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통신은 필수품이다. 그리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통신은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관련업계는 이 시장의 폭발을 감지하고 너나할 것 없이 시장참여에 분주하다. 정부가 허가권만 준다면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떼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 즉 일반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는 것이다. 기껏해야 핸드폰이나 삐삐 정도를 첨단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즘 영어 약자와 전문용어가 뒤범벅된 신문의 '첨단 정보통신' 기사만 나오면 겁부터 난다고 한다. 중학생 수준이면 충분히 이해된다는 신문이건만 이들 기사는 "읽기조차 힘들다"고 푸념이다.
작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이런 불평은 올해들어 더욱 심해졌다. 연초에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가 CDMA라 불리는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바탕 야단법석이더니, 요즘은 재벌들이 어떤 사업을 위해 무슨 일을 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얼뜻 보기에도 분명 전화걸기 더 편해졌다는 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내용이나 원리,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자, 그렇다면 이쯤해서 한 번 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다.누가 뭐라 해도 21세기를 코 앞에 둔 지금의 상황은 전파가 발명된 이래 최대의 혁명적 도약기다. CDMA를 비롯해 개인휴대통신(PCS), 주파수공용통신(TRS), 발신전용이동전화(CT-2) 등 조만간 신규사업자에 의해 탄생하는 통신서비스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CDMA
통신대국 이끌 순국산 디지털 이동전화
세계 최초로 우리 손에 의해 상용화에 성공, 지난 4월1일부터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방식의 이동전화 기술은 우리나라 통신 혁명의 주인공으로 불리기에 손색없다. 원래 원천기술은 미국의 퀄컴사가 보유한 것이지만, 이 분야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에서조차 CDMA는 상용화가 안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이동전화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이는 한정된 주파수 대역을 여러 사람이 이용하기 위해 할당된 주파수를 여러개의 채널(유선통신의 회선 역할)로 분할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따라서 한 개의 채널은 단 하나의 통화 회선만을 연결할 수 있다. 채널이 10개로 할당된 지역에서 10명 이상이 통화를 시도하면 범위를 넘어선 통화자부터는 당연히 '가입자가 응답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서비스 지역밖에 있다'는 짜증나는 메시지만 나온다.
반면 디지털 이동전화는 음성 신호를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변조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디지털 방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하나의 채널을 시간 단위로 아주 잘게 쪼개는 시간분할다중접속(TDMA)라는 기술. 현재 유럽 등지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이 방식은 한 채널에 시간 단위로 여러 사람의 디지털 음성 신호를 실어보내고 수신자는 자신에게 전달된 신호만을 시간 단위로 모아 통화가 이루어진다.
지난 4월1일부터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으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는 CDMA 방식은 할당된 주파수를 아예 통째로 한 채널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통화자 각각의 음성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변환된 신호에 통화자를 식별하는 코드를 부착해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CDMA와 TDMA 방식을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예가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나와 친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하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둘이 대화는 별다른 방해없이 서로 전달된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대화에 불필요한 '잡음'으로 걸러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CDMA의 경우다. 한편 TDMA는 모인 사람 전체를 나눈 다음 마이크를 잡은 사람만 말하게 하고 나머지는 함구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이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둘 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긴 하지만 CDMA가 TDMA보다 효용성이 높다. CDMA는 이론적으로 아날로그방식의 20배, TDMA의 4-5배 이상 더 많은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이동전화 방식이 결정되기 전 관계자들은 TDMA와 CDMA중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TDMA가 저속엘리베이터라면 CDMA는 고속엘리베이터인 셈인데, TDMA론자들은 "아파트에 고속엘리베이트를 설치하면 편리하겠지만, 비용면에서 보자면 낭비" 라는 논리로 CDMA를 공략했다. 그러나 CDMA주장론자들은 "앞으로 새로 생길 건물에는 국내에서 생산가능한 고속엘리베이터를 설치하자" 는 논리로 대응했다. 이같은 과정에서 습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도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CDMA개발에 5천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동통신 기술선진국인 외국에서 대중화된 TDMA를 우리나라가 도입할 경우, 수조원에 달하는 관련장비시장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줄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개인휴대통신(PCS)
저렴한 가격으로 데이터통신까지 가능
개인휴대통신(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을 이용한 통신방법은 현재 이용되고 있는 이동전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용자들은 종전에 보아왔던 휴대폰 형태의 단말기를 이용, 버튼을 눌러 통화하면 그만이다.
PCS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초창기의 기술로는 시속 20km 이내에서 이동하는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시속 1백km에서도 PCS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셀룰러폰으로 불리던 기존의 이동전화와 본격 경쟁체제에 접어들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휴대통신은 서비스 초기에는 음성통화만을 지원하다가 5년 후에는 데이터통신까지 가능하다. 개인휴대통신은 통신회선에 연결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영상회의, 문자전송 등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예정. 물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이동전화에서도 데이터통신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용료가 턱없이 비싸 대중화에 어려움이 있다. 개인휴대통신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한 요금으로 무선통신망을 이용, 각종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어 영업사원들이 저렴한 요금으로 단말기를 통해 효율적으로 고객을 관리할 수 있다.
지구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기존의 이동전화와 다른 점이다. 현재 이동전화는 가입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국제전화는 불가능하지만 개인휴대통신은 이같은 한계를 극복한다. 8백MHz를 이용하는 현재의 이동전화와 달리 1.8GHz 대역의 주파수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개인휴대통신이란 이름처럼 가입자가 어디에 있든 개인의 은행계좌로 통신요금을 부과할 수 있다.
