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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VS 창조론

독자가 본 과학 논쟁

과학동아 10월호에 게재된 '진화·창조' 논쟁에 대해 30여명의 독자들이 의견을 보냈다. 모든 글에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열성적인 사고와 진지한 자세가 느껴졌다. 진화론 만세를 외쳤던 '친화론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심주현 신흥식 이용걸)은 원고지 31매 분량으로 집필하고 다시 요약본을 첨부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대열씨는 군복무중인데도 창조론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외계인에 의해 지구생명체가 창조됐다는 새로운 창조론을 주장한 박정규씨의 의견도 흥미로웠다. 핵켈의 반복설을 비판하고 진화론의 사회적 악용을 지적한 리차드(R. Richard)씨의 글도 눈길을 끌었다. 모든 글들이 게재될 수준을 갖췄지만 10월호의 내용과 중복되는 글들을 피해 최종적으로 3편을 선정했다. 글을 보내주신 모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하나의 종교적 신념, 진화론

메커니즘 불확실하고 대안도 없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나 토마스쿤이 지적한 것처럼, 과학연구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즉 과학자는 '절대의 중립적인 자세'가 아니라 세계관 철학 종교 경험 등에 따른 선입견들과 우세한 패러다임의 영향을 받아 연구한다. 특히 이 경향은 과학의 많은 주제 중 경험 관찰 재현 등을 할 수 없는 생명기원의 문제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생명기원에 대한 대표적인 두 가설 중 진화론은 흔히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검증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 진화론 역시 진화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신념의 체계'일 뿐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웠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개체의 계통반복설 돌연변이설 자연선택설 등은 오늘날 많은 진화론자들에게도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런던 대영자연사박물관의 유명한 고생물학자 콜린 패터슨박사가 1981년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행한 강연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몇주일동안 여러 사람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며 돌아다녔습니다. '귀하는 진화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소? 무엇이든 하나라도 좋으니 검증 가능한 것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대답은 언제나 침묵 뿐이었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닐 뿐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의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단순한 종교적 신념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할 뿐 그 메커니즘을 모른다는 점에서 진화론도 근본주의적 신앙의 성격을 갖는다. 다윈의 이론에 많은 문제점이 있고 진화론의 틀 속에서는 뚜렷한 대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원의 패러다임으로서 진화만을 고집하며 다른 대안의 가능성조차 배제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자세다.

창조론의 패러다임으로 기원을 다루면 만물의 존재의미와 삶의 의미, 그리고 건전하게 만물을 돌아보는 인간의 역할 등을 발견하게 된다. 맹목적인 진화론으로부터 벗어나 창조의 목적과 의미를 기초로 삼는 세계관, 혹은 패러다임을 가지면, 우리는 보다 건전하게 우주를 바라보며 왜 자연과학을 연구하는지에 대한 의미도 발견하게 된다.

2진논리의 헛점, 창조론

비판 뿐 명쾌한 논리 없다


예전에도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여러번 본 적이 있는데, 항상 그랬듯이 과학동아 10월호의 창조론의 주장은 실망스러웠다. 이는 진화론이 옳고 창조론은 그르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진화론은 현재의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아직 설명을 못하는 부분이 많다. 과학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점차 나아질 것 같기는 하나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진화론만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이런 논쟁을 볼 때마다 창조론에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알려고 하였으나 한번도 명쾌한 설명을 본 적이 없다. 여기서는 창조론 주장의 방법론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창조론의 내용은 대부분 진화론, 혹은 그 일부 이론에 대한 반박으로 구성돼 있다. 즉 창조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명쾌한 논리적인 설명이 없고 그저 성경에 그런 말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이는 반(反)진화론 혹은 믿음이지 하나의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전지전능한 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세한 설명을 회피하려는 것 같아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또한 창조론의 주장은 2진논리(binary logic)를 사용하는 것 같다. 즉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1+1의 값에 대해 진화론자가3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틀렸으니 자신의 답 4가 맞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이는 진화론자나 창조론자 모두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없기 바란다). 이런 논리는 진화론도 창조론도 아닌 다른 제3의 이론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다.

논리를 기계적으로 추구해 가면 반드시 모순이 생긴다. 이는 한 수준에서의 논의에 메타(meta) 세계에서 본 관점을 섞어버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수학자 게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공리에서 출발해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가서,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정리가 존재함을 보였다. 또한 리만이라는 수학자는 전통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와 상치되는 공리를 사용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전개하고, 만일 자신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틀렸다면 유클리드 기하학도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처럼 공리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상치되는 완벽한 논리체계를 세울 수 있다. 따라서 완전히 다른 공리를 가지고 출발하는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논리적으로 판단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지 모른다.

진화론에서 사용하는 공리, 즉 과학의 법칙은 어쩌면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진화론은 신의 뜻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을 것인데, 창조론은 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된다.

수년 전 어느 신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신자로서 진화론을 공부하는 것이 잘못이냐는 질문에 대해 "창조론은 세상이 어떻게 시작 됐는지에 대한 대답이며, 진화론은 과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대답이다. 따라서 그런 문제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하는 것은 관점의 차이이지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은 아니며 그것을 탐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조화로운 수용은 불가능한가

하나님이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원시의 지구
 

요즘 사회에는 시정되어야 할 폐단들이 많은데, 그 중 한가지가 흑백논리다. 흑백논리는 어떤 사실이나 진리 등에 대한 견해를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양분해서, 그 사이에 중간적인 의견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 현상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흑백논리로만 일관해 진화론 아니면 창조론을 주장하는 것은 과학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조화로운 수용을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은 원시지구의 환원성 대기를 재료로 여러 단계를 거쳐 생성된 코아세르베이트를 '최초의 생명체 전단계' 로 인정하고, 코아세르베이트에서 출발한 최초의 생명체가 생명유지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물들이 출현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반면에 창조론자들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고 자신들의 신앙에 위배되기 때문에, 모든 생물(특히 인간)은 창조주가 가장 완벽하게 만든 존재이며 앞으로도 모든 생물들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운다.

진화론은 꽤 과학적이지만 원시대기를 확인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중간화석이 부족해 모순점이 지적된다. 창조론은 그 근거가 과학적인 것들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너무 종교에 귀의하려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되기 힘들다. 그러나 진화론과 창조론을 적절히 수용하면 지구의 기원과 생명탄생의 신비를 벗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단계씩 밟아 나가도록 하자.

우주의 모든 공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체를 직접 만드신 것이 아니라 지구에 원시대기 등 여러 조건을 주시고, 진화의 가능성 및 모든 과학법칙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줌으로써 모든 생물들이 진화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신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성경의 내용 중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어졌다"는 구절을인용해 이런 의견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굽기 위해 가마에 불을 피운다"는 귀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모든 자연법칙, 특히 진화론에 충실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인간에게 가능성을 심어주신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은 기독교 교리를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설명의 핵심은 기독교 교리의 해석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바탕 위에서 모든 자연법칙의 적용 가능성을 존중해야만 인류가 생명탄생의 베일을 벗기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을 반대하기 위한 창조론, 혹은 창조론을 반대하기 위한 진화론보다는 두가지를 조화시켜 더 좋은 학설을 제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만 생명탄생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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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안지용
  • 박필성 교수
  • 이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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