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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와 '동아문화센터'가 공동 주최하고 '쌍용'이 후원하는 전국 과학교사 자연 생태계 탐사가 지난 8월1일부터 5일까지 강원도 계방산과 발왕산 일대에서 행해졌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한차례씩 개최돼 이번으로 17회를 맞는 생태계 탐사에는 전국 시·도 별로 한 명씩 교육부가 추천한 교사들이 참가했으며 신유항 박사(경희대 명예교수)가 탐사팀을 이끌었다.

오대산 국립공원의 서쪽에 위치한 계방산(해발 1577m)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사이의 군계(郡界)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약 2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발왕산(1458m)은 계방산과 함께 태백산맥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울창한 수풀로 뒤덮인 이 지역은 '아직' 자연 식생대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전돼 있고, 또한 남한에서 북방계 나비들을 집중 관찰할 수 있는 '나비의 천국'이란 점에서 이번 탐사지로 선정됐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나비는 대략 2만여종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나비는 총 8과(호랑나비과 흰나비과 부전나비과 뿔나비과 왕나비과 네발나비과 뱀눈나비과 팔랑나비과) 2백54종이 전부. 그나마 이 가운데 6과 54종은 북한에만 서식하고 있어 통일 전까지 우리가 볼 수 있는 나비는 2백종으로 줄어든다.

이번 탐사에서는 총 6과 62종의 나비가 채집됐다. 이 가운데 줄나비 황세줄나비 큰흰줄표범나비 북방거꾸로여덟팔나비 등 네발나비과가 23종으로 가장 많이 채집됐고, 암먹부전나비 먹부전나비 금강산귤빛부전나비 등 부전나비과도 14종이나 채집돼 비교적 풍부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채집된 단일종은 뱀눈나비과의 조흰뱀눈나비로, 특히 계방산 운두령 정상 부근에서 다수 출현했다. 이 외에도 호랑나비과의 산제비나비와 뱀눈나비과의 굴뚝나비도 다수 채집됐다.

이번 탐사의 목표를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입시에 찌들린 선생님들에게 생물이 있는 교실 밖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로 설정한 신 박사는 이같은 탐사결과에 대해 "나비 채집 자체가 탐사의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정도는 매우 만족스런 성과"라고 총평했다.

한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나비종이 관찰됐는가 하는 것은 나비의 식생과 관련해 그 지역의 환경 생태를 짐작케 하는 척도로 이용된다. 물론 이는 나비 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곤충에 적용되는 일반론이기도 하다.

주로 꿀이나 나무 수액 물 등을 먹고 사는 나비는 꽃피는 식물과 거의 공진화를 이룬 생물이다. 따라서 한 지역의 생태계가 온전히 보전돼 있다면 흡밀식물이 많을 것이고, 흡밀식물이 많다면 다양한 종의 많은 나비 개체수가 발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농약을 다량 살포하는 골프장에서 나비를 관찰하기 쉽지 않다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이번 탐사 기간 내내 신 박사는 풍부한 탐사 경험담과 나비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시종 탐사진을 이끌었으며 참가자들 역시 일정에 없던 야간 나방 채집 활동을 벌이는 등 열성을 보였다.

신 박사는 "지구는 인간 없이도 충분히 잘 해나갈 수 있지만, 절지동물(곤충) 없이는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자연의 분해 작용을 이루지 못해 현재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옥스포드대학 박물관 크리스토퍼 오툴 박사의 말을 전하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85% 이상을 점하고 있는 곤충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라며 탐사 참가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진을 독려했다.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울릉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으로, 양지바른 숲 가장자리나 물가의 풀밭에서 즐겨 살며 큰까치수영 갈퀴나물 등의 꽃에서 꿀을 빤다.


첫째날

소낙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동아 문화센터에 집합한 일행은 9시 정각에 목적지인 강원도 평창군으로 향했다. 진행 사정상 휴가 피크기와 탐사 일정이 겹친 탓에 몹시 힘겹게 서울을 빠져 나갈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길은 쉽게 뚫려 일행을 안도케 했다.

