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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정신 충만한 아마존 왕국

자식도 포기하고 여왕 위해 봉사한다.

개미사회는 흔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용맹스런 여족 아마존에 비유된다. 이는 그 사회가 짧은 번식기 동안을 제외하곤 순전히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최고 통치자도 여왕이고 집안일에서 바깥일에 이르기까지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맡아 하는 일꾼들도 모두 여자다. 수캐미들은 번식기에만 태어나서 바람없고 따뜻한 어느 날 모두 집을 떠나 다른 집 규수들을 만나 짤막한 정사를 가진 다음 서둘러 세상을 떠나는 사뭇 덧없는 삶을 산다.

개미사회는 또 여왕을 중심으로 이룩된 하나의 국가로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사회는 나라라기보다 가족이다. 남의 집으로부터 납치돼 노예가 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일개미들은 여왕의 몸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없이 홀어머니가 딸만 많이 낳아 살림을 꾸리는 딸부자집인 셈이다.

아들을 가끔 낳아 출가외인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아들은 태어나서 집에 있는 동안 빗자루 한번 드는 법도 없고 사냥 한번 다녀오는 일도 없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오로지 장가갈 날만 기다리는 영락없는 놈팡이들이다.
 

여왕개미를 도와 온갖 집안 일을 하는 잎꾼 개미의 일개미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집도 가지 않고 '여왕' 에게 헌신한다.


살아있는 ‘꿀단지’

그러나 딸들은 다르다. 평생을 시집도 가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신다. 물론 딸들 중에는 번식기에 집을 떠나 수캐미들과 혼인비행을 마친 뒤 새로운 살림을 차리게 되는 차세대 여왕도 있지만, 대부분은 태어나서부터 죽는 날까지 온 힘을 다해 어머니와 집안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일개미들은 갓 태어나면서 여왕의 시중을 드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조금 크면 알이나 애벌레들을 돌보는 집안일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밖에 나가 먹이를 구해 오거나 집지키는 일을 한다.

이렇듯 일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바치는 것 외에 유별난 희생을 감수하는 일개미들도 있다. 미국 남서부나 호주의 사막지대에 사는 꿀단지개미(honeypot ants)는 진딧물 같은 곤충들을 보호해 주고 대가로 얻는 꿀을 모아 저장해 두었다가 양식이 부족한 계절에 꺼내 먹는다. 그런데 그들이 꿀을 담아 놓는 단지가 묘하다. 일개미 중 몸집이 큰 것들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동료들이 먹여주는 꿀을 있는대로 받아 뱃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 ‘살아있는’ 꿀단지들은 부풀대로 부풀어 천근만근 무거운 몸도 마다않고 동료들을 위해 헌신한다.

큰 나무에 구멍을 뚫고 사는 유럽의 목수개미(carpenter ants) 중에는 구조가 변화된 머리로 집의 현관문을 막고 보초를 서는 일개미들이 있다. 일개미 한 마리가 굴을 막는 경우도 있고 좀 큰 굴은 여러 마리의 일개미들이 머리를 모아 지키기도 한다. 바깥일을 보고 돌아온 동료가 더듬이로 머리를 두드리면 비켜서서 들어오게 하지만 다른 집안의 개미는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문을 지키는 그들의 봉사정신은 정말 대단하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희생을 얘기할 때 우린 종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격을 받고 미국 항공모함에 자기 몸과 비행체를 송두리째 던져버린 일본군 가미카제 특공대를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도 기꺼이 바쳤던 그들이다.대부분의 개미사회 일개미들은 모두 가미카제가 될 준비가 철저히 돼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인상적인 것은 말레이시아의 열대림 속에 사는 목수개미의 일종이다. 이 일개미들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폭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몸은 턱에서부터 배 끝까지 이어지는 긴 분비샘으로 꽉 차있다. 만일 다른 개미들과 전투를 벌이거나 포식동물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스스로 자기 배를 터뜨려 분비샘에 들어 있던 끈끈한 독물을 적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기는 죽고 만다.
 

