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중계를 통해서, 혹은 직접 현장에 가서 운동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상반된 두 가지 시각을 동시에 갖는다. 우선 고도로 훈련된 선수들의 경이적인 체력과 놀랍도록 섬세한 기술에 감탄한다. 우리 자신은 마라톤 선수와 같은 속도로는 1km도 제대로 달릴 수 없고, 평균대 위에서는 체조 선수와 같은 묘기는커녕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선수들이 왜 좀더 힘을 내서 뛰지 못하고, 좀더 세게 치지 못하나 하는 불만 섞인 비판을 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경기 기록이 명시되기 시작한 지난 1백여년 간 인간은 계속 신기록을 수립해왔다. 종목별로 적게는 10% 정도에서 많게는 20% 이상의 기록 단축이 이루어졌으며,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벽도 상당수 극복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앞으로 어디가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또 인간이 갖는 능력의 한계는 어디인가. 이들 질문은 앞서 말한 ‘감탄’과 ‘불만’ 뒤에 숨어 있는 기본적인 의문이다. 따라서 이들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내내 경기를 관전할 때마다 선수들에게 한계를 무시한 요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체중에 상관없는 가장 원시적인 경기인 1백m 달리기와 마라톤, 수영을 예로, 스포츠과학에 의해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한계를 살펴보자.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실로 눈깜짝할 시간에 승부가 결정나는 1백m 달리기 선수들은 흔히 ‘총알’ 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을 자부하는 ‘인간 탄환’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 9초90의 벽을 깬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1백m를 10초에 달리는 것은 3단뛰기의 18m(현재 기록은 95년 독일 요나단 에드와르트가 작성한 18.29m), 여자 마라톤의 2시간30분대 진입(현재 기록은 노르웨이의 잉그리드 그리스티얀센이 85년 작성한 2시간21분06초)과 함께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마의 벽’으로 인식돼왔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1백m, 2백m, 4백m, 멀리뛰기 등 4관왕을 차지한 미국의 ‘전설적 영웅’ 제시 오웬스(80년 사망)가 세운 1백m 기록조차도 10초02에 불과했다. 그 뒤 이 기록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짐 하인즈(미국)가 9초09의 기록을 세울 때까지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포츠과학이 본격적으로 경기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마의 10초 벽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칼 루이스(미국)가 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초86을 기록했고, 린포드 크리스티(영국)는 9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초87로 우승했다. 그리고 최근 프랭키 프레데릭스(나미비아)도 국제육상경기연맹 그랑프리대회에서 9초86의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벤 존슨(캐나다)이 88 서울올림픽에서 세운 9초83의 기록이 있긴 하지만, 그는 도핑테스트에서 약물 복용이 드러나 메달을 박탈당했고, 당연히 기록도 인정되지 않았다. 현재의 최고 기록은 94년 7월 리로이 버렐(미국)이 세운 9초85.
그러나 지금까지 1백m를 9초09 이내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인간의 1백m 기록은 여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수년 전 일본의 한 스포츠과학자는 역대 남자 1백m 선수들의 장점만을 뽑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9초50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주목을 끌었다. 또 미국의 육상전문지 ‘트랙 앤드 필드 뉴스’ 는 오는 2천년의 예상 기록을 9초70으로 잡았고, ‘스포츠의 기록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라는 책을 쓴 라이더 박사는 “지난 1925년 이후로 1백m 기록이 매년 0.01초씩 빨라졌다” 며 “이런 추세라면 2028년이면 9초34에 이를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주장은 인간이 1백m를 9초 이내에 주파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해주는 보고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결론의 첫번째 근거는 인간이 가진 유전학적 특징이다.
인체가 갖는 거의 모든 능력은 일상적인 운동량과 처해 있는 주위 환경에 가장 적합한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 즉 인체는 결코 필요 이상의 능력을 위해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며, 다만 형태를 바꾸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운동 능력 이상의 힘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이미 맞추어진 나의 한계치를 다시 올려 조정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재조정은 현재의 활동 양상을 훈련을 통해서 변화시킨다든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구성을 바꿈으로써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인간능력의 한계를 넓혀 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 폭은 점점 좁아질 것이고,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단거리를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은 치타다. 치타는 편평한 땅 위에는 시속 96-1백km를 달린다. 반면 벤 존슨의 기록은 시속으로 따져보면 36.6km가 조금 넘어 치타의 대략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한시간 내내 이같은 속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골격근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고 질서가 있으며, 주위 환경이나 활용도에 따라 적절히 적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테면 조깅과 같은 유산소성 운동을 오래하면 근육은 이 운동 형태에 적합한 상태로 변화한다. 즉 크기가 줄어들면서 보다 오랫동안 수축과 이완을 지속할 수 있는 마라톤 선수의 근육을 닮아간다. 반면에 무거운 중량을 이용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계속하면, 짧은 시간에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지구력은 부족한 육체미 선수나 1백m 달리기 선수의 우람한 근육을 닮아간다.
그러나 근육이 커질 수 있는 한계나 수축양상은 형태학적, 신경학적, 유전학적 요소 등의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種)으로 존재하는 한, 치타의 구조적 특성에 견줄 수 있는 달리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