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 10억 천체로 그린 적외선 3차원 우주지도, 스피어엑스

    2025년 3월 12일 오후 12시 10분경, 한국천문연구원(KASI)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이 공동 개발한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가 미국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스피어엑스는 적외선 3차원(3D) 우주지도를 그려 우주 진화의 핵심 단서를 확보할 예정입니다. 이 발사는 현지의 날씨, 일부 부품의 조립 지연 등으로 여덟 차례나 연기되기도 했죠. 시도 9회차 만에 발사된 스피어엑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한국 측 연구책임자 정웅섭 KASI 책임연구원에게 직접 들어봅니다.

     

    ▲NNASA/JPL-Caltech
    지구 궤도를 비행하는 스피어엑스 우주망원경.

     

    우주망원경도 K팝 아이돌처럼 1세대부터 현재까지 나눠볼 수 있습니다. 1세대의 상징은 1990년에 발사한 허블 우주망원경이죠. 허블망원경은 가시광선과 근적외선 영역의 정밀 관측으로 우주의 가속팽창, 블랙홀의 존재, 초기 은하형성 등 현대 우주론과 관측 천문학의 패러다임들을 혁신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21년 말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플래그십 우주망원경으로 발사한 제임스웹은 중적외선 영역까지 고감도로 관측하는 최고 수준의 성능으로 우주 탄생 초기의 빛, 초기 은하, 별의 형성을 심층 연구하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차세대라고 볼 수 있는 최근의 우주망원경은 단순히 하나의 대형 망원경을 ‘대세’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현대 천문학의 과제가 세분화됨에 따라, 이 과제들에 최적화된 망원경도 다양해지는 까닭입니다. 서로 다른 연구 목적에 최적화된 우주망원경 미션을 추진할 때 다른 망원경과 상호 보완을 이루며 과학적 시너지까지 추구하는 것이 현재 우주 미션의 핵심 전략 중 하나입니다.

     

    차세대 적외선 우주망원경의 3대 목표

     

    이 3세대 격의 우주망원경 중 이번에 한국천문연구원(KASI)이 개발에 참여한 NASA의 중형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SPHEREx)가 있습니다. 스피어엑스는 적외선 영상분광 관측 기술을 적용해 매우 넓은 광각의 시야로 전 하늘을 102개의 색깔(적외선 파장)로 나눠 관측할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스피어엑스는 어떤 과학 연구에 최적화된 망원경일까요? 다시 말해 스피어엑스의 핵심 연구 목표는 무엇일까요? 


    스피어엑스의 첫 번째 임무는 적외선의 102개 색깔로 빛을 나눠(분광) 밤하늘 전체를 관측해 3차원 적외선 우주지도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전 하늘 관측에서 약 10억 개 천체의 분광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데, 이 천체들 중 은하에 해당하는 천체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면 전 우주의 3차원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우주를 이루는 은하들이 얼마나 균일하게 분포하는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이 3차원 우주지도는, 빅뱅 직후 초기 우주가 급팽창한 원인과 이 급팽창의 물리학적 배경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줄 것입니다.


    스피어엑스의 다음 임무는 은하의 형성 및 진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반복 관측되는 ‘딥필드’ 영역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딥필드는 하늘의 일정 영역을 장시간 관측해 매우 어두운 천체들까지 포착하는 방식으로 확보하는 관측 영역입니다. 


    태양 둘레를 항상 일정하게 도는 태양 동기 궤도에서 운용되는 스피어엑스는 황도의 북극과 남극 쪽에 각각 약 100deg²(평방도)의 딥필드 영역이 형성됩니다.  약 2년의 스피어엑스 관측 기간 동안, 딥필드 영역은 일반적인 관측 영역보다 50배 이상 깊게 관측됩니다. 스피어엑스는 먼 은하들이 방출한 미세한 빛들이 누적된 적외선 우주배경복사를 딥필드에서 측정해, 이 은하들이 진화해온 미스터리의 단서를 찾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별과 행성계의 형성의 핵심인 생명체 탄생과 연관된 우주얼음(물, 이산화탄소, 메탄 등) 탐색도 스피어엑스의 주요 임무입니다. 목표는 분광의 특정 파장에서 검출되는 물, 이산화탄소 같은 우주얼음의 성분들을 파악해 우리은하의 우주얼음 분포도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우리은하에서 물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가시화할 이 우주얼음 분포도는,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의 생성에 관한 연구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주항공청
    발사 전 최종 점검을 완료한 스피어엑스. 스피어엑스는 발사된 미국 현지의 기상 변화, 직전의 다른 로켓 발사에서 드러난 문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재검토 등으로 발사가 8차례나 연기된 끝에 9번째 시도에 성공했다.

