설명한다.

두번째 의문은 지구 대기의 온도가 2천℃에 이르렀다면, 지구의 환경과 생물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점이다. 높은 온도에서 급속하게 녹았다가 냉각되면 유리질 암석이 생긴다. K/T경계지층에서 발견되는 코사이트가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높은 온도라면 모든 생물이 죽어 오늘날에 살아남은 생물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자기의 연구가 가진 의의를 설명해 준다. "지구 대기의 변화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것은 천문학자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순간적으로 대기가 데워졌기 때문에 많은 생물들이 멸종했을 것이라는 추측만은 가능하다. 대기권 재진입 충격이론은 당시 운석의 충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결국 공룡이 멸종한 직접적인 증거로 채택되려면 아직 대기학자, 지질학자, 생물학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한 상태다."

"김상준교수의 이론은 공룡이 멸종하기전의 환경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충남대 천문학과 김용하교수는 덧붙인다. "이 이론에서 공룡 멸종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풀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김용하교수의 조언처럼 '대기권 재진입 충격이론' 이 왜 공룡이 멸종했는지에 대한 모든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이론은 현재 공룡멸종의 미스터리를 풀 새로운 열쇠라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 말과 신생대 제3기 지층 사이에서 발견되고 불탄 흔적. 이 지층에서 많은 이리듐이 발견된다.


공룡멸종설 어떤 것들이 있나

◇기온상승설 :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 강우량이 줄고 늪이 말라붙는다. 기온상승설은 이 때문에 공룡이 생활 터전을 잃게 돼 멸망했다는 이론이다. 공룡이 멸망한 백악기 말은 한냉화의 증거는 있어도 세계적으로 기온이 상승했다는 증거가 없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체중과대설 : 공룡이 체중을 이기지 못해 멸망했다는 이론. 한때 공룡들은 늪지에서 살며 물의 부력을 이용해 무거운 체중을 극복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룡의 발자국 크기를 조사한 결과 공룡이 육지에서도 체중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냉설 : 이에 대한 증거는 많다. 심해저 시추결과 공룡이 멸망할 때쯤 바닷물의 온도가 낮아져 탄산칼슘의 용해 수준이 갑자기 상승했다는 것이 발견됐다.

◇산소과다설 : 백악기 말 탄소동화작용 능력이 큰 현화식물(꽃씨)이 번성해 산소가 너무 많아져 공룡의 생리작용에 이상을 가져왔다는 주장. 이와 달리 산소부족설도 있다. 백악기 말 바다에 떠서 살던 미식물이 절멸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로, 이 때문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공룡 새끼들이 질식해 죽었다는 설도 같은 부류다.

◇먹이변화설 : 나자식물에 길들여 있던 공룡이 현화식물이 등장하면서 식생활을 고치지 못했다는 이론.

◇알칼로이드설 : 현화식물 중 독성이 강한 알칼로이드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포유류에 비해 미각과 후각이 발달하지 못한 공룡이 이를 피하지 못해 멸망했다는 이론.

◇지각변동설 : 조산운동으로 생활터전과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설로 전 세계적인 조산운동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적다.

◇초신성 폭발설 : 공룡전멸의 원인을 지구 밖에서 찾는 외계원인설 중의 하나로, 초신성 폭발 때 우주로부터 치명적인 방사선이 와서 공룡과 많은 생물들을 동시에 멸망시켰다는 이론. 이와 비슷한 설명으로 96년 1월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후안콜라는 지구로부터 20광년 떨어진 별이 사멸하면서 방출한 중성자가 공룡의 DNA를 손상시켜 암을 일으켰다고 주장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천체충돌설 : 소행성이나 혜성이 충돌해 공룡이 절멸했다는 설.

◇화산폭발설 : 화산폭발로 일어난 먼지가 대기를 덮어 태양빛을 차단함으로써 지구가 추워졌다는 이론. 이와 달리 화산폭발로 발생한 망간, 코발트와 같은 미량원소가 생식계통의 질병을 일으켜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주장이 지난해 공룡알의 성분을 조사하던 중국과학원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밖에도 포유류가 공룡의 알을 먹었다는 설, 전염병으로 멸망했다는 설, 현화식물에 기생하던 곰팡이가 공룡에게 치명타를 입혔다는 설 등 다양한 이론이 있다. 공룡멸종설은 공룡이 멸종할 당시 왜 갑자기 한냉화가 이뤄졌는지와 바다에 떠 살던 미식물들이 왜 절멸했는지를 설명해 내야 하는 등 숙제들이 많다. 또 공룡은 당시 일시에 모두 없어진 것이 아니고 상당한 기간에 걸쳐 사라졌다는 설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만은 없다.

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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