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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상혁명,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카메라도 없고 배우도 없는 상상력 무한대의 디지털 무비

불을 끄고 방을 비우면 인형들이 살아나 움직이리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한 상상이다. '토이스토리'(Toy story)는 아이들이 없는 빈 방에서 일어나는 장난감들의 세계와 그들의 질투 우정 좌절 그리고 희망을 그린 영화다.

앤디의 생일날 새로운 장난감인 우주전사 버즈가 선물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앤디가 가장 좋아하던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새 장난감이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는 기발하면서도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영화는 시작된다. 게다가 자신이 장난감이 아닌 우주를 지키는 우주전사라고 착각하는 버즈, 그리고 주인의 사랑으로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너무도 장난감적인 우디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게만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장난감을 찢고 부수기를 즐기는 악동 시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고, 그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갖가지 모험을 벌이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장난감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디즈니사와 픽사(Pixar)사가 함께 만든 이 영화는 비록 장난감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아이들만의 영화는 아니다. 서부개척시대부터 우주개척시대까지 미국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우주전사 버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미국인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은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 또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는 하지만 우디와 버즈는 실은 어른들이다. 그래서 앤디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악마같은 시드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더욱 우습게만 보인다.

디즈니사의 창립자 월트 디즈니는 왜 만화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항상 이렇게 답하곤 했다.

"우리는 아이들만을 위해 만화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른들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동심을 위해 만화영화를 만든다."
 

컴퓨터 그래픽 수법이 이용됐지만 영화의 구도는 기존의 것과 별반차이가 없다.


컴퓨터가 점령한 카메라의 세계

그러나 이 영화가 더 매력적인 이유는 재미있고 기발한 이야기보다는 1백% 3차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장편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영화와 달리 그림이나 인형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애니메이션이라 한다. 전통적인 애니메이션(cell animation)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기(animate)위해 셀 단위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한 프레임(frame, 영화촬영의 최소단위로 1초의 영상에 24프레임을 사용)씩 카메라로 찍은 후 영사기로 필름을 돌려서 살아 움직이는 동작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이라고 해서 진흙으로 빚은 인형들을 조금씩 움직여 한 프레임씩 카메라로 찍은 후 연속동작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토이스토리는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됐다. 77분 동안의 영화가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카메라로 그림이나 인형의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안에서 인물을 만들고 일련의 동작을 프로그래밍해 필요한 부분에서 주인공들을 불러낸다.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의 경우 자연스런 동작을 만들기 위해 프레임마다 조금씩 달라진 그림을 일일이 그려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이 힘들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

그러나 컴퓨터로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이 할 수 있는 동작을 입력해 놓은 다음 필요할 때마다 화면으로 불러내 장면을 만들면, 훨씬 다양한 동작들을 연출할 수 있다. 토이스토리에서 주인공 우디에겐 7백12가지 움직임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얼굴에만 2백12가지의 동작을 입력해 촬영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디의 사실적인 표정 연기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또 한가지 장점은 보다 자연스런 동작과 섬세한 표현을 위해 모션 블러(motion blur: 움직임이 흐려지는 현상)효과를 내거나 정교한 렌더링(rendering)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 보면 어떤 물체가 움직일 경우 약간 흐리게 보이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모션 블러라고 한다. 실제로 사람의 눈이 움직이는 물체를 볼 때 이런 방식으로 물체를 인지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은 초점이 맞춰진 상태의 물체(초점), 초점보다 멀리 혹은 가까이 있는 물체(심도), 그리고 움직임이 있는 물체(모션블러)를 혼합해 사물은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대로 화면을 처리해, 보다 현실감있는 동작을 연출시킨다.

