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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부활에 가려진 카오스 이론 쥬라기 공원

자연과 섭리에 도전한 인간들의 우화

프리츠 랑(Fritz Lang)이 1929년에 만든 영화 '달의 여인' 은 오늘날 로켓을 발사할 때 "10, 9, 8 … "하는 카운트다운(countdown)이 처음 등장한 영화로 유명하다. 만약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로켓을 발사하면서 카운트다운을 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만약 지금 수행중인 '게놈프로젝트'(Genome Project)가 성공해 DNA에 담긴 유전정보가 모두 밝혀진다면, 우리는 제일 먼저 호박 속에 묻힌 모기를 뒤져서 공룡을 재탄생시키는 일에 착수할지도 모른다. 바로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이라는 한편의 영화 때문에.

마이클 크라이튼의 베스트 셀러가 원작이고, 영화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았기에 영화는 큰 관심과 기대 속에 만들어졌고, 6천5백만년 전 사라진 중생대의 공룡들이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부활하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1백년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로 기록됐고, 공룡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관객들은 다시 살아난 공룡들에게 전폭적인 관심을 쏟은 반면, 이 영화가 본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것은 원작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영화에도 책임이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공룡 공원' 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공룡들을 다시 살려내는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고립된 계에서 우리들이 만들어 낸 공룡들을 완벽히 통제하는 일이 가능한가를 따지는 것이다.

쥬라기 공원을 운영하는 일은 공룡들을 다시 살려내는 문제와는 별개다. 영화는 스스로 번식해 통제 불가능하게 돼버린 공룡들의 반란을 통해 공룡 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공룡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개구리가 아닌 다른 동물의 DNA에 이식했다면 통제가 가능했을까.

영화는 쥬라기 공원의 안전성을 검사하기 위해 몇몇 과학자들이 초빙돼 공원을 탐색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중에는 '카오스이론 '(chaos theory)을 전공한 말콤 박사도 끼어 있는데, 그가 가끔씩 언급하는 카오스이론은 (관객들에게는 대부분 간과되었지만) 실제로 쥬라기 공원을 완벽히 통제하는 일이 왜 불가능한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초식동물인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나뭇잎을 주는 장면. 공룡도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을지도.


통제할 수 없는 카오스 세상

카오스 이론은 일정한 계에서 일어나는 불안정하며 비주기적인 운동을 기술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간단한 미분방적식으로 기술할 수 있는 계라 하더라도 비선형항에 의해, 초기의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한 미분 방정식으로 기술된다는 것은 그 계의 미래 상태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주 작은 변화가 얼마의 시간 후 그 계를 전혀 다른 상태로 바꾸게 된다면 우리는 그 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계를 카오스계라 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카오스계는 2백초 후의 상태를 ±0.1의 정확도로 알기 위해선 1×${10}^{-88}$의 정확도로 현재상태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정확도임에 틀림없다(2백초 보다 더 먼 미래를 알기 위해선 정확도가 훨씬 더 늘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계가 가장 전형적인 카오스계라는 사실이다. 자연계의 축소판인 '쥬라기 공원' 또한 말할 나위 없이 카오스계다. 따라서 우리가 공룡들을 암컷만 생산해 그 수를 조절하고 아무리 좋은 컴퓨터를 동원해 통제한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며, 그러기에 완벽한 통제 또한 불가능하게 된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은 어떻게 무질서한 자연 환경에서 아메바처럼 단순한 생명체가 점점 자기를 조직화하고, 복제하고, 진화해 생태계라는 것을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다. 크리스토퍼 도일 랭턴에 따르면, 복잡한 계가 고정된 상태도 아니면서 완전히 카오스 상태도 아닌, 그 중간상태에서 생명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주창했는데, 이른바 이것을 '카오스 가장자리에서의 생명'(Life at the edge of chaos)이라고 한다. 따라서 설령 암컷만으로 구성된 공룡의 생태계도 환경에 적응하며 나름대로 복제와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생명이 처음부터 암수 쌍으로 존재했겠는가).

무너져버린 바벨탑의 꿈

우리가 만들었지만 결국 우리의 뜻대로 통제할 수 없게 돼버린 쥬라기 공원. 영화는 그것을 암시라도 하듯 공룡이 자신을 운반해준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쥬라기 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는 사정없이 찢기고,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라고 써진 플래카드가 나부끼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는 이제는 통제할 수 없게 돼버린 쥬라기 공원의 섬뜩한 결말이 잘 드러나 있다.

벨로시랩터(Velociraptor)들과 싸우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랜트 박사와 그 일행들은 자력으로 공룡들을 처치하지 못하고, 또 다른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의 등장으로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들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려는 영화의 의도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장면이다.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이성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모더니즘의 종말을 선언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 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모더니즘은 20세기 마지막 혁명인 '카오스 이론' 을 통해 여지없이 무너졌다. 영화 '쥬라기 공원'은 막강한 과학의 힘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고 자연에 도전한 인간들에 관한 우화인 것이다. 쥬라기 공원은 현대판 바벨탑이라고나 할까.

영화는 쥬라기 공원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우리가 인간의 DNA 염기 배열을 모두 알고 있고, 실험실에서 최첨단 장비로 그것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 해서 갓난아이를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박에 묻힌 모기의 피에서 공룡의 DNA를 얻었다고 하지만 생기있는 공룡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괴짜박사 말콤의 카오스에 관한 이야기는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뿐, 쥬라기 공원과는 별 상관없게만 느껴진다.

대신 영화는 진짜처럼 살아 움직이는 공룡들을 스크린 위에 보란 듯이 올려놓음으로써 과학적 논의들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벨로시랩터들의 공격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쥬라기 공원의 최후 장면은 '카오스'를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자아비판이자 자기반성으로 만들어진 '쥬라기 공원' 의 끔찍한 결말만은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룡의 출현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주인공들. 부활한 공룡들은 더이상 아이들의 장난감 모형이 아니었다.


괴델의 불완정성의 원리

괴델(Kurt Gödel: 1906-1978)은 논리학과 수학 기초이론을 확립한 미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다. 1931년 그가 증명한 불완정성의 정리는 당시 공리적인 방법에 의존해 수학의 체계를 세운다는 확신을 좌절시켰다. 불완전성의 정리는 다음과 같다.

"규칙과 유한개의 공리가 무모순(즉추론의 규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어떤 주장이 참인 동시에 거짓임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일때, 이렇게 설정한 공리계로부터 유도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존재한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 한 이론을 체계구축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의 이성 일반에 있어서의 한계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정리다.
 

199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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