약 5시간 반 만에 숙소에 도착한 탐사진은 일단 짐만 각자의 방에 풀어 놓은 채 준비해온 곤충도감과 나비도감을 들고 다시 집합, 지도교수인 신유항 박사의 강의를 경청했다. 이날 신박사는 나비·곤충 탐사의 기본 장비인 포충망과 독병(毒瓶), 삼각통, 삼각지 접는 법 등을 설명하고 전반적인 나비의 습성과 효과적인 포획 방법 등도 소개했다.

신 박사는 강의를 통해 "우리가 나비를 잡고자 하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삼아 살생을 즐기려 하는 것이 아니니 만큼 포획한 나비는 세밀한 관찰을 통해 여러분들의 생생한 지식에 보태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짝짓기중인 조흰뱀눈나비^이번 탐사 중 가장 많은 개체수가 채집됐다.


둘째날

습성상 아침에 먹이 찾기와 짝짓기를 끝내는 나비의 습성에 맞춰 일행 역시 새벽밥을 먹고 목적지인 계방산으로 출발해 8시 반부터 본격 탐사에 돌입. 탐사진은 편의상 임의로 두개 조로 나뉘어 1조는 신 박사와 함께 운두령(해발 1087m)에서, 2조는 속사리의 이승복 생가터 일대에서 나비 채집에 들어갔다. 같은 산줄기에 속한 두 지역은 거리로 따져보면 대략 1㎞가 안되지만 해발 고도는 7백-8백m 정도 차이가 난다. 또한 이승복 생가터 일대는 기념관 건립 후 관광객의 급증으로 인위적 손길이 비교적 많이 닿은 곳이기 때문에 두 지역간의 생태적 차이점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굵은 비가 간간이 쏟아지는 등 궂은 날씨가 계속돼 활발한 채집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태였으나 모처럼 주어진 현장 기회를 놓칠 수 없는 탐사진은 비도 아랑곳 않고 나비를 찾아나섰다.

이날 운두령과 속사리에서는 호랑나비과의 산제비나비 등 2종, 네발나비과의 황세줄나비 애기세줄나비 큰흰줄표범나비 흰줄표범나비 등 20종, 뱀눈나비과의 굴뚝나비 조흰뱀눈나비 눈많은그늘나비 애물결나비 등 9종, 흰나비과의 줄흰나비 대만흰나비 등 4종, 부전나비과의 먹부전나비 암먹부전나비 금강산귤빛부전나비 등 11종 팔랑나비과의 수풀팔랑나비 검은테 떠들썩팔랑나비 등 7종이 채집돼 두 곳의 생태계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동물의 배설물을 먹고 사는 은판나비(숫놈)는 공중 화장실이 설치된 속사리에서만 채집됐다.

계속된 악천후로 오후 1시 반경 채집을 마친 탐사진은 숙소로 돌아와 신 박사의 강의를 경청했다. 신 박사는 나비 표본 만드는 방법, 나비와 나방의 구분법, 나비 암수 구별법 등에 대해 설명하고 도감을 살펴가며 채집된 나비의 동정(同定)에 들어갔다.

이날 채집된 나비중 가장 많은 개체수가 잡힌 종은 조흰뱀눈나비였다. 이 나비의 이름은 우리나라 곤충 연구의 선구자인 조복성 선생의 성을 딴 것으로, 이같이 나비 이름에 사람 이름이 들어간 경우는 외국에선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석주명 선생의 성을 딴 석물결나비와 함께 조흰뱀눈나비 단 두 종류뿐이라고 신박사는 알려주었다.

이밖에도 신 박사는 국내 나비중 덩치가 크고 색상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는 산제비나비는 한때 석주명 선생에 의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비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다는 사실도 전해주었다.
 

노랑나비^흰나비과에 속하는 노랑나비는 배추흰나비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나비다.