개미의 가계도^수캐미의 정자와 수정된 알은 다음 세대에 여왕개미와 일개미가 된다. 이들은 두 벌의 염색체를 갖는 암컷이다. 이에 비해 정자와 결합되지 못한 미수정란에서는 한 벌의 염색체만을 갖는 수캐미가 태어난다.


아비 없는 아들들

꿀벌에 쏘인 경험이 있는 이들은 혹시 알지 모르지만 꿀벌은 자기 집을 위협하는 다른 동물에게 침을 쏠 때 독소만 주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독소를 만드는 내장기관 전부를 그 동물의 몸에 꽂아 놓고 자기는 두어 시간 후면 죽는다. 이렇게 적의 몸에 꽂힌 침샘기관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근육의 운동에 의해 계속 독소를 적의 몸 속으로 쏟아 붓는다. 또 침의 반대편으론 독소를 공기 중으로 증발시킴으로써 자기 동료들에게 적의 존재를 알려 순식간에 수많은 일벌들이 달려 나와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한다.

일벌이나 일개미의 희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식을 낳는 것도 포기하고 여왕이 집안의 모든 번식을 담당하도록 돕는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진화의 기본 관점에서 보면 이같은 번식 희생만큼 극단적인 희생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은 진화의 측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사회에서 어떻게 이같은 이타주의적인 개체들이 생겨난 것일까.

벌, 개미, 그리고 흰개미 등을 우린 흔히 사회성 곤충이라 부른다. 그들은 모두 일벌이나 일개미들의 희생정신에 바탕을 둔 질서 정연한 사회를 구성하고 살기 때문이다. 이들 중 흰개미를 제외한 벌과 개미들은 모두 벌목(Hymenoptera)이라는 분류군에 속하는 곤충들이다. 그런데 벌목 곤충들은 대단히 묘한 방식으로 아들딸을 구별해 낳는다.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는 번식기에 수컷들과 교미해 받은 정자를 몸 속의 정자낭(spermatheca)에 보관하고 있다가 알을 낳는다. 이때 정자낭으로부터 정자를 꺼내 수정을 시키면 암컷이 되고 정자낭을 막아 미수정란을 낳으면 수컷이 된다. 다시 말해 벌이나 개미사회의 수컷들은 동정녀로부터 태어난 개체들이다.
 

비대해진 몸으로 일개미들 손에 음식을 받아 먹으며 평생토록 알만 낳는 흰개미 여왕.


평생 알만 낳는 씨받이?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은 세포 속에 두 벌의 염색체를 갖고 있는 2배체 동물이다. 정자나 난자를 만들 때만 한 벌로 줄였다가 그들이 결합해 수정란이 되면 다시 두 벌의 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수펄이나 수캐미는 정자의 도움 없이 오로지 난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반수체 동물이다. 즉 그들의 세포 속에는 언제나 단 한 벌의 염색체만 들어있다. 따라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수펄이나 수캐미들은 아버지가 없는 개체들이다. 외할아버지는 있었으나 아버지나 친할아버지는 갖고 있지 않은 묘한 존재들이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을 비롯해 오늘날 지구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고도로 발달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성 동물들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 협동함으로써 다른 종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이같이 엄청난 힘을 얻는 과정에는 언제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갈등이 존재한다. 똑같은 암컷으로 태어나 왜 누구는 여왕이 되고 누구는 일개미가 돼야 하는가.

개미사회를 관찰하다 보면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오웰(George Orwell)의 또 다른 소설 ‘1984’가 생각난다. 숨막히도록 철저한 조직 속에서 제가끔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는 사회. 인간사회에선 소설로나 가능한 것이 개미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현실로 나타나는 셈이다. 강압에 의한 협동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기희생에 바탕을 둔 사회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진 몸으로 일개미들이 떠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평생 알만 낳는 여왕개미를 볼 때마다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 사회인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야사를 보면 양반집 씨받이 여인들은 문밖 출입도 잘 못하고 비대해진 몸으로 아이를 낳는 일에만 전념했다는 뒷얘기가 있는데, 자못 흥미로운 비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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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최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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