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것은 모자른 것 보다 못하다' 는 속담대로 지질은 필요치보다 많이 섭취할 경우 동맥경화같은 성인병의 주범이 된다. 식이요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일단 병적으로 높아진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약을 알아보자.
지질(콜레스테롤 관련물질과 트리글리세라이드)은 지방조직에 축적돼 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이 밖에도 에너지원으로서, 세포막의 성분으로서, 인체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노릇을 한다. 또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몸안에서 생성된 콜레스테롤은 성호르몬, 부신피질 호르몬 등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원료물질이 되기도 한다.
지질은 인체에 매우 중요한 물질이지만, 혈중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동맥경화와 같은 병적 현상으로 발전한다. 즉 지질이 동맥 혈관내에 축적되면서 점차 혈관 구멍이 좁아지고 심장이나 뇌혈관에 제대로 산소를 공급할 수 없게 돼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일어난다. 이런 동맥경화의 주범인 고지혈증(고콜레스테롤증)은 어떻게 처치해야 할까? 우선 지방성분(특히 콜레스테롤)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이요법이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리고 유전적으로 혈액 내에 지질성분이 높으면 약이 필요하다. 이 약이 고지혈증 치료제다.
운명이 다른 최초의 두가지 약
1955년 미국 신시내티주에 위치한 제약회사, '윌리엄 머렐' 의 로버트 알렌과 프랭크 팔로폴리는 에스트로겐이 혈증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춘다는 사실을 근거로 고지혈증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했다. 즉 성호르몬 효과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콜레스테롤 농도만을 낮추는 물질을 찾아나섰다. 그들이 실마리를 잡은것은 스테로이드 구조인 천연 에스트로겐이 아니라 에스트로겐성 작용을 나타내는 클로로트리아니센이라는 물질이었다. 알렌과 팔로폴리는 이 물질의 구조를 다양하게 바꿔 1959년에 '트리파라놀'을 발견, 약으로 개발했다.
거의 같은 때 영국의 ICI(현재 이름은 제네카)에서도 고지혈증 치료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식물 호르몬 성분이 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라이드의 농도를 모두 낮춘다는 사실을 실마리로 잡았다. 합성학자 존슨, 생화학자 토르프와 워링이 4년간 연구 끝에 1961년 '클로피브레이트' 를 발견했다.
위의 두가지 약은 역사상 처음 나온 고지혈증 치료제다. 그러나 두 약의 운명은 달랐다. 1962년에 백내장 부작용이 발견된 트리파라놀은 판매가 금지된 반면, 클로피브레이트는 발견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의사들의 처방에 사용하는, 살아남은 약이다.
현재 고지혈증치료제로 가장 각광을 받고 이는 약은 로바스타틴,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이다. 이 세종류의 약은 구조가 아주 유사할 뿐 아니라 거의 동시에 세상에 나왔다. 1987년 로바스타틴을 시작으로 1년 간격으로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이 발매됐다. 1994년 매출액이 로바스타틴 10억달러, 심바스타틴 14억달러, 프라바스타틴 11억달러로 유사약을 전부 합쳐 고지혈증 치료제는 전세계적으로 연간 35억 달러(2조8천억원)가 팔리는 거대 제품이다.
연간 3조원 가까이 팔려
로바스타틴은 미국의 제약회사 머크사가 미생물연구를 하면서 발견했다. 머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을 개발할 때 미생물 연구의 기초를 닦았고, 그 후 여러 유명 항생물질을 개발했다. 머크는 미생물 배양액에서 항생물질만 찾는 것이 아니라 구충제, 고지혈증치료제 등을 발견한 독특한 약 발견 전략을 가진 회사다.
1970년대 아서 패쳇이 책임을 맡은 머크의 탐색연구실에서는 4천개의 미생물 배양액을 검토했다. 이중 한 배양액의 약효 스크리낭 결과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효과가 발견됐다. 패쳇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생화학연구실로 보내 자세한 검토를 부탁했다.
배양액은 알프렛 알버츠가 책임자로 있는 생화학 실험실의 줄리 첸에게 도착했다. 알버츠와 첸은 박사연구원이 아니었으나 콜레스테롤 생합성 연구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첸이 확립한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제 시험법은 로바스타틴의 효과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험결과 정말로 배양액속에 콜레스테롤 생합성을 억제하는 물질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자 알버츠와 연구원들은 꼬박 1년이 걸려 약효성분을 순수하게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알버스쇤버그의 분석능력에 힘입어 이 성분의 구조는 쉽게 밝혀졌다.
콜레스테롤 생합성을 억제할 가능성은 시험관내 실험으로 측정됐고 곧 동물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머크는 '로바스타틴'이라 명명된 이 물질을 1980년 특허출원했고 동물을 사용한 안정성 실험에도 통과해 곧 임상시험 단계로 이어졌다. 이 모든 연구 개발 책임자는 알버츠였다.
