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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세상에서 가장 오래 진행 중인 실험은?

 편집자 주 

이그노벨상.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다시 할 수도 없고 다시 해서도 안되는 업적”에 수여되는 상으로 불립니다. 매년 듣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연구 약 10개에 수여되고 있죠. 하지만 웃음 너머로 과학의 본성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연구들을 조명하는 상이기도 합니다. 

매년 단신으로 지나갔던 이그노벨상 연구를 모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현대 과학에서 실험은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세운 가설을 검증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하지만 실험은 쉽지 않다. 비싼 장비가 필요하거나 곤충에게 쏘이는 괴로움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고, 가끔은 100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이그노벨상 위원회를 감동시킨 인내의 실험들을 소개한다.

 

 

96년 동안 진행 중인 점도 측정 실험

 

호주 퀸즐랜드대에 있는 파넬 빌딩은 사암색 외관이 매력적인 아담한 2층 건물로, 퀸즐랜드대 물리학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 조용한 건물은 사실 전 세계 과학 애호가들의 성지다. 박물관 로비 진열장에 놓인 이상하게 생긴 실험 기구 덕분이다. 태워먹은 달고나 찌꺼기를 삼발이에 담아놓은 것 같은 이 기구는 ‘피치 낙하 실험(The Pitch Drop Experiment)’ 장치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실험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

 

세상에는 겉보기와 다른 물질들이 존재한다. 피치(pitch)가 그렇다. 피치는 검고 끈적끈적한 탄화수소 화합물 덩어리이다. 석유나 콜타르, 식물을 증류해 만든다. 옛날부터 나무배의 틈 사이로 물이 새지 않도록 바르거나, 와인이 흘러 사라지지 않도록 토기에 덧칠하거나, 도로를 포장할 때 쓰였다. 피치가 겉보기와 달라보이는 이유는 냉각하면 굳어지는 성질 때문이다. 온도에 따라, 혹은 만들어질 때의 조성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굳은 피치는 망치로 때리면 산산조각날 정도로 딱딱하다. 그렇다면 이 피치는 정말 고체가 된 걸까?

 

피치의 상을 알아내는 실험은 간단하다. 흘려보면 된다. 1927년, 토마스 파넬 퀸즐랜드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피치가 고체가 아니라 사실은 무지막지하게 끈끈한 액체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 유명한 피치 낙하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가열한 피치를 깔대기 모양의 유리 그릇에 담았다. 끈끈한 피치는 물과 달리 바로 유리 그릇의 바닥에 가라앉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하기까지는 무려 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준비가 된 1930년, 파넬 교수는 그릇의 아래 부분을 잘라냈다. 이제 그릇 아래의 구멍으로 피치가 흐른다면 피치가 액체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치 방울은 그릇 아래로 떨어져서 피치가 액체임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다만 문제라면 그 첫 번째 방울이 떨어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점이다. 첫 번째 방울은 실험 시작 후 약 9년이 지난 1938년 12월에 떨어졌다. 피치의 점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1984년 점도를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20캜일 때 피치는 물보다 약 1000억 배 높은 점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1948년 9월 1일, 파넬 교수가 67세로 세상을 떠난 이후 같은 대학의 후임자인 존 메인스톤 교수가 52년 간 피치 낙하 실험을 이어서 진행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13년 이후로는 같은 대학의 후임자인 앤드류 화이트 교수가 피치 낙하 실험을 관리하고 있다. 실험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96년 동안 피치는 총 아홉 방울 떨어졌고, 실험은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 진행된 실험’으로 등록되는 영예를 얻었다. 파넬과 메인스톤 교수는 사람의 일생보다 긴 실험을 제작하고 감독한 공로로 2005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50년 동안 매일 왼손 관절을 꺾었더니

 

피치 낙하 실험이 어떤 종류의 과학적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영겁의 기다림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면, 2009년 이그노벨상 의학상을 받은 미국의 의사 도널드 웅거는 인간의 끈기를 실험으로 보여줬다. 그의 실험은 관절을 꺾는 행동이 관절염의 원인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손가락 관절에 힘을 주면 ‘뚝’ 소리가 난다. 단순히 관절끼리 부딪혀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관절에 힘을 주면 관절 사이 윤활액이 들어가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압력이 낮아지면서 윤활액에 녹아있던 기체가 기포로 갑자기 빠져나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세한 기포는 곧바로 터지지만 순간적으로 83dB(데시벨)에 달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사실은 40년 동안의 연구와 논쟁을 거친 끝에 2018년에야 밝혀졌다. doi: 10.1038/s41598-018-22664-4

 

관절 꺾기를 많이 하면 관절에 나쁠까? 어렸을 때 가족들로부터 관절을 꺾으면 관절염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웅거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하기로 했다. 매일 왼손의 관절을 적어도 두 번 꺾어 소리를 낸 것이다. 실험 대상을 뜻하는 ‘실험군’인 왼손과의 비교를 위해 오른손 관절은 꺾지 않았다(이를 ‘대조군’이라 부른다).

 

간단한 실험이지만 그는 이 일을 매일, 50년 동안 꾸준히 했다. 그리고선 1998년, 미국의 학술지인 ‘관절염과 류머티즘’에 “왼손 관절을 적어도 3만 6500번 정도 꺾는 동안 오른손 관절은 거의 꺾지 않았다”며, “그러나 두 손 모두에 관절염이 오지 않았고, 특별한 차이도 없었다”고 밝혔다. 반세기에 걸친 실험으로 관절 꺾기와 관절염에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웅거의 실험은 한계가 많다. 실험 대상이 본인 한 명으로 국한됐으며, 실험 설계가 빈약해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를 막을 수도 없었다. 위약 효과를 막으려면 웅거 본인이 실험군과 대조군을 몰라야 하는데, 그걸 알고 있었으니 실험 결과가 웅거가 바라는 대로 나타났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후속 연구는 웅거의 추측이 옳을 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2011년 미국 가정 의학 위원회 저널에 실린 연구는 2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관절을 꺾는 버릇과 손 관절염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doi: 10.3122/jabfm.2011.02.100156 

 

열 번째 방울을 기다리며

 

앞서 소개한 두 실험이 과학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지 모른다. 관절 꺾기 실험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에 너무 빈약했고, 피치 낙하 실험은 과학적 중요성보다는 과학의 재미를 찾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실험이었다. 메인스톤 교수는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우리가 과학의 즐거운 측면을 보길 멈춘다면, 모든 것이 끝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이 실험들은 우리의 마음에 남을까. 비록 큰 돈이 들지도 않고 대단한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지만, 과학이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끈기와 참을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 세기 가까이 기다려서라도 과학의 가치를 이어나가려는 과학자들의 의지가 담긴 셈이다.

 

파넬 교수가 시작한 피치 낙하 실험은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인 파넬 빌딩의 박물관 로비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 실험의 다음 목표는 열 번째 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다. 놀랍게도(혹은 운이 나쁘게도) 96년 동안 사람들은 한 번도 피치 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을 관찰하지 못했다. 퀸즐랜드대 측은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2020년부터 인터넷으로 실험을 24시간 중계하기 시작했다. 기회가 된다면 당신도 그 실험 영상을 찾아보라. 정지 화면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초침만 돌아가는 영상을 보다 보면, 필자처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피치보다 더 끈끈한 것은 어쩌면 과학자들의 끈기일 거라고. 

 

 

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기자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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