개인휴대통신이 가진 단점도 있다. 개인휴대통신은 전파의 파장이 짧은 만큼 건축물이나 산악 등 장애물에 약하다. 따라서 전파를 전달하는 기지국을 많이 세워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기지국 설치를 위한 투자비가 많이 든다. 참여업체들의 계획서에 따르면 초기 투자비는 최소 1조5천억원에서 2조원 정도.
하지만 저렴한 단말기와 편리한 통신방법으로 인해 2000년대에 접어들면 개인휴대통신은 현재의 이동전화수요를 대체, 황금시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사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과 현대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재계가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는 것은 이 시장이 가진 성장 잠재력을 짐작케 한다.
주파수공용통신(TRS)
유통업 변혁 이끌 '워키토키 형제'
주파수공용통신(Trunk Radio System)은 공중에 떠다니는 전파자원을 이용, 특정집단의 구성원들끼리 의견교환을 가능케 하는 통신서비스다. 비슷한 용도의 사람들끼리 다수의 전파채널을 공동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워키토키가 확대된 개념으로 파악하면 된다.
안테나 3개면 서울지역 서비스가 가능할 만큼 망 구성이 쉬운 TRS를 위해 국내에서 활용될 주파수대역은 3백80MHz. 현재 주파수공용통신을 통한 이동통신 서비스는 한국통신 자회사인 (주)한국TRS를 통해 경찰과 일부 택시회사 등에서 이미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향후 TRS시장의 성장가능성을 감안, 올해 신규사업자를 선정해 경쟁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새 사업자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와 각 지역별 사업자로 구분돼 선정된다.
주파수공용통신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3백억-4백억 정도의 저렴한 투자비용만으로 가입자에게 동시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재 기대되는 용도는 상품배달이나 가전제품의 사후봉사, 건설현장통신 등의 분야. 특히 수백, 수천명의 가입자를 동일주파수권으로 설정해 긴급한 무선연락을 취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운송회사나 택시회사에겐 대단히 효율적인 통신매체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송회사의 본사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량에게 특정구간의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사실을 통보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보자. 먼저 이동전화나 삐삐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는 비경제적이다. 이동전화는 비용이 많이 들고, 일방향 통신만이 가능한 삐삐는 효율이 낮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에서 삐삐에 응답하기 위해 매번 휴게소에서 하차해 전화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재택근무를 비롯, 홈쇼핑 등 사회여건이 변화하면 일반인들의 통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대신 물류를 비롯한 유통서비스가 확대되면서 대규모 유통회사가 등장, 일반인들의 왕래를 대신할 전망이다.
이러한 사회환경 변화와 함께 물류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업체들은 주파수공용통신이란 새로운 통신서비스의 주이용 계층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일본 미국 등에서 활용되는 것처럼 주파수공용통신 서비스가 일반 공중전화망과도 연결된다면 이동전화 못지 않은 통신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정된 주파수 자원 때문에 주파수공용통신망을 일반 전화망과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주파수공용통신 가입자가 일반 전화를 사용하면 그만큼 사용가능한 주파수대역이 좁아져 TRS서비스의 품질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발신전용 휴대전화(CT-2)
삐삐와 결합, 대중적 잠재력 무한
발신전용 휴대전화는 삐삐와 상호보완 차원에서 개발된 통신서비스다. 외부에서 갑자기 무선호출을 받을 경우, 이동통신기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공중전화 부스 조차 찾을 수 없는 때가 허다한 게 현실. 이때 공중전화처럼 저렴한 요금으로 전화를 걸 수 있는 휴대전화가 있다면 대단히 편리할 것이다.
일명 '코드리스 텔레폰-2'(CT-2)로 명명된 이 통신서비스는 명실상부한 휴대전화다. 하지만 기존의 이동전화와는 달리 전화를 거는 기능만 있다. 일방향 기능만 담당하기 때문에 이용요금은 대단히 저렴하다. 이미 상용화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이동전화 요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사업권 쟁탈전에 나선 국내 컨소시엄들의 사업계획서에서도 이와 유사한 요금체계를 따랐다.
단말기 가격 역시 가정용 무선전화기(CT-1)보다 조금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 요금이 싼 만큼 이 서비스는 서민을 주이용계층으로 삼고 있는데, 실제로 전세계에서 CT-2가 가장 많이 보급된 홍콩의 경우를 봐도 가정주부나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이동전화요금이 지속적으로 인하된다면 발신전용휴대전화의 시장은 점차 축소될 것으로 관측된다. "발신전용휴대전화는 1인당 GNP 1만달러 이하의 국가경제에서 적당한 서비스"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입증하듯 영국이나 캐나다 등에서는 이 통신서비스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GNP가 1만달러 수준임을 고려한다면 발신전용휴대전화는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최근 들고다니는 공중전화에 삐삐기능을 추가한 새로운 개념의 'CT-2 플러스'가 등장, 다소 진보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틈새시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번 신규사업자 선정 수주전에 참여한 컨소시엄들이 구상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CT-2플러스다. 특히 대부분의 참여업체가 기존 무선호출 제2사업자라는 점은 이같은 서비스의 연결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까지 무선호출서비스는 특화된 통신 서비스의 하나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