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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엎치락 뒤치락 3백년 공방

빛의 본질이 입자인지 아니면 파동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다. 두가지 입장 사이에 있었던 경쟁과 대립은 과학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됐다. 입자설은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호이겐스, 뉴턴, 라플라스 등 당대의 유명한 과학자들로부터 지지되던 설이었다. 그러다 18세기 중엽 회절이나 간섭과 같은 빛의 새로운 성질이 본격적으로 탐구되면서 파동설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1850년 푸코의 실험으로 파동설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광파의 성격에 관한 의문은 끝없이 제기됐고, 결국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광양자설을 주장함으로써 입자설과 파동설의 논쟁은 원점으로 돌려졌다.

논쟁이 3세기 이상이나 지속된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의 실험 기술로 빛을 조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 한가지 이유였다. 즉 빛의 본질에 관한 논쟁은 실험적인 방식이 아니라 논리적 설득력에 의존하면서 진행됐다. 그래서 각각의 주장에는 임시변통적인 가설이 자주 등장했다.

뉴턴 권위로 우위 점해

빛의 가장 명료한 성질은 직진이다. 논쟁 초기에 파동설은 빛의 직진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입자설에서 빛의 직진을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입자는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같은 속도로 직선 운동을 한다. 중력의 영향으로 빛이 구부러지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빛의 입자는 지극히 작고 가볍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파동설 진영도 이내 멋진 설명을 제안했다. 이들은 파도가 해안선에 직각 방향으로 밀려온다는 점에 착안, 직진은 파동의 기본적인 성질이며 빛의 파동도 당연히 직진한다고 주장했다.
 

(그림 1) 빛은 수면에서 아래로 힘을 받아 굴절한다(입자설).


다음으로 화제로 떠오른 주제는 빛이 수면에서 굴절하는 현상이었다. 입자의 운동 방향은 외부 힘을 받을 때 변한다. 그래서 입자설 지지자들은 빛 입자가 수면에서 아래 방향으로 힘을 받아 굴절한다고 설명했다(그림1). 이때 힘이 아래 방향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공기 분자가 빛 입자를 끌어당기는 힘보다 물 분자가 빛 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크다고 가정했다.
 

(그림 2) 물 속에서는 파장이 짧아지기 때문에 굴절한다(파동설).


파동설 진영에서는 공기와 물의 경계면에서 파동의 마루와 마루 사이의 간격, 즉 파장이 짧아져 굴절이 생긴다고 설명했다(그림2). 하지만 이는 하나의 가정일 뿐이었다. 두가지 설 모두 가정을 통해 빛의 굴절을 설명한 것이다.
 

(그림 3) 빛이 거울면과 탄성 충돌을 하면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아진다(입자설).


또다른 논쟁은 반사의 법칙에 관한 것이었다. 입자설에서는 빛 입자가 거울면에서 탄성 충돌을 하기 때문에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고 설명했다(그림3). 반면 파동설에 따르면, 거울이 없는 경우 광파는 그대로 진행하지만(그림4①), 거울이 있으면 거울면을 중심으로 점선의 파동이 위로 뒤집혀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게 된다(그림4②).

빛의 직진, 굴절, 반사 현상은 입자설과 파동설 모두에서 나름대로 설명될 수 있었다. 이처럼 두가지 이론이 모두 타당성을 가질 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한가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어느 이론이 보다 간단한가'와 '누가 그 이론을 지지하는가'이다. 파동설에 비해 입자설은 설명 방식이 간단했을 뿐 아니라 뉴턴이나 라플라스와 같은 거장들이 지지했다. 따라서 18세기 전반까지 입자설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림 4) 거울이 있을 경우 점선을 반전 시키면 반사파를 얻을 수 있다(파동설).


궁지에 몰리면…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회절과 간섭 현상이 발견되면서 부터였다. 누군가 담장 바깥에서 "이봐!"하고 부르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소리는 들린다. 즉 음파는 장애물과 부딪치면 진행 방향이 변경되면서 이동할 수 있다. 음파뿐 아니라 모든 파동에서 발견되는 이 성질을 회절이라 한다. 예를 들어 수파(水波)를 두장의 판자로 차단하고 가느다란 틈새로 통과시키면 파동이 아름다운 반원형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그림 5) 필름을 사용해 만든 틈새를 통해 전등빛을 쬐면 회절 줄무늬가 보인다(파동설).