     

    관측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스피어엑스의 구조
    ▲우주항공청
    스피어엑스는 대형 차폐막으로 망원경 등의 관측기기를 항상 우주 공간 쪽으로 고정시켜 전력 소모 없는 수동 복사 냉각을 구현했다. 이 수동 냉각 열제어 시스템은 수명 제한도 없어서, 약 2년의 관측 후에도 주요 기기의 열적 성능을 보존해 임무 연장을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임스웹 vs. 스피어엑스

     

    이처럼 앞으로 스피어엑스로 최적화한 관측, 연구 활동을 살펴볼 때, 지금까지 3년 이상 활약 중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스피어엑스의 특성과 목표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기준점입니다.


    과학동아 독자들에겐 특히 친숙할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무려 100억 달러(약 12조 원)가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제임스웹 망원경은 조각거울로 6.5m 구경을 구현한 우주 최대 규모의 우주망원경입니다. 매우 좁은 시야에서 고분해능 및 고감도 관측이 가능해, 먼 우주의 은하나 초기 우주의 관측에 특화돼 있습니다. 망원경은 구경(렌즈의 지름)이 클수록 집광력이 높아서 빛을 많이 모을 수 있으므로, 어두운 천체나 먼 우주를 관측하는 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구경이 클수록 시야는 좁아지므로 하늘을 넓게 관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스피어엑스는 제임스웹 망원경처럼 적외선 파장대를 관측한다는 점은 유사해도, 관측 방식이 크게 다릅니다. 스피어엑스는 제임스웹 망원경보다 훨씬 작은 20cm 구경으로 1만 배 이상의 넓은 관측 시야를 확보해, 무려 102개의 색깔로 하늘 전체(전천)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즉 전천에서 102개 빛의 파장 구간에 대한 분광 정보를 획득해 스펙트럼 기반의 대규모 천체 분류가 가능해지고, 물리적인 특성도 추정이 가능하리란 점에서 스피어엑스의 이 차이점은 중요합니다.

     

    스피어엑스가 인류 앞에 펼칠 102개 빛의 적외선 3차원 우주지도
    스피어엑스가 전체 하늘에 있는 천체들의 분광 정보를 102개 빛의 파장 구간별로 파악해서 만든 적외선 3차원 우주지도 예상 이미지. 해당 위치에서 관측할 천체들의 이미지까지 합성한 결과다. 이 3차원 우주지도로 스펙트럼에 기반한 대규모의 천체 분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각 천체들의 물리적 특성까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항공청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영상분광 관측 기술

     

    스피어엑스의 핵심은 영상이 아닌 분광 기반으로 대규모 천체 분류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치에 따라 파장 투과율이 변하는 선형분광필터(Linear Variable Filter)로, 해당 천체의 특성이 담긴 분광과 천체 영상을 동시에 얻는 적외선 영상분광 관측 기술 덕분입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NISS 과학탑재체를 개발해 이 적외선 영상분광기술을 우주에서 성공적으로 검증한 것이 스피어엑스에 참여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이 탑재체 개발로 관측기기 설계부터 자료처리, 검·교정 장비 개발, 관측 운영까지 전 개발 과정의 실질적 기술과 노하우를 한국이 선점했죠. 스피어엑스는 NISS 탑재체보다 더 많은 적외선 파장으로 하늘 전체의 적외선 영상분광 관측이 가능합니다.