그런데 머크 연구소에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본 과학자들이 이미 같은 물질을 발견했지만 독성때문에 폐기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1976년 도쿄 농업기술대학의 아키라 엔도가 페니실륨 곰팡이 배양액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진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 성분을 분리해 '콤팍틴'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사실을 가능성이 높았다. 임상실험은 즉시 중지됐다.
그러나 다행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임상실험은 재개됐다. 1987년 알버츠와 함께 연구하던 12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은 황홀한 순간을 경험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신약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그쯤 머크는 로바스타틴의 구조를 일부 바꾼 심바스타틴의 신약허가를 신청중이었다. 로바스타틴은 그 자체가 미생물 배양액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을 실마리로 좀 더 나은 약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가 이미 진행됐던 것이다. 심바스타틴은 로바스타틴보다 좀 더 효능이 좋았다. 결국 1988년 심바스타틴도 발매허가를 얻었다.
이 단계에 일본 제약회사 산쿄에서는 프라바스타틴을 개발했다. 앞의 엔도교수가 발견한 콤팍틴과 구조가 유사한 물질이 프라바스타틴이다. 1981년 콤팍틴에 미생물을 작용시켜 프라바스타틴을 얻은 산쿄는 미국회사와 공동으로 개발,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의 신약 허가를 받았다.
약발견은 오케스트라
1992년 미국제약협회는 로바스타틴의 발견자에게 발견자상을 수여했다. 이 때 상을 박은 세 과학자는 패쳇, 알버츠, 알버스 쇤버그였다. 패쳇과 알버츠의 공로는 자명한데, 알버스쇤버그의 공로는 무엇일까? 아무리 최첨단 분석장비를 갖춘 연구실이라도 알버스쇤버그가 아니었다면 복잡한 로바스타틴의 구조해석은 불가능했다는 공로를 인정해서였다.
실제로 하나의 약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수백명 이상 과학기술자의 협동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현대약 발견은 화학, 생물학, 공학, 의학의 모든 분야가 망라된 오케스트라로 비유된다. 로바스타틴 개발에는 머크의 연구소장인 로이 바겔로스와 그와 수십년간 인연을 가졌던 알버츠의 공헌이 가장 컸다. 바겔로스는 오랫동안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콜레스테롤 대사 연구 경험을 가졌고 알버츠는 바겔로스의 오랜 조수였다.
입지전적 인물인 바겔로스에 대해 알아보자.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바겔로스의 가정은 대공황 동안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의 부모는 아이스크림과 사탕을 팔며 하루에 20시간을 일해야 했고 바겔로스는 상점을 청소하고 초콜릿 접시를 채우는 일을 하며 부모를 도왔다. 고등학생이 된 바겔로스는 음식점에서 웨이터로 일했는데 대학진학은 생각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던 그에게 음식점에 자주오는 근처 제약회사의 과학자들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근사했고 지적이며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또 모두가 자신의 일을 대단히 즐겁게 생각했다. 문득 바겔로스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결심이 굳어지자 그는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의대에 진학해 1956년 졸업했다. 인턴과정을 마친 후 국립보건원에 의사로 들어간 바겔로스는 환자를 돌보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1959년 알버츠는 바겔로스의 조수가 됐다. 알버츠는 1953년 부룩클린 칼리지를 나와 메릴랜드대학에서 학위논문만을 남기고 국립보건원에 들어와 있었다. 바겔로스와 알버츠는 국립보건원에서 인체의 콜레스테롤 생합성 경로를 연구했다. 알버츠는 바겔로스가 1966년 세인트 루이스의 워싱턴대학으로 옮길 때에도 따라갔고 1975년 머크로도 함께 옮겼다. 바겔로스는 머크 연구소의 총책임자로 혁신적인 일을 많이 했고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지질대사 분야에서 새로운 약인 로바스타틴을 찾아내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 용어설명-지질 |
혈장내의 지질은 단백질과 복합체인 지단백질로 존재하는데, 지단백질을 초원심분리기로 분리하면, 트리글리세라이드(T)와 콜레스테롤(C)의 함량에 따라 고밀도지단백질(HDL), 저밀도지단백질(LDL), 초저밀도지단백질로 나뉜다. HDL은 T와 C가 모두 낮고, LDL은 T는 낮은 반면, C는 높다. 또 초저밀도지단백질은 T는 높고 C는 보통이다.
고지혈증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LDL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진 경우가 가장 흔하다. 즉 트리글리세라이드는 보통인 반면 콜레스테롤치가 대단히 높은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는 LDL보다는 HDL의 증가가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