빛도 마찬가지다. 모조지에 매직으로 검은 선 한가닥을 그린 후 사진을 찍으면 필름에는 가느다란 틈새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빛을 쬐면 틈새의 양쪽에 희미한 줄무늬 가닥을 볼 수 있다.(그림5)
 

(그림 6) 빛은 장애물에서 얻은 반발력 때문에 회절한다(입자설).


빛이 회절한다는 성질이 밝혀짐으로써 입자설은 곤경에 빠졌다. 입자는 틈새를 그냥 통과할 뿐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입자론 측은 곧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냈다. 빛 입자가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반발력을 받아 휘어진다는 것이다(그림6). 하지만 그런 힘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설에 불과했다.
 

(그림 7) 빛의 파동에서 마루와 마루, 골과 골이 중첩하면 빛은 서로 보강해 밝아지고(①), 마루와 골이 중첩하면 상쇄돼 어두워 진다.(②).


입자설을 더욱 궁지로 내몬 것은 간섭 현상이었다. 비누방울이나 기름막에는 아름다운 색깔의 줄무늬가 나타나는데, 이는 2종류의 빛이 합쳐져 생기는 현상이다. 파동설에 따르면 두 파동의 마루와 마루, 골과 골이 겹치면 더 크게 진동하지만 마루와 골이 겹치면 파동이 상쇄돼 빛이 어두워진다. 그래서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다(그림7).

그러나 입자설에는 파동의 마루나 골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결국 입자설 측에서는 파동의 특성을 입자에 부여하는 구차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즉 빛 입자가 주기적으로 진동한다고 가정한 후, 그 진동이 합쳐지는 상태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는 것이다.

입자설의 논리가 점점 궁색해지는 가운데 푸코는 입자설과 파동설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입자설에 따르면 수면에서 아래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므로 굴절 후 빛 속도는 커진다. 이에 비해 파동설은 물 속에서 파장이 짧아지므로 빛 속도가 작아진다고 간주했다. 그렇다면 물 속에서 광속을 측정하면 어느 설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8) 회전 거울을 사용한 광속 측정 장치


푸코는 회전거울장치를 사용해 광속을 측정했다(그림8). 회전거울이 정지해 있으면 광원에서 나온 빛이 반투명거울을 통과해 회전거울에 부딪힌 다음 먼 곳에 있는 거울에 반사돼 같은 길을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 빛은 반투명거울에서 직각으로 반사돼 스크린에 밝은 점으로 나타난다. 이때 회전거울을 회전시키면 반사광의 진로가 달라져 스크린의 점 위치가 변화될 것이다. 푸코는 점의 이동거리와 회전거울의 회전수 등을 측정한 뒤 일련의 계산 과정을 거쳐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물 속에서의 빛 속도를 측정할 때도 같은 원리가 이용됐다. 회전거울과 멀리 있는 거울 사이에 긴 수조를 설치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실험 결과 공기 속의 광속은 2.98×108m/초인 반면 물 속에서의 속도는 2.25×108m/초였다. 파동설의 승리였다.

기묘한 결론, 이중성

그러나 50년 남짓 승리감에 도취했던 파동설은 광전효과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광전효과란 금속에 빛을 쬐면 금속으로부터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었다. 이때 전자가 갖는 에너지는 빛의 세기와 무관하다는 점이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파동설에 따르면 빛의 파동이 셀수록(진폭이 커질수록) 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에 튀어나오는 전자에너지도 커져야 했다. 하지만 고약하게도 실험에서는 빛을 세게 쬐도 전자에너지는 변하지 않았다. 튀어나오는 전자 개수만 증가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은 그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가진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광양자설'을 제안해 광전효과를 훌륭하게 설명했다.

광양자설이 등장하자 빛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 재현됐다. 그러나 광양자설은 옛날 입자설의 단순한 부활을 의미하지 않았다. 광자는 에너지 덩어리라는 '입자의 성질'과 진동수로 표현되는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 결국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기묘한 이중성을 갖게 됐고, 입자설과 파동설의 게임은 현재까지 무승부로 역사에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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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송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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