    또한 스피어엑스는 적외선 관측임에도 불구하고 능동형 냉각기가 아닌 대형 차폐막을 이용해, 관측기기를 최저 영하 220°C까지 안정적으로 냉각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제임스웹 망원경과 달리 별도의 전력 공급 없이도 적외선 관측에 필요한 열적 조건을 달성할 수 있어서, 미션 종료 후에도 시스템의 열적 성능이 유지됩니다. 따라서 스피어엑스는 임무 기간 연장 및 관측 임무의 전환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스피어엑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연구책임자 제이미 복 교수가 이런 한국천문연구원의 기술력을 인지하고, 스피어엑스의 기획 연구부터 KASI에 참여를 제안했습니다. KASI가  스피어엑스 프로젝트에서 하드웨어 개발, 자료 처리, 관측 운영 등 프로젝트 전반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이유입니다.


    KASI가 개발한 스피어엑스의 검·교정 장비는 광학·분광 성능을 정밀하게 시험하도록 설계한 덕분에, 스피어엑스 전체 시스템의 최종 성능 시험을 단기간에 안정적으로 완료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체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한층 끌어올렸죠. 또한 KASI는 스피어엑스 임무에서 획득할 방대한 양의 관측 데이터를 처리할 자료처리 파이프라인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과학적 해석과 연구 성과로 직결될 데이터의 품질 향상과 모의 실험부터 천체 목록 작성 및 측광, 분석에 이르는 연구 체계 수립에 기여하는 핵심 역할입니다. 한국 과학계가 스피어엑스의 전천 영상분광 관측 데이터로 세계적 연구 성과를 도출할 기반을 닦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스피어엑스 우주망원경의 데뷔작
    ▲NASA/JPL-Caltech, 한국천문연구원
    2025년 3월 28일 스피어엑스가 첫 번째로 촬영한 이미지들. 원본 이미지에서 관측한 적외선 파장에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의 색상을 부여했다. 1~3번으로 묶인 한 쌍의 이미지는 서로 같은 하늘 영역을 관측한 것이며, 이미지 속 밝게 빛나는 점들이 별이나 은하이다. 각 이미지에 10만 개 이상의 천체가 담겨 있다. 또한 각 이미지에 담긴 하늘의 영역은 한 번에 보름달을 150개 정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늦은 발사가 확실한 성공으로 이어지도록

     

    이렇게 진행된 스피어엑스가 무사히 발사되기까지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려움 속에서 KASI는 스피어엑스 검·교정 장비 개발을 기간 내에 완수했지만, 미국 측의 하드웨어 제작이 상당히 지연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스피어엑스의 최종 발사도 여러 변수로 1주일 이상 발사가 지연됐습니다. NASA의 중요한 두 미션인 스피어엑스와 펀치(PUNCH)를 처음으로 동시 발사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준비에 따른 발사체로의 조립 지연, 페어링 시스템의 기술적 문제, 기상 악화, 그리고 당시 발생한 스타링크의 발사 후 문제에 대한 정밀 조사 등 여러 변수가 겹쳤죠. 하지만 NASA가 오랜 우주 미션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할 가능성’을 철저히 사전 점검, 검토하며 더 신중히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다행히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발사가 예상보다 지연되며 당초 1주일이었던 저의 체류 일정이 2주까지 연장되는 동안, 물론 초조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사나 시험 운영이 지연되더라도, 과학 미션이 최우선 업무인 NASA는 당초 계획대로 2년반 동안 스피어엑스의 전천 관측 임무 4회를 보장합니다. 그래서 발사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이 발사가 무사히 성공하고 스피어엑스의 과학 미션 수행도 문제가 없으리란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번 스피어엑스 발사 성공은 2014년에 시작한 기획 연구로부터 10여 년에 걸친 긴 여정의 첫 번째 마침표입니다. 또한 이 성공으로 그동안 적외선 우주망원경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한국의 우주 기술적 성과를 입증했습니다. 한국도 과학적 자립과 전략적 관측 능력의 확보를 위해 중대형 우주망원경을 자체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스피어엑스 발사 성공이 한국 천문학계와 우주항공청이 협력해, 세계적인 우주망원경 미션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한국 우주망원경 프로젝트로 향하는 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5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