화면을 좀 더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렌더링과정을 거친다. 렌더링이란 각각의 영상을 세부적으로 다듬어 색상을 완성하고 각 영상에 해당하는 주변 상황 데이터를 수집해 결합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마치 가상의 조명장치로 빛을 비추듯 음영을 조정하고,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사물의 질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 프레임을 렌더링하는데 10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11만64프레임으로 만들어진 토이스토리를 렌더링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은 '쥬라기 공원' 이나 '캐스퍼' 같은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낼 때 사용됐다. '캐스퍼'의 경우 보통 영화처럼 카메라로 실제 인물들을 찍고 그 위에 유령인 캐스퍼의 그림을 그려 넣은 뒤, 보다 사실적인 화면을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고 밑그림을 지워 캐스퍼와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경우 컴퓨터 그래픽이 차지하는 시간은 실제로 그렇게 길지 않다. 컴퓨터 특수효과로 유명한 '쥬라기 공원' 에서 컴퓨터 그래픽이 차지하는 장면의 총 시간은 약 10분 정도.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 그래픽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토이스토리에서 장난감들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다. 특히 장난감들의 시선으로 보는 생경한 배경은 매우 그럴듯해 보임과 동시에 장난감들의 세계라는 일종의 신비로움이 서려 있다. 우디와 버즈 외에도 용수철 강아지 슬링키나 감자인형 미스터 포테이토, 장난감병정들과 공룡 렉스 등 다양한 인물설정과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동작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영화속에 등장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사람을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사람의 피부는 여러층으로 이뤄졌다. 바깥 살갗엔 갖가지 얼룩이 있고 얇은 지방이 흐른다. 피부 안쪽엔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붉은기도 띠어야 하는데, 이 모두를 표현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머리카락을 묘사할 때도 하나하나가 따로 존재해야 하고, 각기 따로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토이스토리에서는 피부를 가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될수록 많은 옷을 입혔고, 까까머리나 덤불머리로 표현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인위적이어서, 아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엄마에게 연신 물어본다. "엄마, 앤디랑 시드도 인형이야?"

만약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실제로 촬영을 하고, 장난감들의 세계를 그리거나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해 절묘하게 교차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상상력만이 표현의 한계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카메라로 도저히 촬영할 수 없는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토이스토리는 영화의 구도를 많이 따랐다. 우디가 버즈를 창문 밖으로 밀쳐낸 뒤 다른 인형들이 그를 비난하는 장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추격전 장면 등은 가상의 카메라로 촬영된 듯한 화면구도를 가진다.그래서 우리는 낯익은 화면구도로 인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느낌만 새로울 뿐,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낯설지 않다. 때론 보통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카메라가 갖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화면구성을 통해 새로운 영상미학을 구축할 때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보다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미녀와 야수' 의 무도회 장면에서처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3백60도 회전하는 장면은 2차원 만화의 한계를 극복했다. 또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컴퓨터 내부(사이버 스페이스)의 장면들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얼마든지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토이스토리에서 버즈가 장난감들 앞에서 나는 시범을 보일 때, 화면이 버즈의 공중제비를 보여줌과 동시에 버즈의 시선으로, 회전 하며 내려다보는 장면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이기에 촬영 가능했던 것이다.

1백%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토이스토리는 우리에게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어서 얻은 필름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 카메라 없이 만들어진 영화를 영화라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배우나 세트가 없이도 컴퓨터만 있다면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카메라를 컴퓨터로 대치해 버린 영화가 영화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은 사실 부차적인 일이다. 1927년 최초의 유성 영화인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가 만들어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음악과 대사가 화면이라는 영화의 순수한 본질을 흐린다면서 격렬히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유성영화에 열광했고 5년도 되지 않아 무성영화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컴퓨터가 모든 것을 대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어쩌면 기우일 것이다. 인간다운 개성을 지닌 배우들의 연기를 컴퓨터가 어찌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영화가, 설령 SF영화라 할지라도, 감춰진 삶의 본질을 드러내고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로 영원히 남기 위해선는 컴퓨터 그래픽이 단순한 눈요깃거리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어떠한 상상도 영화를 통해 그대로 실현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상상 또한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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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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