셋째날

1조와 2조가 장소를 교대해 어제와 같은 일정으로 탐사가 진행됐다. 날씨가 쾌청해져 채집에는 최적이었으나 의외로 나비는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생님들은 "어제 다른 조가 '싹쓸이'한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이날 채집한 나비는 어제와 비교해 큰 차이점은 없었다.

점심 경 채집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탐사진은 동정 과정에서 이른바 '특정 야생 동·식물'로 분류돼 원칙적으로 포획이 금지된 대왕팔랑나비 등을 구분해 냈다.

특정 야생 동·식물이란 '학술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야생 동·식물로서 자연 생태계의 균형 유지와 그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이 관계 중앙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지정·고시하는 야생 동·식물(자연 환경 보전법 제3조 제4호)'로, '환경부 장관의 허가 또는 다른 법령에 의한 인가 등을 받지 않고 포획·채취·이식·수출·가공·유통 또는 보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겁주는' 조항이 달라 붙어 있다.

이에 대해 신 박사는 "내게 3백만원 말고 10만원만 줘도 여러분 고발하지 않겠다"고 우스갯 소리를 한 다음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원래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도통 구절 어디에건 정부가 생물 보호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구절은 찾아 볼 수 없는 무책임한 규정"이라고 법 조항을 통박했다.

신 박사는 "다른 동물과 달리 먹이사슬의 아래에 위치한 곤충의 경우는 이같은 법률적 규정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비는 식물과 달라 발생지와 채집지가 항상 일치하지 않으며, 또한 멸종 위기종인지 감소추세종인지 등등을 판단하는 기준 조차 객관성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발생 전성기나 발생 중심지에서는 당연히 개체수가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수가 적어지게 마련이니 조사 시점과 장소에 따라, 또 사람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다는 것.

나비과에는 모두 15종이 특정 야생 동·식물로 분류돼 있는데, 예를 들어 영월에서만 잡히는 상제나비(분류번호 곤-3)이나 설악산 정상에서만 발견되는 신부나비 (분류번호 곤-13)는 이북에선 매우 흔한 나비라고 한다.

신 박사는 "곤충은 비록 전체중 5%만의 알이 생존한다 해도 워낙 한 개체에서 태어나는 자손이 많아 종족 유지에는 충분하기 때문에 개방 환경에서는 절대 멸종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라면서 "아직 채집으로 인해 멸종한 나비는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신 박사는 "근래들어 초지성 나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발견되는데, 이는 채집이 원인이 아니라 각종 위락시설이나 골프장 등의 건설로 나비의 식초(食草)가 자라는 평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부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야간 나방 채집에서는 총 13과 52종의 수확을 올렸다. 이 가운데 지역 미기록 종이던 밤나방과 7종 자나방과 9종 박각시과 1종 알락나방과 1종 불나방과 5종 명나방과 2종 꿀벌레나방과 1종 누에나방과 1종이 추가로 기록됐다.

넷째날

어제로 계방산 탐사를 끝낸 탐사진은 장소를 발왕산으로 옮겨 남은 일정에 들어갔다. 발왕산은 전체적으로는 낙엽성 활엽 잡목림으로 구성된 식물 생태를 이루고 있어 다양한 나비 종이 채집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날 잡힌 나비는 이틀간 계방산에서 잡힌 종과 대동소이했으나 참줄나비 중국황세줄나비 왕오색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왕그늘나비 범부전나비 수풀팔랑나비 등이 새로 발견됐다. 이중 왕오색나비는 특정 야생 동·식물로 분류된 종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나라 나비'이기도 하다.

동정과 분류가 끝난 후에는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동행한 본사 출판사진부 김용해 차장의 생태 사진 촬영법 강의가 이어졌다.

다섯째날

일부 참가자들이 "미진한 채집을 좀 더 하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지방에서 온 선생님들의 교통편 사정으로 예정대로 아침에 서울로 출발. 서울 도착 후 "지금과 같은 여러분들의 열정이 앞으로도 지속돼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나비만이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달라"는 신 박사의 거듭된 당부를 새기며 해산했다.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용해 기자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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