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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색채에 대한 감수성은 비교적 둔감하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또 우리 환경을 쾌적하게 재창조하기 위해서 색에 대해 보다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색채란 빛이 물체에 반사돼 눈에 들어왔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각적이며 생리적인 현상으로, 이에 대한 감정은 다분히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빛은 파장(가시광선의 경우 3백80-7백30nm)이란 물리적 특성에 의해 절대적인 값을 결정할 수 있지만, 색채는 주어진 조건 하에서 인간이 느끼는 빛의 특성이기 때문에 상대성을 갖는다.

색채는 인간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인자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 않다. 이는 우리의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 입어왔고, 대기중에 습기가 많은 기후로 인해 자연의 색채 역시 강렬함을 주지는 않는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 문화의 담백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영향으로 인해 우리 민족의 색채에 대한 감수성은 비교적 둔감하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 우리 환경을 보다 쾌적하게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색채에 대해 보다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색채에 대한 선호도는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개념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인류색 : 세계인에게 공감되는 색(빨간색 파랑색 검은색 흰색)
민족색 : 특정문화권에서 선호되는 색. 미국인은 노란색을 선호하지만 일본인은 이 색을 싫어한다.
개인색 : 기호심리에 맞는 유행색
성색 :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 색의 차이
상품이미지색 : 상품의 이해를 돕는 색. 커피는 갈색 계통의 색, 버터는 노란색의 포장을 사용한다.

우리가 느끼는 색채나 명암은 주변 환경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되며 색채 현상은 눈의 생리심리적 특성에 기인한다. 흔히 노인들이 화려하고 밝은 색상의 옷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나이들면 젊어지고 싶어 밝은 색을 좋아하게 되는 노인 심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눈이 노화됨에 따라 수정체나 초자체에 침전물이 퇴적면서 동일한 색이라도 노인들에게는 탁하거나 어둡게 보이는 생리적 현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이 식별 가능한 색의 수는 최적 조건에서 1천만가지나 되며, 이중 산업에서 사용되는 색채만해도 약50만종에 이른다. 이같은 사실은 색채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제품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색채에 대한 의사 소통이나 뉘앙스의 전달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색채를 산업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색채의 표준화, 색채 측정(colorimetry), 색채 비교(color matching) 등 색채 과학에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감성공학을 이용한 성공적인 색채의 설계예는 일본의 전자회사인 샤프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샤프사는 마쓰시다 도시바 히다치와 같은 종합 전기전자 회사에 비해 작은 기업이지만 최근 가전시장에서 급신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성공에는 컬러 플래닝 시스템(CPS)이라 불리는 색채 설계가 큰 역할을 했다.

이 회사는 제품 기획이나 개발부서에서 만들고자 하는 제품을 묘사한 '제품이미지'를 낱말로 표현하고 '언어 이미지 스케일'과 ' 컬러 이미지 스케일'을 이용해 계통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에 합당하도록 색채 계획을 진행했다.

① 제품의 특성(기능 용도 형태 재질 등)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것.
② 제품 이미지에 맞는 자기다움을 표시하는 색채를 사용할 것.
③ 작업 및 생활환경의 쾌적성을 의도한 색채일 것.
④ 개별색이 아닌 제품군 전체 속에서 사용 가능한 색채일 것.
⑤ 경쟁사에 비해 자사의 우수성을 나타낼 수 있는 색채일 것.

색채가 가진 의미에는 기능적인 측면(안정성 견고성 판별성 등)과 정서적인 측면(심미성 쾌적성 안정감 친밀감 고급감 등)이 있다. 샤프사는 이들 사이에 질서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제품의 특성에 따라 체계적인 색채계획을 수립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색채에는 물체에 빛이 반사돼 나타나는 물체색 외에도 발광체의 색인 광원색이 있다. 광원색은 조명 컴퓨터 텔레비전의 화면색 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텔레비전 화면의 색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잘 기억하는 색채, 즉 얼굴색 하늘색 녹색 채소의 색 등이 잘 표현돼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비디오 프린터의 출력에서 얼굴색 표현이 잘 될 수 있도록 색좌표계를 새롭게 변형시킨 제품이 개발돼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색채는 인쇄 염색 페인트 염료 사진 영화 비디오 등 색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는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의 총체적인 경쟁력 향상에서도 중요하다. 색채가 예술가나 디자이너 만의 영역에서 벗어나 공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분광학자들이 공동 참여하는 영역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